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전세계 도청망 에셜론 공포

폭파·납치·미사일, 단어만 나오면 감시대상

  •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1-15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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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캐나다·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에 있는 에셜론 조직은 정보수집을 위해 슈퍼컴퓨터를 이용한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리스트는 매우 광범위하며 해당지역 주요 인사의 정책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이 시스템은 전세계 주요 정치가와 테러리스트 명단을 확보하고 감시하고 있다. 또 금융거래 예금이체, 항공기 진로, 주식정보, 국제회의, 시위, 반정부그룹도 주목한다.》
    오늘도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GCSB) 직원 A씨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된 전세계 도청망 에셜론을 지원하는 뉴질랜드 정부 요원이다. 컴퓨터가 부팅되자 A씨는 비밀 번호를 입력한 뒤 키워드 시스템으로 들어갔다. 그의 비밀 번호는 ‘******’. 이 번호는 매주 바뀐다. 오늘 아침 에셜론 시스템에 묶여 있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기지의 정보 분석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비밀 번호를 입력하자 정보를 분석하는 지침이 나와 있는 기본 화면이 뜬다. 서로 다른 영역을 표시하는 네자리 숫자 코드가 화면 왼쪽에 세로로 열거되어 있다.

    A씨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는 모두 어제 밤과 오늘 새벽, 태평양 상공에 떠있는 인텔세트7 위성이 낚아챈 따끈따끈한 통화와 전문 내용이다. 인텔세트7 위성은 동시에 9만건의 개인 통화나 팩스를 걸러낼 수 있다. 여기에 모아진 메시지는 곧바로 A씨가 일하는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GCSB)으로 보내진다. 뉴질랜드 GCSB에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국 에셜론 기지에서 보낸 자료도 쌓인다. 위성 통신을 도청하는 데 핵심은 강력한 컴퓨터다. 지상에 합법적으로 건설된 도청기지는 위성이 낚아챈 수백만의 통신들을 컴퓨터로 걸러낸다. 키워드와 주요 주소가 입력된 컴퓨터는 무수한 통신을 수천, 수백 단위로 축소한다. 이렇게 줄이고 나면 A씨 같은 정보 분석 요원들이 투입된다.

    A씨 컴퓨터 화면에 뜬 숫자 코드 가운데 4066은 러시아 트롤 어선 어부들의 교신 내용이고 5535는 남태평양 상공을 날아가는 일본의 외교 전문, 4959는 남태평양 섬나라들의 교신이다. 7859는 한국과 중국 대륙 사이의 교신 내용이다. A씨는 한반도 담당이다. 그는 오늘 하루동안 작업할 영역 코드인 7859를 쳐 넣었다. 7859를 입력하자마자 순식간에 모니터에 ‘조사 결과’가 뜬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수많은 교신이 오고가지만 A씨 컴퓨터에는 키워드를 검색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 필요한 교신만 추려낸다.

    검색된 결과는 모두 50건. 이 50건을 검토하는 것이 A씨의 오늘 과제다. 이 가운데 상부에 보고할 만한 내용이 발견되면, 곧바로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 다섯째까지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오늘 키워드는 ‘마약’이었는데, 넷째 통신까지는 주고 받는 농담이고 다섯째는 영화에 나온 마약 이야기다. 그런데 여섯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A씨는 곧바로 통화 내용 전체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일단 영어로 번역한 뒤, 다시 이 내용을 에셜론 시스템인 UKUSA 네트워크에 통용되는 정보 보고 형식으로 작성했다.

    “오늘 한 건 했어.”



