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고(長考) 끝 악수, 개 발에 편자?
- 北 미사일 위협 외면하고 좋은 전투기만 찾는 공군
- 쌍발기 2대보다 단발기 3대가 작전상 더 효과적
- 지금 긴요한 것은 F-15K와 급유기·경보기
이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1개 엔진(단발)’파와 ‘2개 엔진(쌍발)’파의 충돌이 있었다. 쌍발은 공군과 이 전투기 개발을 제안한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ADD)가, 단발은 이 전투기를 제작할 (주)한국항공과 국방 싱크탱크인 국방연구원(KIDA)이 주장했다. 공군과 한국항공은 날카롭게 맞섰다. 공군은 “우리 후배들이 탈 전투기는 안전해야 하니 두 개의 엔진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항공은 “쌍발이 더 안전하다는 것은 옛날얘기다. 수출을 염두에 둔다면 저렴한 단발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 싸움은 7월 18일 합동참모본부(합참)의 결정으로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 합참은 새로 개발할 무기에 대해 ‘이러이러한 성능을 갖춰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를 ‘작전요구성능(ROC)’이라고 한다. 합참은 KFX가 갖춰야 할 작전요구성능 중의 하나로 쌍발 엔진 탑재를 결정했다. 이로써 단-쌍발 논쟁은 막을 내린 듯하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다음의 는 KFX를 단발과 쌍발로 개발할 때의 개발비, 이를 120대 생산하는 데 필요한 양산비, 이 120대를 30년간 운용할 때 들어가는 정비 비용 등을 더한 ‘운용유지비’를 비교한 것이다. 개발비는 국방연구원, 양산비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운영유지비는 공군이 계산했는데, 모든 항목에서 쌍발기가 높게 나왔다. 총액으로는 쌍발기가 4조8000억 원 더 든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업을 하고자 하는 기관은 ‘시작 예산’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사업을 승인하거나 검증하는 기획재정부(기재부), 국회, 언론 등의 시비를 피해갈 수 있다. 일단 시작한 다음 ‘설계 변경’ 등을 통해 사업비를 늘려간다.
이런 식이다 보니 일부 사업은 졸속으로 계획해, 돈은 계속 들어가는데 그만두지 못하고, 완료한 다음에도 흑자를 자신하지 못하기도 한다.
돈 먹는 하마 될 것인가
그리하여 ‘돈 먹는 하마’가 되면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사업 추진 기관은 물론이고 예산을 승인한 기관도 언론과 국회의 질타를 받게 된다. 에서처럼 지금은 KFX를 쌍발로 개발하는 데 8조5000억 원이 들어간다고 본다. 그런데 직전까지는 단발 개발비 6조7000억 원보다 적은 6조4000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이 6조4000억 원은 ‘시작 예산’을 줄여 일단 사업을 시작하려는 편법으로 볼 수도 있는데, 지금 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애초 정부(기재부)는 “KFX 개발비의 절반을 댈 테니 나머지는 한국항공처럼 KFX 개발에 참여할 국내외 업체와 공동개발에 참여할 다른 나라 정부가 대게 하라”고 했다. 업체 등에 개발비를 부담시킨 것은 이 사업이 ‘돈 먹는 하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생산자들도 돈을 대게 해야 설계 변경 등으로 개발비를 늘려가는 편법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기재부는 쌍발의 KFX 개발비가 8조5000억 원으로 제시된 것도 유사한 편법으로 보기에, 애초 거론된 6조4000억 원만 인정하려 한다. 그래서 6조4000억 원의 절반인 3조2000억 원만 대는데, 여기에도 편법으로 증액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기에 타당성을 조사해보고 문제가 없으면 승인한다는 방침이다. 그 때문에 국방연구원에 3조2000억 원을 집행해도 되는지에 대한 조사를 맡겼다.
기재부의 이런 태도 때문에 KFX 사업은 합참이 작전요구성능을 확정했음에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에 있다.
