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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⑦

콤플렉스로 얼룩진 어른들의 동화

신데렐라와 인어공주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콤플렉스로 얼룩진 어른들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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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내가 죽자 재혼한 어떤 귀족이 있었어요 … 남편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딸은 죽은 어머니를 닮아 아주 착하고 온화했어요. 결혼식이 끝나자 계모는 고약한 마음씨를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 계모는 착한 딸에게 힘든 집안일을 모두 맡겼어요. 착한 딸은 설거지와 계단청소는 물론, 새어머니와 그 딸들의 방도 청소해야 했어요. 착한 딸은 지붕 밑 다락방에서 짚을 넣은 초라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잤어요. 불쌍한 소녀는 아버지에게 불평도 하지 않고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뎠어요. 소녀는 불평을 하면 아버지에게 혼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계모에게 쩔쩔맸거든요.

-샤를 페로 글, 에바 프란토바샤 그림, 유말희 옮김, ‘페로동화집’, 주니어파랑새, 2001, 235쪽.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신데렐라. 그 첫 번째 의혹은 ‘신데렐라가 정말 그렇게 착하기만 했을까’하는 것이다. 다소 ‘삐딱해진’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착한’‘불쌍한’이라는 형용사가 반복적으로 쓰인 것이 썩 유쾌하진 않다. ‘착한’ ‘불쌍한’이라는 형용사는 약자를 향한 연민을 자극하고, ‘참고 견디다’ ‘혼날지도 모른다’ ‘쩔쩔매다’ 등의 표현은 신데렐라가 처한 상황의 ‘어쩔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만 같다. 페로는 신데렐라의 강인한 성격보다는 그녀가 처한 불가피한 운명적 고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신데렐라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분 사회의 적자(嫡子) 신데렐라

페로는 신데렐라를 철저히 수동적 순종적 존재로, 비현실적일 정도로 착하기만 한 캐릭터로 단순화해 신데렐라의 주체적 욕망을 교묘하게 억압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도회에 반드시 나가겠다고, 무서운 계모에게 세 번이나 강력하게 어필하는 그림형제판 신데렐라의 적극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페로의 신데렐라는 신데렐라의 ‘계급성’을 강조한다. 신데렐라가 평소처럼 재투성이로 무도회에 나갔다가는 절대로 왕자의 눈길을 끌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녀의 신분을 나타낼 수 있는 외형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호박을 마차로 바꾸고 쥐들을 마부로 변신시키고 누더기를 드레스로 바꾸는 것은 모두 요정의 ‘명령’에 따른 것이지 신데렐라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다. 왕자 또한 유리구두에 발이 딱 맞는 아가씨와 결혼하겠다고 발표한 후에도 우선 공주들과 공작의 딸들에게 먼저 신발을 신게 함으로써 신붓감의 계급을 제한하고 있다.



페로가 살았던 시대(1628~1703)는 루이 14세가 주도한 호화로운 궁중문화가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다. 무도회장은 여성이 결혼을 통한 평생 재테크를 꿈꿀 수 있는 인생역전의 기회일 뿐 아니라 사교계로 진출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자정이 넘어 신데렐라의 화려한 모습이 변해버리자 도망치는 신데렐라의 모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왕자. 평소에는 신데렐라를 닥치는 대로 구박하다가 막상 화려하게 치장한 신데렐라 앞에서는 그녀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계모와 언니들. 이런 식으로 페로는 겉모습만 번드르르하게 치장하면 누구든 그 신분을 의심하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어 당대의 신분 사회를 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신분상승의 강력한 우화’로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는 실제로 드라마틱한 신분상승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귀족과 기사도’(콘스탄틴 브리텐 부셔 지음, 강일휴 옮김, 신서원, 2005) 등에 따르면 페로의 신데렐라가 출판될 당시 왕족이 결혼할 수 있는 대상은 귀족 서열 중 가장 높은 ‘공작’까지만 허용되었다. 왕궁의 시종들이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기 위해 신데렐라의 집까지 오는 것은 ‘평민을 향한 파격적 우대’가 아니라 신데렐라가 귀족의 딸 중 서열이 가장 높은 공작의 친딸이었기 때문이다. 왕의 아들과 공작의 딸 사이의 결혼은 당시 신분질서에 전혀 어긋남이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에게 선택받은 것은 단지 그녀의 미모와 교양 때문이 아니라 공작에 걸맞은 복장과 격식을 갖춤으로써 ‘재투성이’로 가려진 자신의 원래 신분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는 불가능한 신분상승이 아니라 가능한 한도 안에서 신분의 ‘안정’을 꾀한 셈이다. 이것이 신데렐라와 인어공주 사이의 본질적 차이이기도 하다. 신데렐라는 화려하게 치장해 자기 신분을 숨긴 게 아니라 화려하게 치장함으로써 ‘원래 신분’을 되찾은 것이다. 신데렐라를 불가능한 신분상승의 대표주자로 만든 것은 후대인의 자의적 해석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민담으로서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신분상승이라는 세속적 테마보다 부모형제와의 원초적 갈등이 중요하다. 계모로 탈바꿈한 ‘친엄마’에 대한 본능적 증오(어릴 때 자신의 엄마가 계모가 아닐까 의심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딸을 독점하려는 아버지의 소유욕을 분석한 연구도 있다. 또한 ‘재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비천한’ 것이 아니라 세속과 신성을 이어주는 ‘샤먼’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연구도 있다. 요모조모 따지고 보면 신데렐라는 ‘신분상승의 테마’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우리의 짐작을 훨씬 넘어선 다중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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