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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샌드위치 세대’ 40대의 흔들림

정신과 의사의 중년남성 관찰기

  • 정혜선 정신과 전문의·마음과 마음 원장

정신과 의사의 중년남성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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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이 있고 환한 얼굴의 최인호와 갑갑하고 견고해 보이는 얼굴의 이문열. 현재 50대인 그들은 40대 한국남성들이 걸어가는 두 갈래 길의 표본을 보여주었고, 그 차이가 오늘의 두 사람 얼굴에서 나타난다.》
‘자유롭다, 환하다, 깊이가 느껴진다.’ 흰머리가 뒤섞인 헝클어진 머리, 눈가에 깊이 팬 굵은 주름을 달고서는 매력적으로 웃고 있는 얼굴에서 받은 인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듯한 그 얼굴은 소설가 최인호(55)다.

몇 해 전 그는 중년의 가슴 아픈 사랑을 맑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소설 한 권을 출간했다. ‘사랑의 기쁨’이란 제목을 단 이 작품은 그가 젊은 시절에 휘갈기듯 써낸 ‘별들의 고향’ 같은 도회지 풍의 감각적인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의 정신적 변화를 알려주는 의미심장한 작품일 수도 있다.

또 얼마 전에 그는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라는 제목의 수상집을 출간했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독실한 가톨릭 신자면서 굳이 스님이 되고 싶다고 한 이유가 뭔지 물었더니 “당신은 아빠와 엄마 중 누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을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자처, 두 종교 사이를 편하게 오가는 종교적 이중 국적자임을 밝힌 자유인이다.

‘갑갑하다, 견고하다, 웃는 얼굴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문학의 영웅, 이문열의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는 필자의 소감이다. 그는 연간 수억원의 인세 수입을 올리는 대단한 소설가다.



그러나 2000년 2월, ‘이문열 서원’인 ‘부악문원’의 문학지망생 모집에 지원자가 10여 명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98년 1기 모집 때는 5명 정원에 지원자가 150여명이 몰리더니 2기 때는 90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10여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줄어도 너무 줄었다. 자기 돈을 내고 배우는 문학교실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판인데, 어째서 대소설가인 이문열의 강의가 제공되고 3년간 많은 장서와 숙식이 무료로 제공되는 부악문원에 문학지망생의 발길이 줄어드는 것일까.

부악문원의 지망생 급감 사건은 98년에 출간한 그의 회심작 ‘변경’의 부진에 이은 것이어서 그에게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문열의 문학론에 젊은 세대가 염증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고, 또 한편에서는 그의 문장이 더 이상 문학청년들을 끌지 못한다는 다소 냉소적인 평을 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작가 최인호(1945년생)와 이문열(1948년생). 현재 50대인 그들은 젊은 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인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보낸 40대는 전혀 달랐고, 그 차이가 바로 오늘날 최인호와 이문열의 얼굴을 다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영화의 롱테이크 기법처럼 우리의 삶을 조망해보면, 남자의 40대는 대단히 의미있는 ‘인생의 위기’라 할 만하다. 그 고비를 제대로 넘기지 못해 심리적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사람도 있고 행복한 인생을 위한 기회로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온전히 각자의 몫일 것이다.

마흔둘의 고백

그런 점에서 ‘제2의 사춘기’라고도 불리는 40대에 정신적 격동을 각각 다른 방법으로 겪어낸 최인호와 이문열은 한국의 40대 남성이 겪는 변화의 실체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유효한 모델일 수도 있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한국의 40대 남성을 고찰하는 글의 첫머리에 최인호와 이문열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이 글에서 언급되는 최인호와 이문열은 정신과 의사 눈에 비친 그들의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모습일 따름이다. 인용되는 각종 자료나 에피소드들은 그들의 문학적 성과나 사회적 성취도와는 무관하다.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40대 남자의 내면적 진화를 살펴보는 데 유용한 자료들만 임의적으로 취사선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 자신의 개인적 취향이나 가치관 따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도 미리 밝혀둔다.

“나는 나이 마흔둘에 내가 이 세상의 진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기꾼임을 깨달았고, 극심한 영혼의 영양 실조에 걸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인호가 쉰이 훨씬 넘은 어느날 뱉어낸 육성 고백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8세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학 천재였다. 그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로 기록됐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쓴 시나리오로 각색해 영화로 상영될 때도 연속 히트를 치는 등 흥분된 젊은 날을 보낸 성공한 작가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들 도단이 앞에 무릎을 꿇고서 “무능한 아버지를 용서해달라”면서 빌었다고 하니, 그 괴로움이 꽤 심각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마흔둘의 어느날, ‘하늘과 땅이 날카로운 키스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가톨릭에 귀의한다.

최인호의 40대는 외부로부터 받는 갈채가 갑자기 아무 의미없이 느껴지고 타인들의 칭송이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데 방해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한 잔인한 시기였다. 치열한 심리적 내전을 치른 시기였던 것이다.

최인호의 초반 작품 ‘바보들의 행진’ ‘고래사냥’ ‘적도의 꽃’ 등이 도회지풍의 감각적인 작품이라면, 마흔둘의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낸 이후에 나온 ‘왕도의 비밀’ ‘길없는 길’과 같은 작품은 역사적 철학적 안목이 확고해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소설이다.

나이 40의 진통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예술가 수백 명의 생애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그들 대부분은 중년에 심각한 심리적 위기를 맞았는데 그것을 잘 극복한 예술가들은 그들의 사생활과 작품 방향이 달라졌다고 한다. 작품이 내용면에서 더욱 깊어지고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예술가란 삶의 본질을 다루는 감성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그들은 이런 문제에 있어선 늘 보통사람보다 일선에 서기 때문이다.

