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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군의관의 충격고백

“청탁·돈·술,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청탁·돈·술,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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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평도 괜찮은 편이었다. 군의관들의 이런저런 부탁을 잘 들어줬다. 진급 인사를 꼭 챙겼고 여비나 명절 떡값도 건넸다. 자기 말로 10원을 벌면 7원은 쓴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챙긴 만큼 푸는 스타일이었다. 군의관들에게 술대접을 많이 했는데, 룸살롱 같은 데서 사치스럽게 마시지는 않았다. 주로 식사를 함께 한 뒤 맥주집에 가 한 잔 하는 정도였다.”

A씨에 따르면 박원사의 전임자로 ‘박노항의 사부’로 불리던 B씨는 군의관 세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짠돌이’였다는 것. A씨는 1998년 5월 수도통합병원에 근무할 때 B씨와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원준위 사건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A씨가 관련된 병역비리는 약 80건에 이른다. 서울병무청에 근무할 때는 병역면제에, 수도통합병원에서는 주로 의병전역에 관여했다. 그 중 수사팀에 자백한 박원사 비리는 열댓 건. A씨는 박원사로부터 한 건에 적게는 1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을 받았다. 가장 많이 받을 때는 한 건에 1000만 원까지 받았다. 박원사가 쥐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때로는 청탁자가 직접 건넸다. 박원사의 주선으로 청탁자와 술자리에 동석한 적도 있다.

신검은 매년 2월 중순에서 12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서울에서는 1차 판정이 서울병무청에서 이뤄진다. 내과 외과 등 각 과마다 2명의 군의관이 판정하는데 몸 상태가 4급(보충역)만 되면 군의관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5급, 곧 면제판정이 가능하다. 질병에 따른 면제의 경우 군 지정병원의 진단서가 필요하다. 서울에 있는 군 지정병원은 주로 종합대학병원들이다.

담당 군의관이 5급 판정을 내리면 대개는 그걸로 끝이다. 다만 누가 봐도 무리한 판정이거나 ‘표가 많이 나는’ 경우엔 수석군의관이나 병무청 징병관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수도통합병원으로 넘어가 정밀진단을 받게 된다. 거기서도 박노항 원사와 같은 브로커의 입김이 작용한다. 통합병원에서는 1차로 과장이 진단한 후 진료부장 확인을 거쳐 마지막으로 병원장이 결정한다.



신검업무와 관련해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군의관 세계의 관행이다. 돈을 먹고 부정면제 판정을 내린 군의관은 알아서 상납한다. 진료부장이나 병원장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인 아들 등 이른바 ‘사회관심자원’은 병무청에서 4급 판정만 받아도 통합병원으로 가 정밀진단을 받도록 돼 있다. 박노항 원사가 ‘무소불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서울 지역 병역비리의 두 온상인 서울병무청과 수도통합병원을 오랫동안 번갈아가며 근무했기 때문이다.

병무청 파견근무를 끝낸 A씨는 2년 동안 지방 군병원에서 근무한 후 1998년 다시 수도통합병원에 복귀했다. 원준위 사건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군의관들에게도 마침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998년 12월 발족한 1차 군·검합동수사팀은 군의관 자백에 승부를 걸었다. 최근 3년 이내에 서울 지역에서 근무한 군의관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A씨도 조사를 받았는데, 처음엔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런데 군검찰이 면책을 제의하면서 군의관들은 동요했다.

“수사 초기엔 다들 끝까지 오리발 내밀자는 분위기였다. 설령 자백하고 싶어도 다른 군의관들 눈치가 보여 어쩔 수가 없었다. 병역비리수사는 군의관이 입을 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군의관이 돈 받은 적 없다고 버티면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수도통합병원 모 군의관이 수사팀의 감청에 걸려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그것을 계기로 군검찰은 면책을 약속하며 압박해 왔다. 1억을 받았든 2억을 받았든 사실대로만 말하면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다. 군검찰에 양해를 구하고 군의관들끼리 장시간 회의를 가졌다. 격론 끝에 수사에 협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면책 약속을 받은 군의관들은 기억이 나는 대로 자신들이 저지른 병역비리를 털어놓았다. 수사팀은 20여 명의 군의관으로부터 300여 건의 병역비리를 확인했다. 1차 수사팀은 그 중 수사여력이 미치지 못한 100여 건을 후속 수사팀에 넘겨줬다. 1999년 4월초 1차 수사가 마무리된 후 면책약속이 깨졌다. 군의관들에게 면책을 약속했던 수석검찰관 이명현 소령은 크게 반발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후 수사 주도권은 고석 검찰부장에게 넘어갔다.

A씨는 기무사와 군검찰 갈등의 한 원인이었던 김대업씨의 역할에 대해 “그가 없었다면 한마디로 병무비리수사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병무비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법을 통해 가능한지 꿰뚫고 있었다. 병적카드에 적힌 신검판정 기록과 진단서 등을 대조해 비리를 꼭꼭 집어냈다.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그와 얘기하다 보면 기억이 되살아났다.”

A씨는 박원사의 비리에 대해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병무비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조직사회에서는 서로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서로 편해지기 위해 도움을 주고받고 비리도 함께 저지르는 것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전엔 병무비리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신동아 200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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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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