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수능 영어의 절대평가 도입이 큰 방향에서 잡혔다”고 밝혔다.
- 영어 절대평가제가 실시되면 수학 사교육 시장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 수학은 고교 내신과 대학 입시의 열쇠일 뿐 아니라 취업, 승진의 중요한 잣대다.
-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의 ‘수포자’는 ‘성포자’(성공을 포기한 사람)와 동의어가 됐다.
고등학교 수학 수업에서 학생들이 ‘별팔면체’(별 모양의 팔면체)를 직접 만들어보고, 이를 통해 정사면체와 정팔면체에 대해 배운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 해당 영역에서 1등급을 받는 학생이 대폭 늘어나고, 입시에서 영어 성적의 변별력이 떨어진다. 분명 ‘입시 사교육’에 한해서는 영어의 비중이 크게 낮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 전체가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영어 사교육에 투자하던 시간과 돈이 수학, 국어 등 다른 과목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등급 구간별 점수 편차가 작은 국어보다 편차가 큰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입시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수학 사교육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입 준비’가 급선무인 일선 고교는 영어 수업 시수를 줄이고 수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초등생이 대학 교재로 공부
수학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요즘 치러지는 각종 시험에서 수학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입 논술에서도 수학 문제가 다수 출제되고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는 매번 참가자가 북적인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수학은 중요하다. 삼성그룹 SSAT 등 대기업 입사 인·적성 시험에 수리 및 추리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항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에서도 수학이 선택과목으로 도입됐다. 행정고시, 입법고시의 1차 시험이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시험인 LEET에서도 추리논증, 수리추리 등 수학 과목이 최상위권을 가리는 잣대다. 금융권 종사자들이 승진을 위해 따야 하는 자격증 시험도 수학을 배제하고는 치를 수 없다.
그렇다보니 대학에서 수학과의 인기가 날로 치솟는다. 서울대의 경우 수학과가 의예과와 함께 수년째 이공계 입시 경쟁률 1~2위를 다투고, 지난해 연세대 수학과 수시모집 경쟁률은 87.38대 1로 전체 학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취업 전망도 좋다. 2010년 기준 수학 관련 학과 졸업생 취업률은 73.81%다. 최근 빅데이터, 알고리즘 등을 이용해 소비자 성향을 분석하는 직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올해 최고의 직업으로 ‘수학자’가 꼽혔다.
요즘은 유치원생 때부터 수학을 배운다. 교육계에서 “수학 공부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게 정설이다.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만 있다면 최대한 일찍 수학 공부에 나서는 것이 좋다는 것. 유치원생도 ‘창의력 수학’ ‘스토리텔링 수학’ 등 꽤 높은 수준의 책을 본다.
초등생은 말할 것도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초등생이 중등수학올림피아드(KMO)에 응시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 응시생이 상당수다.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초등학생이 교재를 찾아다닌다. 문제풀이 교재는 시중에 많지만 이론서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많은 초등학생이 대학가 서점, 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며 좋은 책을 구하려 기를 쓴다.
수학올림피아드에 응시하는 데는 수학 선행학습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수, 대수, 기하, 조합 등 4가지 영역에서 문제가 출제되는데, 모두 대학 수학과 전공수업에서나 배우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작 올림피아드 수학은 대입 수학과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초등생이 응시하는 중등올림피아드 시험이라도 웬만한 고교생은 문제에 손도 못 댄다.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수학올림피아드 대비가 필수 코스다. 대부분의 특목고가 이러한 경시대회 문제를 접해본 학생들에게 유리하도록 비슷한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이다. 사실 수학올림피아드 대회 수상이 성공적인 대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입 비교과 영역에 대한 가산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중고생이 올림피아드에 응시한다. 각종 수학시험에 대비하며 ‘수학적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서다.
축구 선수들이 실전 훈련만큼 웨이트트레이닝을 강조하듯, 대입 수학 문제를 잘 풀려면 문제풀이 능력 자체를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하는 학문이다. 복잡하게 꼬인 이해관계를 풀어가다보면 저절로 추리력과 사고력이 발달한다.
7월 1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치러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한국 대표 학생들은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로 종합 7위를 차지했다. 특히 김동률 군(서울과학고 3년·오른쪽)은 3년 연속 금메달을 수상했다.
현기증 나는 대입 수리논술
8월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여성 최초 필즈상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상을 수여했다.
