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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라보기’로 즐기는 겨울 山行

  • 김홍주 <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

‘멀리 바라보기’로 즐기는 겨울 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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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정상에서 첩첩이 겹친 산들의 짜임새와 위치, 그리고 강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될 뿐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안목도 열린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참으로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가 산자락 또는 산이 보이는 곳에서 태어나, 산을 보며 자라고, 산을 드나들며, 죽어서는 또 산기슭에 묻힌다. 이처럼 산은 우리 겨레 삶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토의 모습이자 얼굴인 산을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산을 아는 듯싶으면서도 막상 잘 알지 못하며, 오히려 잘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게 실상일지 모르겠다.

우리 국토와 자연의 평면적인 모습과 내용은 각 왕조에서 작성한 지리지나 고산자 김정호를 비롯한 몇몇 선각자들과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잘 밝혀져 있다. 이를테면 금강이 어디로 흐르고 있으며, 대전이 어디에 있는지, 지리산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연의 얼굴, 즉 우리 국토의 입체적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산의 상하(上下) 수직의 모습은 지금까지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그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몇몇 명산 외에는 산 정상에서 보이는 다른 산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내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거의 알지 못하고 지내왔다.

예를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서울의 북한산에서 원주의 치악산이 보이고, 계룡산에서 가야산, 무등산에서 덕유산, 금오산에서 지리산, 팔공산에서 태백산과 지리산, 소백산에서 가야산과 덕유산이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리란 땅의 생긴 모양과 형편을 말한다. 따라서 평면적인 모습과 함께 상하 수직으로 자연의 모습을 잘 살피지 못하면서 지리를 안다고 할 수 없는 법이다.

상하 수직으로 산을 살펴보기

산 위에서 조망을 하며 첩첩이 늘어선 산들의 짜임새(상황)와 위치,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강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나라 지리를 알고 이해하는 데에 크나큰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참다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요소라 할 수 있다.

운장산의 고스락(정상)에 서서 동편의 첩첩 산들과 서편의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면 임진왜란 당시 어째서 왜군이 곰티재(진안-전주 사이)를 넘으려 했는지, 거기서 실패하자 왜 기를 쓰고 다시 배티재(대둔산)를 넘으려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북한산 백운대에 서서 한강과 그 주변의 산과 들을 조망하면 한강문화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왜 신라 진흥왕이 비봉에 순수비를 세웠는지, 왜 신라 고구려 백제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는지, 왜 이성계가 서울을 수도로 삼았는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산의 조망에 대해서는 일찍이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1431~1492년) 선생이 관심을 가졌다. 영남학파의 비조인 김종직은 지금으로부터 530년 전인 1472년(조선 성종3년) 음력 8월에 지리산에 올라 각 방위에 따라 보이는 산들을 ‘두류기행록’에 밝혀놓았다. 먼 산, 가까운 산으로 나누어놓은 두류기행록의 조망 내용은 지금 다시 보더라도 놀라우리만큼 정확하다.

우리 선조가 어떻게 산을 조망했는지 점필재의 조망기를 간략히 언급해 보자. 그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는 비가 내린 뒤여서 조망이 매우 좋았다 한다.

“푸르고 누런 빛이 엉겨붙어서 흰 무지개가 가로 꿴 것은 진주의 물이며 물고동이 점을 찍은 듯이 벌려 가로 비끼고 곧장 솟은 것은 거제의 뭇 섬인 듯하다”며 대자연에 펼쳐진 지리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멀리 바라보면서 그 요령(내용)을 알지 못하면 나무꾼이 구경하는 바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먼저 북쪽을 바라보고 다음은 동쪽으로, 그 다음엔 남쪽, 이어 서쪽을 보지 않을 수 없으며 가까운 데로부터 먼 데로 미루어가는 것이 옳지 않은가?”하며 조망법에 대해서도 말했다.

멀리 바라보며 그 내용, 즉 산을 알아보는 것이 지식인의 도리임을 밝히고 산을 세로(앞 뒤)로 보아야 한다는 조망의 요령까지 밝히고 있다.

