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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도 ‘리스트’도 없다. 더 이상 흔들지 말라”

김우중의 사람들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조직도 ‘리스트’도 없다. 더 이상 흔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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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중은 개발연대 30년을 온몸으로 헤쳐왔다. 변화의 격랑에도 살아남아 기업을 키우고 세계화를 선도했다. 비록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마지막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그의 功은 過를 덮을 만하다…” 열혈 ‘김우중맨’들의 김우중을 위한 변명.
”김우중이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구만.”

지난 연말 박정훈 전 민주당 의원의 부인 김재옥씨가 “1988년 김우중 회장의 돈을 받아 김홍일씨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하자 한 여당 정치인은 이렇게 내뱉았다. 희대의 사기범으로 몰려 궁지에 빠진 김우중(金宇中·66) 전 대우그룹 회장이 느닷없이 13년 전 대통령의 아들에게 건넨 정치자금 얘기를 끄집어내 ‘외곽’을 때림으로써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고 본 것이다.

더욱이 김재옥씨는 자신의 폭로로 큰 파문이 인 뒤에도 “이번은 그냥 ‘인사’로 한 거다. 2탄, 3탄, 핵폭탄이 준비돼 있다” “김회장님이 들어와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김 전회장과 그 측근들이 이른바 ‘김우중 리스트’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만도 했다.

한 해 전의 대통령선거에서 낙마한 ‘별볼일없는’ 야당 총재에게 ‘사과상자가 서재 천장까지 쌓여 돈 냄새가 진동할’ 만큼 돈을 줬다면 그후 두 번의 대선과 세 번의 총선을 더 거치는 동안에는 또 얼마가 전달됐을까, 야당에 그만한 돈이 갔다면 여당에는 어땠을까, 현 정부 출범 후 대우가 붕괴위기에 몰렸을 때는 로비가 없었을까…. 갖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함으로써 ‘김우중 복귀’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조직적이고 계획된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김재옥이 김우중 발목잡았다”


그러나 김 전회장 측근들은 이같은 음모설을 하나같이 완강하게 부인했다. 김재옥씨의 폭로는 자신들과 아무런 사전교감 없이 이뤄진 돌출행동이라는 것이다. 김씨가 원망스럽다는 이들도 많았다.

김 전회장?한 핵심측근은 “김씨가 김회장에 대해 고마움을, DJ에 대해 섭섭함을 표시한 것까진 좋다. 하지만 정치자금이 오고 간 과정에만 초점을 맞춰 김우중이라는 인물을 정치인에게 돈 대주고 뒷거래나 하는 저급한 수준으로 전락시켰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씨의 발언은 자신들에게 동정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재기하려는 대우인들과 김 전회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 그는 “김회장은 무슨 ‘리스트’ 나부랭이나 들고 나와서 정권의 옆구리를 찌를 정상배가 아니다. 그러기엔 그릇이 너무 큰 사람이다”며 정색했다.

또다른 측근인사는 김씨의 주장을 ‘팩트’로 믿기 힘들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 상자가 서재 가득 쌓였다면 수십억원은 된다는 얘긴데, 그런 액수라면 기업 총수가 직접 전하지, 그처럼 목격자를 여럿 만들 리 있겠는가. 그리고 돈이 전달됐다는 1988년은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기 전이다. 수표로 주거나 가·차명계좌로 입금해도 탈날 게 없는데,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런 돈을 왜 현금으로 주겠는가. 사과상자가 오간 것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1993년 이후의 일이다.”

또한 “‘김우중맨’들에게 ‘김우중은 희생양이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김회장의 복귀나 명예회복을 위해 조직적인 행동에 나설 만한 여건도 갖춰지지 않았고, 그럴 만한 기반도 의욕도 없다”는 게 한 대우 퇴직 임원의 설명이다.

김 전회장의 주요 측근들은 대부분 ‘대우 비리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라 언행이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며, 다른 인사들도 재판을 쫓아다니느라 경황이 없거나 새 일터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기에 손발을 맞춰볼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 더구나 이들은 극히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된 나머지 바깥출입을 하거나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릴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 전회장이 돌아온다고 해도 ‘대우는 내 회사’라고 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 대우 복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우를 경영할 때도 김 전회장의 개인 지분이 미미해 경영권 방어가 불안한 실정이었는데, 그나마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 자구 차원에서 다 내놓았기 때문에 현재 대우와 김 전회장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는 얘기다.

서울 퇴계로 대우재단 빌딩 15층에 ‘대우인회’라는 명패가 붙은 사무실이 있다. 대우의 퇴직 임원들이 얼굴을 맞대는 거의 유일한 공식 공간이다. 김 전회장의 복귀 음모설 중에는 이곳을 ‘작전사령부’로 지목한 것도 있다.

하지만 대우인회는 순수한 친목·상조 모임에 불과하다는 게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해명이다. 원래는 ‘우인회(宇人會)’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퇴직한 임원들이 창업하거나 새 직장을 잡을 때까지 외부인을 만나거나 정보를 교류하는 공간으로 활용케 한 것인데,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대우인회로 이름을 바꿨지만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같이 식사하는 게 유일한 정기 모임이며, 그밖에는 시내에 일보러 나왔다가 자투리 시간을 때우려고 들르는 정도라는 것이다. 어쩌다 선·후배, 동료들과 마주해 과거를 떠올리다 억울한 심정에 비분강개할 때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끝날 뿐이라는 것. 무엇보다 아직 재판이 진행중인 회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러워 대우인회 이름으로는 대우 사태와 관련해 지금껏 공식 성명 하나 낸 적이 없다고 한다.

김우중 전회장의 ‘세계경영’을 보좌하다 실형을 선고받은 주요 측근으로는 강병호(康炳浩·59) 전 (주)대우 및 대우자동차 사장, 김태구(金泰球·61) 전 대우자동차 사장, 장병주(張炳珠·57) 전 (주)대우 사장, 전주범(全周範·50) 전 대우전자 사장, 추호석(秋浩錫·52) 전 대우중공업 사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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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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