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소설가 김성동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연구①

‘먹물’들과 국어사전이 우리말 망쳤다

  • 김성동

‘먹물’들과 국어사전이 우리말 망쳤다

1/2
‘어마지두에 버새만큼이나 장대한 멧돼지의 뽕을 배기는 하였으나 일삼아서 사냥을 하지도 않았고, 서방님이 돌아가신 뒤로 말할 수 없게 더욱 침중하여진 상전댁의 집안 기색에 눌린 데다가 이것저것 일거리가 많아 그럴 짬도 없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고 함정을 파고 덫이나 놓아 짐승을 잡는다는 게 사내대장부로서는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에서 기껏 메꿩마리나 활로 잡아 큰사랑나으리의 찬상에 올려드리게 하던 만동이가 덫을 놓게 된 것은 작년 겨울부터였다. 호랑이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보잘것없는 데다 마무리마저 못한 ‘국수(國手)’의 한 대문이다. 이 중생의 많이 모자라는 소설 명색을 가지고 글머리를 삼은 데는 까닭이 있으니, ‘왜말’이다. 서구열강과 그 도마름인 일제한테 찢겨져 거덜나기 전 우리 조선의 마음을 조선사람들의 말투로 그려보고자 한 소설에 그만 왜말이 들어가고만 것이다.

왜식 한자말. 6년 전이다. 5권째를 써보려고 아랫녘으로 내려가 있을 때다. 어느 잔암(殘庵)에서다. 뒷방에서 이나 잡고 있던 한 노장스님이 두 군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처사님이 백여 년 전 조선사람들이 쓰던 말투로 쓴 소설이라니 말이오만…, 함정은 허방이나 허방다리 또는 구렁텅이구, 작년은 상년이 맞을 거구먼.”

‘함정’과 ‘작년’만이 아니었다. 노장한테 깨우침을 받고난 다음 새 눈으로 다시 한번 짯짯이 훑어보니 ‘남초’를 ‘연초’로 ‘병작농’을 ‘소작농’으로, ‘문장’을 ‘학자’로 ‘궁구’를 ‘공부’로 ‘일통’은 ‘통일’로 잘못 썼는가 하면 ‘미소’ ‘시비’ ‘기분’ ‘생활’ ‘국면’에 지어 ‘타개책’까지 왜말이 들어간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런 의심없이 쓰고 있는 말과 글 거의 모두가 왜말이라면 아마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글프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정말이다. 일제 말 수리조합 서기를 했다는 그 노장의 지닐총만이 아니라, 일제 초 이른바 ‘내선일체’의 식민정책에 따라 조선으로 들어가 살 일본인을 위한 교육용 책자를 한번 보자.

우리말이 어렵다는 먹물들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식구’라 하고, 우리는 형제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동기’라 하고. 우리는 부부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내외’라 하고, 우리는 주부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안쥔’이라…. 상식은 ‘지각’이고, 친절은 ‘다정’이고, 일생은 ‘평생’이고, 결혼은 ‘혼인’ 또는 ‘길사’이고, 자백은 ‘토설’이고, 현금은 ‘직정’ 또는 ‘뇐돈’이고, 악마는 ‘잡귀’고…” 으악! 하고 소리 지를 만큼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이 소설을 누가 읽기를 원하십니까? ‘만다라’ 하고 ‘국수’로 가니까 우리의 옛날 고유어와 토박이말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번 ‘꿈’은 완전히 순토박이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독자가 한 말이다. 지난 여름 부산에서 하는 ‘독서토론’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독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 한마디로 영어보다 우리말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말이 어렵다고 하는 이들은 이른바 먹물들이고, 먹물이 덜 든 이들은 좋다고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공포의 영어광풍 속에 살아가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은 아주 좋다고 한다. 분명한 뜻은 모르지만 설명이 필요없이 가슴으로 그냥 쑥 들어온다는 것이다. 까닭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정서가 녹아든 말이므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문화이거늘 이제 겨우 백년밖에 더 되었는가.

왜말에 대해 말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다른 독자가 말했다.

“이시와라 요오코라는 일본인입니다. 현재 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한국의 언어에 상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나의 문장을 표현하는 것, 너무나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의 토속어를 가끔 들을 때, 아! 역시 진짜 한국인의 정신이다, 그 나라의 진짜 문화와 정신은 그 나라만의 말에 있다. 근 40년간 일본의 압박을 받을 때 많은 한국인 의사, 열사들이 조선어를 지키고자 피를 흘리셨는데 지금 세태에 와서는 한국인만의 토속어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말을 다루는 작가로서 한국인 고유의 언어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에서만 한국인 고유 언어를 쓰고 말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때 한 대답이 ‘왜말사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과의 언약이다. 이제 그 말다짐을 지키려는 것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말의 고스락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자리를 통해 밝혔다. 새삼스럽게 덧붙일 말도 없다. 다만 한가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강점과 그것의 영속화를 위한 조선말 말살정책 탓은 이제 그만하자. 일제의 조선말 말살정책은 조선말 자체를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조선사람을 종으로 만들자는 것이지 조선말 속에 자기네 말을 적당히 반죽해 넣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말이 뚫고들어와서 안방차지를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원흉은 누구인가. 한마디로 당시의 먹물들이다. 이른바 도일(渡日)유학 1세대들. 그때에 행세깨나 한다는 양반 사대부계급, 곧 지배계급의 자제들과 그들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던 아전, 곧 중인계급의 자제들이 도일유학 1세대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들을 막대잡이로 한 도일유학파들이 왜말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문학인·국어학자들의 책임

