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2025년에 무속신앙? 상류층일수록 의존 더 해

[밀착취재] 점괘 10만 원, 치성 500만 원, 굿 1억 원…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5-02-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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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옥 부지 선정하려 무당 부른 AI 기업

    • 비쌀수록 신통하다 여기는 상류층 많아

    • 상류층 교류 많은 무속인, 연간 수억 원 벌어

    • 불안감 조장하는 역술인도… 맹신은 금물

    국내 최대 점술촌으로 꼽히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에 형성된 미아리 역술원 거리. 성북문화원 [페이스북]

    국내 최대 점술촌으로 꼽히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에 형성된 미아리 역술원 거리. 성북문화원 [페이스북]

    “만약 기다리지 못하고 섣불리 움직였더라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경 긴급 브리핑을 연 윤석열 대통령이 종북과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전국 단위의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사업가 A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10년 넘게 교류하던 역술인 B씨가 내뱉은 말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앞날 대비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인식

    B씨는 “2024년 하반기와 2025년 상반기에는 계획하던 일들이 원점으로 돌아갈 터이니 중요한 결정은 뒤로 미루라”고 여러 차례 그에게 주의를 줬다. 2025년 초복만 지나면 불길한 운이 나가니 계획한 일을 달성하게 된다는 게 역술인의 점괘였다. A씨는 ‘한밤중 계엄 파문’ 직후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2024년 연말 잡아둔 해외 바이어와의 미팅을 전격 보류했는데, 결과적으로 흉을 피한 상황이 됐다”며 점괘의 신통함을 피력했다.

    2025년 대한민국 상황은 어느 때보다 내일을 내다보기 어렵다. 지난해 국회가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던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 소추하는 등 정치 불안이 커져 경제, 사회, 문화 지형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사업가, 전문직, 고위공무원, 정치인 등 지위나 생활수준이 높은 상류층은 시절이 하수상한 상황이어서 불안한 앞날에 대비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개중에는 지푸라기 한 가닥이라도 잡으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유명 역술인을 찾는 이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역술인의 전언에 따르면 점괘만 보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치성(致誠·있는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행위)을 드리거나 굿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친으로부터 종합병원을 물려받은 2세 경영인이자 의사 남편을 둔 C씨가 역술인 D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대구 동성로 로데오거리 인근 점집을 찾은 때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1월 말. 병원 건물에 임대차계약을 맺은 상가 임차인이 계약 종료 후에도 상가를 무단 점유 사용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임차인을 내보내기 위해 명도소송을 제기한 C씨는 재판이 진행될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이런 그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지인의 권유로 D씨를 찾아간 것이다. D씨는 C씨를 처음 본 자리에서 대뜸 “송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깜짝 놀란 C씨는 송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절차와 예법에 따라 치성을 드렸다. 이후 C씨는 역술인에게 점사비(10만 원)와 치성비(500만 원) 명목으로 현금 510만 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사업 실패 두려움 떨치려 굿당 찾아

    1994년 서울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의 점집 밀집 지역인 ‘미아리 역술촌’에서 역술인 생활을 시작한 E씨는 “지금도 굿을 통해 신을 부르거나 악령을 쫓아내는 등의 의식을 행하는 상류층 인사가 많다”고 전했다. 미아리 역술촌은 1970~90년대에 호황을 누렸다. 2000년대 이후엔 주변이 재개발되고 점을 보는 인구가 줄어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일부 점집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씨의 설명이다.

    “상류층 사업가나 자영업자는 굿을 하는 일이 많다. 이들은 단순히 복이나 재수를 바라고 굿을 하지 않는다. 신용거래에 차질이 생겨 재정이 위태로워지거나 사업이 실패할 경우를 가장 두려워한다. 이들이 돈은 많아도 자신들이 속해 있는 업계나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을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질 때 신령을 잘 대접하면 행운이 따르지만 서운하게 대하면 고통을 겪게 된다고 여긴다. 이런 풍조가 이들로 하여금 굿당을 찾도록 만든다.”

    E씨에 따르면 전문직이나 사무직 종사자는 수입이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시장 위험에 덜 노출돼 있어 굿을 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굿당은 무당이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당집이다. 인구가 밀집한 주택가 가정집에서 굿을 하기 어려워 대부분이 외진 곳에 있다. 1980년대 전후만 해도 마을 공터 같은 공개 장소나 의뢰인의 집에서 굿을 했다. 하지만 현대인의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어 소음 규제를 받으면서 동네잔치처럼 요란하던 굿판이 산 같은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행하는 은밀한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E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굿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며 의아해하겠지만, 지방에는 근래에 생겨난 굿당이 많다. 굿의 형식이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역술인과 단골 관계를 유지하는 상류층 가정은 보통 격년으로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새남굿(죽은 사람의 넋이 극락으로 가도록 행하는 굿)을 한다. 제철 과일과 음식을 신령에게 바치고 무당과 악사 몇 명을 부르려면 굿 비용만 적게는 2000만 원이 든다. 무속인의 경력이나 굿 규모에 따라 수억 원의 비용이 들기도 한다.

    무속인이 점을 보러 오는 사람의 과거나 문제를 잘 맞히고 제시한 해결책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입소문이 나면 그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명한 무당이 되면 손님 예약이 최단 2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꽉 찬다. 고수익을 올리는 무당도 적지 않다. 무속인의 연간 수익은 수억 원에 달한다. 상류층과 교류가 많을수록 무속인의 연간 수익도 늘어난다.

