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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레이더|민주국민당의 경쟁력

영도다리에 목숨 건 도박, 민심에 달렸다

  • 정연욱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영도다리에 목숨 건 도박, 민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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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민국당으로서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부정적 이미지를 스스로 극복하는 길만이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창당의 터널을 거치면서 암초가 곳곳에서 돌출했다.

우선 ‘각인각색(各人各色)’의 인적 구성에서 비롯된 불안정성.

계파간 다국적 연합군으로 짜인 ‘모자이크 정당’으로 출범한 민국당은 보수와 진보라는 넓은 대역을 아우르는 통합적 리더십 구축이 절실하다. 실제로 이수성 상임고문이 그동안 함께 영남권 신당을 모색해온 정호용(鄭鎬溶) 전의원의 입당을 강력히 추진했으나 장기표 최고위원 등이 5공 핵심세력은 안된다며 반발해 결국 무산됐다.

또한 신당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 ‘당지도부 전원 지역구 출마’를 방침으로 정했지만 조순 대표최고위원은 전국 선거지휘라는 명목 아래 전국구행으로 방향을 돌렸다.

막판에 고향인 경북 칠곡 출마를 선언한 이수성고문도 한때 지역구 불출마 의사를 밝히는 등 오락가락 행보로 당 안팎에서 반발을 불렀다.



총선 전략 차원에서 촉발된 영남권 대권후보 가시화 문제에 대해서도 조순대표측은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제동을 걸고 있는 상태다.

당 정체성도 논란이다.

조대표는 “민국당은 1인보스체제 사당(私黨)정치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정치세력 결집체”라고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제3의 길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빛좋은 개살구’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당의 분명한 이념과 노선이 있느냐는 것이다.

창당대회를 통해 당의 정강 정책에 명시해야 할 권력구조문제는 아예 빠져버렸다. 과연 민국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민감한 현안을 결정할 때 한 목소리로 의견을 모을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당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혼란을 지적한 대목이다.

아직 타 정당과 뚜렷이 다른 정책이나 공약을 개발할 전문인력도 갖추지 못한 것은 당지도부도 시인한다.

정체성 혼란은 총선용 급조정당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이에 대해 민국당 관계자는 “물론 준비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상황에서 다른 정당도 제대로 된 이념이나 노선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민국당이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반DJ 반이회창’이라는 민국당의 주적 개념 정도 아니냐는 농담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권 분열 책임론도 쟁점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민국당을 ‘제2의 이인제 정당’이라고 규정, 야권 분열 책임을 민국당에 돌리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정권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유일 야당인 한나라당에 힘을 몰아줘야 한다고 유권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총재는 잇따른 지구당 개편대회 연설을 통해 “민국당은 총선이 끝나면 사라질 포말정당 사이비정당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민국당 지도부는 “누가 누구에게 침을 뱉느냐”고 흥분했다. 야권 분열은 공천 파동 장본인인 이총재 책임이라는 것.

신상우최고위원은 “자신의 대권욕에 사로잡혀 당을 사당화한 장본인이 누구냐. 70석만 확보하면 대권 가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에게 껄끄러운 중진 목을 친 당사자가 야권 분열 장본인 아닌가”라고 이총재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전국 정당을 내세우고 있지만 민국당이 사활을 건 전선은 뭐니뭐니해도 ‘낙동강전선’이다.

한나라당과 일대 격전을 벌이고 있는 낙동강 전선의 성패는 민국당이 내세운 영남 정권 재창출론이 이 지역 유권자 표심(票心)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뒤집어보면 이총재 대권불가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김윤환최고위원이 “영남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거듭 역설하고 김광일최고위원이 “이번 선거에 지면 (민국당 지도부는) 모두 영도다리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것도 결국은 영남표 결집을 호소하는 전술적 대응논리라고 할 수 있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역대 정권의 향배는 영남표 결집 여부에서 결정된 것 아닌가. 97년 대선 때도 이회창씨는 이인제후보의 영남권 공략을 제대로 막지 못해 무너진 것이며 이회창씨도 영남권 표를 다잡지 못하면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난망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결국 이번 공천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남권의 명실상부한 맹주로 자리매김하려 했던 이총재의 승부수는 민국당 창당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는 게 민국당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총재는 97년 대선패배라는 악몽을 잊기 위해 영남권 표이탈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야권 분열은 김대중정권의 연장만 도울 뿐이라는 반박 논리로 유일야당인 한나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달라는 논리다.

영남정권 재창출론은 민국당이 총선 핫이슈로 제기하는 대선후보 조기 가시화로 연결된다.

장기표 최고위원이 “우리 나라 정당은 총선에서 대통령후보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로 심판받게 된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권 가능성이 없는 후보가 이끄는 정당에 누가 투표하겠는가”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총재측이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도 여기다. 영남권 기반 없이는 안정적으로 정권을 탈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YS의 ‘안방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민국당 창당으로 영남권 전장이 뜨거워지자 여전히 영남권, 특히 부산-경남권에 영향력이 있는 김심(金心·YS의 의중)을 얻으려는 민국당과 한나라당의 구애(求愛)전쟁 또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

지난해 민주산악회 재건을 둘러싸고 YS와 격전을 벌여 기선제압에 성공한 이총재가 돌연 상도동을 방문, YS에게 정치 중립을 요청한 것도 영남권 풍향 이상을 감지하고 긴급처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YS 움직임의 파장

YS의 침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곳곳에서 그의 뜻은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민국당에 기우는 징후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당초 무지개연합 등 개혁신당을 추진했던 홍사덕(洪思德) 의원이 YS에게 SOS를 보냈을 때는 “야권분열 소지가 있으니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홍의원을 만류했으나 민국당 창당 과정에는 그러한 비판이 없었다는 것이 첫째 사례다.

