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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미리 가보는 자립형 사립고

한복 입고 영어로 수업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

  • 곽대중 < 자유기고가 > bitdori21@kebi.com

한복 입고 영어로 수업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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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가 인정되면 판결과 동시에 회초리를 맞는 것으로 재판이 끝난다. 법정 옆에는 싸리나무 회초리가 가득 담긴 큰 항아리가 있다. 집행하는 ‘형리’는 민족사관고에서 유일하게 체벌이 허락된 체육교사다. 회초리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싸리나무가 부러져야 한다. 부러지지 않으면 다시 맞는다. 보통 2∼3대를 맞는데 학생회 임원이 규정을 위반했을 때는 ‘가중처벌’을 받는다. 형량의 두 배로 회초리를 맞는 것. 학칙상 1년에 65대 이상의 회초리를 맞으면 자동적으로 유급되지만, 아직까지 그런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을 마치면 한 시간의 ‘오수(午睡)시간’이 주어진다.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낮잠을 청한다. 밤 12시부터 취침시간이 시작되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새벽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오후 수업시간에 조는 것을 막기 위해 오수시간을 두었다. 낮잠 자던 습관 때문에 수능시험날에도 졸음이 올 수 있기 때문에 3학년 학생들은 오수시간이 없다.

도서관은 대학도서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국내 서적 1만여 권과 해외 서적 4000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한 달에 정기간행물 구입비로 600만원, 도서구입비로 500만원을 지출한다. 미국 대학 입시자료를 모아놓은 책장과 KAIST, 포항공대의 1학년 교재를 꽂아놓은 책장도 눈에 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외국대학의 과거 시험문제와 출제경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KAIST, 포항공대에 조기 입학한 학생들은 입학 전까지 이 교재를 통해 1학년 과정을 예습한다.

전국 고등학교 중 민족사관고가 유일하게 갖추고 있는 시설이 ‘가정교육관’이다. 정문 옆에 있는 가정교육관은 콘도미니엄과 같은 구실을 한다. 사용대상은 민족사관고 학생의 학부모들. 민족사관고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 집에 간다. 방학도 1년에 2주가 전부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공휴일에도 수업이 진행된다. 자식을 강원도 외지에 맡긴 부모들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학교를 찾을 수 있도록 40여 개의 객실을 갖춘 가정교육관을 지은 것이다. 숙박료는 무료로 연중 언제라도 이용이 가능하다. 효(孝)와 충(忠)을 중시하는 민족사관고의 설립이념이 잘 녹아 있는 시설이다

최이사장은 “이러한 가정교육관은 전국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지생활을 하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생활관 지하에는 대형 세탁실이 있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대형 세탁기 옆으로 형형색색의 가방이 줄지어 놓여 있다. 학생들이 세탁물을 담아 내놓은 가방이다. 세탁가방에 빨랫감을 담아 방 앞에 두면 세탁실 담당자가 수거해 반듯하게 다림질까지 해서 학생들에게 돌려준다.

전교생이 장학생

민족사관고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는다. 그동안 자립형 사립고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였다는 점도 수업료를 받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평준화한 일반고에서는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따로 선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모집지역도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시, 군 또는 도단위로 제한돼 있다. 그래서 내놓은 방법이 전교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는 것. 장학 혜택을 받는 학생을 뽑는 데는 평가방식과 지역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지금까지 민족사관고는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장학생을 뽑는 형식으로 학생을 선발해 왔다.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편법이었던 셈이다. 자립형 사립고가 돼 앞으로는 굳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우수한 학생들을 전국에서 모집할 수 있게 됐다. 민족사관고는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한 뒤에도 ‘무(無)수업료’ 원칙을 고수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무료는 아니다. 생활관비와 교복구입비, 수학여행비, 국궁, 가야금, 골프, 스키 등 예체능 활동에 드는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생활관비는 월 65만원. 동·하절기 교복비로 약 200만원 정도가 든다. 또 수학여행을 해외로 가기 때문에 미국 기준으로 약 200만원이 소요된다. 이런저런 비용을 모두 합치면 1학년 한 해에 드는 비용이 약 1400만∼1500만원 정도다. 모든 장비와 교재를 구입하고 수학여행까지 다녀온 2학년 때부터는 생활관비만 내면 된다. 수업료를 내지는 않지만 학교를 다니는데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고등학교로는 국내 최대의 면적이라는 38만3000평의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최이사장은 “민족사관고를 운영하는데 월 5억~6억, 연간 6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부족한 재원은 모두 파스퇴르유업에서 부담한다.

“사업으로 번 돈은 모두 교육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파스퇴르유업 최명재 회장의 고집에 가까운 신념 때문이다. 실제 파스퇴르유업의 모든 제품엔 “본 제품의 이익금 전부는 우리 민족을 다같이 잘살게 해줄 영재양성을 위한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교육비로 쓰입니다”라고 쓴 문구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아예 ‘민족고’를 상표로 내건 유제품도 발매했다.

파스퇴르유업의 한 관계자는 “한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학교 사정도 함께 어려웠으나 소비자들이 파스퇴르유업을 살리자는 의미보다는 민족사관고를 살리자는 뜻에서 제품을 애용해 주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족사관고에 이익금 전액을 투자하면서 파스퇴르유업의 기업이미지가 한층 좋아졌다고 한다.

1996년 민족사관고가 문을 열었을 때 입학한 학생은 30명이다. 그중 2학년으로 진학한 학생은 11명. 나머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처음 개교할 때는 우리 학교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지원한 학생이 많았습니다. 막연히 입시위주의 교육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입학한 학생이 많았습니다. 막상 학교에 들어오니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중도탈락자가 많았습니다.”

‘싹수’있는 사람을 키워낸다

박교감의 말처럼 민족사관고는 ‘쓸데 없는 짓’을 하는 학교로 보일 수도 있다. 매일 아침 하는 혼정신성, 애국조회에서부터 입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아리 활동까지.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박교감은 “우리 민족사관고는 명문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보냈냐가 자랑거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소개한 일화다. 민족사관고로 조카를 보낸 한 대학교수가 박교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내용은 “‘싹수’있는 녀석으로 키워 달라”는 것. 박교감은 “상스러운 말이지만 이처럼 싹수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민족사관고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민족사관고 교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학교의 비전을 나타내는 ‘노벨상 좌대(座臺)’가 세워져 있다. 모두 15개의 이 좌대 위에는 현재 육면체의 썰렁한 비석 외에는 어떠한 것도 올려져 있지 않다. 민족사관고는 학교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이 좌대 위에 흉상을 세울 계획이다. 열다섯 개의 좌대가 다 채워져 학교를 내려다볼 날, 좌대가 부족해 더 많은 좌대가 필요할 날은 언제쯤 올까.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학습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성웅 충무공과 실학자 다산선생이 버티고 선 민족사관고를 나섰다.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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