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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풍언과 LA의 DJ 인맥

  • 하태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조풍언과 LA의 DJ 인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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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회 부회장인 오봉균씨도 “조씨는 베일에 싸인 사람”이라며 “군 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많이 벌었고, 10여년 전부터 주류소매소 10여곳을 운영하면서 현금을 많이 굴렸다”고 했다. 현재 운영중인 가든스위트 호텔은 원래 중국인이 운영하다가 빚을 많이 진 호텔인데, 조씨가 싼값에 인수해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160㎝가 조금 넘는 작은 키에다 호리호리한 체구,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조씨는 1993년 자신의 호텔에서 열린 김대통령 초청행사 이후 김대통령 후원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적지 않은 기부금을 내놓기도 했다고 오씨는 전했다. 오씨는 또 “조씨는 아도니스 골프장을 싸게 구입했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으며 대통령이나 그 가족들과 가깝다고 과시하는 등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덧붙였다.

무기중개업 사정에 밝은 A씨는 조풍언씨와 대우 김우중 전회장의 연계고리에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A씨는 “조씨는 고교 선배인 김우중씨가 총수로 있다는 점을 이용, 대우정밀이 국방장비 생산과 무기거래에서 쌓은 노하우와 정보를 바탕으로 무기중개상으로 자리잡았다고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정보력의 우위와 국내 정·재계 인맥을 바탕으로 국제적 로비스트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김우중 전 회장이었다는 것.

김우중씨와의 ‘특별한’ 친분

A씨는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 전회장 구속이 임박했을 즈음 쟁쟁한 경기고 54회 동문들을 제치고 조씨가 청와대 구명로비 대상자로 거론되는 것을 보고 그의 위세가 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고도 했다.



오호근 위원장도 “조씨가 대우의 아도니스 골프장이나 대우통신 TDX사업부문 매각에 깊이 관여한 것은 김우중씨와 보통 이상의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김 전회장은 사업이 어려울 때 조씨와 상의했고, 미국에 드나들 때면 조풍언씨를 자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재미사업가는 조풍언씨로부터 당한 ‘황당한’ 경험을 들려줬다.

5년 전쯤 주 상원의원에 출마한 모 한국계 인사를 위한 후원행사가 가든스위트 호텔에서 열려 미국 전역에서 한인들이 모여 들었다. 그중에는 비행기로 7시간 거리의 뉴욕 등 멀리 동부지역까지 이동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중 한두 명이 옷을 갈아입을 요량으로 객실을 ‘잠시’ 이용했다는 것. 하지만 샤워를 한 것도 아니고 침대에 손을 댄 것도 아닌데 호텔측에서 숙박료를 청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씨와 10년 이상 교분이 있던 그가 항의했다는 것.

청년시절부터 조풍언씨를 지켜봤고, 오랜기간 동업자이기도 했던 기흥물산 유풍상 사장은 조씨를 가장 잘 아는 이 중 한 사람이다. 경기고 55회로 조씨의 1년 후배이기도 한 유사장은 조씨가 대학 시절 자신의 고모집에 입주과외를 하면서 가정교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다고 말했다.

유사장에 따르면 조씨는 고려대를 졸업한 후 1970년대 초반 청사진 사업과 무역업, 제조업을 하는 기흥물산을 창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흥물산은 1980년 부도를 냈고, 몇년후 조씨는 1983년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미국 LA와 오렌지 카운티 등에서 주류소매상과 부동산 사업 등으로 돈을 번 조씨는 1988년경 테니스 국가대표였던 이덕희씨와 두 번째 결혼을 해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유사장은 “기흥물산은 무기중개에 뛰어 들어 1990년까지 매년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흑자를 내며 고속 성장했지만 지금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교회 헌금도 ‘큰손’

유사장은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 조씨의 관계에 대해서도 “김 전회장이 종종 조씨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고 어려운 문제를 놓고 상담도 자주 한 것으로 안다”며 “대우가 경영난에 처하자 조씨는 ‘김우중씨의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좀 잘못된 것 같다’ ‘김회장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는 등의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유사장에 따르면 조씨는 본인이 미주 교포사회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괴로움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유씨는 “지난해 6월 조씨의 어머니 상가에 찾아온 사람들조차 조씨가 좀더 처신을 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조씨와 가장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던 KTE(미주 한국방송) 임춘훈 사장도 최근 조씨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주 한인사회의 정보에 밝아 ‘마당발’로 통하는 B씨는 “조씨의 경기고 1년 후배인 임씨는 평소 조씨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요즘은 서로 전화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앙숙이 됐다”고 말했다.

