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계 석학들이 보는 새 밀레니엄

미국 주도 국제금융 시스템의 위기

프랑스 조절학파의 태두 미셸 아글리에타

미국 주도 국제금융 시스템의 위기

2/3
유 동성에 대한 의심이 커지기 시작하면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이 작동 불능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금융위기를 통해서 입증됐다. 시장의 조정기능이 실패하는 상황에는 사적 경제주체의 이탈에서 비롯되는 위기의 확산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공적 주체의 긴급 개입이 불가피하다. 공적 주체에 의한 개입만이 실질적으로 시장의 붕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개입은 보통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진다(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적 주체를 ‘최종 대부자’라고 부르며,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을 일컫는다-역자 주).

최종 대부자가 없을 때에는, 1998년 8월 러시아 국내 공공부채가 보여준 예처럼, 러시아 은행들에 강요된 일방적인 지불유예가 외국인들이 공채 형태로 보유하고 있던 위험대비 보전금을 무효로 만들면서 연쇄적으로 격렬히 파급돼 결국 시장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최종 대부는 그 모순적인 특성으로 인해 항상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그것은 시장의 영속성을 위해서 시장 메커니즘을 중단시킨다. 그 과정에 사적 위험을 사회화하며, 시장 참여자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위를 허용하고 확대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은 보험이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자의 도덕관념이나 행위 양태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보험계약 체결시 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획일적인 계약은, 예컨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방화사건처럼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역자 주). 그러므로 금융자유화 신봉자들은 최종 대부자를 시장 실패의 원흉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또한 금융위기에 직면한 공적 주체의 긴급조치는 금융체계의 안정보장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론적 차원에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의 개입은, 유동성은 부족하지만 지불 능력은 있는 금융기관을 구조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미리 총액 한도를 설정해서는 안 되지만, 자금수혜자들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자금조달이 시장에서 이루어진 금융조달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원칙의 적용은 정보와 판단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은 금융위기 과정에 밀접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해이를 촉발하지 않고 마지막 단계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실용적인 대답은 서방 여러 국가에 ‘건설적인 모호함’이라는 형태로 발전했다. 즉 중앙은행은 금융중재자들에 대한 세밀한 지식과 시장의 유동성에 대한 감시 덕분에 비교적 자유롭게 그때그때 상황에 대응하며, 금융업계의 연대라는 명분하에 매번 은행연합을 구제활동과 연관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은행시스템의 위험을 세밀하게 감시하고, 조속한 조정조치를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국제통화 체제가 자본의 국제적인 통제를 유지하는 동안, 최종 대부자의 기능은 국가별로 분리될 수 있었고 국가 내부로 제한될 수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수지 적자로 인한 자금부족을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왔고, 그 지원은 변동환율제 수립 이후 오로지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만 시행돼왔다. 물론 그것은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에만 관련된 것이었다. IMF의 활동은 거시경제적 관리를 위해서 IMF 관할권 내의 과도한 채무에 관련된 것이었으며, IMF가 갖고 있지 않고 정관 속에 규정돼 있지도 않은 과도한 채권들에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또 자금공급이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정 조건들과 어우러지면서 공공기관간에 절충된 조정 프로그램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금융의 세계화는 이러한 역할 분리에 타격을 가했다. 반복되는 위기는 국제적 차원에서 점점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이런 위기들은 국제 차원의 최종 대부자 문제를 제기한다. IMF를 금융 안전보장의 중심기구로 만들기 위해 IMF의 권한을 확대해주기 바라는 쪽과, 그것은 일국적 차원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대책을 전혀 다른 상황에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베껴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심판대에 오른 IMF

80년대 제3세계의 극단적인 부채 위기는 IMF로 하여금 긴급하게 그 기구가 가진 경험과 도구를 갖고 자신의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강요했다. 이로써 IMF는 채권은행단들과 마찬가지로 더는 관망할 수만은 없는 지불능력 문제에 직면했다. 조정계획들은 지체됐고, 이에 따라 상환기간이 10년에 이르는 새로운 지불유예가 발생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IMF는 채무국의 경제발전 과정에 관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국제수지에 대한 일시적 지원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최종 대부자 기능과도 상관 없었다.

채무국에 대한 그런 막대한 장기 지원은 채무국 국민들이 조정 노력에 따른 모든 희생을 감수하게끔 만들었다. IMF의 지원은 국제은행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통해 이윤을 얻을 수 있게 해주면서 채무국 내에서 그들의 정치적·금융적 이익을 강화해주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덕적 해이에 대한 이런 식의 동기부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은행 위기와 부동산 위기로 혹독한 충격을 입은 금융기관을 재편하려는 G7 정부의 자극으로 IMF는 소위 신흥 국가에서 가속되고 있던 금융자유화의 선동자가 됐다. IMF는 튼튼한 금융 시스템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영향력이나 금융 재원, 능력도 없이 자신이 자문해주던 국가에서 구조 개혁에 착수한 것이다.

