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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엄정식 교수의 ‘전원일기’

자아와 자연, 그리고 자유

  • 엄정식 교수

자아와 자연, 그리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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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삶의 주체인가.
  • 나는 억압과 충동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는가.
  •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갖고 수시로 전원을 찾는 철학자 엄정식 교수.
  • 그가 털어놓는 '시골경험'의 즐거움
충남 당진읍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원당리의 은곡마을은 약 100여 년 전 이곳을 떠난 선친의 고향이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으니 조그마한 흑백사진으로밖에는 그 분을 기억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15년 전 웬 일인지 아버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져서 무작정 이곳에 와서는 150년 가까이 된 농가를 한 채 마련했다. 이 농가는 아버님과 직접 관계가 있는 집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향을 아버님께 찾아드렸다고 믿고 있다.

그후 한 달에 평균 두 세 번씩 이곳을 방문하여 사색에 잠기고 저술도 하며 때로는 농사일을 돕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오히려 나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이곳에서 고향을 되찾은 셈이다.

나는 왜 이곳에 그토록 자주 오는가? 사실 대학 교수로서 산촌의 외딴 마을을 자주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보직을 맡기도 하고 학회활동과 철학문화운동 혹은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더군다나 그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입장에서 틈을 내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에 얽매여 옴쭉달싹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모든 일상사로부터 훌쩍 떠나 숨은 골짜기인 이곳 ‘은곡’으로 온다.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그러한 일들이 모두 무슨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을 찾아서 혹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농촌을 좋아하고 이곳에 사는 농민들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흥미가 있다.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기도 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그 변화가 때로는 숨막힐 정도로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욱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의 기하학적 점으로라도 좋으니 그냥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함수로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다른 것과 구분되는 하나의 실체로서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오는 이유는 사회학적이거나 인류학적, 혹은 종교적이거나 예술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것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절규를 들으며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계속 묻는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아주 젊은 시절 아버지를 추상적으로 그리워하면서 생긴 버릇이기도 했다.

군불과 자아의 실현

폐가에 가까운 텅 빈 농가로 가끔씩 찾아오려면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먹을 음식은 물론 겨울에는 두툼한 옷과 난방시설을, 그리고 여름에는 해충이나 뱀, 그밖에 독초와 같은 위험물을 제거할 수 있는 약품이나 도구 등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이 산골 마을에 도착하면 항상 부족한 것이 많고 책을 읽거나 글이라도 몇 자 쓸 수 있게 되려면 거의 반나절이 지나가도록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군불 때는 일이다. 겨울에는 물론 난방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여름에도 습기를 제거하거나 벌레들을 쫓기 위해서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으면 안 된다.

군불을 때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아궁이 맨 밑바닥에 신문지나 마른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지푸라기 더미를 올려놓은 다음 잔 나뭇가지부터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다시 그 위에 좀더 굵은 장작의 순서로 얹은 후 불을 붙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이론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우 오래간만에 불을 지피게 되니까 겨울에는 아궁이가 얼어붙기 때문에, 그리고 여름에는 습기가 가득 차서 좀처럼 장작에 불이 댕겨지지 않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마음이 조급해져서 점점 더 허둥대기 일쑤이다. 온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차고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된 다음에야 비로소 불기를 만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군불을 자주 때면서 여하튼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이론과 실천 사이에 항상 엄청난 거리가 있음을 실감하고 군불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에 관해서 이리저리 생각하게 된다. 우선 군불을 땔 때 장작개비를 정교하게 제대로 배치해도 아궁이 안이 습기로 가득 차 있다면 결코 불은 댕겨지지 않는다.

이것은 군불을 땔 때도 ‘운’이라고나 할까, 자연의 선험적 조건 같은 것이 있음을 의미하며 그러한 조건들이 호의적이지 않을 경우 작위적으로 시도하면 그만큼 더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마련이다. 아궁이가 바짝 말라 있을 경우에는 배치가 잘못됐거나 심지어 장작개비가 눅눅하더라도 잘 타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장작개비가 아무리 잘 마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결코 전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장작개비들과 어울려야 비로소 불꽃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으며 하나의 불꽃이 꺼져 갈 때 서로 다른 불꽃의 도움을 받으며 더욱 큰 불구덩이로 아궁이를 꽉 채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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