    A씨는 쾌재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에셜론 최전방에서 진행하는 작업이다. 가상 인물 A씨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BRS Search’라는 조사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방대한 기초 정보를 여러 분석가가 동시에 그것도 짧은 시간에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BRS Search 프로그램은 축적된 문서를 단어, 개념, 구(句), 절 등 여러 문장 단위로 분석한다. 이 프로그램은 데이터베이스 안에 축적된 문서 수백만장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단번에 끄집어낼 수 있다. 시간은 몇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나온 정보 분석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BRS 조사 프로그램은 ‘사전 프로그램(Dictionary program)’이라고도 부른다. 메시지 수백만 건 안에 있는 모든 단어와 숫자를 읽고 지정된 키워드와 숫자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누군가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이런 작업들은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에셜론 시스템이 노리는 ‘단어’는 이런 것이다. 우선 사람이나 배, 조직, 국가나 주제 이름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에셜론이 미리 지정한 텔렉스나 전화 번호, 개인과 사업가, 비정부기구, 정부 조직 인터넷 주소나 텔렉스도 들어간다. 가령 각국이 주고받는 외교 전문 가운데 ‘수바(Suva,남태평양 피지섬의 수도)’나 ‘원조(aid)’라는 용어가 있는 내용이 필요하다면 곧바로 검색할 수 있다. 여기서 영사관(consular)급에서 주고받는 일반적인 전문을 추리고 싶다면 ‘NOT consul’이라고 쳐 넣으면 영사관급 전문은 바로 빠진다.

    키워드로 교신내용 검색

    어느 정도냐면 분석 요원이 ‘납치’라는 키워드를 쳐 넣으려다, 자판을 잘못 두드려 ‘망치’라고 썼다고 하자. 순식간에 에셜론에 협조하는 세계 각 기지에 쌓인 자료에서 ‘망치’라는 표현이 든 교신이 걸러진다. 이처럼 에셜론은 모든 국가와 기업, 개인끼리 주고받는 교신 내용을 검색한다.

    이는 어떤 이가 특정인의 전화를 결사적으로 도청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이 어쩌다 에셜론이 주목하는 ‘단어’를 말하거나 이런 단어 조합을 주고받기만 해도 에셜론 요원의 관심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도청망 컴퓨터가 모든 통화 내용을 다 잡아내지는 않는다. 도청망 컴퓨터가 주목하는 단어는 ‘파괴’ ‘납치’ ‘암살’같은 의미 있는 용어다. 무역 분쟁이 잦은 요즘에는 ‘클레임’이나 ‘덤핑’같은 용어도 관심 대상이다. 일단 이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면 대화 내용은 주목받는다.

    이 감시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요 인사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당신이 전화로 대학 동창에게 사고뭉치인 당신 아들 일을 의논한다고 치자. 동창에게 당신이 화가 난 목소리로 “내 아들놈이 지난 밤에 참지 못하고 기어이 폭발했다네”라고 하거나, 대화 중에 성이 나서 ‘납치’라든지 ‘파괴’ 라는 용어를 썼다고 하자. 이 용어는 에셜론 감청 컴퓨터가 노리는 키워드 중 하나다. 하지만 당신은 평범한 사람인지라, 적절한 분석 시스템을 거치면(이 경우 테러리스트를 식별하는 과정) 아마도 폐기 처분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대화 내용이 분명하지 않거나, 중간에 끊기거나 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신참 분석가가 판단을 잘못한다면 당신 이름은 영원히 ‘잠재적 테러리스트’ 명단에 저장될 것이다. 몇주 뒤나 몇년 뒤 당신이 다시 한번 비슷한 단어를 말한다면 감청 컴퓨터는 처음보다는 훨씬 빨리 이를 잡아낼 것이다. 당신 이름은 이미 등록된 상태고 두번째 발언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때 당신 이름은 ‘잠재적 명단’에서 ‘유력한 감시 대상’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

    이 시스템 아래서는 특별히 당신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를 알 필요도 없다. 문제가 되는 키워드만 있으면 자동으로 검색해 낸다. 에셜론 시스템 아래서 5개 국가의 중앙 컴퓨터는 자국이 지정한 키워드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공유하는 다른 4개국 정보기관인 미국NSA, 영국 GCHQ, 호주의DSD, 캐나다 CSE가 정한 단어도 조사한다. 모든 도청 내용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 모든 시스템을 개발한 기관은 바로 미국 국가안보국(NSA)이다. 사실 최근 30년간의 컴퓨터 기술 발전은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에셜론 시스템이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IBM 컴퓨터에서 슈퍼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컴퓨터 기술 진보는 NSA와 에셜론에 이바지했다. NSA는 컴퓨터 산업 초창기에 자금 수백만달러를 민간 기업에 제공했고, 컴퓨터 회사가 만든 시제품을 가장 먼저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NSA가 없었다면 컴퓨터 산업이 지금보다 10~15년은 뒤져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일반에게는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까마득한 미래 일로 여겨지던 50년대, NSA 기술진은 초보적인 컴퓨터 기계라도 인간 두뇌보다는 암호문 패턴을 찾는 일에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0년대 후반에 최초의 데스크용 컴퓨터 보가트(Bogart)와 솔로(Solo)를 도입한 것도 NSA이다.