기재부 등은 처음엔 외국에서 전투기를 사오는 방안을 고려했다. 외국산 전투기를 직도입하면 개발비가 필요 없으니 돈이 훨씬 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산 전투기를 가져야 한다’는 열망이 너무 강해 포기했다. 그리고 단발기 개발을 의식했는데, 공군은 합참을 움직여 더 비싼 쌍발기로 나가버렸다.
‘돈줄’을 쥔 기재부의 기세가 만만치 않자 쌍발파는 대안 찾기에 나섰다. 한국은 KFX에 이어 중형 여객기를 개발하고자 한다. 이는 민수 산업이라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추진한다. 중형 여객기 개발에는 KFX를 통해 개발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기에, 공군(방사청)은 산자부도 돈을 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기에 산자부는 KFX 개발비의 10% 정도를 부담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정부(기재부+산자부)가 60%, 국내외 업체가 20%, 공동개발에 참여할 다른 나라(현재는 인도네시아)가 20%를 대는 것으로 윤곽이 짜였다. 그러나 정부가 부담하는 60%가 8조5000억을 토대로 한 것인지 6조4000억을 근거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관 간에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防空 포기한 반대급부
우리 군은 오래전부터 방위력개선비 배분을 놓고 내부 다툼을 해왔다. 그러다 육·해·공군과 국방부 직속기관이 4 : 2 : 2 : 2로 나눈다는 구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묵시적 합의는 한국군이 앓는 대표적 ‘속병’으로 꼽힌다.
방위력개선비는 적의 해군이 강하면 우리 해군을, 적의 전차 전력이 막강하면 우리의 대(對)전차전 전력을 강화하는 식으로 사용해야 옳다. 그런데 고정 비율대로 배분하니, 한쪽은 돈이 남아 중요하지도 않은 사업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핵심 전력을 증강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해·공군은 비율을 정해놓지 않으면 ‘대군(大軍)’인 육군이 더 많이 가져간다는 피해의식이 있어 고정 비율제에 동의했다.
공군은 이 ‘속병 룰’을 원용하기로 했다. 2014년 우리 군의 방위력개선비는 11조 원 정도인데, 이를 위 비율대로 나누면 공군 몫은 약 2조2000억 원이 된다. 단발기 개발에는 8년 반이 걸리나, 쌍발기는 10년 반 걸릴 것으로 본다. 공군은 이 ‘10년 반’에 주목했다.
국방비는 매년 증가하므로 방위력개선비도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 공군은 이 증가율을 곱해 10년간 공군에 할당될 방위력개선비를 합산하면 23조 원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이 23조 원에 기재부가 주겠다고 한 KFX 개발비 3조2000억 원이 포함된다.
향후 10년간 공군은 이 23조 원으로 쌍발 KFX를 개발하고, F-35A 40대와 급유기 4대, 경보기 2대 등을 도입해야 한다. 공군은 23조 원을 쓰는 데 여유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각 군의 방위력개선비 비율만 보장해준다면, 기재부의 삭감으로 부족할 것이 분명한 KFX 개발비를 메울 수 있다는 게 공군 주장이다.
육군과 해군은 KFX를 쌍발로 하면 많은 돈을 잡아먹어, 육·해군 몫의 방위력개선비가 줄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러한 우려가 커지면 육군이 절대 다수인 합참이 ‘KFX는 쌍발로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의식한 공군은 “육·해군 몫은 건드리지 않고, 공군의 방위력개선비만으로 쌍발의 KFX를 개발하겠다”고 설득했다. 이렇게까지 나오자 합참은 공군 요구대로 KFX의 작전요구성능을 쌍발로 결정했다. 예산 문제가 8조5000억과 6조4000억 사이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합참이 쌍발을 KFX의 작전요구성능으로 결정한 비밀이 여기에 있다.