현행 고교 수학 교과과정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면 따라잡기 힘들다. 워낙 많은 내용이 복합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성적이 최상위인 학생이라도 3년 동안, 아니 수능 직전을 뺀 2년 반 동안에 해당 내용을 다 익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과 학생이 배우는 고교 수학 양은 문과의 3배다. 그래서 중학교 때 고교 수학을 어느 정도 배워둘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실시된 선행교육금지법은 이와 같은 현행 교과과정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대입 수시전형에서 치르는 수리논술 시험 역시 수준이 상당히 높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큰 이슈였던 ‘대입 3불(不) 정책’ 중 하나가 본고사 부활이었는데, 지금은 의미 없는 얘기가 되고 말았다. 최근 대학별고사의 수리논술 문제가 워낙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예전의 본고사 문제는 속된말로 ‘껌’이다.
상위권 대학의 경우, 교과과정 밖에서도 많이 출제된다. 서울대 수리논술에선 고등학교 교과과정엔 아예 나오지도 않는 문제를 제시한다. 서울대 수리논술은 대학수학과정인 미적분학(Calculus)으로 대비해야 할 정도로 그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아무리 상위권 학생이라 해도 고등학생이 미적분학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학생 대부분이 준비 없이 서울대 수리논술을 치른다. 그런 상황에서 선행학습 등을 통해 미적분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학생이 있다면 높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수학은 포기하려야 포기할 수 없는 학문이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학을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다. 수학올림피아드 입상자들 중에서 대학 입학 후 수학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조차 수학을 연구하지 않는 현실은 수학 과목이 그저 입시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방증이다. 수많은 우수 학생이 수학의 진면목을 느껴보지 못한 채 도구적으로 수학을 공부하고, 끝내 수학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아무리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해봤자 거부감만 줄 뿐이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미국에서는 필즈상이 노벨상보다 더 가치 있다고 평가한다. 일본인도 몇 번 받은 상이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늘 5위권 안에 든다. 세계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이 필즈상 수상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걸음마부터 천천히
수학을 잘하고 좋아하려면, 수학을 처음 접할 때부터 흥미를 가져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고민해보자.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복잡한 공식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기본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 공부할 때도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근본 원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학 공부는 악기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울 때 처음 접하는 교본 중 하나가 바이엘과 체르니다. 이것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는 베토벤, 쇼팽을 칠 수 없을뿐더러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되기도 어렵다. 물론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한 곡을 죽어라 연습해 콩쿠르에서 입상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다른 곡은 못 친다. 그렇게 되면 좌절하고 흥미를 잃게 된다. “나는 콩쿠르 입상까지 했는데 왜 그보다 쉬운 곡을 못 칠까. 재능이 없나봐”라고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음악을 포기하는 지름길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어린 학생들이 유치원 때부터 경시 수학을 공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아이에게 체르니도 가르치지 않은 채 베토벤을 치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아이가 수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것이 우선이므로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 어려서부터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무조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과정을 차근차근 밟지 않고 건너뛰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도 ‘수학을 좀 한다’ 싶으면 본인이나 주변에서 과도한 관심을 주고 결국 ‘수박 겉핥기 식’ 공부를 시킨다. 이건 ‘수포자’로 가는 지름길이다.
대입 수리논술을 대비하는 학생 대다수가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하는데, 이는 앞뒤가 바뀐 것이다.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의 출제 경향을 분석해 그에 적합한 이론서를 봐야 한다. 대입 수리논술을 위해 엮어놓은 문제집이 아니라 전공 수준의 원리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각 대학의 기출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책의 어느 파트를 봐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학교 교사들부터 대학별 수리논술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수학을 공부하는 데 가장 좋은 책은 교과서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는 이야기가 진부하고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건 요즘 수학교과서가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어떤 특목고는 교과서 대신 참고서를 교재로 쓰는데, 이는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문가들이 많은 연구를 통해 기가 막힌 교과서를 만들어놓았는데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모두에게 묻고 싶다. 왜 수학을 배우는가.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시험을 위하여” “취업을 위해서”…. 이런 답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지극히 지엽적이다.
때로 꿈꾼다. “수학을 사랑하니까” “수학이 아름다워서” “수학이 수학이라서 공부한다”와 같은 답이 나오는 사회를. 함께 커피 마시며 연예인 이야기를 하듯 수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라. 그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