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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지취재

중국에서 죽음 기다리는 제2의 마약사범 이정복·김우택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z@donga.com

중국에서 죽음 기다리는 제2의 마약사범 이정복·김우택

  • 신옥두·정영조에 이어 사형수가 될 한국인 마약사범들이 또 생겼다. 중국 헤이룽장성 치타이허(七臺河)시 경찰은 이정복의 공장 안에서 공범인 김우택(한국인) 등 5명을 체포했으며 현장에서 마약가공설비 10여세트, 히로뽕 완제품 8.27kg, 히로뽕 반제품 및 마약제조원료 1t을 압수했다. 이정복의 히로뽕 가공공장은 면적이 1000여㎡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
중국에서 사형된 마약사범 신씨 사건을 취재하다가 중요한 단서 하나를 입수했다. 11월7일 서울지검 마약부의 한 관계자는 “헤이룽장성에서 이정복, 김우택이란 한국인이 히로뽕 완제품 9kg 가량, 원료를 1000kg 가까이 압수당했는데 아마도 사형될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11월8일 하얼빈에서 이 관계자의 말대로 한국측이 별도의 신병 인도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형당할 것이 거의 확실한 한국인 이정복, 김우택의 혐의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하얼빈에서 동쪽으로 300km 정도 떨어진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에서 히로뽕을 제조하다 덜미를 잡혀 구속됐다. 중국 수사 당국의 사건 자료에 따르면 사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의 주범 한국인 이정복(54)은 별명이 ‘이영감’으로 167cm 정도 되는 키에 외모가 볼품없고 중국어를 서툴게 할 줄 아는 인물이다. 중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장사를 했는데 탈세혐의에 대부금마저 물지 못해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징역살이하는 동안에 그는 감옥에서 만난 친구한테서 히로뽕 제조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1999년말 중국에 건너온 그는 다롄에서 무역을 했지만 장사는 계속 신통치 않았다. 2000년 4월 이정복은 한국인 현경선과 단짝을 이루어 아성시에서 자신의 ‘특기’인 히로뽕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현경선이 산둥성 옌타이시에서 마약을 밀매하다 산둥성 공안당국에 체포되자, 이정복은 행적을 감추었다. 이때부터 그는 중국 국가마약금지위원회의 지명수배범이 되었다.

시작부터 된서리를 맞았지만 이정복은 손을 씻을 생각을 하지 않고, 히로뽕 제조업에서 재기할 기회만 노렸다. 2000년 11월 이정복은 다롄시의 한국식 술집에서 한국인 김형찬을 사귀었다. 나중에 김형찬은 그에게 헤이룽장성 치타이허 사람인 조선족장준호를 소개해주었다.

장씨를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긴 이정복은 그에게 치타이허시에서 자리를 잡고 계속 히로뽕을 생산할 의향을 내비쳤다. 두 사람은 1차 합의를 보고 나중에 김형찬이 미화 5만달러를 투자해 히로뽕 가공공장을 세우고 이윤은 똑같이 나누어 갖기로 했다.

2000년 12월초 이정복은 한국에서 김우택을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로 불러 가구를 제조한다는 명목으로 치타이허시 도산구 도동가에 있는 치타이허시일용잡화공사의 창고를 세내고, 가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설비를 사들였다. 이정복은 치타이허시에서 장준호의 도움을 받아 이곳 일꾼 6명을 고용했다. 뒤이어 이미 사용할 수 없이 낡은 목기가공도구와 목기설비 및 화학공업원료 대량을 공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화장품 반제품을 생산해 칭다오, 옌타이 등지에 판매한다고 거짓소문을 퍼뜨렸다. 이들은 세낸 창고를 10여 개 칸으로 분리하고는 히로뽕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2001년 1월6일 치타이허시 도산공안분국은 한국인 이정복, 김우택이 운영하는 목기가공공장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 한국인을 도와 공장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치타이허 사람 장준호는 일찍이 칭다오시와 치타이허시를 오가며 장사를 했는데 매번 오갈 때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제법 법석을 떨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채, 두 한국인과 맞붙어다니는 꼴이 수상하다는 것이었다.

화장품공장으로 위장

도산공안분국은 시민 제보를 받은 뒤, 이를 시공안국의 이위동 국장에게 보고했다. 이위동 국장은 곧바로 수사요원을 소집하여 수사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신분이 불투명한 두 한국인이 투자한 이 공장은 공상관리부문의 해당 수속을 밟지 않았으며, 공장의 생산라인으로 외부사람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중 이씨라고 불리는 사람은 벌리현에 비밀주택을 두고 있었다.

이정복·김우택 등 두 한국인과 장준호는 평소에 씀씀이가 엄청났다고 한다. 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을 드나들었는데 매일 쓰는 돈이 인민폐로 3000위안을 웃돌았다는 것이다. 이밖에 두 한국인은 가는 곳마다 의식적으로 경찰을 회피했다.

