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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 나는 이렇게 투표하겠다

  • 설호정 주부·서울 강동구

4·13총선 나는 이렇게 투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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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총선에서 어떤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까?’ 처음부터 기권표가 아닌 바에야 4·13총선을 앞두고 누구나 한번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4년을 좌우할 한 번의 선택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시민단체가 벌이는 낙천·낙선운동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가운데, 되살아난 지역감정과 색깔론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20대부터 60대까지 유권자 7인에게 ‘나의 투표 원칙’을 들어보았다.》
[ 그래도 버릴 수 없는 너절한 잣대 ]

설호정 주부·서울 강동구

기권해버리면 간단하다. 깨끗한 한 표 좋아하네. 내 손에 오물 안 묻히는 길은 기권밖에 없다. 현미경은커녕 확대경도 필요없다. 그 행적을 잠깐 일별만 해도 “당신들을 위해 내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투표소에 가? 어림도 없지” 하는 생각이 북받친다.

새로 들어왔다는 사람? 물론 우리 동네는 그나마도 없는 듯하지만, 딴 동네에 나선다는 물 좋은 ‘삼팔륙’이라 하더라도 존경심은커녕 호감조차 가지 않는 대상이 수두룩하다.

후보를 재는 다섯 가지 잣대



이것 말고도 기권해야 할 만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죽을 병이 들어 자리보전할 처지가 아니면 기권은 안 할 생각이다. 적어도 ‘똥친 막대기’ 또 그런 ‘인재’들이 뭉쳐서 된 정당을 백 그라운드로 하고 나선 후보는 떨어뜨려야겠기 때문이다. 요컨대 누가, 어떤 집단이 좋아서 찍는 것이 아니라 되면 안 되는 후보에 순위를 매겨 꼴찌 한 후보에게 하는 수 없이 한 표 던져주겠다는 말이다.

참담한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현실의 주권 행사라는 것은 실체가 이것이 아닌가 한다.

거명하면 지킬 명예도 없는 개인 또는 집단으로부터 가소로운 명예훼손 송사를 당할 수 있으므로 참고, 내 평점 기준을 털어놓자면 이렇다.

첫째,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거나 협력한 사람 또는 그런 이들의 정당. 그중에는 이미 저승에서 심판받는 사람이 많겠으나, 아직도 잔명을 보전하고 전혀 회개함이 없이 줄기차게 정치판의 단물에 매달려 있는 박씨의 적자 또는 서자를 자임하는 인물이나 집단.

또 같은 맥락에서, 자기 선친의 과오를 반성적으로 통찰해 보았다는 소식 없는 박씨의 혈연상의 적통 한 사람을 정치적 수지 타산에 영합하여 느닷없이 ‘정계 거물’로 떠받들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

둘째, 박씨의 ‘늠름한’ 과단성을 적극적으로 계승해 발전시킨 전두환·노태우의 잔혹한 군사독재에 출연했던 주연, 조연 또는 그 스태프로 전비(前非)를 뉘우칠 생각이 없어 보이거나, 이른바 상황론을 늘어놓고 있는 가증스러운 인물 또는 그이들이 주축이 된 집단.

셋째, 돈 뿌리고 당선되어, 임기 동안 그 본전 챙기느라고 오늘은 부자한테 빌붙고 내일은 부자 약점 잡아 협박하다가 들통났거나, 천만다행으로 교묘하게 망신은 면했으되 그런 정황 증거가 분명해 보이는 인물이나 그런 인물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 집단.

넷째, 악의적인 차별로 수십 년 피해 본 지역이 명명백백 존재하니 지역차별이라 해야 옳건만 가해자인 주제에 사과 한마디 없이 적반하장으로 지역감정, 거기다 한 수 더 떠 지역정서 어쩌고 하며 원인 규명을 차단하고 국토를 동서로 갈라서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개인 또는 집단. 또 그런 통탄할 작태로부터 ‘소외’되면 안된다고 선량하고 가치 중립적인 자기 고향 사람들 부추겨 왜곡된 애향심 ‘창출’해내 지역 맹주 노릇 하는 인물 또는 집단.

