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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샌드위치 세대’ 40대의 흔들림

중년의 벽, 좌절과 도약의 갈림길

  •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중년의 벽, 좌절과 도약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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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사례는 중년의 사랑을 해피엔드로 마무리지은 ‘아름다운’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은 이보다 험악하다. 결혼생활에서 흔들리는 중년의 실상은 우리나라 통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98년 우리나라 이혼은 97년에 비해 3만1000여 건이나 증가한 12만4000여 건으로 집계됐고, 40대 이상 중년 부부의 파경이 38%에 달했다. 특히 전체 이혼자의 남녀 및 연령별 분류에서 40대 중년 남자의 이혼율이 1위(1000명당 24.7명)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40대 이혼이 늘어난 것은 자녀 나이와도 관계가 깊다고 한다. 30대는 자녀 때문에 참고 사는 경우가 많지만 40대는 어느 정도 성장한 자녀가 이해해주리라 믿고 이혼을 결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만큼 40대가 위험한 시기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의 중년 이혼은 IMF 이후 경제 문제가 개입돼 남성이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 것도 한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리해고 바람에 실직한 박모씨(44)는 지난해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일을 아내(42)에게서 당했다. 아내는 걸핏하면 “외박한다”며 나가는가 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남자에게 “나 안 보고 싶어?” 하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했다. 결국 부부는 이혼하고 말았다.



‘한국 남성의 전화’ 상담소를 이끌고 있는 이옥 소장은 지난해 남성 1156명의 상담을 받았는데 이혼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40대 남성이 전체 상담자 중 44%(503명)로 1위를 기록했다고 밝힌다. 또 40대 남자의 이혼 고민 사유로는 실직 등의 경제적 무능력 및 그에 따른 아내의 가출이 35%로 압도적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아내의 외도와 부정 문제(25%), 성격 갈등(18%) 순이었다. 이옥 소장의 말.

“남성의 전화에 고민을 호소하는 남자들은 이혼 등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미 이혼을 결심할 정도면 아예 상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녀들의 장래와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놀라운 점은 아내의 불륜과 외도를 알고서도 남성 쪽에서 감수하고 가정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직접 상담소를 찾아온 남성들을 만나보면 이 사회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내 가정만큼은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린다.”

95년부터 ‘남성의 전화’를 개설, 숱한 남성의 하소연을 들어온 이소장은 정서가 불안한 중년 남자들의 경우 감정을 해소할 줄도 모르고 어디 가서 고민을 토로할 줄도 몰라 커다란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남성들은 특히 부부 사이에 이상이 생길 경우 자존심 때문에 부모 친구에게도 잘 털어놓지 않으며 극단적인 판단으로 자신과 가족을 해치는 등 반사회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영화 ‘해피엔드’에서 부정한 아내를 살해한 남편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실제로 중년의 위기를 혹독하게 겪은 후 그 솔직한 얘기를 책(‘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학지사 번역 간행)으로 펴낸 짐 콘웨이 목사는 중년의 위기에 몰린 남자는 사회적인 전문지식과 권력 그리고 자유를 청소년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적대감이나 반란은 그와 관계하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중년기에 들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아가는 사례도 있다. 이것은 직업(일) 영역에서 자신을 재평가한 후 더 늦기 전에 인생을 재설계하는 경우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현재 파키스탄에서 선교사로 전도 활동을 하는 이충우씨(44)가 그런 예다. 대학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현장을 누볐고, 이후 업종을 전환해 무역업으로 떼돈을 버는 등 돈과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30대 청춘을 보낸 이씨는 4년 전 나이 40이 되던 어느날 느닷없이 파키스탄 선교사라는 충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나는 30대에 정말 열심히 일해 성공이 눈앞에 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성공인가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것이었다.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가지고 있던 나는 어느날 예배를 보다가 거듭남을 통해 진정한 성공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선교사의 길로 나서게 됐다.”

이씨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아내를 고국에 남겨 두고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린 채 파키스탄으로 떠났고, 지금은 파키스탄의 빈민촌 사람들을 섬기는 기쁨으로 마음이 항상 뿌듯하다고 한다. 이 일이 세속에서 돈을 왕창 버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4년여의 세월을 이국에서 보내면서 흙먼지 바람에 어느새 머리가 셌지만 한 줌의 후회도 없다고 한다. 있다면 단 하나 “왜 새 삶의 시작이 이리 늦었는가” 하는 것뿐.

나이 40에 자신의 직업만으로는 뭔가 빠진 듯싶어 다른 일로 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30대 초반에 서울 강남에다 치아교정 전문병원을 세워 지금은 의사 10여 명을 둔 종합치과병원으로 성장시킨 민병진씨(47)가 그 경우.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의 전형인 민씨는 7년 전인 92년 불혹에 접어들면서 심한 ‘마흔앓이’를 겪었다.

