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미국 주도 국제금융 시스템의 위기

프랑스 조절학파의 태두 미셸 아글리에타

  • 입력2006-11-03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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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미셸 아글리에타(Michel Aglietta)는 파리 10대학 교수이며 CEPII(총리 산하 국가연구기관)와 프랑스 중앙은행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조스팽 정부하에서 구성된 경제분석위원회에 참여해 현실에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아글리에타의 작업은 이론과 정책, 역사와 현실, 화폐와 실물세계의 접속을 추구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좌파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 결과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프랑스 알프스 지역의 사브와(Savoie)에서 중소기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아글리에타는 프랑스의 최고 엘리트 과정을 착실하게 밟았다. 이공과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하여 ENSAE(경제응용통계 국립학교)에 진학, 자신의 학문세계를 넓혀 나갔다.

    이러한 학습과정은 아글리에타 이론의 이면에 깔려 있는 경제학적 소양, 역사적 관점, 그리고 수학과 계량경제학에 대한 뛰어난 이해의 기초가 됐다. 드골이 주도한 국가경제 개발계획의 열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사회발전에 대한 낙관주의가 풍미하던 60년대에 그는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을 지배하는 사회 권력들이 모여 국가의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협상포럼인 제6차 국가경제개발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프랑스 조절학파의 태두

    현실적 정책결정 작업을 경험한 아글리에타의 관심은 제도와 조절이라는 개념으로 옮겨갔다. 70년대 초 하버드 대학에서 2년을 보낸 그는 미국 경제 분석에서 고전으로 평가받는 저서 ‘자본주의의 조절과 위기’를 쓰고 프랑스 조절학파의 초석을 세웠다.



    여기서 조절이란 영미적 의미에서의 규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을 균형상태로 유지하게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개념이다. 즉 조절이란 다양하고 이질적인 경제과정들이 필연적 혹은 우연적 요소들과 결합돼 하나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발전시키는 방식이며, 여기서 ‘조절양식’이란 개념이 파생된다. 조절양식은 국민경제 내부에서 자본의 축적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완화하면서 사회적 응집력을 유지해주는 구실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2차 세계대전 후부터 70년대 초반의 황금기를 주도한 ‘포디즘’이었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이해관계의 모순을 증폭시키는 자본의 축적과정은, 이윤의 분배를 둘러싼 노·자 간 협상과정을 거치면서 임금 상승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고, 이는 대중적인 수요 증가와 이에 따른 투자 증가를 초래하면서 성장을 유지한다.

    조절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란 각국의 역사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생성되고 발전한다. 따라서 조절이론은 나라에서 상이하게 진행되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의 역사와 제도적 연구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발전형태는 한 가지일 수가 없다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조절이론은 순수한 가정(假定)으로 존재하는 ‘비역사적인 사회’를 수학적 도구만 갖고서 분석하는 신고전학파적 방법론과 구별된다.

    조절이론의 분석은, 한편으로는 마르크스 ‘자본론’ 이후 한 세기 이상 진행된 자본주의의 경제적·제도적 차원의 변화를 고려하는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관점을 다시 취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조절이론은 경제균형을 결정하는 수요와 화폐의 구실에 주목한 케인스의 분석에 영향을 받았다. 즉 수요는 경제성장의 핵심 고리며, 화폐는 경제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단순한 교환수단이 아니라 경제활동 내에서 신용 형태로 주어지는 필연적 산물로서 경제활동의 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 산업적 측면과 금융적 측면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글리에타는 ‘프랑스의 포스트 케인지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아글리에타가 창설한 조절학파는 프랑스 좌파 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세계 경제학계에서 중요한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다.

    ‘화폐의 폭력’에 담긴 철학

    50∼60년대에 국가는 금융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산업투자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유도하는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거의 폐쇄적이었던 하나의 국민경제 내에서 물가는 상승하고 이것이 투자를 촉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시스템의 유지와 성장에 도움이 되던 이런 방식의 물가상승은 시스템 작동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소유한 부의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침식당하는 것에 염증을 느낀 저축자들은 그들의 돈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좀더 경쟁적인 시스템을 모색했다. 이것이 바로 80년대 금융자유화의 파도였다. 경쟁에 의거한 새로운 조절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아글리에타는 더욱 구체적으로 화폐의 구실을 통합하면서 자신의 화폐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거의 철학적인 관점에서 쓰인 저서 ‘화폐의 폭력’에서 그는, 화폐는 교환을 은폐하는 투명한 베일이 아니라 상품경제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사회 관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르크스의 논리와는 반대로 화폐는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상품관계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글리에타의 이론체계에서 마르크시즘은 사라지게 된다. 화폐가 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사회관계라는 것은, 개인이 화폐에 의해 상품화되며 개인의 경제활동 가치는 화폐를 통해 평가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화폐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화폐에 대한 집단적(혹은 종교적) 신뢰에 근거한 지불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는 이것이 국가 주권을 기반으로 한 중앙은행의 독점적 화폐발행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아글리에타에 따르면 경제학은 수학적 기법에 근거한 순수한 과학일 수 없다. 경제의 기초인 화폐가 경제학적 논리의 바깥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중요성 역설