이는 공군이 묘책을 찾아내 난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보 현실을 토대로 냉정히 검증해보면 중대한 허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안보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전투기에 한정된 ‘공중 우세’만으로 보는 우리 공군의 지독한 속병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안보 위협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다. 올해 들어 북한은 미사일 100여 발을 시험 발사했다. 이 때문에 군산과 대구기지에 패트리엇 미사일인 PAC-3를 배치한 미군은, 자기 예산을 더 써서 사드(THAAD·고고도공역미사일방어)를 추가 배치하려 한다. 그런데 휴전선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수도를 둔 대한민국은 이제야 PAC-3 도입을 논의한다. 사드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는다.
북한 미사일 방어는 공군의 몫인데, 우리 공군은 미군이 대비를 서두르는 이 심각한 위협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공군은 조종은 ‘더운 밥’이고, 방공(防空)은 ‘찬밥’이라는 아주 잘못된 문화를 만들어왔다. 북한보다 우세한 전투기 분야에는 계속 물을 주지만, 말라비틀어져 가는 방공 쪽에는 어쩌다 한 방울씩 준다. 이는 향후 10년간 공군이 준비하는 방위력개선사업에 PAC-3와 사드 또는 그와 유사한 무기 도입 계획이 없는 것으로 증명된다.
이 문제에 대해 공군은 국내에서 개발하는 한국형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MD)로 대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시스템으로는 발사된 북한 미사일을 막지 못한다.
공군이 향후 10년간 방위력개선비에 여유가 있어 쌍발 KFX 개발비를 댈 수 있다고 나선 것은 이렇듯 방공을 포기한 반대급부다. 이는 뒷문은 열어놓고 앞문만 닫은 채 안심하고 자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쌍발’ 위해 말 바꾸는 공군
국방과학연구소가 쌍발로 제작해야 한다고 한 KFX 가상 모형.
8조5000억 원을 써서 10년 반 만에 쌍발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도 허구일 수 있다. 선진국에서도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개발 기간과 개발비가 늘어난 예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F-35 스텔스 전투기를 예상한 기간과 비용 안에 개발해내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KFX 사업도 기재부가 우려하듯 더 많은 개발비와 시간이 들어갈 수 있는데, 공군은 이 문제는 생각지 않으려 한다. T-50 고등훈련기도 개발에 나선 직후 외환위기를 맞아 난관에 봉착했다. 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미국의 록히드마틴 등에 일부 개발비를 부담시켰다. 그리고 이 개발비를 갚느라 지금 T-50은 비싼 훈련기가 됐다.
10년 반 동안 8조5000억 원을 써서 쌍발의 KFX를 개발한다는 것은 ‘장밋빛 허상’일 수 있다. 비용은 나중에 생각하고 시작부터 하자는 술책일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KFX 사업은 2001년 3월 20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늦어도 2015년까지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공론화했다. 그때 생각한 국산 전투기는 단발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쌍발기 주장이 제기돼, 논쟁이 벌어지면서 2015년을 코앞에 둔 지금, 개발 완료는커녕 시작도 못한 상태에 있다.
KFX 사업이 연기될 때마다 공군은 “공군의 미래 전력에 허점이 생긴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소리를 한다. 이미 도태기가 시작된 낡은 전투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KFX 사업을 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개발할 수 있는 단발기를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개발하는 데 단발기보다 2년이 더 걸리는 쌍발기를 고집하면서 공군은 “쌍발의 KFX가 개발될 때까지 전력 공백 없이 기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3년 동안은 다급하다고 해놓고, 이제 와선 “쌍발 KFX가 양산되는 2023년까지 전력 공백이 없다”는 것이다.
공군의 모순은 이것만이 아니다. 양산비와 운영유지비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앞의 표에서 보듯 개발이 끝나 120대를 양산할 경우, 쌍발기는 단발기보다 양산비가 1조7000억 원이 더 들어간다. 운영유지비도 1조3000억 원 더 요구된다. 공군은 이 3조 원을 마련할 방법에 대해선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10년 후의 일도 예측하기 힘든데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항공기 기술이 매우 발전한 오늘날 엔진 사고에 따른 추락률은 단발기와 쌍발기 간에 차이가 없다. 단발기의 대표 격인 미국의 F-16에 탑재하는 엔진은 쌍발기인 F-15에 2개 탑재된다. 같은 엔진을 단발기와 쌍발기에 단다는 것은, 이 엔진의 사고율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공군 관계자들은 “엔진 사고를 의식해 쌍발기를 고집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인정한다.
