2014년 10월호

의료관광 24시

밤마다 편의점 출몰 외국인 ‘붕대족’ 성형수술에 싹쓸이 쇼핑까지

  • 김지영 │여성동아 기자 kjy@donga.com

    입력2014-09-18 10: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국 의료관광이 급성장했다. 지난 5년간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한 외국인 환자는 63만 명, 이들이 지출한 진료비는 1조 원에 달한다.
    • 성형 수술의 메카인 서울 강남과 쇼핑의 거리 명동, 광화문과 시청 일대는 반창고를 붙인 외국인으로 종일 북적인다.
    의료관광 24시
    성형외과가 밀집한 서울 강남 압구정역 인근 편의점에는 밤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 성형수술 부위에 붕대를 감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외국인들이 먹을거리를 사러 오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이곳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박기영(21) 씨는 “주변에 성형외과가 많아선지 밤에 오는 ‘붕대족’이 하루 20~30명은 될 것”이라며 “얼굴 주위에 붕대를 친친 감고 선글라스를 낀 외국인을 처음 봤을 땐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지금은 하도 봐서 덤덤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가 즐겨 찾는 식품은 음료와 스낵. 종류가 다양한 컵라면과 삼각김밥도 인기라고 한다.

    날씨가 후텁지근하던 지난 7월 오후 강남 신사역 부근에서 만난 크리스티아 와띠(47·여) 씨는 근처 편의점 단골이다. 6월 26일 인도네시아 제2의 수도 수라바야에서 성형관광차 한국에 온 와띠 씨는 편의점에 매일 가다시피 한다. 그가 좋아하는 메뉴는 전자레인지에 3분간 데워 먹는 즉석 죽. 그는 “호박죽과 흑임자죽, 참치죽 등 종류별로 다 먹어봤다”며 “저녁식사가 부담스럽거나 한밤중 출출할 때 편의점에 들러 죽을 먹는다”고 했다.

    와띠 씨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 모두 성형수술이 목적이었다. 여행사를 통해 처음 방문한 지난해 5월에는 서울에서 2주간 머물며 쌍꺼풀과 코 수술, 얼굴의 피부주름을 당겨 올리는 리프팅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가 만족스러워 지난해 10월 한국을 다시 찾아 복부지방흡입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대퇴부지방흡입수술과 턱에 실리콘을 넣어 보정하는 수술을 받고, 속눈썹도 심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그의 직업은 세무사. 25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의 고객들은 성형수술 후 자신감이 넘치는 그를 믿고 더 많은 일거리를 맡긴다고 한다. 그는 수술 전 스마트폰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못생긴 사람을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성형수술을 받고 나서 살도 빠지고 몸매가 살아났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고들 한다.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 딸아이와 주변 친구들은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는 게 꿈이 됐다.”



    숙박은 알뜰, 쇼핑은 화끈

    의료관광 24시

    인도네시아인 와띠 씨가 성형수술 전 사진과 수술 후 바뀔 모습을 비교한 사진을 보여줬다.

    이번 방문에는 그의 친구 12명이 동행했다. 이들 모두 그와 같은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다. 수술 상담과 예약 접수는 이 병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했다. 와띠 씨는 지난해 10월에도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상담과 수술 날짜를 잡았다.

    병원 홈페이지는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 일본어, 몽골어, 베트남어, 타이어, 인도네시아어까지 8개국 언어로 돼 있다. 인도네시아어라고 적힌 카테고리를 클릭하자 모든 글씨가 인도네시아어로 바뀌며 “궁금한 사항은 실시간 답변해드립니다”라는 글귀가 담긴 창이 한가운데서 깜박였다. 해외에서 병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현지어로 실시간 궁금증을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인환자유치등록업체(이하 등록업체)의 도움 없이도 공항 픽업, 호텔 예약, 통역까지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와띠 씨는 6월 27일 수술하고 나서 따로 숙소를 구하지 않고 이 병원 입원실에서 1주일을 보냈다. 그가 친구들과 묵은 병원 입원실을 둘러보러 갔다. 지하철역 출구를 빠져나와 그가 안내한 곳은 1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 모 성형외과. 먼저 건물 2층에 마련된 외국인 전용 로비에 들렀다. 로비 한쪽 귀퉁이에 마련된 휴게실에는 나이가 지극한 중국 여성 4명이 소파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소파 맞은편 모니터에서 방송하는 외국인들의 성형 전후 영상을 보며 중국어로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이들 중 한 명이 중국 상담실장을 따라 상담실로 들어갔다.