다섯째,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대상자 목록에 올라 있는 인물 또는 비율적으로 그런 인물 가장 많이 공천한 집단.

사실 우리 지역구의 경우에 이쯤에서 ‘쓰레기’는 대강 ‘분류’됐지만, 정작 ‘결선’에 남아 있는 기표 대상의 ‘우열’을 가리기는 아직 난감한 지경이다. 기권의 유혹이 배암의 혀처럼 나를 꾄다는 말이다. 그래도 찍지 않으면 꼭 떨어져야 할 인물 또는 정당에 유리할 터이니 이번에는 더 좀 구체적으로 따져보아야 하겠다.

독재자의 하수인으로 반독재 운동을 고문으로 분쇄한 ‘공적’이 입증되는 인물을 두둔해 은닉하며 매끄러운 세 치 혀끝으로 음습한 ‘음모론’을 펼치고 ‘정치 탄압’ 어쩌고 하는 데에 써먹는 무리들과 한패인 인물.

이쯤에 내가 한 표를 던져 주어야 할 대상은 명백해지는 듯하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동네 후보에 대한,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평점 기준은 이렇다는 말이다. 드물게 흔쾌히 한 표 줄 수 있는 지역의 주민은 행운이겠으나, 아무리 재 보아도 어느 한 사람 찍을 데가 없는 지역이 적잖을 줄로 믿는다. 더구나 이번 선거가 더 그런 듯이 보인다. 그런 분들에게 행여나 나의 이런 상대 평가 기준이 참고가 될 수 있을까?

그 밖에도 나에게는 잣대가 몇 개 더 있기는 하다.

우선 한 재야인사가 발을 (잘못) 들여놓음으로써 ‘완공된’ 정당, 곧 ‘한국 현대 정치사 박물관’이라고나 할 만한 곳의 사람은 피한다. 나는 중앙청이나 허리 잘린 성수대교가 그대로 보존되었더라면 후손에게 반면 교사 노릇을 해줄 수 있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 정당도 비슷한 것 아닐까? 말하자면 그 구성원의 존재 가치는 ‘움직임 없는 진열품’으로서 소임을 다할 때나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아무려면 ‘박제’가 되어야 할 대상에게 표를 줄 수는 없지.

그리고 요 몇 해 전에 자기가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깨닫지 못한 듯한, 무뇌증(無腦症)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는 사람의 집 문턱을 넘나들며 그 입에서 무슨 견강부회할 말 한마디 나와 주기를 애간장 태우며 기다리는 개인이나 집단도 곤란하다.

‘최악’을 면해 보자고 이런 너절한 잣대를 늘어놓자니 서글프다. 그러나 이나마도 안 하면 ‘최악’이 기뻐할 터이니 하는 수 없다. 그러나 저러나 ‘최상’을 가려내려고 번민하는 날도 이 땅에 오기는 오려나?

[ 나의 ‘차악(次惡) 선택 방법론’은 근시안 되기 ]

노염화 문화평론가

아 직까지 총선이라는 지극히 속세적이고 순발력 넘치는 주제는 내게 현실감을 주진 못한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자마자 이 땅을 떠나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먼 서역(西域)에서 4·13 총선이라는 주제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여행중에 만난 한 한국 여행자 덕분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도 안 된 그가 전한 최근 고국의 핫이슈는 ‘국회의원 낙천 운동’이었다. 참신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총선시민연대의 다소 수세적인 실상을 보고 그 신선함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귀여운(?)’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땅에 사는 이상 어쨌든 이번 총선에 대한 정보와 지식들이 내 머리에 쌓이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정치 혐오는 ‘오래된 미래’다. 이에 반해 놀라운 사실은 우리 국민의 높은 투표율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아마 최소한 50%가 넘는 투표율은 문제없을 듯하다(지난 15대 총선의 투표율이 사상 최저였음에도 63.9%였다). 이는 평소엔 지독한 정치 혐오를 드러내는 우리 국민들도 정치권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혹은 순진한) 증거다. 또 국민의 80% 이상이 ‘낙선운동’을 지지한다는 것도 희망의 잔존을 말해준다. 정치혐오와 묘한 짝패를 이루고 있는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기원들, 과연 이 소중한 기원을 지금의 ‘저런’ 정치권이 떠안을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이…. 정치권에 대해 터져 나오는 욕설의 수사들을 잠시 멈추어야 할 때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섣부른 냉소는 가장 쉬운 삶의 방식이다. 제대로 된 절망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선거판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국민 80% 낙선운동 지지는 희망의 잔존