    하지만 에셜론이 처음 창설될 때는 지금처럼 강고하고 유기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NSA가 1952년 공식 출범했지만 에셜론 활동은 1947년 UKUSA라는 국제 조약으로 시작했다. 이 해에 조약에 참가한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나토 회원국이었다. 이 조약은 처음에는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었다. 그저 서로 수집한 정보를 주고받고 이를 중앙정보처리 본부로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 NSA가 출범한 뒤, 양상은 달라졌다. 우선 회원국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화이트 앵글로색슨 국가로 확정했다. NSA는 끊임없이 새로운 첩보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회원국에 공급했다. 회원국들은 대신 감청 기지를 제공했다.

    에셜론 본부는 영국 맨위드 힐

    에셜론 시스템 본부는 영국 요크셔 맨위드 힐(Menwith Hill) 기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미국인 10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이 기지는 1956년께, 미국이 소련을 감시하기 위해 건설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이 기지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통신수단을 동시에 도청하는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예산 수십억 달러가 매년 투입되고 있다. 이 기지에는 거대한 골프공 모양의 둥근 구조물이 24개 서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속에는 위성 접시 안테나와 도청 장비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물은 미국 첩보위성이 보내는 정보를 저장하고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상공에 떠 있는 상업 위성이 중계하는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이 기지가 주로 모으는 것은 국제적인 안보 이슈에 관한 정보다. 무기 확산 방지, 마약 수출이나 테러리즘에 관한 정보는 단골 메뉴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98년에 비밀 해제된 유럽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지는 불법 도청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군사적인 목표물도 엿듣는 것이다.

    에셜론 시스템이 맨위드 힐 기지와 관계있다는 공식적인 언급은 1988년 7월 한 미국 신문기사에서 처음 불거져 나왔다. 당시 문제 신문인 ‘클리브랜드 플레인 딜러’는 공화당 하원의원 스톰 터몬드의 전화 통화가 자동으로 도청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도청이 엉뚱하게도 영국 맨위드 힐에서 일어난다는 보도였다. 이 뉴스의 제보자는 ‘록히드 우주.미사일 주식회사’의 사원 마가레트 뉴삼이었다. 맨위드 힐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그는 미 하원 관계자에게 이 곳에서 일할 당시 이어폰을 통해 스톰 터몬드 의원의 전화 내용을 도청했다고 진술했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조사진은 증인들을 심문하고 에셜론 시스템의 계획과 지침을 캐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허사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도청 대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에셜론은 전세계의 모든 통신 내용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문 대상이었던 하급 요원이 하는 일은 주어진 이름이나 단어를 컴퓨터로 검색하는 일뿐이었다. 결국 조사진은 이 시스템에 손을 대지 못했다.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가 서로 스파이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알려진 일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밝혀졌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중요한 것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감시하는 기지가 바로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기 때문이다. 호주 관련 사실은 1970년대 후반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셜론 호주 기지에 대한 단서가 처음 잡힌 것은 1975년 무렵이다. 에셜론 호주 기지는 캔버라 근처의 숲이 우거진 해안인 데킨에 있는데, 사람들은 이 시설을 처음에는 데킨 전화 교환국 정도로만 알았다. 이후 1977년 3월9일 호주 야당 총재 빌 하이든은 이 도청망과 관련해 정부에 중요한 질문을 했다. 같은 해 4월19일 호주 총리 말콤 프레이저는 국가 안보 이익에 관련한 사항이라며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뉴질랜드도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1980년대 중반에 터져나왔다. 에셜론 뉴질랜드 분소라고 할 수 있는 GCSB는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이다. 1984년 6월12일 뉴질랜드 총리 로버트 멀둔은 GCSB가 호주, 캐나다, 영국, 미국과 밀접하게 정보를 주고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는 뉴질랜드가 이 다섯 국가 사이의 정보 연대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뉴질랜드 정보 분석가들은 현재 요원을 교육하고, 교환하는 등 해외 정보 기관과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GCSB는 자체적으로 요원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에셜론 시스템 안에서 좀더 효과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교육이다.