    80년대의 급격한 금융자유화와 세계화는 그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금융부문으로 향하게 했다. 시장의 불안정성과 불완전성은 경제 주체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보다는 리스크를 보편적인 위기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온다. 한 은행의 파산이, 다른 은행도 파산할지 모른다는 예금자들의 불안을 증폭시켜서 폭발적인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지고, 은행시스템이 마비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금융자유화와 세계화는 시장의 불완전함을 더욱 가속시킨다. 자본의 국제적 흐름은 통화 당국에 어떠한 통제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는다. 즉 세계적 차원의 위기가 금융시스템 내부에 항상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글리에타는 영미권에서 주류를 이루는 자유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국제금융 시스템은 최소한의 안정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단지 금융시장을 효율적이게 하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즉 그것이 가장 이윤이 많이 나는 곳에서 돈을 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시스템의 위기는 막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과거 시절의 강제적인 통제로 다시 복귀할 수는 없으며, 또 정부들간의 협력은 그 복잡하고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물가안정을 정책목표로 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시장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단기 금융의 과도한 유동성을 제한하고, 사적 금융주체들과 협력하여 국가의 금융시장을 감독하는 중앙은행을 조직적 대안의 하나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확보는 핵심적 과제다. 중앙은행은 다른 어떤 경제주체보다도 빨리 경제흐름을 파악하고 위기 가능성을 진단하여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다. 특히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경우 화폐발행권을 가진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로서 위기 확산을 막을 수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에 쓰인 그의 많은 논문은 중앙은행과 시스템의 위기관리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글리에타의 이러한 작업은 금융 변화에 대한 열정적이고 명쾌한 분석을 제공하는 ‘금융거시경제’에 나타났으며, 이 책이 출판된 1995년에 프랑스 경제경영 잡지인 ‘신(新)경제학자’는 그를 ‘올해의 경제학자’로 선정했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국제금융 시스템 관리에 대한 그의 관심을 더욱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그에게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핵심 처방은 ‘신중한 정책’과 위기를 관리할 ‘제도적 장치’를 설립하는 일이다. 여기서 ‘신중한 정책’이란 금융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제반 정책을 말한다. 예를 들어 예금보험이나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등이다.

    아글리에타가 수행한 금융위기의 역사분석에 따르면, 국제 차원에서는 최종 대부자가 필요하다는 합의와 이를 위한 제도만으로는 최종 대부자(즉 국제 차원의 중앙은행)를 설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제 차원에서는 정치권력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화폐 권력인 중앙은행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은, 국제결제은행 내에 각국 중앙은행들이 협력하면 금융시장에 개입함으로써 위기를 해결해가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비록 모호한 형태나마 국제 차원의 최종대부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글리에타의 이런 견해를 뒤집어보면, 미국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계약에 근거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다. 그에게 국제 차원의 최종 대부자는 어떤 특정 국가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지불시스템의 연속성을 보장함으로써 세계시스템의 안정을 목표로 하는, 화폐에 개입하는 주체다.

    스스로 프랑스인임을 자부하는 아글리에타의 또 다른 핵심적인 작업은 향후 진보적인 유럽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유럽적인 새로운 성장모델의 탐구, 계층간 평등,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권리 강화는 그가 꿈꾸는 유럽의 기본적인 사상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올해 62세로 프랑스인들의 전형적인 취미인 축구와 영화를 즐기는 아글리에타의 작업은, 한 경제학자가 관료로 변신을 꾀하기보다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기 이론을 무기로 현실정책에 개입해 나가는 전형적인 학자의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의 경제학 이론을 비판없이 꿰어 맞추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발을 디딘 곳을 기반으로 해서 어떻게 ‘프랑스적인 경제학’을 만드는가를 보여준다. 언젠가 아글리에타 교수가 필자에게 던진 한 마디.