엔진 사고 때문이 아니라면 공군은 쌍발기를 개발해야 하는 다른 이유를 내놓아야 한다. 전투기는 작전을 위한 항공기인 만큼 작전 면에서 쌍발기가 왜 유리한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공군은 답을 하지 못한다. 이는 전략 개념 없이 KFX를 쌍발로 하겠다는 얘긴데, 이러한 한국 공군의 태도는 미국 공군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제공기와 전폭기
전쟁 경험이 많은 미 공군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쪽으로 전투기를 구성한다. 무작정 좋은 전투기만 보유하는 게 아니라 ‘제공기’와 ‘전폭기’로 나눠 보유하는 것이다. 제공기는 하늘을 날아가는 아주 빠른 표적인 적기 공격을 주목적으로 한다. 빠른 표적을 잡으려면 정교하고 많은 무기와 많은 연료를 실어야 한다. 그래서 큰 엔진 2개를 탑재한 대형 전투기로 제작해 ‘제공기’로 불렀다.
미군이 파괴해야 할 시설물(표적)은 대체로 땅에 있다. 전차는 적기에 비하면 움직임이 매우 느리므로, 덜 정교한 무기로도 타격해 부술 수 있다. 하지만 수가 매우 많기에, 이러한 표적을 잡아야 할 때는 덜 정교한 전투기를 대량으로 투입한다. 미 공군은 이 작전을 할 전투기를 ‘전폭기’로 명명했다.
전폭기는 큰 엔진 1개를 붙이는 대신 대량으로 보유한다. 제작비가 싼 단발기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공기가 적기를 잡음으로써 확보한 공중 우세를 틈타 전폭기를 대량으로 투입해 지상 표적을 제거한다는 작전 개념을 세웠다.
이 때문에 미 공군은 제공기는 쌍발, 전폭기는 단발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 전통은 스텔스기를 만드는 지금도 이어져, 제공기인 F-22는 쌍발, 전폭기인 F-35는 단발이다. 미 공군은 이것이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강한 전투력을 얻는 방법이라 보고, 이러한 전투기 구성을 ‘고저배합(high-low mix)’으로 불렀다. F-15와 F-22는 고급(high), F-16과 F-35는 저급(low)에 해당한다.
함재기를 운용하는 미 해군은 미 공군과 똑같이 가지 않겠다는 고집과 함께 미 공군만큼 강력한 전투기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보고 다른 길을 걸었다. 작은 엔진 2개를 탑재한 F-18을, 무장을 달리해 제공기와 전폭기로 나눠 쓰기로 한 것이다.
유럽은 미국처럼 전투기용 대형 엔진을 개발하지 못해, 미 해군과 같은 길을 택했다. 작은 엔진 2개를 탑재한 전투기를 만들고 무장을 달리해 제공기와 전폭기로 나눠 쓰는 것이다. 대표적 기종이 한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 때 F-15와 경합했던 유로파이터 타이푼(EADS)과 라팔(프랑스)이다.
그러나 F-18과 유로파이터 타이푼, 라팔은 시장을 창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F-18은 그럭저럭 수출했지만, 경쟁자인 F-16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그 때문에 전폭기를 쌍발로 만들면 수출하기 어렵다는 이해가 생겼다.