    자식 미래, 건강엔 큰돈 내고 굿판 벌여

    상류층이 큰돈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는 경우는 자식의 미래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120억 원을 호가하는 서울 한 주상복합아파트에 거주하는 사업가 F씨는 우연히 알게 된 한 역술인의 말을 듣고 굿 비용으로 1억 원 이상을 썼다. 이 역술인은 그에게 “사업 운이 나빠 골치 아프게 생겼지만, 그보다 본인 장(臟) 건강이 더 문제다. 신경 쓰는 것이 좋다. 자식도 장이 약해 고생할 팔자인 데다 공부머리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F씨는 선천적으로 장이 약해 특정 브랜드 생수만 마셨을 정도라고. ‘물갈이’가 심해 여행 중 설사하는 일이 많았던 그는 역술인 말이 신통하게 들렸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F씨의 초등학생 딸이 병원에서 “장이 약해 또래보다 소화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F씨의 말이다.

    “역술인이 조언하기를 내 사업 운이 썩 좋지 않은 것으로 보여 올해에는 투자를 늘리지 말고 현금을 확보하라더라. 돈 문제는 지금 전세를 놓은 아파트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것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나와 딸의 건강 상태인데, 마땅히 수술 같은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효과가 좋은 신령일수록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 큰돈을 들여 굿을 했다.”

    기업 오너나 경영진이 무속인을 사옥이나 공장 부지로 불러 굿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무속인 E씨는 “국내 모 반도체 전문기업이 새로운 공장 부지를 선정할 때 무속인을 회사로 부른 일이나 대한민국 대표 기업 창업주가 사주팔자를 보는 역학으로 임원진의 재운을 따지는 등 역술 경영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라면서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응용하는 회사가 사옥을 이전하거나 공장을 지을 때 무속인에게 기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고 말했다.

    정치인과 고위공무원 중에도 무속인을 곁에 두고 인생의 고비 때마다 찾는 이가 적지 않다. 요즘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치 상황이나 치열한 선거 경쟁, 알쏭달쏭한 표심이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장년 상류층은 굿만큼이나 사주명리학에 큰 관심을 보인다. 사주명리(四柱命理)는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네 가지로 인생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으로,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도 한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철학원을 운영하는 G씨의 말이다.

    “사주학회 모임에 가면 이름 대면 알만한 기업 회장, 전문경영인, 정치인, 교수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듣는 얘기가 많아 생각이 복잡하다.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터득해 사주를 대하는 자세가 상당히 진지하다. 답답함을 풀고자 주역과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도 적지 않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진 무속인, ‘비단 아씨’ 이선진 씨가 2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뉴스1]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진 무속인, ‘비단 아씨’ 이선진 씨가 2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뉴스1]

    맹목적 믿음은 금물

    현대사회에서 상류층은 주로 부, 권력, 위신 등 가치 서열에서 상위에 위치하는 사회적 특권 집단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점을 보고 굿을 하는 걸까. 무속인 G씨는 “그들은 성공이 실력보다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진 그의 설명이다.

    “큰돈을 만지거나 권력욕, 명예욕이 큰 사람은 자신이 가진 운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한다. 사람의 길흉을 결정하는 요소는 선천적 요소(운명), 후천적 요소(노력), 주변 환경이나 사람·관상·성명(이름) 등이다. 상류층은 이러한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결국 부모를 잘 만나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자라서 사회적 인프라를 쉽게 얻은 것은 자기의 복이기에 어느 점집을 다니고 무속인 누구와 교류하는지 숨기려 한다. 굿하는 것을 지극히 사적인 일로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상류층과 무속인의 연결은 대부분 집안 대대로 이어진다. 조부모 세대는 대체로 조상을 잘 모셔야 마음이 편하고 자식이 잘된다는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관습이 몸에 깊이 배어 있다. 이런 경우 안주인은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무당을 찾아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러면 무속인은 그 집안의 조상들에게서 문제 원인을 찾고, 지금의 문제가 조상 대대로 이어진 것임을 알린다.

    윗세대로부터 이러한 생활양식과 문화를 물려받은 부모 세대의 경우 자연스럽게 조상에게 복을 빈다. 나아가 조상을 만나기 위해 무당을 찾아 점을 보고 굿을 하기도 한다. 무속인이 그 집안의 1세대에 이어 2세대와 오래 긴밀하게 교류하다 보면 그 집안의 조상신을 꿰뚫게 된다고 한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무속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무속인 중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점집이 성행하고, 유튜브를 무대로 활동하는 무속인도 넘쳐난다.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나 홍대 거리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에는 한 집 건너 타로 카페가 이어진다.

    기성세대와 달리 유교 관념이 덜한 상류층 젊은 세대는 무속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까. 무속인 G씨는 “일상에서 점괘를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덕에 자기 입맛에 맞는 무속인 여럿과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기업이나 가업을 물려받을 예정인 3세 자제들은 어려서부터 할머니, 어머니가 사주를 보고 굿을 하는 광경을 자주 접한 경우가 많다. 미신이라고 해도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니, 무속을 이용해 흉에 대비해서 나쁠 게 없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무속을 향한 맹목적 믿음은 금물이다. 일부 무속인은 처음 점사를 볼 때부터 굿을 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가려 점을 본다고 한다. 무속인이 굿을 하라고 제안할 땐 일부러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해 삼재, 9수, 신내림, 조상 천도, 빙의 등 여러 이유를 엮어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한다. 미아리 역술촌 역술인 E씨는 부적 등과 같은 상술은 조심해야 한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만약 부적을 써서 남의 흉을 길로 바꿔주는 신통함을 가진 자라면 그가 자신에게 부적을 써서 자기 운명부터 바꿔 재벌이 될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부적은 심리적 효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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