    “아이디어 제공은 내몫이지만 아시아와 한국의 문제를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은 바로 너의 책임이다!”

    ♣글·김은경(파리 10대학 박사과정·경제학)

    유 동성에 대한 의심이 커지기 시작하면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이 작동 불능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금융위기를 통해서 입증됐다. 시장의 조정기능이 실패하는 상황에는 사적 경제주체의 이탈에서 비롯되는 위기의 확산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공적 주체의 긴급 개입이 불가피하다. 공적 주체에 의한 개입만이 실질적으로 시장의 붕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개입은 보통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진다(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적 주체를 ‘최종 대부자’라고 부르며,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을 일컫는다-역자 주).

    최종 대부자가 없을 때에는, 1998년 8월 러시아 국내 공공부채가 보여준 예처럼, 러시아 은행들에 강요된 일방적인 지불유예가 외국인들이 공채 형태로 보유하고 있던 위험대비 보전금을 무효로 만들면서 연쇄적으로 격렬히 파급돼 결국 시장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최종 대부는 그 모순적인 특성으로 인해 항상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그것은 시장의 영속성을 위해서 시장 메커니즘을 중단시킨다. 그 과정에 사적 위험을 사회화하며, 시장 참여자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위를 허용하고 확대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은 보험이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자의 도덕관념이나 행위 양태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보험계약 체결시 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획일적인 계약은, 예컨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방화사건처럼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역자 주). 그러므로 금융자유화 신봉자들은 최종 대부자를 시장 실패의 원흉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또한 금융위기에 직면한 공적 주체의 긴급조치는 금융체계의 안정보장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론적 차원에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의 개입은, 유동성은 부족하지만 지불 능력은 있는 금융기관을 구조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미리 총액 한도를 설정해서는 안 되지만, 자금수혜자들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자금조달이 시장에서 이루어진 금융조달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원칙의 적용은 정보와 판단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은 금융위기 과정에 밀접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해이를 촉발하지 않고 마지막 단계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실용적인 대답은 서방 여러 국가에 ‘건설적인 모호함’이라는 형태로 발전했다. 즉 중앙은행은 금융중재자들에 대한 세밀한 지식과 시장의 유동성에 대한 감시 덕분에 비교적 자유롭게 그때그때 상황에 대응하며, 금융업계의 연대라는 명분하에 매번 은행연합을 구제활동과 연관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은행시스템의 위험을 세밀하게 감시하고, 조속한 조정조치를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국제통화 체제가 자본의 국제적인 통제를 유지하는 동안, 최종 대부자의 기능은 국가별로 분리될 수 있었고 국가 내부로 제한될 수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수지 적자로 인한 자금부족을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왔고, 그 지원은 변동환율제 수립 이후 오로지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만 시행돼왔다. 물론 그것은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에만 관련된 것이었다. IMF의 활동은 거시경제적 관리를 위해서 IMF 관할권 내의 과도한 채무에 관련된 것이었으며, IMF가 갖고 있지 않고 정관 속에 규정돼 있지도 않은 과도한 채권들에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또 자금공급이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정 조건들과 어우러지면서 공공기관간에 절충된 조정 프로그램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금융의 세계화는 이러한 역할 분리에 타격을 가했다. 반복되는 위기는 국제적 차원에서 점점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이런 위기들은 국제 차원의 최종 대부자 문제를 제기한다. IMF를 금융 안전보장의 중심기구로 만들기 위해 IMF의 권한을 확대해주기 바라는 쪽과, 그것은 일국적 차원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대책을 전혀 다른 상황에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베껴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심판대에 오른 IMF

    80년대 제3세계의 극단적인 부채 위기는 IMF로 하여금 긴급하게 그 기구가 가진 경험과 도구를 갖고 자신의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강요했다. 이로써 IMF는 채권은행단들과 마찬가지로 더는 관망할 수만은 없는 지불능력 문제에 직면했다. 조정계획들은 지체됐고, 이에 따라 상환기간이 10년에 이르는 새로운 지불유예가 발생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IMF는 채무국의 경제발전 과정에 관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국제수지에 대한 일시적 지원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최종 대부자 기능과도 상관 없었다.