B씨는 또 “조씨는 자기가 알게 된 사람을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현 정부 출범 후에도 과거 인권문제연구소 등 대통령을 오랫동안 도운 사람들을 배제하고 혼자서만 대통령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경계를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춘훈씨는 현재 서울에 머무르고 있으나 10여 차례 기자의 통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조씨가 교민사회를 위해 기여한 일도 있다. 신도가 5000명이 넘어 LA 지역에서 가장 큰 한인교회로 꼽히는 토랜스 제일장로교회가 2년 전 교회 로비를 지을 때 이 교회 집사인 조씨 부부가 익명으로 40만 달러(약 4억8000여만원)를 선뜻 내놓은 것. 하지만 교회 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조씨가 돈을 기부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조씨 부부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LA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한 시민권자는 “조씨와 부인 이덕희씨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문을 닫을 뻔 했던 한인교회 서너 곳에 재정지원을 해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조씨의 부인 이덕희씨의 성균관대 동문이자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국 서부지회 회장 조남태씨도 “이씨는 성대 동문회 행사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고 학교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모임 참석 때마다 400∼500달러 씩 기부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3월10일부터 13일까지 수차에 걸쳐 조풍언씨의 부인 이덕희씨에게 조씨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해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씨는 “한달 내내 얼토당토 않은 소문과 괴담에 시달려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하다”며 “어떠한 악선전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을 것이며 지금 해명하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게 나나 남편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이씨는 “앞으로도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대응도 자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72년 10월 박정희(朴正熙) 정부의 유신선포 직후 1차 망명길에 올랐고, 1982년 12월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등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뒤 2차 망명길에 오르는 등 두 차례에 걸쳐 3년 남짓 미국에 머물렀던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여러 인맥이 있다. 그 중에서도 김대통령에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김대중후원회 등 두 개 단체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워싱턴 본부를 비롯해 LA,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 포틀랜드 등 미국 24개 지역에 3000여명의 회원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인권문제연구소의 모토는 ▲ 신군부 시절 국내인권 보호 ▲ 인종차별이 엄존하는 미국내 동포의 권익 향상 ▲ 민족의 화해와 교류증진 등 세 가지였다”며 “이외에도 김대중씨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한 활동이 이 단체가 그동안 벌인 활동의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김대통령 당선 후인 1998년 10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창립 15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잔치의 주인공인 재미동포 280여명이 한국에 입국했다. 이 자리에서 이희호 여사는 “여러분의 눈물 겨운 성원이 국민의 정부 출범이라는 결실을 거뒀다”며 “여러분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영웅’들”이라고 추켜 세웠다.

한국에 진출한 ‘재미동포 파워’

이선주 소장은 “김대통령이 당선되고 한국의 인권문제도 많이 해결된 상태지만 아직도 해외동포의 권익향상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며 “과거에는 호남인이 주축이 됐으나 최근에는 비호남권 중에도 인권문제연구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소장은 “인권문제연구소의 또 다른 기능은 동포사회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벌인 인재를 국내에 소개해 조국에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김대중 정부 출범 후 30여명의 인재가 ▲청와대, 정부 및 산하기관 ▲ 교육 ▲ 벤처사업 분야 등에 진출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대통령 망명 시절 미국에서 김대통령을 도운 공로가 인정돼 정부기관 등에 ‘특채’된 고위 관리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용겸(兪龍兼) 국민체육진흥공단 서울올림픽파크텔 사장, 노영철(盧永哲)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사장, 심기섭(沈基燮) 한국냉장 사장, 장남진(張南珍) 농업기반공사 감사, 모 공기업체 이사장 윤모씨, 전 청와대 경호실장 특보 정모씨, 모 골프장 사장 정모씨 등이 그 면면들.

1998년 6월, 3년 임기의 올림픽파크텔 사장에 취임한 유용겸씨는 23년 전 미국 LA에서 가방사업을 시작했고, 그 후 인권문제연구소에서 일한 경험을 인정받아 올림픽파크텔을 경영하게 됐다. 유사장은 “사장 임명을 통보받았을 때 이민 시절 호텔 관련 비즈니스를 한 경험을 살려 재정난에 빠진 호텔 경영의 혁신을 꾀하도록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유사장은 또 “한국에 진출할 당시 고국은 IMF 위기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고, 구조조정 바람으로 새 자리가 없는 상태였다”며 “내가 무능력한 ‘낙하산’이었다면 당장 노조에서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사장 취임 직전인 98년 2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던 올림픽파크텔은 지난해 10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경영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체육산업개발 노영철 사장은 김대중 정권 출범에 앞선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들어왔지만, 정부 산하단체로 진출한 것은 김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8년이었다. 노씨는 이 해에 국민체육진흥공단 사업본부장에 오르더니 1999년 한국체육산업개발 사장이 됐다. 미국 몬테레이파크 경찰국 무도사범, 캘리포니아주립대 한인학생회장, LA 한인회장, 한미청년회의소회장 등 다채로운 경력을 자랑하는 노씨의 이력서에도 ‘1986∼1990년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중앙이사’ 경력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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