    이 에셜론 국제 연대망에 속한 나라들은 모두 앵글로 색슨계 백인 기독교 국가들이다. 그런만큼 이외의 국가들은 모두 도청과 감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시 대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능력이 무한정 늘어나다보니 자기 살도 파먹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에셜론을 운영하는 미국가안보국(NSA)는 그 광범위한 도청망을 자국 국민에게도 돌리기 시작했다. NSA에 협조하는 미중앙정보국(CIA), 미연방수사국(FBI), 미국방정보국(DIA)은 NSA를 위해 내국인 감시 명단을 제출했다. 이 명단들은 매우 다양해서 급진 정치 그룹부터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일반 시민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명단에는 미국내 유명 연예인인 제인 폰다와,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도 들어 있었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이 감시 대상이 점점 넓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감시 명단에 들어있던 사람과 접촉한 사람이나 단체도 그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NSA 활동이 무한정 팽창하자 1978년 1월24일 지미 카터 대통령은 행정부 권한으로 NSA 활동을 규제하려고 시도했다. 이 시도는 NSA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저지른 광범위한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4년 뒤 레이건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의 시도를 무산시켰다. 레이건은 이 첩보 기관의 국내 활동 권한을 더욱 확대했다. 레이건 행정부 명령으로 NSA는 대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NSA에는 컴퓨터, 정보 분석가가 한층 늘어났다. 결국 개인 사생활이 침해받을 위험은 더욱 커진 것이다.

    에셜론 커질수록 인류미래 비관적

    하지만 미국 의회 입법으로 이런 사생활 침해를 방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도청과 정보 수집을 막는 방안은 아마도 대학이나 산업계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신기술로 도청이나 정보 가로채기를 막는 것이다. 안전한 통화와 교신을 보장하는 이 신기술은 훨씬 비싼 요금을 받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보 기관 활동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류 미래는 비관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 국가가 전제 국가가 되고 독재자가 나타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전제 국가는 모든 통신 활동을 감시하는 기술력으로 시민을 통제할 것이다. 독재 체제를 뒤집으려는 시민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정보 기술력으로 시도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고 탄압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셜론 시스템을 악용한 단적인 예가 있다. 1989년 한 전직 에셜론 요원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옵서버 뉴스페이퍼’ 소유주인 론호 주식회사를 사적으로 도청하라고 명령한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이 신문은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영국 군부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군사 거래 스캔들을 시리즈로 보도하고 있었다. 기사 내용은 대처 총리가 이 거래를 강력하게 후원했고, 대량의 뇌물이 중개인 사이에 오고갔다는 것이었다. 뇌물을 받은 중개인 가운데는 대처 총리 아들인 마크 대처도 있었다. 마크 대처는 이 거래 과정에 뇌물 천만 파운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예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에셜론 시스템은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 이 시스템에는 윤리 규정이라든지 심지어 자국 의회나 시민 자유를 존중하는 규칙도 없다.

    냉전 기간에 미국은 사회주의 소련이나 중국이 자국 국민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통제했다고 비난했다. 에셜론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공산주의 체제에 대항하기 위함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는 암울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컴퓨터 기술이 진보하면서 에셜론의 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에셜론은 어떠한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는 조지 오웰이 ‘1984’라는 소설에서도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다. NSA는 에셜론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어디에 있든지 개입할 수 있다. NSA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에셜론 시스템의 문제점을 몇가지로 지적한다. 첫째는 전지구적인 크기의 도청망은 냉전 시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냉전이 끝났는데도 이 시스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예산도 감축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이 거대한 스파이 시스템이 존재할 만한 공적인 정당성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경제 정보가 중요하다는 논리로도 이 시스템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에셜론 냉전시대 산물

    둘째는 에셜론 시스템이 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경쟁국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에셜론 동맹은 과거 소연방이나 공산 국가를 상대로 공작했다. 그러나 현재 이 시스템의 손발인 국제상업위성통신, 마이크로웨이브 네트워크, 여러 위성들은 이라크나 북한 같은 요주의 국가를 겨냥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의 목표물은 에셜론 동맹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국가나 집단이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 회원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경쟁선에 있는 국가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데 에셜론을 활용하고 있다. 경쟁 국가의 자원을 헐값으로 사들인다거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거부하는 국가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이를 쓰는 것이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가 대표적인 예다.

