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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反美청년회 의장 조혁의 영어정복기

  • 조 혁 < ‘시대정신’ 편집위원 > ilovehope@hotmail.com

80년대 反美청년회 의장 조혁의 영어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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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 내 조카는 오랜 노력 끝에 비교적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게 됐다. 두 사람의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평범한 결론은 가능할 것 같다. 영어는 ‘제2의 언어’인 만큼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어는 늦게 시작해도 정복이 가능하다.
내누나의 아들 이지웅은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 현재 토익(TOEIC) 점수는 745점.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본 ‘토익과 커뮤니케이션 능력과의 상관관계’라는 표에는 토익 730점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바탕을 갖추고 있다. 정확성과 유창성에는 개인차가 있으며, 문법 구문 상의 잘못이 발견될 수 있으나 의사소통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지웅이는 오랫동안 토익 공부에 몰두해서 점수를 조금씩 높여온 게 아니다. 지웅이의 현재 점수는 처음 토익 시험을 보았을 때와 비슷하다. 지웅이는 2학년 때 영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에서 주최하는 영어경시대회에 학교대표로 선발되면서 토익 점수를 처음 얻게 되었다. 그때 받은 점수가 725점이다.

토익이나 토플 점수가 높아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지웅이는 ‘커뮤니케이션과의 상관관계’에 쓰여 있는 평가와 대체로 일치한다. 그것은 지웅이가 종합적인 언어능력을 중심에 두고 꾸준히 훈련해왔기 때문이다.

지웅이는 문법과 단어를 따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지웅이가 영어경시대회에 갔다오더니 어떤 문장들을 분사구문으로 바꿔 쓰라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는데, 분사가 뭔지 몰라서 못 썼다고 했다. 그리고 지웅이는 학교 영어시험에서도 어떤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바꿔 쓰라는 문제가 나오면 쩔쩔 맸다. 나는 지웅이가 중2 수준의 어떤 문제를 풀지 못하는지 궁금해서 영어 시험문제를 가져오라고 한 적이 있다.

‘I’d like to be a astronaut.’를 ‘I ( ) ( ) be a astronaut.’로 바꾸라는 괄호넣기 문제였는데 두 개의 괄호에 ‘want to’ 라는 단어를 써넣으면 정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웅이는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 지웅이는 두 문장의 어감에 상당한 차이를 느끼고 있었고, 왜 그걸 바꿔 써야만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도 영어공부에 관심을 가졌다. 15년 이상을 쉬다가 재개한 영어공부다. 지웅이는 알파벳과 apple, banana 수준의 실력에서 시작했고,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라는 정규 교육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사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하면서 영어와는 등을 지고 살았다. 더구나 반미청년회라는 지하조직의 의장을 맡다보니 미국에 대한 적대의식이 강해졌고, 그러다보니 영어와는 등을 지고 살았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서 ‘신동아’ 독자들을 위해 내 영어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지웅이를 평가하기 위해 구입한 모의 토익시험을 쳐보니 정답률이 75% 이상이었다.

지웅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비장한 각오로 영어훈련을 시키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어쩌면 ‘영어’가 아닌 ‘영어공부’를 잘해서 학교시험에서는 100점을 받아오는 학생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CNN이 실시간으로 전하는 ‘테러와의 전쟁(Terror On War)’ 뉴스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웅이가 빠져 있는 판타지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원문으로 읽지 못했을 것이고, 영어 사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영어로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웅이 또래 아이들이 우스갯소리를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듯이 지웅이가 어떻게 하면 영어로 농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궁리하면서 애면글면 하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라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시작한 계기는 내가 우연히 TV에서 제주도에 사는 오신석이란 13세 소년이 아버지의 지도로 비디오 테이프와 위성방송을 통해 영어와 일본어를 배워서 유창한 수준에 이르렀고, 중국어는 초급과정을 벗어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화제성 보도를 접하면서다.

