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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공개|1980년 전두환에게 보낸 카터 친서

“김대중 살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 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김대중 살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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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2000년 1월호에 이어 이번 호에 공개하는 미국무부 비밀전문은 카터 당시 미대통령이 김대중 현 대통령의 석방과 구명을 위해 박정희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김대중 대통령의 과거 성향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이 비밀전문에는 김일성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대화 내용, 북한이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을 일으킨 후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수뇌부의 비밀 회의록 전문,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과 윌리엄 포터 주한 미대사의 극비 면담록,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 집권 야망을 미국무부에 알린 사실 등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호에 실린 미국무부의 비밀전문은 미국의 정보공개법(FOIA, Freedom of Imformation Act)에 따라 올해초부터 비밀해제되기 시작한 방대한 비밀문건 가운데에서 한국 정치 지도자과 관련된 자료이다. 이 자료는 한국 현대사 자료 발굴을 하고 있는 워싱턴 소재 비영리재단 인터내셔널 센터의 KISON(Korea Information Service On Net) 프로젝트팀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 김대중 석방 및 구명에 관련된 미국의 압력 ]

다음은 카터 행정부 때인 1977년 4월26일 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김대중씨 석방건 등 당시 한미간 현안에 대한 카터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국무장관에 전한 비망록 형식의 1급 비밀(Top Secret/Sensitive) 문서 전문이다. ‘김대중 석방’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2쪽 짜리 1급 비밀 문서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원하는 조건을 미국이 받아들일 경우 김대중씨를 석방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고, 이 부분(본문 가운데 명조체)에는 카터 대통령이 직접 쓴 ‘그렇게 되면 좋겠다(will be glad to do so)’라는 자필 의견(notation)이 기록되어 있다.

TOP SECRET/SENSITIVE

1977년 4월26일



비망록 수신자: 국무부 장관

제목: 김대중 석방

대통령의 의견(notation)이 첨가된 다음 문건은, 석방 조건(김대중씨 석방: 역주)으로 박(박정희 대통령: 역주)의 면목을 세워주라는(credit) 대통령의 의지가 나타나 있음. 슈나이더(Sneider) 주한 미 대사에게도 통보하는 것이 적절할 것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첨부: 문안 2번

1급 비밀-Sensitive 1977년 4월26일

인권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태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최근 슈나이더 주한 미 대사에게 박 대통령의 심경을 전한 바 있음.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인권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바꾸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움. 김(김종필: 역주)에 따르면, 박(박정희: 역주)은 명동 사건 관련 구속자를 석방하는 것이 미국 압력 때문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음. 그렇게 되면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을 한층 더 강화시켜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지도 모름.

그러나 최근에 박을 면담한 전직 대사 함(함병춘 주미 대사: 역주)은 대통령이 명동 사건 문제에 대해 훨씬 유연해졌다고 전했음. 함은 또, 김(김대중: 역주)의 석방이 단지 미국이 압력을 가한 결과가 아니라 박 정권의 강고함(stre ngth)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방법을 서울이 찾을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박은 김대중을 석방할 것이라고 주장했음.


다음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내란죄로 구속 수감된 김대중씨의 구명을 위해 카터 대통령이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전문(2급 비밀, Secret)이다. 머스키 국무장관(Edmund S. Mus kie)은 카터의 친서 초안을 작성해 11월25일 백악관에 보냈고, 카터 대통령은 12월1일 외교적 관례를 감안해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한 국무부의 이 초안을 직접 수정했다.

카터는 이 수정본에서 김대중씨에 대한 형 선고 취소나 감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 한미 관계가 나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김대중씨에 대한 감형을 ‘강력하게 권한다(urge)’는 이례적인 표현(국무부 초안에는 ‘희망한다(hope)’로 되어 있음)을 동원할 정도로 김대중씨 구명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카터 대통령은 또한 국무부의 초안 표지 오른쪽 상단에 만년필 글씨로 ‘JC’라는 자신의 약명과 함께 ‘오늘 12월1일, 발송할 것’이라는 지시 사항을 따로 적어놓았다.