40대의 회심작 ‘변경’의 실패

이번에는 이문열을 보기로 하자.

98년 12월, 서른아홉 살에 시작해서 쉰살에 탈고한 ‘변경’이 출간되었다. 작가로서 가장 완숙한 40대에 대부분을 썼기에 변명할 여지도, 동정을 구할 여지도 없어 어깨가 무겁다고 말한 작품이다. 그리하여 그는 ‘변경’을 출간할 당시 “이 소설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곧 나의 문학적 실패와 연결될 수도 있다”며 비장하게 말했다. 이것은 ‘변경’이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잠잠하자, 그는 소설쓰기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존심을 접고 전국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면서 독자 사인회까지 가졌다. ‘변경’의 성적표는 이문열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고, 그는 이후 한동안 글 한 줄 못 쓰는 열병을 앓았다.

소설 ‘변경’은 강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남아 있는 사회에서 월북한 아버지를 가진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문열의 실제 삶과 동일한 설정이다. 그 역시 ‘변경’은 생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의 가족사를 모티프로 쓴, 자신의 자화상이 반 이상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변경’의 주인공 인철은 자신의 모습이 철저히 투영된 분신이라고까지 했다. 그래서 ‘변경’을 보면 이문열이 자세히 보인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을 월북자의 아들 즉 빨갱이로 보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 월북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들어차 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주장이고 무엇을 위한 운동이든 내가 끼어드는 날로 그것은 용공조작의 무서운 칼날 아래 놓이게 됐을 것”이라는 작중인물의 한탄은, 보이지 않는 연좌제가 서슬퍼렇게 작동하던 시대를 살아낸 이문열 자신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무의식은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한 긴장과 불안으로 점철된 것이리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남한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무조건 찬성하고 그에 발맞추어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말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관념적인 삶의 자세로 일관했다. 그의 분신이라는 주인공 인철이 끝까지 ‘관찰하고 정리하고 해석하는 사람’으로 남은 것도 이문열식 삶이다. ‘문학이 내면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경계한다’고 한 그의 말은 인간의 내면세계에 천착해야 할 문학가의 발언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발상이지만 그의 삶을 보면 이해가 된다.

결국 최인호가 자신의 젊은 날을 송두리째 부정하며 새로운 삶에 눈뜰 때도 그는 여전히 심리적 방어와 관념적인 수사로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최인호의 글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데 반해 이문열의 글은 관념적이고 딱딱하다. 최인호에게서는 예술가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데 이문열에게서는 권위적인 느낌만 감지된다.

40이 넘도록 자신의 콤플렉스를 해결하지 못한 채 안고 가는 사람의 삶이 어떻게 굴절되는지를 이문열은 잘 보여주고 있다.

40대는 유혹의 시기

인생 40은 불혹(不惑)이라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 말은 오랜 세월 40대의 대명사로 인지돼 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공자의 이 말은 전혀 틀린 것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40∼45세 남자들의 80%가 이 시기에 심리적 위기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40대는 불혹(不惑)이 아닌 유혹(有惑)의 시기라고 해야 한다.

칼 융(C.G. Jung)이라는 정신분석가는 38세에 자신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열정도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자신이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 당시 융은 큰 병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학문적으로도 대단히 인정받고 있었으며 안정된 가정도 있었다. 그는 남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필요는 발견을 낳는 법이던가. 융은 자신의 이런 경험들을 성찰하는 과정에 중년의 심리에 대한 뚜렷한 업적을 남긴다. 융은 40세 전후가 인간의 행동과 의식이 탈바꿈(reversal)하는 결정적인 전환기임을 밝혀냈다.

융은 이때 비로소 인생에 대한 진정한 ‘눈뜸’이 일어난다고 했다. 중년은 ‘인생의 절정’이자 인생의 태양이 머리 한가운데에 떠 있는 ‘인생의 정오(the noon of life)’라는 것이다. 사실 중년(中年)의 한자 표기에도 ‘가운데 중’자가 들어가는 걸 보면 40대가 ‘인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는 동·서양의 관점이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40대가 인생의 절정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흔들림’이다. 학자들은 “중년기는 외면적으로는 별 문제없이 균형잡힌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분노, 속은 듯한 느낌, 탐욕 같은 유치한 감정을 지니는 시기다. 바람직한 생활과 미소 뒤에 숨은 미성숙한 탐욕과 유치한 야망과 같은 양면성으로 40대 남자들은 갈등에 빠진다”고 말한다.

지난해에 필자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에서 40대 남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과 의사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중에 ‘정신과 진료실에 누가 제일 많이 올 것 같으냐?’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 응답 결과가 재미있다. 40대 남자들은 자기 또래의 남성들이 정신과 상담실을 제일 많이 찾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40대 남자들 자신의 고단하고 괴로운 심정을 투사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40대의 많은 남자들은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보며 ‘40은 불혹이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철없이 흔들리는 걸까’ 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자책한다. 어떻게 보면 공자는 수천년 동안 이 시기의 남자들에게 공연한 자책감을 불러일으키는 큰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는 40대 남자들을 ‘유피놀세대’라는 이름으로 규정하려 한다. ‘유피놀(UFINOL)’이란 ‘Unfinished noon of life(미완의 절정)’의 줄임말이다. 흔들림의 과정이 남았으므로 절정이되 미완의 절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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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정신과 전문의·마음과 마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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