오신석군이 유명해지면서 오군의 아버지는 자신이 교육했던 방법을 책으로 엮어서 ‘신돌이 학습법’이란 책을 냈다. 이 책에 따르면 오군의 아버지는 영어교육을 3단계로 나누었는데 1단계 듣기, 2단계 말하기, 3단계 쓰기로 하고 각각 1년 정도의 시간을 할당했다고 한다. 듣기 과정에서는 비디오를 자막 없이 100편 정도 아들에게 보여주었고 정규적으로 위성방송을 시청하게 했다. 말하기 과정에서는 테이프에서 나오는 영어성경을 동시 따라하기(shadow reading) 훈련과 외국인 선교사가 진행하는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쓰기 과정에서는 일기로 시작해서 논설문으로 발전시켰다는 내용이다.

단순했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영어 수업시간 외에는 일상적으로 영어를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비디오 테이프와 위성방송은 간접적일지라도 영어에 장시간 노출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와 매형을 설득해서 지웅이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비디오를 매일 한 편씩 빌려서 자막을 가리고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자막이 없는 비디오를 구입하기도 했다. 위성안테나도 설치해 영어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돌이와는 달리 지웅이는 TV를 좋아하지 않았다. 영어방송만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평소 한국방송도 보지 않는다. 그래서 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우상으로 삼는 가수와 배우의 이름을 겨우 알까말까한 정도였다. 비디오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오군의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신돌이처럼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푹 빠져서 봐주면 좋겠는데 지웅이는 마지못해서 겨우 보는 정도였다.

지웅이는 영어성경의 내용도 잘 모르기 때문에 한글성경을 먼저 읽고 영어성경을 들으면서 따라하게 했다. NIV는 따라하기 어려워했지만 신돌이연구원 버전의 느린 성경은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지웅이가 성우의 발음을 열심히 따라하는 데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꾸준히 하면 발음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계속했다. 마침내 NIV마저도 어느 정도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지웅이의 발음은 성우의 발음이나 억양과 거리가 있었다.

나는 지웅이가 영어내용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궁금했다. 영어가 들린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뭐가 들리는지, 얼마나 내용을 이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성경은 한글성경을 통해서 내용을 확인하고 듣는 것이기 때문에 지웅이가 영어를 통해서 이해한 것인지, 한글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지를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영화는 줄거리와 눈치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인지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 내용을 파악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발음이었는데 훈련을 안한 것보다는 낫지만 테이프의 성우나 비디오의 배우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영어와 친해지는 방법

참다못해 하루는 지웅이 영어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쉬운 단어로 개작한 셰익스피어 단편을 읽어보게 했지만 그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한 페이지에 하루의 여유를 주고 외워보게 했는데 한 문장도 완벽하게 외우지 못했다. 그러자 지웅이는 엉엉 울면서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와 누나는 실망이 컸고 신돌이 학습법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웅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소설을 컴퓨터 CD를 통해서 외우게 했다. ‘로빈훗’과 ‘톰소여의 모험’을 골라주었다. 처음에는 하루 한 페이지 분량, 다음에 두 페이지, 그 다음에 네 페이지 식으로 차차 늘려서 ‘톰소여의 모험’을 마칠 때쯤에는 하루에 15페이지 정도를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지웅이는 단어 수준과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성우의 발음을 비슷하게 흉내내는 것처럼 보였다.

두 권의 소설을 끝내고 다시 영화에 도전했다. ‘피노키오’와 ‘에이미’. 두 개의 CD타이틀로 제작된 영화다. 지웅이는 비디오나 테이프보다 컴퓨터를 이용한 훈련을 훨씬 좋아했다. 지웅이에게 영화를 외우게 할 때 배우들을 그대로 흉내내도록 단단히 여러 번 다짐을 받았다. 처음엔 이것도 힘겨워 했지만, 한 달에 영화 1편을 끝내는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대사에 실려있지 않은 배우의 중얼거리는 소리나 대사집의 잘못된 대사까지 집어냈다.