장거리 작전 하려면…
한국과 일본은 미 공군의 길을 따라, F-15와 F-16을 보유하게 됐다. 그런데 한국 공군은 ‘한국적 현실’을 반영해 조금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미 공군은 실전에서 장거리 전폭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F-15를 개조해 제공기와 전폭기로 모두 쓸 수 있는 F-15E를 만들게 했다. 한국 공군은 이 F-15E를 도입해 F-15K로 명명했다. 급유기가 없어 장거리 작전이 불가능했던 한국 공군은, F-15K를 도입한 다음에야 비로소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독도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천안함 폭침을 당한 한국군은 북한이 유사한 도발을 하면 원점을 타격한다는 ‘국지도발대비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의 핵심에 F-15K를 집어넣었다.
서해 5도 건너편엔 방사포 등으로 무장한 인민군 4군단 포병여단이 있는데, 백령도 등에 있는 부대는 규모가 작고 기동할 곳이 좁아 이 여단의 화력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국지도발대비계획의 핵심은 도발하는 인민군 4군단 지휘부를 때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휘부가 숨은 갱도 진지부터 파괴해야 한다.
이 진지는 길이 7m, 무게 5000파운드의 벙커버스터 폭탄으로 부숴야 하는데, 이렇게 큰 폭탄을 실을 수 있는 기종은 F-15K뿐이다. KF-16도, 쌍발로 개발하겠다는 KFX도 싣지 못한다. 한국이 도입하기로 한 F-35A는 F-15K만큼 멀리 날아갈 순 있지만, 덩치가 작아 이 폭탄을 싣지 못한다. F-15보다 낫다고 하는 F-22는 미국이 수출하지 않으니 쳐다볼 수도 없다.
지난해 말 중국이 이어도 상공을 중국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하자, 우리도 이어도를 덮는 식으로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확대했다. 이어도는 독도, 백령도보다 더 먼 곳이므로 F-15K를 보내야만 방어할 수 있다. 급유기가 없으면 KF-16이나 쌍발의 KFX는 띄울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리고 북한 급변사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F-15K는 더 큰 주목을 받게 됐다.
북한 급변사태는 내전 형태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내전 발발로 북한 주민이 대규모로 희생되면, 유엔은 주민 보호를 위한 군사작전을 승인할 수 있다. 유엔 회원국이 참전할 이 작전은, 북한 공군기의 이륙을 금지하는 ‘비행금지구역 작전’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 작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것이 한국 공군이다.
최초의 작전이라면 스텔스기인 F-35A를 투입해 북한 공군기를 제압한다. 그러나 장거리 작전을 하려면 엄청난 무장을 싣는 F-15K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이는 많은 무장을 실은 F-15K만이 해낼 수 있다.
급유기를 보유하고 경보기도 지금보다 많아진다면 KF-16과 KFX도 이런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그때 F-15K는 더 깊이 침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현재 한 대도 없는 급유기는 물론이고, F-15K와 경보기를 더 도입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에 필요한 예산은 KFX를 단발로 만듦으로써 절약할 수 있는 돈을 전용하면 된다.
약간 나은 質보다는 量을
독도 방어와 서해 5도 방어를 위한 국지도발대비계획의 시행, 이어도 방어, 그리고 북한 급변사태를 생각한다면 전투기는 많을수록 좋다는 결론도 나온다. KFX를 저렴한 단발로 만들어 더 많이 보유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KFX는 단발로 가야 한다. 작전이 ‘양(量)’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공군은 쌍발기가 단발기보다 더 많은 무장을 탑재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생각을 바꾸면 전혀 다른 방안이 나온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쌍발기는 단발기보다 10% 정도 많은 무장을 싣는다.
1990년대 실시한 차세대전투기(KFP )사업을 근거로 계산하면, 단발기(F-16)와 쌍발기(F-18)의 가격비는 2대 3이다. 쌍발기 2대를 구입하는 돈으로 단발기 3대를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단발기 3대는 쌍발기 2대보다 훨씬 더 많은 무장을 싣는다. 2대의 쌍발기에는 220%(110%×2)의 무장을 싣지만 3대의 단발기에는 300%(100%×3)의 무장을 실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은 돈으로 쌍발기 2대를 사는 것보다는 단발기 3대를 구입하는 게 낫다는 답이 나온다. KFX를 단발로 하고 거기서 절약된 돈으로 급유기와 경보기를 갖추고, 여유가 있다면 F-15K와 단발의 KFX를 더 구입하는 것이 더 강한 항공력을 갖추는 길이다.