신당 창당 초기에 YS는 창당 작업을 주도중인 민주계 중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단단히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YS는 상도동을 찾은 민국당 인사들에게 야당총재시절 당내 비주류인사를 상당히 배려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이총재의 약점인 포용력 부재를 간접적으로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YS의 공식적인 반응은 “내방객 말을 듣기만 했을 뿐 신당이나 한나라당에 대한 어떤 형태의 지지 표명도 없다”는 것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김심을 둘러싸고 서로 ‘제논에 물대기’식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총선 정국에 YS의 움직임은 적지않은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정국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은 당연한 것”이라며 정치 재개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도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계산된 수순으로 보인다.

민국당의 성패는 총선 이후 정계개편의 향배와도 직결돼 있어 관심을 끈다. 총선 결과 민국당이 돌풍을 일으켜 교섭단체(의석수 20석이상) 하한선을 훨씬 뛰어넘는다면 자연스럽게 정계 개편에 중심축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럴 경우 민국당 내부 문제점도 하나둘씩 드러날 공산이 크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중진들의 각개약진이 본격화할 것이며 내각제를 선호하는 일부 중진이 타 정파와 제휴할 가능성도 열려 있어 당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에서 총선 후 정계개편이라는 뇌관은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다. 공천 과정을 통해 사실상 반이회창 노선을 분명히 한 김덕룡(金德龍)부총재를 포함한 한나라당내 비주류 진영 반발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민국당 한 관계자는 삼국지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동탁을 타도하기 위해 다양한 세력이 연합했지만 동탁을 힘으로 물리치지 못했고 동탁은 결국 여포의 반란 등 내분 때문에 무너진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민국당 바람은 ‘이회창불가론’을 확산하는 것이고 그 바람이 한나라당 내부 진영을 교란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

손학규(孫鶴圭) 전의원이 공개적으로 이총재의 당운영이 독선적이라고 비난하며 총선전 야권 대통합을 주장한 것이나 ‘정보통’인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취중 발언을 빌려 공개 석상에서 “이회창이를 몰아내야 해”라고 말한 것도 한나라당내 물밑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의 패배가 기정사실이 될 경우 비주류 진영 논리는 더욱 세를 얻을 것이 뻔하다. 이총재 인책론과 이총재 집권가능성이 어려워졌다는 불가론 등이 주요 명분이 될 것이다.

이처럼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영남권 한나라당 공천자가 당선 이후에도 공천권자인 이총재를 묵묵히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 내 동요가 확산될수록 민국당은 이수성고문과 박찬종 전의원 등 영남권 출신 대선 후보군을 내세워 이회창불가론을 부채질할 것이 예상된다. 결국 이총재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은 분당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며 정치권 전체는 이합집산이라는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민국당이 어느 정도 영남권과 다른 지역에서 만족할 만한 득표를 했을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다. 만약 민국당이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거나 중진들이 대거 낙선하면서 낙동강전선에서 패퇴한다면 이총재는 반사적으로 당 장악력을 높여나갈 수 있게 된다.

한편 이 과정에 양당이 영남권에서 일방적 유·불리 상태가 아닌 ‘균형점’을 이룬다면 정계개편은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민주당과 자민련까지 합친 ‘그랜드 디자인’을 그릴 수 있으며 이는 내각제 개헌 논의를 정치권 전체로 확산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계개편의 또다른 축은 상도동의 움직임이 될 것이다. 상도동 진영도 정국 전체의 불안정성이 걷히지 않는 한 즉각적인 의견 표명은 자제하리라는 게 유력한 관측이다.

반DJ전선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을 뿐 섣불리 한나라당과 민국당의 한쪽 편을 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쪽 손을 들어줄 경우 되돌아올 야권 분열 책임론도 상도동의 부담이라는 계산이다.

총선 결과 민국당 약진이 여의치 않고 유력한 영남권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정권재창출 가능성이 불투명해진다면 상도동 진영도 내각제를 통한 세력 절충을 시도할 공산이 크다.

한동안 탄력이 붙던 민국당 바람은 잠시 주춤한 듯하다.

박찬종전의원 투입을 보고 민국당 합류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정의화(鄭義和·부산 중-동) 의원이 끝내 한나라당잔류를 선언하면서 상승기세가 꺾인 느낌이다. 일부 지역에서 민국당 공천 반납사태가 속출하는 등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는 것도 당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당관계자들은 “아직 본격적인 백병전이 벌어지지 않았다. 선거일 열흘 전쯤 돼야 윤곽이 드러나지 않겠느냐”며 자위했다. 물론 민국당이 주 공격무대로 잡은 영남권도 절반 이상 유권자가 분명한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결국 민국당의 정치실험이 성공할지는 전적으로 유권자 손 끝에 달려 있는 셈이다. 유권자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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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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