“나는 그때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마흔에 오히려 흔들리는 자신을 느꼈다. 20, 30대엔 그야말로 앞뒤 안 보고 내달려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입지를 마련했지만 나에겐 반대로 그때부터 뭔가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나는 만 40세가 되던 생일날 병원 문을 닫고 가출하듯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게 40~50대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고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기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절망해버리기도 쉽지만 다시 인생을 시작할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민씨는 미래엔 평균 수명이 90세까지 올라갈 것을 감안하면 40~50대는 인생의 중심, 즉 황금기에 놓인 세대라고 정의했다. 이후 민씨는 친구들을 규합해 ‘황금세대(골드 제너레이션)’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대 문화운동을 펴나가기로 결심했다.

“황금세대가 황금빛을 내려면 무언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능력의 60%는 일에 쏟아붓고 나머지 40%는 자신을 재충전하는 의미 있는 일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처음 그것을 음악에서 찾았다.”

민씨는 서울대 재학시절 이수만, 윤형주 등과 친분을 나누며 ‘들개들’이란 밴드를 결성해 대학가를 순회했을 만큼 뛰어난 음악적 ‘끼’를 갖고 있었다. 또 보컬 실력도 수준급인 그는 지난해 9월 문화를 사랑하는 40대 모임인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를 결성,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재즈 음악회를 열었다. 10대와 20대의 요란한 몸부림에 짓눌리고 30대의 당당한 외침에 주눅들어, 향유할 문화의 ‘코드’를 찾지 못한 채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중장년들을 격려하고 결집시키는 ‘세대 문화운동’의 첫 단추였다.

죽을 맛인 475세대

그리고 그는 음악회에 참석한 700여명의 청중과 더불어 ‘40대 제자리 찾기’를 선언했다. “40대는 한국 고속성장의 주역이지만 그들의 문화나 정신세계를 만들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공동책임이며 지금부터라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게 이 선언의 요지다.

민씨는 또 40대 이상을 위한 인터넷 웹사이트를 4월 중에 개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0대 이후는 디지털 갭 세대인지라, 40대 이후에 알맞은 건강과 미용 등 재미있는 아이템을 부여해 인터넷에 취미를 붙이고 디지털 마인드를 심어줌으로써 20~30대에 못지않게 21세기를 풍요롭게 맞이하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40대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 만큼 40대가 주눅들어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40대들은 그 시기에 일반적으로 찾아오는 심리적인 갈등과 정서적인 혼란에 더해 대량실업사태, 낯설기만 한 인터넷이나 벤처산업의 등장 같은 미증유의 사회 개편 속에서 더욱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다. 인터넷 중년 대화방 게시판에 올린 한 40대 남자(대화방 네임 ‘가람’)의 푸념은 이런 현실을 잘 대변한다.

‘우리네 40대들은 대다수 서민 대중 누구나가 겪어야 했던 한국의 과도기적 어려움에 시달린 세대라고 생각한다. 나를 예로 들어보면 40대는 순수 한글세대의 원조격이고, 중학교를 시험 치르고 들어간 마지막 세대이며, 조국 근대화가 한창 진행중이고 민주화 투쟁이 활발히 진행중이던 시절에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세대가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80년대의 군부 독재시절이 끝나갈 무렵 생활 전선에서 국가경제 부흥을 위하여 젊은 한 몸을 아낌없이 불살랐다. 이제 조금 맘 편해지려는 시점에 이건 또 뭐람. IMF관리 경제체제라는 혹독한 시련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근근이 연명해 오는가 싶더니, 이젠 386세대에게 완전히 덜미를 잡혀서 ‘상가집 개’ 신세로 전락하지 않나 하는 조바심을 치게 만드는 세대인 것이다….’

한국의 40대는 모래시계 세대인 30대가 ‘386세대(30대, 80년대 대학 학번, 60년대생)’로 표현되면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자, 구세대와 신세대 중간에 어정쩡하게 낀 ‘475세대’라고 자리매김된다. 40대, 70년대 학번, 50년대 생이라는 것이다.

이 세대는 아버지의 희망이 자신의 꿈이었던 모범생 세대이며, 유신과 긴급조치로 숨을 죽인 채 젊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체제를 인정하고 이른바 근대화세력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할 것이냐, 아니면 체제를 거부하고 ‘지하’로 들어갈 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고민도 해야 했다. 80년 ‘서울의 봄’도 잠깐, 이들은 또 한 번 절망해야 했다. 그래서 변혁을 꿈꾸지만 반란엔 익숙지 못한 세대라고들 한다.

“한마디로 우리 40대는 못난 시대를 살아야 했다. 50대와 30대는 그래도 조직적으로 저항할 수 있었고 비록 미완성이긴 하지만 변혁에 대한 성공을 체험할 수 있었다. 40대가 386에 밀려 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70년대의 가위눌림과 피해의식이 아직도 내면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2년 때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감방살이를 했던 실천문학사 김영현 대표(74학번·55년생)의 말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40대 부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두려움과 깡마른 가슴으로 긴급조치의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 때문인지 우리 세대는 사회와 조직 속에서도 전면에 나서기보다 ‘튀지 않게’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다른 세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비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30대의 그늘에 가려 더 이상 ‘젊은 피’ 대접도 못 받고 50대처럼 경제적 기반을 갖춰 안정되지도 못한 ‘샌드위치 세대’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실제 IMF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세대가 40대였다. 그리고 직장에 남은 이들도 20~30대의 인터넷 계층에 치여 위기감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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