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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문명기행

‘안데스의 축복' 티티카카湖에서 영혼을 씻다

  •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안데스의 축복' 티티카카湖에서 영혼을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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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티카카는 해발 3800m가 넘는 고원에 펼쳐진 8300㎢ 넓이의 엄청난 호수. 평균수심도 280m에 이른다.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이 모여 생긴 티티카카가 있었기에 안데스인들은 자신의 삶터를 문명의 땅으로 일궈낼 수 있었다.
‘최후’라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비장함이 서려 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그 순간,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때 나타나는 인간의 반응이 반드시 한 가지만은 아니다. 의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해서든 그 고비를 넘겨보려는 사람도 있다. 명나라 최후의 황제 숭정제는 그 많던 신하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주위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쯔진청(紫禁城) 북쪽의 징산(景山)에 올라 나무에 목을 매 자진했는데, 이는 전자의 예라 할 것이다. 잉카의 왕 아타왈파는 정복자 피사로에게 붙잡히자 “내가 가진 황금을 다 바칠 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것이 무망해지자 “죽이더라도 제발 화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또 황금을 뇌물로 바쳤다. 이는 후자의 예로 볼 수 있다.

페루에 와서 잉카제국의 왕도인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며칠간 다니면서 본 것은 잉카제국의 최후 아니면 패망에 관한 것들이라 스산한 감정을 떨칠 수 없었다. 신이 나지 않았다. 뭐 좀 재미나는 일이 없을까 하고 궁리하다 잉카제국의 최후가 아니라 그 첫출발을 본다면 기분이 좀 달라질 것 같아 쿠스코 남쪽의 티티카카 호수로 발길을 옮겼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태양의 섬(Sun Island)’은 잉카제국의 시조 망코 카파크(Manco Capac)가 강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의 지붕에 고인 호수

쿠스코를 떠난 아에로 페루 항공기는 한동안 눈덮인 안데스 산맥을 보여주다가 평탄한 고원 속에 자리잡은 훌리아카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동안 줄곧 가파른 산세만 보다 안데스 산맥 한가운데서 평탄한 고원을 만나니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산들도 휴식이 필요해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훌리아카공항에서 푸노(Puno)까지는 40km. 공항버스가 푸노에 가까워지자 한쪽으로 호수가 가만히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 넓어 처음엔 바다인가 했는데, 그것이 그토록 보고 싶어한 티티카카 호수다. 푸노는 바로 그 티티카카의 관문이다.

티티카카는 금방이라도 태양의 섬으로 달려가고픈 내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너무나 태평스러웠다. 조용한 수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펼쳐진 하얀 모래밭과 초지, 이 모두를 지켜보고 있는 흰눈 덮인 고봉들이 어느새 커다란 거울로 변해버린 호수 위에 어려 그대로 한폭의 풍경화가 됐다.

해발 3810m에 이르는 고원에 8300㎢나 되는 엄청난 호수가 있다니 ‘세계의 지붕에 있는 호수’란 말이 실감났다. 티티카카는 평균수심도 280m나 된다. 안데스의 눈 녹은 물이 모여 생긴 티티카카는 안데스인들에겐 축복임에 틀림없다. 이 호수가 있었기에 이곳이 일찍이 문명의 땅이 될 수 있었다. 잉카제국은 그 대표적 물증이다. 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가 거의 반반씩 나눠갖고 있으니 국경선이 호수 위에 그어져 있는 셈이다.

페루를 찾은 관광객들이 볼리비아로 넘어가지 않고서도 티티카카 호수를 즐길 수 있는 푸노는 그리 작은 도시가 아니다. 성당만도 몇 개나 되고 호텔은 그보다 훨씬 많다. 또한 육로로 볼리비아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푸노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버스는 하루 한 차례, 그것도 오전에만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오후에는 모터보트로 40분쯤 걸린다는 호수 안의 우루스(Urus) 섬을 찾기로 했다.

섬에 가까워지자 물결은 잦아들고 대신 갈대밭이 펼쳐졌다. 이곳 사람들이 ‘토토라’라고 부르는 갈대는 키가 몹시 커서(7m나 된다) 시야를 온통 가렸다. 배는 그런 갈대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달렸다. 그러다 ‘우루스’라는 팻말이 나타나자 속도를 완전히 줄였다.

그때 햇볕에 검게 그을린, 밝은 표정의 인디오 여인이 배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녀는 둥근 챙이 달린 옅은 밤색의 모자를 올려 썼으나 두 가닥으로 길게 땋은 머리카락은 등허리를 타고 내려와 엉덩이를 살짝 덮었다. 위에는 털스웨터, 아래는 발레복처럼 부푼 치마를 입었는데 그 안으로 바지도 보였다. 전형적인 인디오 여인의 차림이었다. 검은 직모(直毛)에 황색 피부, 몽골계 체구라 우리 여인네와 매우 닮았다. 사공은 그녀에게 입장료를 건네주고 다시 속력을 냈다.

갈대 위에 떠있는 섬

우루스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보트는 섬과 섬 사이를 지나 가장 멀리 있는 섬으로 향했다. 그곳의 작은 부두(?)에는 갈대배 두어 척이 매달려 있었다. 섬 주민들의 자가용인 듯했다. 예고도 없이 방문객이 나타났지만 이내 젊은이 하나가 다가와 안내하겠다며 앞장섰다. 그때 나는 무언가를 잘못 밟은 것 같아 낭패스러웠다. 섬에 닿았다고 아무 생각없이 땅바닥에 발을 내디뎠는데 촉감이 이상했다. 너무나 푹신푹신해서 어디론가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섬이라고 하지만 바닥은 흙이 아니라 그 일대에서 자라는 토토라를 베어다 깔아놓은 것이라서 그랬다. 우루스는 그렇게 ‘떠있는 섬’이다.