2001년 1월 중순, 장준호 등은 막노동꾼을 고용하여 공장 밖에다 생산폐수 등 폐기물을 폐기할 침수우물을 파게 했다. 일하는 과정에 이 공장의 직원인 진운명, 진운보가 한 막노동꾼과 말다툼을 하다가 싸움이 벌어졌는데, 진운명·진운보에게 두들겨 맞은 막노동꾼은 파출소에 신고하려 했다. 그러자 이정복과 장준호 등은 사력을 다해 이 막노동꾼을 말리면서 목돈을 주어 상처를 치료하게 했다.

2000년 12월 어느날, 이정복이 탄 공장의 차가 선양에서 사고가 났는데, 상대측 잘못이 커, 상대측에서 이정복에게 인민폐 7000여위안을 배상해야만 했다. 선양의 교통경찰은 관례대로 쌍방의 차를 교통경찰대대로 끌고가 열쇠를 압수했다. 그런데 이정복은 상대방의 배상을 기다리지 않고 운전수더러 비상열쇠로 차에 시동을 걸게 하고는 은밀히 치타이허시에 돌아왔다.

2000년 3월 어느날, 치타이허시 공안국의 이위동 국장 사무실에서는 이번 사건을 분석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정복 일당을 두 달 넘게 내사한 형사경찰대원들은 장준호와 두 한국인이 치타이허시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은 폭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며 마약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6가지 이유를 꼽았다.

1.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 경내에서 마약을 생산, 가공하는 사람은 한국, 일본인이 많으며 이들은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다.

2. 장준호 등은 치타이허시에서 외국투자자에게 많은 우대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외자유치항목 수속을 밟지 않았고, 공상·세무 분야도 등록하지 않았다.

3. 애초의 투자 방향이 변했다. 가구생산이 갑자기 화장품 생산으로 바뀌었고 설비와 원료구입이 신속하고, 행동반경이 석연치 않았다.

4. 비밀생산라인을 만들고, 외부인은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5. 두 한국인의 투자가 매우 크고 생활소비도 엄청난데 견주어 자금줄이 불분명했다. 만약 이들이 실제로 화장품을 생산한다면 이렇게 높은 수입이 생길 리 없었다.

6. 만약 이들이 합법적으로 공장을 운영한다면 도처에서 경찰을 회피할 필요가 없다.

1t이 넘는 마약원료

회의에서는 이미 이 공장에 생산품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정복과 장준호도 두 차례나 치타이허시를 떠난 적이 있다는 보고도 나왔다. 상황은 매우 급박했고 치타이허시 공안당국은 이정복 일당을 비밀체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다국적 마약제조사건이었고 치타이허시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에 치타이허시 공안국은 전문인원들로 ‘01·3·6 사건지휘부’를 설립하고 공안부와 헤이룽장성 공안청에 상세히 보고했다.

이 때 이정복과 운전수, 장준호가 모두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것이 중국 수사당국에 꼬리가 잡혔다. 치타이허시 수사당국은 이들이 2001년 3월5일에 치타이허시에 돌아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때, 치타이허시는 몇년간 보기 드문 혹한을 맞아 기온이 영하 20도로 내려갔다.

강추위 속에 치타이허시 경찰은 벌리-의란 구간을 봉쇄했다. 경찰은 추위를 무릅쓰고 하루낮 하루밤을 꼬박 지켰지만, 눈길이 미끄러워 이정복 등은 제 기한에 치타이허시로 돌아오지 못했다. 3월6일 오후 3시, 경찰은 마침내 산둥에서 치타이허로 돌아오는 이정복과 운전수 장서림을 체포했다. 장준호는 이들과 동행하지 않고 도주했다. 치타이허시 공안국 사무실에서 이정복은 자기는 치타이허시에 투자하러온 외국상인이라면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차례 심문 끝에 그는 범죄사실을 전부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타이허시 경찰은 곧바로 이정복의 공장 안에서 공범인 김우택(한국인) 등 5명을 체포했으며 현장에서 공안국은 마약가공설비 10여 세트, 히로뽕 완제품 8.27kg, 히로뽕 반제품 및 마약제조원료 1t을 압수했다. 이정복의 자백에 따르면 대부분의 원료와 설비는 그가 직접 한국과 일본 등지로부터 구입한 것이었다.

이정복의 히로뽕 가공공장은 공장 면적이 1000여㎡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 이씨의 자백에 따르면 2000년 말 김형찬이 한국에서 히로뽕 제조설비 및 부분적 원료를 보내온 것을 그와 장준호가 차를 세 내서 칭다오시에서 치타이허시로 운반해왔다.

그는 김우택을 한국에서 불러와 히로뽕 제조를 돕게 했으며 진운명, 진운보, 태동준, 장서림 등을 고용했다. 2001년 1월 중순, 이정복 등은 히로뽕을 제조했는데, 그가 전반적인 기술을 책임졌다. 특히 반제품히로뽕을 제조하는 마감작업 순서는 그 혼자만 장악하고 있었으며 누구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정복 등이 공안기관에 체포된 뒤 도피중이던 공범자 장준호는 동거녀 장효옥(치타이허시 금융호텔 나이트클럽 종업원)을 시켜 제조현장이던 치타이허시 일용잡화공사창고에 가서 정탐하게 했는데, 장효옥도 현장에서 붙잡혔다. 이로써 이정복 일당은 장준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체포되었다.

신동아 2001년 12월 호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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