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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민간출신 공무원들의 체험적 공무원론

“자율성, 인센티브 없이는 비효율, 무사안일 못깬다”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자율성, 인센티브 없이는 비효율, 무사안일 못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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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실장은 “처음엔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자꾸 일을 벌이느냐’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차차 생각이 변해갔다”고 털어놨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고 봅니다. 내게는 분명한 목표가 부여됐고 나는 그것에 얼마나 도달했느냐 하는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습니다. ‘대과(大過)는 없었다’는 것으로 만족할 바에야 우리 같은 전문가가 공무원으로 올 필요가 없죠. 하지만 만일 내가 안정된 직업공무원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면 생각이 달랐을 겁니다. 내 일이 불을 지르는 것이라면 그들에겐 마찰없이 일을 진행하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뤄야겠죠.”

서울 모 구청의 공보과에서는 구정(區政) 신문을 발간한다. 취재와 송고, 인쇄를 거쳐 초판을 짤 때까지 사흘이 걸리는데, 초판 제작 후 이를 회람시켜 결제받는 데만 꼬박 사흘이 더 소요된다. 공보과가 만일의 경우 책임을 면하기 위해 기사 하나하나마다 관련 과의 결재를 받도록 하기 때문이다.

신문제작에 관여하는 한 전문직 공무원은 “어차피 관련 과에서 받은 자료로 신문을 만드는 거니 뒤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자료가 잘못됐다면 담당 과에서 책임을 지고, 자료에 잘못이 없는데 오보가 나갔다면 공보과에서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확실하게 회피하려다 보니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며 혀를 찼다.

지난해 이 구청 총무과에서는 “아르바이트 대학생 채용공고를 ‘보일 듯 말 듯하게’ 신문에 내달라”고 주문했다. 공고를 크게 내자니 학생들이 많이 몰려 총무과의 일거리가 늘 것 같고, 그렇다고 이 구청에서만 채용공고를 안 낼 수도 없으니 나중에 ‘한 줄이라도 냈다’고 생색낼 수 있는 ‘면피용’ 공고를 부탁했던 것.



박개성 회계사가 기획예산처 팀장으로 갔을 때 보조직원이 없어 애를 먹었다. 서류 입력 업무가 많은데다, ‘MS워드’와 ‘파워포인트’밖에 써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글’로 전혀 다른 양식의 공문을 작성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빠듯한 일정에 서류 작성법을 익히느라 몇달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담당공무원에게 여직원을 뽑아달라고 했더니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부조직 경영진단을 맡겨놓고 팀장에게 여직원 한 명 붙여줄 예산이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말이 안 통하겠다 싶어서 자신이 봉급을 줄 작정으로 여직원을 뽑았다.

“당장 ‘안 된다고 했는데 왜 뽑았느냐’고 하기에 ‘내 돈으로 뽑았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죠. 그랬더니 그때 와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보안이 문제다. 제대로 신원조회나 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 ‘우리는 팀제로 일한다. 팀에서 하는 일은 팀장이 최종 책임을 진다. 그러니 보안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그러고 나니 처음부터 분위기가 좀 서먹서먹해지겠다 싶어 그날 저녁식사를 그 담당자와 함께 했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나말고도 다른 팀장 두 명이 보조직원이 없어 고생하고 있다’고 했죠. 그랬더니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색을 내면서 며칠 후 보조직원 두 사람을 뽑아줬어요. 결국 자기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었던 거죠. 처음 한두 달은 이런 식으로 안에서 승강이하느라 다 흘려보낸 것 같아요.”

직무분석 서둘러야

중앙인사위원회 박기준(35) 직무분석과장은 이렇듯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시스템’의 원인을 공무원 직무분석의 부재에서 찾는다. 공인회계사인 박과장은 회계법인에서 기업 경영전략 컨설팅을 주로 담당하다 지난해 8월 중앙인사위의 개방형 임용 공개채용에 응시, 4급 계약직으로 공직에 몸을 담았다.

“우리의 공무원 조직은 계급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사도 사람 중심으로 행해집니다. 예컨대 ‘4급 몇 명, 5급 몇 명’ 하는 식으로 사람부터 뽑아놓고, 어느 자리가 비면 그 급의 인력풀에서 사람을 끌어와 끼워넣는 거죠. 직무 중심의 인사와는 정반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요. 과학적인 방법으로 직무를 측정하고 그 직무가 조직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따져보는 일을 서둘러야 합니다.”