총선의 시작은 유권자에게 차악(次惡)의 향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뭘 보고 뽑아야 하나 혹은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나보다는 사실 어떤 후보가 그래도 좀 덜 나쁘냐가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지 않은가. 어떤 정당이 좀 덜 나쁠까. 정당의 색깔? 가뜩이나 색이 불분명한 정당들인 건 다 안다. 게다가 선거 때만 되면 ‘레드 바이러스’가 옮을까 두려워 모두 착한 보수정당이 되는데 색깔이 기준이 될 리 만무하다.

정당이 안 되면 다음 차례는 후보의 자질론으로 넘어간다. 요즘 시대에 걸맞은 후보의 자질은 전문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정치판이란 곳이 초강력 믹서 같은 힘이 숨어 있는지 어떤 경력을 가진 누가 들어가도 대부분 느끼하고 당리당략적 ‘조폭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전문성은 선거용 간판이지 실제 국정운영에 큰 힘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준일까. 아시다시피, 정책선거를 부르짖어도 결국 선거 막판이 되면 여당, 야당, 지역개발, 고향 등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집권당이면 의당 안정을 부르짖고, 야당이면 견제의 힘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한다. 이 두 당의 위치가 바뀌어도 상황이 똑같다는 것은 이미 많은 보궐선거에서 보았다. 여당 후보가 내뱉는 지역 발전론은 이기적이다. 제로섬 게임인 예산 분배에서 권력을 남용하겠다는 말일 뿐이다. 또한 합리성의 눈을 가리는 고향이니 터줏대감이니 하는 말도 우습다.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서는 차라리 고향 지역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드는 게 어떨까. 지역 사정을 잘 안다는 말은 한 나라의 국회의원을 뽑는 데 최우선 조건이 아니다. 구의원이나 시의원이면 몰라도.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내가 사는 곳의 지역구 명칭은 서울 ‘성북 갑’이다. 이번 선거의 민주당 후보는 유재건 현 국회의원, 한나라당은 386세대 정태근, 자민련은 아직 후보 미정(혹은 불출마). 그리고 아는 이가 별로 없겠지만 이번에 서울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세울 예정인 ‘청년진보당’의 정회진(28·여)이라는 사람이 출마한다고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시대를 거슬러 여전한 좌파 모험주의에 지지를 표하고 싶지 않고, 80년대를 팔아 자신들을 탄압한 세력의 모태인 정당에 몸을 던지는 상한 고기인 삼팔육(肉)에 거는 기대는 정말 하나도 없다. 현역 국회의원이지만 여전히 TV 토론 사회자 이미지가 강할 만큼 의정활동에 약했던 사람도 시덥잖긴 마찬가지다.

마땅한 후보 없어도 기권은 않겠다

그래서 기권해 버리고 휴일을 즐기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에 대한 게으른 거부를 하고 싶진 않다. 낙선운동처럼 선거에 대한 거부운동, 집단적 보이콧으로 불참이 세력화되기 전엔 나도 누군가 차악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차악 선택 방법론’은 부분만 보는 것이다. 원시안(遠視眼)으로는 후보를 판가름할 수 없을 때 근시안(近視眼)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를 보자면, 내가 제일 관심 있는 영역인 문화정책과 사회적 소수자 인권에 관련된 정책을 그래도 가장 덜 황당하게, 덜 비현실적으로 내놓는 후보, 정당을 선택하려 한다. 그래서 아직은 후보를 결정할 수 없다. 선거용 홈페이지들이 구축되면 꼼꼼히 살피겠다.

이 근시안 방식이 궁극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씁쓸한 감을 지울 순 없다. 하지만 나를 설득하는 가장 나은 방법인 걸 어떻게 하나. 언젠가 원시안과 근시안을 다 작동시켜서 후보를 저울질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선거가 즐겁게 느껴질 날 역시 순진한 맘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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