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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 콤플렉스 벗어나야 인문학이 산다

토론토大 홍성욱 교수의 창조적 인문학을 위한 대안

  • 홍성욱 토론토 대학 교수·과학사

실용성 콤플렉스 벗어나야 인문학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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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와 관련이 있는 또 다른 변화는 지식기반산업의 부상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이에 따른 지식생산양식의 변화다. 기번스(M. Gibbons) 같은 서구의 몇몇 학자들은 지식기반사회가 대두하면서 지식생산양식이 변했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지식생산을 제1양식과 제2양식으로 나누고, 점차 지배적이 되어가는 제2양식의 특징으로 ①지식의 응용 ②학제간의 넘나듦 ③지식 생성 공간의 이종성(異種性)과 수평적 인간관계 ④사회적 책임 ⑤대중과 의뢰인에 의한 지식평가를 들고 있다.

한국 역시 지식기반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로 빠르게 이행중이며, 이런 이행은 현 정권의 ‘재벌개혁 후 지식기반 구축’이라는 경제 정책과 ‘지식공동체’를 필두로 한 노사정책을 볼 때 더 빨라질 전망이다. 경제학자들은 2010년경 지식기반산업이 한국 GDP의 5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유연적 생산 시기의 지식노동은,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분야와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세분된 전문지식보다는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지식을 섞을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필요로 한다. 세분된 학과에 근거한 전공제도는 70년대 생산업을 주로 한 산업구조에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런 외부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더 정확하게는 외부 변화의 압력에 못 이겨) 대학은 90년대 중반 이후 ‘학부제’를 도입했는데, 학부제는 학생에게 학과와 전공을 선택할 자유만 부여해서 가뜩이나 인기가 없던 철학, 역사, 문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를 ‘고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대학생들은 철학과 같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대학에서 강의하는 인문학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통계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철학의 몫을 키워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학생이 79.4%였음에 반해, 현재 철학 연구에 만족한다는 학생은 3.5%에 불과했다. 이런 현실은 인문학이 빠르게 변하는 상품생산과 지식생산의 구조 속에서 별로 유용하지 않은 지식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악화되고 있다. 반면 대학 밖에서의 인문학 강좌는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지금 대학에서 강의되고 연구되는 인문학의 위상이 몹시 불안정한 것임을 드러낸다.

많은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이 ‘삶의 문제’를 다루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과 올바른 가치체계’를 탐구하며, ‘사람다움의 당위와 실현을 추구’하는 인성교육임을 강조한다. 인문학이 삶의 바른 자세와 ‘도(道)’를 가르치는 학문이라는 주장은 학(學)과 실천의 합일을 강조했던 유학의 전통과도 닿아 있고, 따라서 우리의 ‘정서’와도 잘 들어맞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담론이 인문학을 육성해야 하는 정당성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담론은 동양이나 서양의 전통사회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지배 엘리트들에게 불어넣었던 이데올로기와 일맥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인문학 교육에 대해 얘기할 경우에도, (예를 들어) 윤리학을 배우는 것이 실제로 사람을 윤리적으로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나는 인문학 교육이 학생들에게 다양한 가치(value)를 접하게 하고, 이중 하나를 선택해보는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실제 세상에서도 판단의 유연성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안목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어도, 철학 문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 교육이 바로 인성교육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이웃과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과 실천은 윤리학을 배워서가 아니라,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협동해서 이루어 봄으로써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자들은 과학이 기술에 끼치는 영향을 들어 순수과학의 효용을 강조하듯이, 일부 인문학자들은 인문학과 실용적인 사회과학의 상호작용을 들어 인문학의 효용을 말한다. 인문학은 사회과학의 이론을 위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하고, 동시에 사회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일반화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협력이 양자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사회과학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라는 사실에 있다. 인문학보다 조금 나을지는 몰라도 사회과학은 그 실용성에서 공학이나 의학의 특권적 위치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인문학이 문명에 대한 균형감각을 제공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과학기술 시대의 인문학이 적극적으로 과학기술과 결합하고 과학기술을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가 있을 수 없다. 또 문학, 문화, 예술과 같은 인문학의 주제들이 정보기술의 내용을 채워줌으로써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음도 분명하다.