특정 보직에 대한 구체적인 직무 내용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중앙인사위의 경우를 보자. ‘중앙인사위원회직제’는 사무처장의 직무를 ‘위원장의 명을 받아 사무처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무분석과장의 직무는 ‘개방형 임용제 및 그 운영, 직위분류제도 도입에 관한 사항, 공무원 직급체계의 개편’이다. 직무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전혀 일을 안 할 수도 있다. 어차피 1년 안에 평가가 가능한 직무도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일을 안 해야 감사에 안 걸린다’는 무사안일주의가 싹튼다.

공무원 직무분석이 정착된 외국의 경우 대개 1인당 7개 안팎의 고유 직무를 부여한다고 한다. 그 아래에 다시 구체적인 세부 목표를 설정하고 해마다 얼마 만한 업무목표치를 세울 것인지를 결정한다. 중앙인사위 직무분석과장의 경우 위에서 보듯 세 가지의 직무가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2명의 과원들이 이를 함께 처리하므로 1인당 0.25개의 직무를 맡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행정업무의 특성상 그 범위를 자로 재듯 나누고 업무 하중과 목표치를 계량화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직무 분석을 위해서는 먼저 대상 부처로부터 보직별 업무내용 및 업무량과 관련된 기초자료를 제출받아 근거로 삼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확한 정보가 입력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자체 업무량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 이를 바탕으로 인력을 재배치하려 했던 한 지자체의 경우 기초 데이터베이스 수집 과정에 부서마다 경쟁적으로 업무량을 부풀리는 바람에 신뢰도가 크게 훼손됐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박기준 과장은 “직무분석은 인푸트가 아니라 아웃푸트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직무분석의 근거도 아웃푸트 위주로 요구하면 그런 위험을 덜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그저 ‘한강다리 22개의 유지 및 보수를 책임진다’고 막연하게 직무를 규정할 게 아니라 ‘1년 안에 한 개의 한강다리에라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진다’는 식으로 아웃푸트 부분을 강조하면 감당할 수 있는 업무범위를 넘어선 ‘근거’를 내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장 평균 재임기간 11개월

직무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인사는 필연적으로 잦은 보직 이동을 초래, 공직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부서 업무의 연속성을 저해한다.

중앙인사위가 지난해 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부 부처 국장급의 평균 재임기간은 11개월 21일, 과장급은 13개월 23일에 불과했다. 산업자원부의 경우 국장급 재임기간이 6개월 안팎이었다. 한 보직에 기껏해야 1년 정도 머무르다 보니 첫 반 년은 새 업무를 파악하면서, 나머지 반 년은 다음 보직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면서 날려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는 대개 3년 계약(실적평가 및 연봉조정은 1년 단위)을 맺고 들어오는 민간 계약직들이 업무 전문성 제고 측면에서 오히려 일반 공무원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학기술부 같은 부처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부장으로 근무하다 96년 과기부에 특채된 전의진(54) 과학기술정책실장은 “원자력 우주개발 생물 환경 분야 등의 국제회의에 참가해 말발이 서려면 한 분야에서 적어도 4∼5년은 체계적으로 일해봐야 하는데, 우리의 인사 관행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아쉬워한다.

“국장급만 봐도 그래요. 과기부에 국장이 모두 아홉 명인데, 국장을 대상으로 하는 공무원 교육이 연 2회 있으므로 두 명의 인사 요인이 생깁니다. 또한 8개 해외과학관의 관장 임기가 3년인데, 이 중 매년 한두 명이 임기를 끝내고 국장급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또 인사가 있습니다. 여기에다 장·차관이 바뀌면 또 국장급 인사가 없을 수 없으니 한 사람이 한 파트에서 4∼5년 근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요.

한미 미사일회담 같은 데 가보세요. 두 나라 대표들이 나란히 마주보고 앉았는데, 책상 위엔 자료 하나 놓여 있지 않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만 회의를 진행합니다. 영어 구사능력은 기본이고,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꼼짝없이 바보 취급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경험이 짧은 공무원들은 국제회의에 갈 때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을 동반합니다. 과기부에 박사들은 수두룩하지만 보직이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능력을 키울 기회가 없어요. 중앙 부처라 나라 안팎에서 유용한 자료와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데 이걸 제대로 소화할 인력이 모자랍니다.”

전실장은 그 대안의 하나로 현재 실·국장급 고위 보직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개방형 임용제를 4∼5급 보직 중심으로 개편, 젊은 인재들을 일찌감치 영입해 전문 분야에서 수년간 커리어를 쌓게 하자고 제안했다.

