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느 지역에서나 미술의 내용이란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관심을 담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미술의 표현이 시대를 예감하는 지적 감성과 어떻게 결합하느냐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미술은 21세기의 세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디지털 세계를 피해갈 수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세계 미술의 핵심 중 하나로 현재 주목받는 ‘미래형’의 미술은 디지털 세계에 대한 시각예술적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구상의 모든 미술이 디지털화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 그리고 상당수의 미술가가 향후 수십년이 지나도 디지털 세계와 별 상관없는 미술을 여전히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아 선상에 있는 나라, 문화의 불모지대, 그리고 분쟁지역에서 미술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후진국에서는 낙후한 교육과 미술의 제도적 부실함 때문에 ‘미래형’ 미술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쿠바나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이라도 뉴욕이나 파리에서 작업하는 경우에는 디지털화한 문화환경을 호흡할 수 있고 그들이 겪은 새로운 경험은 전혀 뜻밖의 새로운 표현을 가능케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서는 밀레니엄의 전환점인 1990년대에 크게 각광받으면서 국제적인 작가로 떠오른 9명의 현대 미술가를 소개한다. 이들은 소설가 더글라스 코플란의 용어인 ‘엑스 세대’ 멤버로 분류되는 세대다. 대부분 30대에 속하고 M-TV(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방송)와 컴퓨터에 아주 익숙하다. 이들은 20대 중반에 첫 개인전을 가지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30세가 되면서 벌써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이 9명의 작가가 하나의 전시를 만든다면 그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그리고 매우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조디 : 디지털 시대의 컴퓨터 해커
컴퓨터 도메인 네임 조디(JODI)는 그래픽 웹 브라우저로 예술적 프로젝트를 수행한 2인조 웹 아티스트의 명칭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조안 헤름스커크와 벨기에 출신의 덕 패스먼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작년 가나아트 센터가 주최하는 웹 아트 국제페스티벌에서 1등상을 받고 1998년 독일의 ‘미술과 미디어 센터(ZKM)’가 주최하는 국제미디어 아트상에서 1200명의 후보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그랑프리를 수상함으로써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두 명 모두 비디오와 사진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네트(net)로 관심이 옮겨갔다. 조디의 웹사이트를 찾는 방문자는, 제멋대로 작열하는 아이콘들, 부서지는 이미지들, ‘시스템 에러’ 메시지 등이 계속 뜨기 때문에 그들의 컴퓨터가 갑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브라우저가 깨지는 것 같은 착각에 순간적으로 빠져든다.
1994년에 등장한 조디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그것을 다시 ‘해체’하는 매우 특이하면서도 이론적인 작업을 하며 분야에 선구적 인물이 되었다. 네트 위에 디지털 데이터의 고유한 소재를 찾아내 그것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최초의 미술가 중 하나다.
그들은 네트와 하드 디스크에서 파생된 이미지와 텍스트 파편들을 날재료로 삼아 그것을 재조합하고 콜라주한다. 이질적 재료를 모아 차용하는 조디의 이런 방식은 신문이나 영화 티켓을 콜라주했던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 전통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조디 웹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거의가 뷰어(viewer:감상자)들이 작동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생명력을 갖고 계속 멋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조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디 작업이 과연 인터렉티브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유저(user:사용자)가 개입할 수 있는 행위는 단지 불확실한 결과를 가져오는 무의미한 클릭뿐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 마찰·불화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1980년대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 있던 백남준 밑에서 공부를 했다. 조디는 웹 작업을 한다고 해서 미술계를 떠나서 작업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작품을 보는 최선의 방식은 그것을 컴퓨터에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다. 인터넷은 이런 종류의 작업을 퍼뜨리기에 좋은 시스템이다. 컴퓨터는 미술을 창조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네트워크 안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즉 컴퓨터는 붓이면서 동시에 화폭이기도 한 것이다.
매튜 바니 : ‘남근주의’를 비판하는 완벽한 영상미
매튜 바니(Mattew Barney)의 유명한 작품인 필름 ‘크래마스터’ 시리즈 중 두 편이 얼마 전 아트 선재 센터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는 남성 지배 사회를 집요하게 비판해온 미국 작가로 이야기의 혼성적 구성, 표현의 복합성과 치밀성, 날카로운 냉소, 양식화한 미적 영상으로 전문가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영상 매체 작가다.
바니의 작업은 분장, 기묘한 의상의 모델들, 기괴한 형태의 돌연변이, 합성 물질로 만든 정체불명의 형태들, 바셀린으로 만든 징그러운 지렁이 모양, 굉음의 경주용 자동차 그리고 뿔 달린 사티로스들로 가득 차 있다.
예일대학 의과대 학생이던 매튜 바니의 과도한 상상력과 흘러넘치는 양식적 완결성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미술계는 한때 마술에 걸린 듯했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실제로 후디니의 마술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은 시기별로 ‘크래마스터’라는 다섯 편의 연작 중에서 세 편, 즉 ‘크래마스터 4’(1994), ‘크래마스터 1’(1995/1996) 그리고 ‘크래마스터 5’(1997)가 수작에 든다. 그중 크래마스터 4는 만이라는 섬에서 만들어졌다. 그 섬은 1960년대 이후 매년 오토바이 경주가 열리는데, 이 경주는 바로 이 필름의 중심 모티브다.
크래마스터 1은 축구 경기장 위에 두 대의 비행선이 떠 있는 상황을 설정했고, 가장 최근작인 크래마스터 5는 과거의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아르 누보식 욕조와 바로크식의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체인 브리지(Chain Bridge)가 나타난다. 그의 필름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1시간 분량으로 언제나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둘째, 거대한 설치, 오브제, 사진과 드로잉 등은 반드시 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한다. 그리고 동시에 필름에서 발췌한 스틸 이미지로 책을 발행하는 점이다. 크래마스터란 남성의 고환을 지탱하는 근육에서 빌려온 용어로 이 근육은 몸 안에서 춥거나 공포를 느꼈을 때 반작용으로 수축한다. 서구 문명을 지탱해온 ‘남근주의’의 문제를 격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기이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처리한 그의 필름은 1시간 동안 관객의 눈을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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