단순히 낯설고 신기해서 부럽기만 하던 왜말(그 속에 앞서가는 문명세계의 문물이 들어있다고 굳게 믿으므로)만 시나브로 물어나른 것이 아니다. 처음에야 물론 쪼가리 왜말이나 물어나르며 흰목젖했겠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조선말을 숫제 왜말로 변역해 버렸던 것이다. 우리 고유의 것은 왠지 촌스럽고 뒤떨어졌다는 민족비하의식에서 기를 쓰고 서구의 것만 부좇아가는 오늘의 세태를 보더라도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 문학인들이었다. 이른바 최초의 신체시라는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바이런의 시를 슬갑도적질한 것인데, 제목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문법이 아니다. 육당(六堂)이 왜말로 문장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최남선을 우두머리로 한 이광수(李光洙) 김동인(金東仁) 염상섭(廉想涉) 현진건(玄鎭健) 전영택(田榮澤) 주요섭(朱耀燮) 나도향(羅稻香) 이상(李箱)은 물론이고,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까지도, 왜말로 문학공부를 하고 습작을 했던 것이다.

뿐인가. 레닌문학상을 받은 이기영(李箕永) 조명희(趙明熙) 김남천(金南天) 이북명(李北鳴)등 1920년대의 카프작가도 왜말법으로 우리말을 더럽히는 데 큰 이바지를 하였다. 하늘 같은 선배들이 이랬으니 그들을 뒤쫓아가는 후배작가들이 선배들의 잘못을 확대재생산하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 말과 글로 민족문화를 지켜내야 하는 문학인들의 맡은 구실이 참으로 크고 두렵다는 생각이다.

국어학자들의 책임 또한 크다. 밑공부를 닦은 데가 일본이었다. 한힌샘 선생을 뺀 거지반의 국어학자들이 죄 동경제국대학이나 경성제국대학에서 일본교수들한테 조선말 문법을 배웠다. 동경제국대학을 나왔으나 갓맑은 우리말 문법을 주장하던 외솔 선생 같은 이를 테 밖으로 밀어내게 된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국어학계 역시왜화(倭化)했던 것이다.

우리말이 국적 없는 잡탕밥 꿀꿀이죽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국어사전’ 탓이 기중 으뜸이다. 왜말과 양말은 엄청나게 많은데 토박이 우리말, 사투리라고 낮춰 부르는 지역 고유어와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입말은 가뭄에 콩나기니. 일본사전을 놓고 베끼다시피 한 탓이다. 이러니 일본 한자가 아무런 설명 없이 날것으로 실려있고, 일본식 문법이 판을 쳐 어떤 것이 우리 한자말이고 어떤 것이 일본 한자말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단도리’라는 왜말이 ‘우리말 모음사전’에 실려있는 판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궁구하려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멀리해야 할 책이 ‘국어사전’인 까닭이다.

영사전 또한 큰 골칫거리니. 영어를 일어로 번역한 ‘영일사전’을 다시 왜말투로 번역한 것이 바로 ‘영한사전’인 때문이다. 이런 말이 안되는 사전을 보고 공부해서 영어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말로 쓴 왜말이 되고, 그렇게 쓴 우리말 명색을 다시 영어로 옮기면 영어로 쓴 일본말이 된다. 이른바 먹물들이 쓰는 유식한 글과 작가 명색들이 쓰는 소설 거지반이 죄 번역체 문장이 되는 까닭이 다 여기에 있다. 이 글 또한 그런 점에서 옹글게 벗어나 있지 못할 것이다. 먹물 든 것은 없지만 이 글을 쓰는 중생 또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탓이다.

되곱쳐 말하지만 먹물들 죄가 기중 크다. 어려운 ‘넉자배기’를 자꾸 만들어 씀으로써 자기들의 지배적 기득권을 대를 물려 오로지하려 했던 왕조시대 양반지식인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이 시대 상층 기득권 지배세력의 완강한 선민의식과 그 선민의식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한 친미·친일 사대주의와 언론의 기회주의적 이중성, 그리고 그런 언론과 한통속인 숭미(崇美)사대주의·공일(恭日) 굴종주의적 지식인들의 죄업이 수미산 같다.

화두(話頭)를 타파해서 몰록 깨달음을 이루듯이 갑자기 왜말을 다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언어생활 자체가 되었으므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무슨 특별조치법이라도 만들어 어느 날부터 왜말을 쓰지 못하게 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아마도 사회체제 자체가 무너져버릴 것이다. 다만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부끄럽고 부끄러워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낯을 들 수 없는 왜말이 무엇인지, 그 말을 우리는 무어라고 썼던 것이며 써볼 수 있는 것인지, 우선 발기라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쓸데없는 곡해를 피하기 위하여 배암의 발을 덧붙이니, 이 글에서 ‘왜말’이라고 하는 것은 굳이 일본을 낮춰 보자는 감상적 민족주의가 아니다. 일제시대에 산 이들은 그렇게 불렀다. 일본이 자랑하는 대백과사전에도 ‘한(漢)나라에서는 일본을 왜라 한다’고 돼있고, ‘와꼬오’가 ‘왜구(倭寇)’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이른바 야마도(大和)정신이라고 할 때의 ‘화(和)’가 곧 ‘왜(倭)’인 것이다. ‘역사교과서 왜곡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왜구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군국주의 세력에게 주는 경책의 뜻도 담겨 있다.
1/2
김성동
목록 닫기

‘먹물’들과 국어사전이 우리말 망쳤다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