그가 밝힌 조망의 내용은 거의 정확했다. 그는 지리산에서 북쪽의 운장산, 동쪽의 비슬산, 서쪽의 모악산 등을 정확히 가려냈는데 그 옛날 별다른 장비나 자료 또는 근거도 없이 어찌 그렇게 먼 산을 짚어낼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의 조망에 대한 관심은 외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선진 외국에서는 명산마다 고스락에 조망정(View Point)을 마련하고 조망도를 게시해놓고 있으며 서점에도 조망지도가 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우리 산악회처럼 조망 모임이 많아 조망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벌어지고, 조망을 연구한 책도 많다. 일본에는 ‘후시미(富士見)’라는 지명이 많은데, 이는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후지산이 보인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나라 사랑도 먼저 국토의 얼굴, 우리 자연의 모습을 잘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하루 빨리 우리 산들의 모습, 국토의 얼굴을 더욱더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북한산의 조망

조망은 비단 우리 지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산행(山行)의 측면에서도 대단히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다. 필자는 1997년 11월 중순 어느날 여명, 팔공산의 고스락에서 본 조망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동녘의 천지선(天地線, 지평선) 위가 붉게 물들며 모습을 드러내는 산하, 어둠에서 깨어나는 국토의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며 신비 그 자체였다. 그 아름답고 깨끗한 장면에 필자는 황홀감으로 취해 한동안 정신이 혼미했다. 행동이 멎고 생각도 잊은 채 멍한 그대로 그저 서있었을 뿐이다.

필자는 조망이란 우주 천지창조의 조화에 대한 인간의 외경을 나타내는 의식이며, 우주의 신비와 대자연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살피고 자연의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산에 올라 조망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냥 내려와버리는 것은 대자연에 대한 불경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조망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필자가 살펴본 북한산(837m) 조망기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보통 ‘조망’이란 단어는 ‘먼 곳을 바라본다’는 뜻도 있지만 ‘바라보이는 먼 곳의 경치’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산 위에 올라가 다른 산을 보기 전에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 산의 생김새도 조망의 대상이 된다. 산 이름은 대개 산 아래 또는 멀리에서 조망되는 생김새 때문에 붙여진 것도 꽤 많기 때문에 재미있는 관찰대상이 된다.

북한산을 삼각산이라 한 것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더러 북한산을 삼각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그 산 모양 때문에 ‘북한산’보다 오히려 ‘삼각산’으로 잘 불렸던 것 같다. 조선조 인조 연간에 병자호란 뒤 척화를 주장한 청음 김상헌(金尙憲)이 청나라 심양으로 붙잡혀가며 남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는 애끓는 시에서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 기록에서도 모두 북한산을 삼각산이라 부른다. 실제로 북한산은 북쪽에서 보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뚜렷하게 삼각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세 봉우리가 이루는 산의 모양새로 산 이름을 붙인 것도 특이하다.

대전에 살고 있는 필자는 서울 사람들에 대해 딱 한가지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은 웅장하고 기품이 있으며 수려한 북한산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창만 열면 언제나 북한산을 볼 수 있고, 생각이 있으면 곧바로 쉽게 산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부럽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서울의 흐린 대기 때문에 북한산에서의 조망은 매우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는 북한산에서 훌륭한 조망 그림을 얻어내려고 애도 썼고, 고생도 많이 했다. 춥고 날씨 좋은 날만 골라서 대전에서 올라와 날이 새기 전에 북한산에 오른 것만 해도 20여 차례는 될 것이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2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관악산조차 보이지 않은 때가 많았다. 나로서는 끝내 좋은 조망 사진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어느날 새벽, 백운대에서 사진작가 전영복씨를 만난 것이 나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놓고 부탁을 했더니 그는 시원스럽게 승낙해 주었다. 전영복씨는 그뒤 거의 매일 새벽 백운대에 올라 지난해 11월20일경에 조망 사진을 얻는 데 성공을 했다.

가장 멀리 보이는 치악산

북한산 백운대에 서면 북쪽으로 맨 먼저 파주-양주 경계에 있는 감악산이 보인다. 정북(正北)을 지나 가까이에 상장봉(양주-고양)이 거의 겹쳐 보인다. 감악산 줄기 오른편으로 좀 낮은 마차산(연천-동두천)이 있고, 같은 거리 옆으로 원효대사의 이야기가 얽혀 있는 동두천의 소요산이 있다. 소요산 오른편 조금 뒤로 포천의 종현산이 보이고 그 뒤로 포천-연천의 지장봉, 철원의 금학산, 포천의 종자산이 보이며 또 그 뒤로 철원의 오성산이 연달아 보인다.