공군은 쌍발의 KFX는 비싸서 수출할 수 없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전투기는 최소 300대를 생산해야 개발비를 건진다고 한다. 공군은 이를 의식한 듯 쌍발의 KFX를 120대가 아니라 300대 도입할 수도 있다는 말을 흘린다.
국과연에 포진한 쌍발기파는 미 공군의 제공기가 쌍발임을 의식한 듯 “쌍발기를 개발해야 첨단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며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KFX를 300대 도입하면 예산상 급유기와 경보기 등은 구입하기 어려워진다. 급유기 없이 장거리 침투를 못하는 KFX를 잔뜩 보유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KFX가 최첨단 전투기여야 한다는 주장은 ‘KFX는 제공기가 아니라 전폭기’라는 기본 개념을 뒤집은 망발에 가깝다. KFX는 최고 성능의 전투기(제공기)가 아니라 가장 경제적인 전투기(전폭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베스트셀러인 F-16을 밀어내고 수출까지 하려면 더더욱 KFX를 가장 경제적인 단발기로 만들어야 한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쌍발기파의 주장에 냉정해져야 한다.
전투기의 핵심은 엔진, 레이더, 무장이다. 하지만 한국은 KFX 개발로도 이 셋을 국산화하지 못한다. 전부 수입해야 한다. 국과연은 AESA급 레이더를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핵심 부품은 미국에서 사와야 한다.
단-쌍발 논쟁을 하려면 KFX사업을 통해 작은 엔진을 국산화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산 엔진을 개발할 가능성이 없는데 왜 공군과 국과연은 쌍발기를 고집하는가.
운전기사더러 車 고르라면…
항공산업의 발전을 고민하는 이들은 KFX 제작보다는 T-50을 토대로 한 작은 전투기를 제작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작은 전투기에 들어갈 엔진과 레이더 등을 국산화한 후 큰 전투기 개발로 가자는 얘기다.
FA-50의 수출 성공은 이 주장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T-50은 훈련기로서는 비싼 편이라 잘 팔리지 않지만, 이를 공격기로 개조한 FA-50은 작은 전투기를 찾는 나라가 많아 제법 팔려나간다. 돈을 벌기 위해 KFX를 개발할 거라면 값싼 전투기를 찾는 나라가 많은 현실을 수용해 값싼 단발기를 개발하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 대목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국과연의 교묘한 조직 이기주의를 비판한다.
“한국항공이 단발인 T-50을 개발한 후 국과연의 항공본부는 위기를 느낀 것으로 안다. 그 때문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KFX 개발을, 그것도 한국항공이 해보지 못한 쌍발기 개발을 외쳤다. 이를 위해 첨단 전투기 개발론을 유포했는데, 공군이 안전을 이유로 들어 편승하면서, 쌍발 KFX 개발론이 형성됐다. 이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기관을 위해 항공산업을 하자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정부는 돈이 없어 고민한다. 각종세금을 올리고 서민을 힘들게 하는 ‘담뱃값 인상’까지 시도하고 있다.‘철밥통’인 공무원연금도 개편해 세수(稅收)와 재정을 늘리려 한다. 그런데 공군과 국과연은 돈은 많이 쓰고도 효과는 작을 것이 분명한 쌍발 KFX를 개발하려 한다.
이들의 고집 때문에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산 전투기 개발 선언 후 13년을 단-쌍발기 논쟁으로 허비했다. 쌍발 KFX로 가려는 데 대해 뜻있는 이들은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고 평한다.
1990년대 KFP사업을 이끌었던 김종휘 전 외교안보수석은 “운전기사 보고 좋은 자동차를 골라 오라면 전부 벤츠 아니면 BMW를 선택한다. 주인의 주머니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라는 뼈 있는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