갈대섬에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일년에도 몇 차례 갈대를 베어다 바닥에 깔아야 물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런 성가신 일을 하면서 이 섬에서 사는가 하고 묻자 안내원은 “우리 조상들이 스페인 정복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호수 안에 인공 섬을 만들어 살았는데, 지금껏 이렇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이 갈대섬의 역사도 어느덧 500년이 된다. 지금은 60명쯤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우루스는 이처럼 무시 못할 역사를 자랑한다.

이 섬에는 세 가구만 사는지 집은 세 채만 보였고, 그 앞의 넓은 공터에서 양과 돼지, 닭들이 노닐고 있었다. 먼저 안내된 곳은 집에 딸린 작은 박물관이다. 섬에 사는 새들을 박제해 전시하고 있는 곳이어서 ‘자연사 박물관’인 셈이다. 고립된 섬에 사는 그들인지라 멀리, 높이 나는 새를 좋아했기에 이런 것까지 세워놓은 것 같았다. 그들은 새 중의 새인 콘도르를 신성시한 잉카족의 후예들이기도 하다.

또 다른 섬으로 갔다. 이번엔 꽤 큰 섬이다. 부두에는 대형 모터보트도 있었는데, 입구의 기념품 가게는 그걸 타고 온 관광객들로 포위된 상태였다. 색색의 털실로 짠 스웨터, 모자, 장갑과 미니 갈대배 등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다. 15채 가량의 개인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옆으로는 학교와 의무실, 공동화장실, 운동장도 보였다. 초등학교엔 두 개의 교실이 있는데, 후지모리 전대통령이 직접 찾아와 기증했음을 알리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방이라야 한두 개가 고작인 그들의 집은 오직 잠만 자는 곳인 듯 맷돌을 돌리는 일이나 털옷을 짜는 일, 빨래와 밥짓기 등 모든 활동은 밖에서, 그것도 여자들이 해내고 있었다. 양과 돼지, 닭 등의 가축을 돌보는 일도 여자들의 몫이다. 여자들은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그 옆에선 한 남자가 갈대더미를 침대삼아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인디오 사회에서 남자들은 그렇게 빈둥거리는 대신 집안일에는 전혀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고 했다. 돈주머니는 모두 아내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들 사회에서 성인 남자의 직업은 그저 ‘남편’일 뿐이다. 그렇다면 옛 잉카시대에도 남자들은 저랬을까. 그랬기에 소수의 스페인 정복자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만 것일까.

티티카카엔 방해꾼이 없다

티티카카엔 우루스같은 작은 섬뿐 아니라 타킬레, 아만타니 등의 큰 섬들도 있다. 그날 밤 푸노의 호텔에서 타킬레를 다녀온 독일 관광객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타킬레는 우루스와 다를 바 없으며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우루스와는 달리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 사람들이 더 친절한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그들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었다며 시간을 내어 꼭 한번 찾아보라는 말도 해주었다. 그러나 다음날 볼리비아로 들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볼리비아행 버스는 아침 8시에 출발한다고 해서 그전에 푸노 근교(30㎞ 거리)의 시유스타니 유적을 둘러볼 참으로 택시를 불렀다. 시유스타니는 잉카제국 건립 이전에 세워진 석탑무덤 유적으로 잉카의 것과 같이 거석 축조물이다.

푸노의 아침 날씨는 차가웠다. 차는 낡아서 덜컹거렸으나 태양이 막 잠에서 깨어난 대지를 비춰 기분은 무척 상쾌했다. 유적 앞으로는 토토라가 자라는 작은 호수가 있다. 뗏목을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도 보였다.

시유스타니는 모든 게 돌이다. 작은 돌, 큰 돌들이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대개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무너지고 쓰러져 원래의 모양을 짐작하긴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것은 원통형 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는 석탑무덤이다. ‘나 여기 잠들어 있으니 제발 깨우지 말라’고 하는 듯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문을 나서는데 버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전날 예약해 놓은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일일이 숙소를 찾아다니면서 태웠다. 그리고는 터미널에 가서 목적지별로 승객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승객을 잔뜩 싣고 푸노를 떠난 라파스행 중형버스는 티티카카 호수변을 따라 달렸다.

가없는 호수는 긴 수평선을 그려보였다. 한참을 달려도 방해꾼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호수 반대편에서 아도베(흙벽돌) 집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그만한 규모의 호수라면 고기잡이배나 화물선이 떠있을 법도 하건만, 눈을 씻고 봐도 배 한 척 보이지 않았다. 호수 주위로 펼쳐진 넓고 또 평탄한 초지는 참으로 비옥해 보였다. 가축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국경도시 융구요에서 페루 출국수속을 끝내고 100여m를 걸어서 커다란 아치형 국경 관문을 지나 볼리비아 땅으로 들어갔다. 카사니 국경사무소에서 입국수속을 하고 얼마간의 돈도 바꿨다. 짐 검사가 끝나자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길은 꼬불꼬불하고 포장상태도 좋지 않았다. 페루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그러면서도 도로 이용료를 받았다. 수금원이 버스에 올라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로 돈을 걷는 것이 마치 남한산성에 들어갈 때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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