    와띠 씨를 돕는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백모(26) 씨가 나타났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인도네시아 해외상담실장이라고 씌어 있었다. 와띠 씨가 묵은 입원실은 13층에 자리했다. 백 실장은 “13층과 14층 입원실은 환자가 원할 경우 1주일간 무상 제공한다”며 “외국인 환자의 편의를 위해 병원 근처에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레지던스 시설을 뒀다”고 귀띔했다.

    병원 입원실은 2인실부터 4인실까지 다양했다. 와띠 씨는 친구 닐리(42) 씨와 함께 2인실에서 지냈다. 두 사람은 수술 받은 이튿날부터 오전 6~7시에 일어나 근처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고 강남과 동대문, 명동 일대를 다니며 한국산 의류와 화장품, 인삼 등을 샀다. 한 번 쇼핑할 때마다 한 보따리여서 숙소를 나설 때 들고 나온 빈 캐리어를 가득 채워 돌아왔다는 두 사람이 지난 1주일간 쇼핑에 쓴 돈은 각각 1000여만 원에 달한다. 와띠 씨는 “한국 제품이 성형수술만큼이나 우수해 마취만 깨면 쇼핑하러 간다. 얼굴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어도, 피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통역사, 가이드 노릇까지

    옆에 있던 닐리 씨는 “예전엔 일본 화장품을 쓰다 한국 화장품으로 바꿨다. 한국 화장품을 써보니 아주 좋아 6개월마다 화장품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한국에 올 때 그는 “일본에 간다고 둘러댔다”고 고백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한국의 성형수술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인도네시아에도 소문나 있다. TV만 틀면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으면 송혜교, 김태희처럼 예뻐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성형수술 붐이 일 정도다. 한국에 간다고 하면 성형수술을 받으러 가는 줄 다 안다. 성형수술 받는 게 흉은 아니지만 자주 오니까 부끄러워서 거짓말이 나왔다.(웃음)”

    쇼핑이나 식사를 할 때는 백 실장이 자주 동행했다. 와띠 씨는 “지난해 5월 한국에 왔을 때는 개인적으로 통역사를 일당 20만 원을 주고 고용했는데 지금은 백 실장이 통역해줘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며 고마워했다.

    사업을 하는 부모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10년을 보낸 백 실장은 현지인처럼 그 나라 말을 구사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 병원에 취직한 백 실장은 일주일에 5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환자를 맞는다.

    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환자는 혼자 오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 무리지어 다니며 수학여행을 하듯 의료관광을 즐긴다. 인도네시아 부유층의 특징은 한국에서 명품 가방이나 신발을 사지 않는다는 것. 백 실장은 “와띠 씨와 닐리 씨도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서 돈에 얽매이지 않고 화장품을 샀지만 명품 매장엔 들르지 않았다. 명품 가방이나 신발은 유럽에 가서 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명품 쇼핑은 원산지에서 즐긴다는 것이다.

    백 실장의 주된 업무는 비자 발급에 필요한 초청장 작성부터 공항 픽업 담당자 투입, 진료상담, 숙소 예약, 통역서비스 제공. 환자가 출국한 후에도 그는 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기능을 하는 블랙베리 앱 BDM으로 수술 경과를 점검한다. 이 병원에는 그런 일을 하는 외국인 환자 상담실장이 수십 명에 달한다. 홈페이지에 나온 8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상담실장 이외에도 최근 러시아 상담실장이 보강됐다. 러시아 환자 방문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어와 영어를 쓰는 환자가 많아 이 나라 말을 하는 상담실장은 각각 10명이 넘는다.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외국인환자 상담실장의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초임도 저마다 다르다. 백 실장은 “경력과 능력을 고려해 연봉이 책정된다”며 “구체적인 액수는 비밀이지만 일반 직장에 취직한 친구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근무하며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묻자 그는 “일이 힘든 건 참겠는데 환자들이 괴로워하는 건 못 보겠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성형수술만 받으면 바로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오는 줄 아는 환자가 많은데, 상태가 원하는 만큼 좋아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처음 얼마간은 수술 부위가 붓거나 멍이 드는데 그걸 보고 걱정하는 환자를 볼 때 안쓰럽다.”