근본적인 실수는 달러화에 대한 일방적인 고착을 통한 고정 환율의 권장이었다. 그것은 멕시코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다음은 브라질에서 유동성 위기의 씨를 뿌렸다. 그런 실수는 유럽통화제도(EMS)가 겪었던 위기보다도 훨씬 막대한 손실이었다. 비록 달러를 고정할 필요가 있었을지라도, 자본 이동의 자유와 환율의 고정은 자신의 경제정책을 수행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IMF는 통상적인 거시경제적 조정 문제나 심지어 극단적인 부채위기와도 아무 관련이 없던 시장의 역학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이 경험한 위기는 IMF의 전통적인 방법이 얼마나 잘못돼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동성 위기는 홍콩 주식의 대폭락과 더불어 1997년 10월23일 실제로 폭발했다. 뒤이어 몇 주 안에 외국 은행들은 만기가 된 대출 한도선을 서둘러 철회했다. 환율 압박은 원화 폭락을 막지 못하고 중앙은행의 지불준비금을 금세 바닥내버렸다. 지급불이행과 은행 연쇄 도산이라는 위협 아래서 한국 정부는 11월21일 IMF에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IMF와의 협상은 긴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그것을 빨리 마무리짓기 위해서 미국 행정부에 도움을 청했다. 정식 합의는 12월 초 긴축정책과 구조개혁을 권고하는 상습적인 구비사항과 그에 따른 자금의 분할 입금 및 융자조건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그 합의 내용이 알려지자마자 자본 유출 사태가 벌어졌다. IMF 프로그램의 내용이 전례없는 금융 지원이었음에도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면서 환율의 붕괴를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구조조정이 문제가 된다. 우선은 공황을 잠재워야 했다. 즉 IMF는 즉각적인 지불불이행을 막는 국제적인 최종 대부자로서 조처를 취해야 했다.

구제 방안은 미국 재무부 권한하에 있는 연방준비은행이 마련했다. 그 핵심 내용은 자본유출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외국 은행들을 끌어들여서, 대차대조표와 대차대조표 외의 은행 부채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한국측 은행과 국가 감독자 사이에 다방면의 후방 연락선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최종 대부자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은행간 협력이 이루어지자 시장을 부양하는 데에 필요한 유동성의 투입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됐다. 이렇게 정리된 분업체제 속에서 IMF는 기술적 지원과 자금동결 해제에 참여하는 하위적 역할을 수행했다.

IMF가 아니라 ‘국제 협력망’을 구성하자

금융의 세계화는 이제 일반화된 유동성 위기를 부활시켰다. 러시아 파산 후 몇 주일간이 그 생생한 사례다. 그 기간은 국제 유동성의 궁극적인 수호자로서 연방준비은행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한 시기였다. 하지만 IMF의 무능력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수동성은 여전히 걱정스럽다. 세계 통화가 단일화하지 않는 한, 어느 한 국가의 수준에서 채택된 ‘건설적 모호함’이라는 원리로 제도적인 전환을 꾀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어떤 제도도 국제적인 최종 대부자의 권위를 획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협력망의 형태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교훈은, 유동성 위기의 전조는 거시경제적인 변수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의 깊고 정보가 풍부한, 특히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는 부채, 역외 부채, 관련한 정보에 능통한 감독자들과 적극적인 시장 중재자들만이 그런 징후들을 탐지해낼 수 있다. 즉 관련 국가의 중앙은행이 바로 국제적 최종대부자의 원거리 안테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효율적인 감시수단과 강제수단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금융자유화를 장려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만약 그럴 경우에는, 그 나라의 중앙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과 바젤위원회(국제결제은행 산하에 구성된 위원회로서 국제외환 안정을 목표로 그에 관련된 협정을 마련한다 ―역주)의 회원이어야 한다. 국제적 최종 대부자의 중추신경은 워싱턴이 아니라 바젤에 있다.

둘째 교훈은, 최종 대부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임박한 위기가 감지될 때 긴급하게 유동성 출자를 하도록 은행들을 끌어들이는 일이라는 점이다. 국제적 수준에서는 중앙은행들의 공동 권한에 달려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들의 공동 권한에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협력망이다.

만약 세계은행이 대출 한도선의 보증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채무국 중앙은행과 국제 채권은행 간에 결론을 내리도록 하며, 유동 가능한 중기적 대출 한도선의 형태로 부분적으로 형식화될 수 있다. 최종대부자 이론에서 이런 영역은 IMF의 경험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IMF는 지역 은행들이 제대로 감독받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거나 원하지도 않으면서, 채무국 정부에게 모든 제약을 부담시킨다.

셋째 교훈은, 환율체제에 대한 감시다. 미리 확정된 제도적인 규칙이 없이 신축성과 제한적 휘발성 사이에 절충을 꾀하면 유동성 위기도 그 정도가 약화될 것이다. 이 부분은 IMF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가진 분야다. 또한 브레턴 우즈(1944년 미국 브레턴 우즈에서 국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시정하여 국제무역의 확대 및 외환 안정,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하여 체결한 국제통화체제. 이에 근거해 IMF와 국제부흥개발은행이 창설됐으며, 1971년 미국의 달러화 금태환 정지조치로 와해됐다─역주)의 정신을 되찾는 것도 바로 이 분야다. 중앙은행 클럽(국제결제은행)이 최종 대부자 구실을 하는 구조 속에서 IMF는 자기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끊임없이 계속되는 공공자금 투입의 기록 갱신은 마침내 멈추게 될 것이다.

2/3
목록 닫기

미국 주도 국제금융 시스템의 위기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