조금 더 구체적인 결합방식으로 과학사·과학철학·과학사회학과 같은 과학학 분야의 육성, 문화연구와 공학의 ‘절합’을 통한 ‘문화공학’과 같은 간학문(interdisciplinary programs)의 제도화, 인문학·공학·자연과학의 상호수렴 경향을 바탕으로 한 ‘인문적 통일과학’의 설립 등이 제시됐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가 무척 중요하고, 이러한 노력이 과학기술과 정보화시대 인문학의 효용을 고양한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생산적인 대화와 공동연구를 통해 얼마나 협력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자들이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설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인문학자들이 이런 ‘잡종교배’를 담당해야 하는데,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새로운 문제와 인식틀을 만들어내기에는 대다수 인문학자들이 지금까지 각각의 전공분야에만 너무 안주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 둘을 매개해줄 수 있는 과학사·과학철학·과학사회학 같은 과학학 분야의 학문은 한국 대학의 엄격한 학제 때문에 설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학자들의 반성, 번지수가 잘못됐다

일군의 인문학자들은 이런 위기가 한국 인문학이 우리 것을 제대로 연구하거나 가르치지 못하고 서양의 학문에 각주를 다는 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이들의 주장이, 외국 학자들의 책이나 논문에서 이것저것 따와서 자기 연구를 대신하거나 자기 글의 권위를 높이려는 일부 상식 이하의 관행에 대한 비판이라면, 이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일부가 제기하는 ‘우리 글쓰기’나 ‘새로운 진리’와 같은 개념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수준 낮은 연구와 교육에 대한 비판은 수준 높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지, 그 실체가 모호한 ‘우리 것’에 대한 회귀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과 우리 것에 대해 얘기하면서 종종 ‘정서’에 호소하거나 선문답 같은 담론으로는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할 뿐이다. 인문학의 사유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엄밀하고 분석적이며, 동시에 콘텍스트적이고 반성적인 사유를 할 줄 아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지,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식의 ‘꿈 같은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적 사유의 효용은 지식생산양식의 변화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전지구적인 네트워크 혁명이 경제·지식·인간관계·일상생활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지금,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가르칠 수 있는 인문학적 사유법(way of thinking)이 무엇이고, 이것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시민이 갖춰야 할 유연하고, 강인하며, 동시에 적응력 있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커리큘럼을 실용적인 것으로 바꾸는 시도는 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철학과에서 윤리학만이 아니라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생명윤리학(bioethics)을 개설한다든지, 역사학과에서 성(sex)의 역사를 개설하는 것과 같은 시도는 일단 상황을 개선하려는 일차적인 시도로 의미가 있다. 교육의 내용을 현실의 문제와 더 밀접히 관련시키는 것은, 학습 의욕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교육의 ‘유용성’을 어느 정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커리큘럼을 조금 바꾸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정보기술과 그에 근거한 지식의 급속한 팽창, 그리고 이를 공유하는 전지구적인 정보 네트워크의 등장이 새로운 지식의 생산·소비 속도와 패턴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실정에, 실용적인 과목을 한두 개 새로 개설하는 것으로는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고 볼 수 없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조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고, 이 지식을 다시 정보로 바꾸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대학 교육이 할 일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을 매개하는 나선형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이를 조작할 수 있는 학습 능력(learning capacity)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나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기말 보고서를 내주면서 항상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독창적이고 창조적으로 읽는 것이고, 같은 텍스트를 읽은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항상 질문을 던져가면서, 콘텍스트를 고려하고,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다른 텍스트와 비교하고 결합시키면서 읽고 생각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문학의 연구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읽었던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같이 고전적인 텍스트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 다른 유기체, 환경, 기계와 같은 무생물, 언어와 상징, 그리고 이것들의 활동과 순환, 그 네트워크를 맺어주는 복잡다단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인문학의 대상은 주로 언어와 상징의 세상, 즉 씌어진 세상(inscribed world)이며, 인문학적 사유라는 것은 씌어진 세상을 구성하는 텍스트(text)를 읽고 이해하는 방법이다.

텍스트에는 ‘방법서설’과 같은 고전에서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과 논문, 에세이, 신문과 잡지, 인터넷 자료들은 물론, 노래와 영화, 표정과 의상과 같은 문화까지 포함된다.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중층적이고 창조적일수록 더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적 사유는 고차원적인 정신 노동이다. 만지고 보는 차원을 뛰어넘는 인간의 이해는, 항상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음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는 인문학적 사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인문학적 사유는 주로 상징과 언어의 세상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풀면서 훈련할 수 있다. 훈련된 사유가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이미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내용을 그저 주입하거나 고전을 ‘성현의 말씀’과 같은 식으로 절대화하는 교육은, 학생들을 정보혁명 시기의 비판적인 시민으로 교육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사실보다는 해석을, 암기보다는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지식 그 자체보다는 필요한 지식을 찾고 이용할 줄 아는 역량을, 텍스트의 요약보다는 그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엇을 찾아내는 안목을 키워주어야 한다.