    채무국에 대한 그런 막대한 장기 지원은 채무국 국민들이 조정 노력에 따른 모든 희생을 감수하게끔 만들었다. IMF의 지원은 국제은행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통해 이윤을 얻을 수 있게 해주면서 채무국 내에서 그들의 정치적·금융적 이익을 강화해주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덕적 해이에 대한 이런 식의 동기부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은행 위기와 부동산 위기로 혹독한 충격을 입은 금융기관을 재편하려는 G7 정부의 자극으로 IMF는 소위 신흥 국가에서 가속되고 있던 금융자유화의 선동자가 됐다. IMF는 튼튼한 금융 시스템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영향력이나 금융 재원, 능력도 없이 자신이 자문해주던 국가에서 구조 개혁에 착수한 것이다.

    근본적인 실수는 달러화에 대한 일방적인 고착을 통한 고정 환율의 권장이었다. 그것은 멕시코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다음은 브라질에서 유동성 위기의 씨를 뿌렸다. 그런 실수는 유럽통화제도(EMS)가 겪었던 위기보다도 훨씬 막대한 손실이었다. 비록 달러를 고정할 필요가 있었을지라도, 자본 이동의 자유와 환율의 고정은 자신의 경제정책을 수행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IMF는 통상적인 거시경제적 조정 문제나 심지어 극단적인 부채위기와도 아무 관련이 없던 시장의 역학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이 경험한 위기는 IMF의 전통적인 방법이 얼마나 잘못돼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동성 위기는 홍콩 주식의 대폭락과 더불어 1997년 10월23일 실제로 폭발했다. 뒤이어 몇 주 안에 외국 은행들은 만기가 된 대출 한도선을 서둘러 철회했다. 환율 압박은 원화 폭락을 막지 못하고 중앙은행의 지불준비금을 금세 바닥내버렸다. 지급불이행과 은행 연쇄 도산이라는 위협 아래서 한국 정부는 11월21일 IMF에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IMF와의 협상은 긴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그것을 빨리 마무리짓기 위해서 미국 행정부에 도움을 청했다. 정식 합의는 12월 초 긴축정책과 구조개혁을 권고하는 상습적인 구비사항과 그에 따른 자금의 분할 입금 및 융자조건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그 합의 내용이 알려지자마자 자본 유출 사태가 벌어졌다. IMF 프로그램의 내용이 전례없는 금융 지원이었음에도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면서 환율의 붕괴를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구조조정이 문제가 된다. 우선은 공황을 잠재워야 했다. 즉 IMF는 즉각적인 지불불이행을 막는 국제적인 최종 대부자로서 조처를 취해야 했다.

    구제 방안은 미국 재무부 권한하에 있는 연방준비은행이 마련했다. 그 핵심 내용은 자본유출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외국 은행들을 끌어들여서, 대차대조표와 대차대조표 외의 은행 부채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한국측 은행과 국가 감독자 사이에 다방면의 후방 연락선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최종 대부자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은행간 협력이 이루어지자 시장을 부양하는 데에 필요한 유동성의 투입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됐다. 이렇게 정리된 분업체제 속에서 IMF는 기술적 지원과 자금동결 해제에 참여하는 하위적 역할을 수행했다.

    IMF가 아니라 ‘국제 협력망’을 구성하자

    금융의 세계화는 이제 일반화된 유동성 위기를 부활시켰다. 러시아 파산 후 몇 주일간이 그 생생한 사례다. 그 기간은 국제 유동성의 궁극적인 수호자로서 연방준비은행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한 시기였다. 하지만 IMF의 무능력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수동성은 여전히 걱정스럽다. 세계 통화가 단일화하지 않는 한, 어느 한 국가의 수준에서 채택된 ‘건설적 모호함’이라는 원리로 제도적인 전환을 꾀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어떤 제도도 국제적인 최종 대부자의 권위를 획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협력망의 형태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교훈은, 유동성 위기의 전조는 거시경제적인 변수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의 깊고 정보가 풍부한, 특히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는 부채, 역외 부채, 관련한 정보에 능통한 감독자들과 적극적인 시장 중재자들만이 그런 징후들을 탐지해낼 수 있다. 즉 관련 국가의 중앙은행이 바로 국제적 최종대부자의 원거리 안테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효율적인 감시수단과 강제수단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금융자유화를 장려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만약 그럴 경우에는, 그 나라의 중앙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과 바젤위원회(국제결제은행 산하에 구성된 위원회로서 국제외환 안정을 목표로 그에 관련된 협정을 마련한다 ―역주)의 회원이어야 한다. 국제적 최종 대부자의 중추신경은 워싱턴이 아니라 바젤에 있다.