머리는 없고 손발만 있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업무시간의 30%를 각종 보고서 작성에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중 18%는 구두 보고가 가능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민간 출신들은 이런 업무여건에 특히 민감했다. 배현기 전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 사무관은 “한 프로젝트를 일관되게 추진하기를 바랐는데, 비슷한 기안을 몇차례나 반복하면서 자료 취합과 보고를 거듭하다 보니 루틴한 행정업무에 허덕이느라 정작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중앙 부처 인력들이 고유의 정책수립 업무를 제쳐놓고 집행기능에 집중하다 보니 ‘머리’는 간 데 없고 손발만 비대해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일은 만드는 것보다 챙기는 것이 더 힘들었다. 입안→집행→피드백 과정에서 단계별로 수많은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고 이와 관련된 언론 인터뷰, 국회 답변 자료 등을 마련하느라 품을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배씨는 “정부개혁실이 태스크포스의 성격을 띠었던 만큼 일단 일을 터뜨리면 뒤처리는 전담부서에 맡기고 우리는 서둘러 다른 일로 넘어가는 게 바람직했지만, 이 경우 행정파트에서 ‘왜 우리가 벌이지도 않은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느냐’며 반발할 게 뻔했다”고 한다. 일을 터뜨리면 이렇듯 안고 있느라 곤욕을 치렀기 때문에 나중에는 일 만드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게 됐다는 것.

김한주 변호사는 “공무원 사회에선 한쪽은 일이 넘쳐 며칠씩 밤을 새우는 반면 다른 쪽은 한가하게 소일하고 있는데도 일을 나눠 해결하려는 시도가 없었다”며 부처와 부처 간은 물론, 같은 부처 안에서도 국과 국, 과와 과 사이 협조체제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박진 팀장은 “중앙 정책부서의 잡무를 줄이고, 민간 전문직은 가급적 단순 집행업무가 집중된 곳보다는 정책 지향적인 곳에 배치해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전문직들이 ‘내 손에는 흙을 묻히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면 불필요한 갈등과 비능률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러 민간 전문직들이 호소하는 또다른 어려움이 바로 이 ‘불필요한 갈등’이었다. 이들은 “민간 출신이 일을 잘 해내면 기존 공무원들이 지금껏 일을 잘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우리를 경계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민간 출신이 정원 외 스태프가 아니라 정식 보직으로 들어올 경우 공무원의 자리 하나가 줄기 때문에 ‘박힌 돌 빼내려고 굴러온 돌’ 쯤으로 여겨져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 1년 남짓 중앙 부처에서 계약직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B씨의 말이다.

“행여 구설에 오를까봐 민원인들과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피치못해 두어 번 밥을 먹었을 때는 내가 밥값을 냈어요. 볼 일을 마치면 사무실 문 밖까지 나가서 깍듯이 배웅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가서 ‘중앙 부처에 가서 그런 대접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고 했대요. 그랬는데도 뒤에서 ‘민간에서 온 놈들이 공무원보다 더 권위적이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과거에 경제부처 공무원을 지낸 일부 민원인들이 현직 간부와의 친분을 들먹이며 엉뚱한 소리를 하기에 좀 쌀쌀맞게 대한 적은 있었어요. 이건 원칙의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밖에 나가 떠든 말을 듣고 간부가 우리에게 주의를 주더군요.”

물론 이것은 어느 한편만의 시각일 수도 있다. 공무원들도 민간 인력들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지금껏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해온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같은 지붕 아래 책상을 마주하고 일하다 보면 초기엔 별별 오해와 갈등이 빚어지는 게 당연하다. 길게 보면 그것은 융화의 과정에서 어차피 치러야 하는 ‘수업료’다.

‘유능하고 헌신적인 집단’

공무원사회를 체험한 외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공무원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많이 바로잡았다”고 털어놨다.

차동득 실장은 “우리 직업관료들의 능력과 생산성은 국내 최일류 수준”이라며 “일을 시킨 뒤 나오는 결과물을 보면 민간 연구소의 고급 인력에 하나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김한주 변호사도 “내가 만난 공무원들은 대부분 열악한 보수와 갖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이 대단히 높았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를 해야 될 상황이면 두 말 없이 이에 따랐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이런 면모는 외부 전문가들도 배울 만하다”고 치켜세웠다.

이때문인지 민간 인력들은 공직을 떠난 뒤에도 공무원사회와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김한주 변호사가 기획예산처 법률자문을 맡고 있고, 박개성 회계사가 공공부문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게 그 예.

다만 잘못된 제도와 관행, 부당한 정치적 입김 때문에 이런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이 갖는 아쉬움이었다. 침체된 공무원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무엇보다 자율성과 인센티브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임상’ 처방이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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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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