    다음은 전화회사 책임 문제를 들 수 있다. 전화를 쓰는 고객들은 전화가 안전하다는 것을 믿고 통화한다. 전화 회사에 요금을 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팩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전화 회사들은 고객들의 통화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에셜론 시스템이 통화를 엿듣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하는 것이다.

    첩보는 중립적인 정보와는 다른 개념이다. 첩보의 힘은 매우 강력하고 위험하다. 첩보 수집력과 군사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개념이다. 이 둘 다 특정 국가나 집단이 다른 집단이나 국가의 희생을 애가로 한다. 상대방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이를 쳐부수는 데는 군사력보다도 정보력이 더욱 요긴하다. 에셜론 덕분에 미국은 놀랄만한 스파이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이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힘의 원천이다.

    한반도에도 정보 수집 기지는 있다

    한반도에서 미군이 정보를 수집하는 기지는 험프레이 캠프와 오산 공군 기지다. 물론 이 기지가 에셜론에 연계되어 있다는 공식적인 발표는 없다.

    하지만 에셜론이 미국의 정보수집망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험프레이 캠프는 미 8군과 서울 남부와 대전 북부의 미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본부다. 이 군사 시설은 폭이 1.6km 가량이고 길이는 3.2km에 달한다. 6·25 당시에 이 기지에는 허름한 군용 막사만 들어차 있었으나 이후 새 건물과 에어컨 시설까지 있는 최신 막사를 짓는 등 계속해서 시설을 개선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이 기지는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공사를 계속하고 있고 일부 대지는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파헤쳐진 상태다.

    험프레이 캠프는 서울 남쪽 61km 지점과 아산만 서쪽 12.8km 지점에 위치한다. 험프레이 캠프는 6·25 당시에는 평택 비행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 비행장은 일제시대 일본이 만들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에 미 공군은 해군소속 공군기와 614전술통제본부를 주둔시키기 위하여 이곳을 보수하고 새 활주로를 만들었다. 1961년에 이 비행장은 험프레이 캠프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이 근처에서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벤자민 K 험프레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은 이름이다. 험플레이 캠프는 1964년 이래로 미 8군의 독립적인 사령부로 활동해왔다. 이후 이 기지는 제 23보급기지로 재편되었다. 미군의 모든 재래식 무기와 군수품을 보관하는 군수창고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미 8군의 우유 공장이 세워졌다. 1974년에 19지원여단이 활동 가운데 하나로 험프레이 캠프는 미육군의 수비대로 다시 재편되었다. 1985년에는 수비대 사령부가 전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 정비되었다.

    오산의 제7 비행단은 복합 정보정찰 지상 센터다. 이곳은 오산과 평택시에 있는 험프레이 기지를 종합적으로 연결하여 전시 지휘.통제를 담당하는 종합센터로 비밀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중대한 지휘와 통제 지시를 내릴 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이곳은 적의 통제 지휘 본부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밤이건 낮이건 궂은 날이건 갠 날이건 거의 실시간으로 한반도를 감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상공에 떠 있는 U-2R 정찰기도 수집한 정보를 이 센터에 보낸다. 따라서 한반도 전역이 이 정찰 센터 범위 안에 들어간다. 이 센터에서 걸러지는 정보는 한반도 주둔 미 공군과 한국 공군, 미 태평양 함대가 공유한다.

    이 밖에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미국의 정보 수집 기지는 일본에 있다. 바로 미자와 공군 기지다. 미자와 공군기지는 일본 혼슈 북동쪽 오가와라호수에 있는 미자와 시에 있다. 이 미자와 기지 주변에는 4500명의 군인과 군속과 가족들을 합쳐 모두 15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10년 동안 무척 커졌다. 이 공군기지는 1945년 9월 미 육군 32기계공병단이 기지를 건설한 이래 일본 내 미군 기지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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