    둘째 교훈은, 최종 대부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임박한 위기가 감지될 때 긴급하게 유동성 출자를 하도록 은행들을 끌어들이는 일이라는 점이다. 국제적 수준에서는 중앙은행들의 공동 권한에 달려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들의 공동 권한에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협력망이다.

    만약 세계은행이 대출 한도선의 보증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채무국 중앙은행과 국제 채권은행 간에 결론을 내리도록 하며, 유동 가능한 중기적 대출 한도선의 형태로 부분적으로 형식화될 수 있다. 최종대부자 이론에서 이런 영역은 IMF의 경험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IMF는 지역 은행들이 제대로 감독받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거나 원하지도 않으면서, 채무국 정부에게 모든 제약을 부담시킨다.

    셋째 교훈은, 환율체제에 대한 감시다. 미리 확정된 제도적인 규칙이 없이 신축성과 제한적 휘발성 사이에 절충을 꾀하면 유동성 위기도 그 정도가 약화될 것이다. 이 부분은 IMF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가진 분야다. 또한 브레턴 우즈(1944년 미국 브레턴 우즈에서 국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시정하여 국제무역의 확대 및 외환 안정,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하여 체결한 국제통화체제. 이에 근거해 IMF와 국제부흥개발은행이 창설됐으며, 1971년 미국의 달러화 금태환 정지조치로 와해됐다─역주)의 정신을 되찾는 것도 바로 이 분야다. 중앙은행 클럽(국제결제은행)이 최종 대부자 구실을 하는 구조 속에서 IMF는 자기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끊임없이 계속되는 공공자금 투입의 기록 갱신은 마침내 멈추게 될 것이다.

    유 럽 단일통화인 유로화와 최근 수년간 이뤄진 구조적 변화가 유럽에 지속적인 성장 조건들을 창출해내고 있다. 문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면서도 미국과는 달리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단일통화로 인해 창출된 새로운 거시경제적 조건들은 유럽 경제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리라고 보는가?

    “향후 유로의 통화정책은 내부 목표를 우선 고려하고, 유럽의 경기(景氣) 상황과 성장 능력에 적응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럽통화체제 안에 있기만 하면 당연히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거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12월 유럽 각국의 중앙은행들과 4월 유럽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은, 외부의 경제적 압박 여건들에 대해서 우리가 매우 융통성있게 대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확실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정부들이 유럽의 자본시장을 이용해서 과도한 공공 부채를 메우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가상승이 낮은 상태에서 성장을 목표로 한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유럽에서 거대 시장이 빠른 속도로 형성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거대 시장은 기업 부채를 해결하고 자본을 조달하는 필수 요소가 됐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과거 은행을 통했던 것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증권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메커니즘은 유럽에서도 발전해갈 게 틀림없다.

    이에 따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유럽 금융시장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다. 외국의 채권자와 채무자들이 유럽으로 몰려 오고 있는만큼 유럽 시장은 더욱 발전해나가야 한다. 그러면 유로는 남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성장의 발목을 잡는 고평가된 안식처(통화)가 아니라 채무자의 필요에 따라 달러처럼 경쟁력이 높아지는 국제적인 통화가 될 것이다.”

    ―유로의 등장은 국제통화체제의 흐름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인가?

    “국제통화체제는 과거처럼 전적으로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하나의 구심점을 가진 커다란 통화 지역들의 출현을 예상할 수 있다. 유럽통화체제의 영역에 놓여 있는 유럽국가들은 유로에 의존할 것이고, 지중해와 아프리카 국가들, 러시아 등도 유로에 더 크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달러는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갈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많은 국가들은 달러에 애착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환율위기의 관리를 단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문제가 이 통화지역에 내재하며, 최종 대부자의 기능이 그곳에서 수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은 유럽 내에서 금융을 안정시키기 위한 주요 결정들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통화지역을 넘어서는 외부에 원인이 있는 커다란 경제위기, 예를 들어 아시아 경제위기 같은 문제에 (유로회원국이)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관계정립 문제는 숙제로 남는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여건들은 유로 지역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훨씬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유로화 지역의 확대로 유럽은 90년대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은 이른바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구조조정 덕택에 유럽은 디플레이션의 위험 없이 연평균 2.5∼3%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유럽 각국의 경제는 확실히 바뀌었다. 기업들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직적 유연성을 갖추었고, 구조적으로도 커다란 경쟁력을 확보했다. 기업들은 최근 수십년 동안에 나타난 새로운 성장체제-시장이 경제 규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에 적응했다. 같은 기간에 유럽의 성장을 주도해온 서비스 산업은 어마어마한 고용을 창출해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변화가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다. 독일은 인구의 70%가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프랑스보다 서비스 산업의 발전이 매우 늦은 상황이다.