지웅이는 날마다 영어를 공부했다. 이것은 지웅이가 영어 이외에 다른 학습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웅이는 몸이 약한 편인 데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해서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영어와 수학과목은 학습지를 받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학습지를 먼저 끊고, 나중에는 태권도학원도 그만 다니게 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도 가족들은 감독하지 않았다. 지웅이는 숙제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에 누나는 불안해했다. 수학에서 학습 결손이 생기면 나중에 애를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수학 학습지는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영어훈련 프로그램이 정연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와 누나가 시행착오를 범하면 한바탕 소동을 치러야 했다. 영어 CD소설을 외우라고 하자 지웅이는 볼멘소리로 나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봤는지 ‘어린이헌장’을 들먹이며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기 때문에 못하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지웅이는 우리 생각을 받아들였다.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자유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제 또래의 아이들이 거의 학원을 다니고 몇 개의 학습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만 따지면 지웅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다고 할 수 없었다.

무조건 따라하라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부모 세대들은 사회정책에 대해서 사회민주주의적인 지향이 강하지만, 자식교육에 대해서는 억압적인 교육환경에서 자란 불만과 교육내용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에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나도 지웅이 문제로 교육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을 때는 그랬다. 그러나 교육이 말 그대로 ‘가르치고 길러내는 과정’이라면 아이들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이 가능할까?

지웅이도 여느 아이들처럼 컴퓨터게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경쟁이 붙으면 기를 쓰고 이기려고 들었다. 컴퓨터게임은 지웅이 영어훈련의 가장 큰 장애였다. 지웅이의 거의 유일한 취미이기 때문에 막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웅이가 좋아할 만한 게임을 골라서 사다주기로 했다. 나는 지웅이가 가상도시 건설게임인 심시티를 하기를 원했지만, 지웅이는 전쟁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더 좋아했다. 지웅이는 자기 반에서 최초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되었다.

‘신동아’에 정인석 원장에 대한 기사가 나면서 나는 그 학원에서 기획한 3박4일간의 영어캠프에 지웅이를 데려갔고, 그 학원에서 제작한 테이프와 비디오를 이용해서 발음연습도 했다. 지웅이는 열심히 했다. 거기에서 나온 교재 중에 뉴스 부분이 있는데 지웅이는 그 내용을 완전히 외워서 실제 뉴스보다도 빠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숨에 영어를 뱉어 낼 수 있었고 발음이 안정돼서 듣기가 좋았다.

지웅이는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빨리 발음하는 게 영어 실력의 척도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서 발음이 날아가는 듯했다. 원어민으로부터 발음이 또렷하지 않고 얼버무린다(tricky)는 소리를 들어서 성우가 감정을 듬뿍 넣어서 읽어주는 명연설 모음집 CD를 사다가 또박또박 발음하도록 교정해야만 했다.

지웅이는 발음이 좋아지고 영어 소리에도 익숙해져서 어지간한 것을 들으면 거의 놓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단어 수준도 높아져서 쉬운 일상대화는 곧바로 이해했고 단어 수준이 쉬운 소설은 눈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말을 가르쳐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다닐 만한 학원이나 원어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사는 곳이 그다지 번화한 곳이 아니라 주변에 외국어학원도 없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원어민이 가르치는 학원은 지웅이의 수준에 맞지 않았다.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만 1년 내내 가르치고 있다고 원어민 선생님이 실토할 정도로 일상적인 회화학원만 많았다.

나는 영자신문사에서 운영하는 전화영어를 선택해서 지웅이에게 추천했다. 지웅이는 레벨 테스트를 받을 때 원어민 선생님의 말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자기 말을 하는 데 익숙지 않아서 더듬거리거나 답변을 제대로 못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지웅이는 언제부터인가 영자신문을 가지고 선생님과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지웅이가 좋아하는 만화, ‘Dear Landers’라는 상담 칼럼, 사설 등을 활용했다. 그런데 사설은 단어 수준도 수준이지만 사회적인 내용이라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서 내가 사설에 대해서는 몇 번 독해를 해주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인지 이해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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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혁 < ‘시대정신’ 편집위원 > ilovehop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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