이런 안목은 훈련을 통해서 키울 수 있다. 인문학 교육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주고, 텍스트를 바탕으로 해서 이를 해결하게 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학과 사회’를 강의하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인터넷 혁명이 과학자들의 실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를 위해 학생은 무엇보다 교수가 수업 시간에 얘기했을 인터넷 혁명의 성격과 과학자들의 실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각각의 주제와 이의 관련을 보여주는 참고문헌을 어떻게 찾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서관이나 인터넷의 자료를 능숙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참고문헌을 찾았으면 이를 자신의 역량에 맞게 추릴 수 있어야 한다. 짧은 보고서를 위해 논문 수백 편과 책 수십 권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논문이나 책을 훑어보고(어떤 때는 제목과 개요만 살펴보고), 어떤 것이 중요하고 자신의 과제와 직접 관련이 있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이 많지 않을 때는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는 것 같은 비상계획을 빨리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 질문에 답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능력은, 찾은 책이나 논문을 읽고 정확하게 요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서로 다른 주장들을 비교하고 각각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평가한 기반 위에서, 자신의 새로운 의견이나 결론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줄 콘텍스트를 잘 구성해야 하며, 이렇게 만들어낸 자신의 의견에 대한 타당성과 그 의미를 반성적으로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의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서론에서 문제를 던지고, 본론의 논지를 매끄럽게 펼 수 있어야 하며, 결론으로 자신의 공부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정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언제 어떻게 왜 인용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하며, 참고문헌을 사용해서 각주나 미주를 적절한 위치에 달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무엇이 표절이고 무엇이 표절이 아닌가도 알아야 한다. 모국어와 외국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는 것도 이 단계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훈련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인터넷 혁명이 자연 과학자들의 실험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문제 자체를 스스로 찾아내고 이에 대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교수가 “인터넷 혁명에 대해 한 가지 주제를 잡아 논문을 써 오라”고 했을 때, “20세기 인터넷 혁명의 제반 특성에 대한 일반적 고찰”과 같이 뜬구름 잡는 주제가 아니라, “인터넷이 휴먼게놈 계획에 끼친 영향”과 같은 구체적이고, 다룰 만하고(manageable), 의미 있는 주제를 잡아내고, 이에 대해 좋은 연구를 수행해서 독창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과학에서도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것과 스스로 중요한 문제를 찾아내는 것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있듯이, 인문학의 경우도 비슷하다. 스스로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연구주제인가를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이 다루는 분야의 현 연구상태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는 물론, 이들 중 중요하지만 아직 충분히 연구되어 있지 않은 분야나 주제가 무엇인가를 포착할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어야 한다.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서 출발해, 큰 주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해줄 수 있는 작은 연구주제를 찾아 이에 대해 독창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다시 큰 주제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독창적인 해석에 대한 열정이 이런 공부와 연구를 관통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인문학적 사유는 인문학 강의를 통해 더욱 날카롭게 계발하고 연마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교수의 강의는 질문을 던지고 이를 해결하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학기 강의를 통해 생각해볼 큰 질문 몇 개를 수업 초기에 던져주고, 강의가 진행되면서 그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개별 강의에서도 이번 강의에서 다룰 중요한 문제 한두 개를 제시하고, 교수의 강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학생들이 스스로 유도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사고를 도와주고 인도해 주는 식이 돼야 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던지는 질문만이 아니라 강의를 통해 학생의 질문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함은 물론이다.

강의는 토론과 연구지도로 보충할 수 있다. 학생들은 매 강좌 요약 차원을 뛰어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에 대한 전문가(교수)의 제대로 된 비판과 평가를 받아야 하며, 독서와 토론을 통해 텍스트를 읽고,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을 제시해 보고, 자신의 견해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청취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텍스트에 대한 토론이 진행될 때 교수가 할 일은 학생들이 텍스트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와 질문을 찾아내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이런 질문들이 어떻게 텍스트를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가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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