    병원 내에서 간호사 가운을 입고 바삐 움직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 산하 서부여성발전센터에서 운영하는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교육과정을 수료한 결혼이주여성들이었다. 이들은 하루 4시간씩 닷새간 진행되는 실습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실습은 환자를 직접 응대하지 않고 코디네이터의 업무를 옆에서 보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백 실장은 실습생 가운데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중국교포 전춘매(32) 씨를 소개했다. 전씨는 지난해 11월 여성가족부 취업성공패키지 직업훈련과목으로 의료관광을 선택해 올 1월 강남 A학원에서 의료관광코디네이터과정을 수강했다고 한다. 또한 이론교육과 실습을 병행하는 서부여성발전센터의 의료관광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거쳐 7월 1일부터 서울 서초구에서 서울시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을 의료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는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고자 만든 글로벌헬스케어(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인턴십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외국인 상담실장 효과

    그의 업무는 서초구보건소가 운영하는 글로벌헬스케어 인터넷사이트에서 방문자를 상담하는 일. 인턴십에 참여하는 기간은 4개월. 주당 15시간 이내로 주5일을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해서 그가 받는 시급은 5210원. 이를 일당으로 치면 1만563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31만2600원이다. 여기서 차비와 밥값을 제하면 무료봉사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전씨는 불만을 갖기는커녕 “한국에 처음 와서 한 호프집 서빙은 시급이 4600원이었다”며 의료관광 실무 경험을 쌓을 소중한 기회로 여겼다. 그는 인턴십을 마치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병원에 취직해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씨처럼 외국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결혼이주여성이나 유학생 가운데 병원이나 등록업체에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이가 최근 부쩍 늘었다. 의료관광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모 성형외과병원의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도 대부분 외국인이다. 이 병원의 K원장은 “8개국 상담실장 중 절반 이상이 그 나라 사람”이라며 “상담 과정에서부터 환자와 정서적으로 통하고 환자가 원하는 걸 충분히 이해하니까 수술 결과도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K원장 역시 중국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한다. 그는 중국을 비롯해 미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의사면허를 취득해 주말마다 해외 진료에 나선다. 요즘처럼 바쁜 성수기에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보내는 날이 더 많다. 그는 “해외 출장에선 상담 위주로 진료를 하고 현지 의사면허가 있으니까 수술도 종종 한다”며 “상하이에는 격주로, 베이징과 싱가포르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가고, 다른 대도시엔 돌아가며 간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청두, 톈진 같은 대도시에는 이 병원과 제휴한 협력병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 수술한 중국인 환자는 현지 협력병원에서 계속 치료받을 수 있다. 이 병원엔 성형의술을 배우러 오는 외국인 의사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현지 협력병원장들은 이 병원에서 일정 기간 실무를 경험한 K원장의 제자이기도 하다. 병원 홈페이지에는 이 병원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하는 외국 의사가 연수를 신청하는 창구가 마련돼 있다. 병원에서는 이들에게 숙식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1년 이상 근무할 경우 월급도 준다. K원장은 “외국 의사는 한국 의사면허가 없어 진료나 수술을 직접 할 순 없지만 환자를 상담하고 수술 과정을 참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3개월간 연수한 중국 정저우 대학병원 성형외과 주치의 장란(36) 씨는 “중국 국가 차원에서도 한국에서 성형의학을 공부하기 바란다”며 “수술을 참관하며 좋은 성형기술을 많이 익혀 현지로 돌아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원장은 “중국의 성형의술이 우리보다 뒤처지지만 무섭게 따라오는 중이다. 규모와 의료서비스의 질이 강남 성형외과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중국에서 실패한 한국 병원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에 진출했다가 사기 당한 한국 의사가 적잖다고 귀띔했다. K원장도 그런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K원장은 한국 의사들이 중국에 진출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중국에 진출했다는 병원은 다 중국인 명의를 빌려 설립했을 것이다. 중국정부에서 지난 10년 동안 외국인에게 성형외과를 내도록 허가하지 않아서다. 한국인이 투자했더라도 중국인 명의로 설립해야 하는데, 중국인이 배신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

    중국 병원들은 한국 의사들이 전수한 성형의술과 경영 노하우를 발판으로 급속도로 성장한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10년 후면 중국이 한국의 현 상황까지 따라올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한국은 수많은 성형외과가 죽기살기로 경쟁하는 구조여서 그때 가면 성형의술이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해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국내 병원들 못지않게 정부도 의료관광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의료관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는 저마다 국내 의료기관 홍보 책자를 만들어 해외에 뿌리는 한편 부정기적으로 행사를 연다.

    하지만 자금력과 인력 수급이 원활한 대형 병원에 행사 참여 기회가 편중돼 소규모 개인병원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뿐 아니라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해외 행사에 단골로 참여해온 대형 병원도 불만이 크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행사에 초청하면 다음에 안 불러줄까 싶어 거절할 수 없다. 부스는 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하지만 해외 체류비와 항공료 등은 모두 병원이 부담해야 해서 한번 참여할 때마다 적잖은 비용과 인원이 동원된다. 정부기관과 지자체 등이 개별적으로 행사를 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