도봉산의 오봉 줄기 너머로는 포천의 국사봉과 왕방산이 한덩이로 있다. 왕방산 오른편 뒤로 억새와 호수로 유명한 철원의 명성산이 톱날처럼 보인다. 화천-철원의 경계에 있는 광덕산은 바로 앞의 도봉산 오른편 뒤로 꽤 크고 높게 보인다.

이 광덕산에서 뻗은 산줄기는 큰 덩치와 높이를 지닌 채 백운산(화천-포천) 국망봉(포천-가평) 강씨봉 청계산 원통산을 잇고 광덕고개 도마치 도성고개 강씨봉고개 갈마고개 원통고개 등을 넘으며 운악산(일명 현등산, 가평)에 이른다. 강씨봉 등은 덩치 큰 경기 제일의 화악산(화천 가평)의 그늘에 가려 알아보기가 힘들다.

운악산도 명지산, 화악산과 거의 겹쳐 있다. 명지산이 해발 1267m로 꽤 높지만 그 옆의 화악산이 훨씬 높아서 화악산의 주봉과 응봉 사이로 그 둥글고 작은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다. 응봉의 오른편 작은 뿔이 명지남봉이다. 그러나 응봉과 겹쳐 있어 돋보기를 들이대고 잘 살펴야 가려낼 수 있다.

산줄기가 낮아졌다가 조금 볼록한 것이 가평의 매봉이며 그 오른편 앞으로 주금산(포천-가평)이 있고 수락산 뒤 저 멀리 가평의 909봉과 대금산이 보인다. 다음에는 서울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서리산(상산, 가평-남양주) 천마산(남양주) 축령산(남양주)이 나란히 있다.

춘천에서 잘 보이고 홍천으로 넘어가는 유명한 원창고개에서도 잘 보이는 대룡산은 저 뒤 멀리에 뾰족하다. 이 산줄기는 춘천-홍천의 경계를 이루며 응봉 연엽산 구절산 등으로 이어진다.

스키장이 있는 남양주의 천마산은 가깝고 크게 보인다. 천마산의 왼편 뒤로 가평의 호명산이 보이고 오른편 뒤로는 홍천-가평의 장락산이 보인다. 한강을 따라 달리는 경춘가도의 대성리 근처에서 잘 보이는 가평의 화야산은 불암산의 오른편 뒤로 보인다.

정동을 지나 멀리멀리 보이는 산줄기들은 홍천-횡성 일대의 발교산 운무산 봉복산 등이 아닌가 싶다. 가평과 남양주의 경계를 이루는 통방산과 중미산 다음에는 양평의 용문산이 나타난다. 용문산은 오른편으로 서서히 낮아지다 양평 바로 뒤에서 뾰족하게 백운봉을 솟군다.

북한산에서 확인한 가장 먼 산은 치악산(원주-횡성)이다. 북한산에서 처음 치악산을 본 때가 1997년 초겨울이다. 서울의 대기가 원체 흐려 불과 100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치악산을 찾아내고는 몹시 기뻤다.

그 뒤로 여러 차례 백운대에 올랐지만 끝내 치악산보다 더 먼 산을 찾아내지 못했다. 치악산 옆으로 같은 줄기이며 원주-횡성의 경계가 되는 향로봉 남대봉과 백운산(원주 제천)이 있다.

치악산 줄기 앞으로 가까이에 팔당호반에 있는 남양주의 운길산 예봉산이 있고 팔당호수 뒤로 해협산(양평)이 있다. 해협산은 삼각으로 된 윤곽이 분명하지 않아 선으로 그려넣었다. 역시 팔당호반의 산들로 호수의 북쪽에 있는 검단산(하남)과 호수 남쪽에 있는 양자산(양평-광주) 앵자봉(양평-여주-광주)이 있다. 이어 여주-광주 경계에 천덕봉이 있다.

천덕봉 오른편으로 한참을 별다른 산이 보이지 않다가 광주 곤지암 근처에 있는 노고봉이 나타나고 이어 태화산(광주)이 나온다. 태화산을 지나면 성남 일대여서 별다른 산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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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주 <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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