    이처럼 견고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근본적인 문제다. 특히 경제활동 인구가 여전히 많을 향후 10년은 유럽의 지속적인 성장 여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 10년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생겨날 퇴직자들에게 지급할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는 동시에 1인당 국민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해야 한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해야만 덜 불리한 조건에서 노년층의 폭발이라는 인구충격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미래는 밝을 것으로 예측하는가?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 있다. 유럽 내 지역간, 국가간의 강한 불협화음이 지속될 경우가 그 첫째 문제다. 유로화 단일시장은 국가간 불평등한 상황을 특수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 이 문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지역(국가)내의 특수화 논리만 보아왔다. 미국처럼 한 국가 내에서 여러 지역간의 특수화 상황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그 지역의 생산성 수준에 연계될 것이다. 통일 독일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지역의 생산성에 걸맞지 않은 급속한 임금의 상승은 없을 것이다. 투자를 유혹하는 것은 바로 낮은 임금 때문이다. 발전이 늦은 지역들은 제조업, 연구, 사회간접자본 등의 분야에서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조적 도구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유럽의 대형 펀드들은 불평등한 발전과 싸우기 위해 이런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이 지배하는 새로운 성장체제에서 유럽적 사회 모델은 아직도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가?

    “거시경제 정책의 자율성 보장과 고용창출을 늘리기 위한 구조적인 조치들, 이 모든 것들은 실업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단일통화가 모두 바라는 중요한 합의가 되기 위해선 실업을 얼마나 줄여나갈 것인가 하는 척도에서 평가돼야 한다. 단시간에 실업문제를 퇴치한 몇몇 국가의 경험은 문제해결의 목표가 내부에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경우 연평균 성장률이 3%만 유지되면 2년 내에 실업률이 8%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 만약 이런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미국식 칵테일을 유럽에 적용하는 데 실패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업과 싸우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부의 재분배라는 원칙으로 볼 때 미국식 모델은 극히 불평등한 것이다. 우리가 유럽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생각하는 것과 미국에서 훨씬 잘 제도화된 지위향상의 형태나 부의 축적은 양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강력한 유연성이 요구되는 시장경제에 이렇게 상충된 부분들을 어떻게 결합시켜 나갈 것인가?

    “첫째는 고용 형태에 늘어나는 다양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고용을 사회발전의 규칙에 연계해온 예전의 유럽적 고용 모델은 직업 형태가 급속히 다양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소속 기업에서 고용의 안정을 보장받고 있는 일반 봉급생활자들이 있는, 반면 국제 경기에 영향을 받는 이동직이나 전문직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 서비스업종에서 일하기 때문에 직업이 극히 불안정하면서도 사회적인 특혜는 거의 누리지 못하는 일용직 육체노동자들도 고용문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위험에 대비한 보증의 형태를 민영화한 미국식 개념과 비교할 수 있는 유럽적 임금 노동자의 개념을 재규정해야 한다. 임금 노동자의 위상은 개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정들에 대한 경제적 독립과 조직에 대한 복종으로 규정돼 있다. 이제 그 위상은 직장에 연결된 개인의 특수한 권리가 빚어낸 결과물로 바뀌어야 한다. 이 권리는 개인이 책임을 지고 사회가 보장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시간제 계약직과 정식 고용직 간에 차별을 없애가면서 노동시장의 이원론과 싸워가야 한다. 또한 봉급생활자와 관련, 고용의 유연성만 강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직장 조직의 변화 등 다양한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

    이 경우 고용 계약의 형태를 등질화시키면서 위험한 계약 조건을 제거하는 방법을 통해 계약 내용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개인권리의 재규정은 개인과 기회를 분배하는 사람간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주요 수단이 될 것이다. 나아가 미국과 다른 유럽사회의 질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당신은 여성 노동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는데….

    “여성 노동은 남자와 여자 간의 현실적인 형평성 확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경쟁력의 다양성은 새로운 성장방식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적지 않은 노동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을 막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여성에게 노동의 문을 여는 사회는 더욱 개방될 것이며,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산업과 새로운 형태의 성장 덕을 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가 남성과 여성의 노동에 연계된 사회 하부구조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책임지게 된다는 것을 가정한다. 동시에 고용에 대한 조직의 유연성이 우리 모두의 자율성과 화합하기 위해서 사회가 모든 기업에서 노동시간을 다르게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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