친서 가운데, 명조체는 카터 대통령이 직접 첨가해 넣은 부분이며, 괄호 안 내용은 원래 국무부 초안 사본에는 있었으나 카터 대통령이 삭제 또는 수정한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카터 대통령은 국무부 초안 중 12행 정도를 삭제했는데, 이 부분은 번역에서 제외했다.

경애하는 대통령 각하

11월10일자 각하의 친서를 잘 받았습니다. 양국간 우의와 동맹 관계가 앞으로도 더 강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머지 않아 각하께서는 김대중씨에 대해 형(사형)을 집행할 것인지, 아니면 군사 재판이 결정한 형량을 감형하거나 또는 형 취소 결정을 내릴 것인지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리시게 되리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번 서신에는 저의 사적인 견해를 담았습니다.

각하께서 주지하시는 대로, 글라이스틴 주한 대사가 귀 정부와 상의한 이후 미 정부는 본 사건이 최근 몇 달 간 재판에 계류중인 관계로 이에 대해 섣부르게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기 위해 지금까지 주의를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국제 관계에서 심각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미 양국의 중요한 안보 관계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이미 위험 수위에 달했습니다. 한국 야당 지도자들이 말 한마디 못한 채 투옥되거나 정상적인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국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차기 미 행정부가 (내 후임자가) 양국의 긍정적인 협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리라고는 믿고 있으나, 김대중씨 같은 주요 정치인을 처형하는 것은 한미 양국의 군사적·경제적 관계를 근본부터 크게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향후 수개월 간 경제와 안보 면에서 양국의 상호 관심사를 같이 추구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 중대한 시점에(워싱턴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시점에) 각하께서도 이런 일들이 위협받지 않기를(손상되지 않기를) 희망하시리라 믿습니다. (중략)

각하의 지도력은 오직 화해와 관용을 통해서만 공고해지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각하는 김대중씨가 각하의 경쟁자가 아니며 김대중씨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따라서 각하께서 김대중씨에 대해 감형 조치를 취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 결정은 오직 각하만이 하실 수 있는 결정이라는 것을 저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 이익과 한미 양국의 상호 관계를 위해, 저는 군사재판의 형 선고 취소나 감형 조치를 취해주실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희망합니다).

지미 카터


[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미 측에 밝힌 초기 이력(1970년) ]

김대중 의원이 신민당의 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은 1970년 9월이다. 같은 해 12월17일 포터 주한 대사가 국무부에 전송한 ‘김대중 이력’ 보고서에는 다음 해(1971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 후보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을 분석해놓은 부분이 들어 있다.

선거에서의 잠재 취약점

a. 초기 좌익 연루: 김대중은 1945년 해방 직후 좌파 정치에 연루되었음. 그러나 자세하게 들어가면 언론마다 보도 내용이 다름. 한 보고서에 의하면, 김은 1940년대 후반, 한때 친(親)공산주의자였던, 멤버들이 조직한 보도연맹에 대해 반(反) 공산주의 연설을 행한 바 있음. 이 점을 볼 때 김은 초기 한때 좌파에 경도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동시에 반공산주의로 빨리 넘어왔다는 사실도 지적해둠.

10일 전 김대중은 우리 대사관 관리에게 자신의 초기 활동에 대해 말해준 바 있음. 이에 따르면, 해방 후 그는 약 6개월 간 좌익 신민당에 관계했으나 내부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에 반대해 당을 떠났음. 김은 또 자신이 1946년 10월 목포 파출소 습격 사건에 참가했던 것으로 비난을 받고 있으나, 그는 그 사건이 일어난 날 장남을 출산하는 부인 옆에 같이 있었다고 주장했음.

김은 또 우리 대사관 관리에게 말하기를, 1950년 목포가 공산주의 점령하에 있을 때 공산당에 의해 감금되어 있었으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했음. 그는 공산당 패주로 구출되

었음. 미 육군 정보참모부가 한국 정보 계통 관리의 말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한국 정보 계통 인사들 사이에서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틀림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상황을 종합해볼 때, 초기에 좌익에 기울었다는 주장은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김대중에게 잠재적인 위해가 될 수 있음. 그러나 최소한 박 대통령도 똑같은 약점이 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이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부각시킬 것 같지는 않음.

b. 병역 미필 문제: 김대중의 출생 신고서에 따르면, 한국전 발발 시 그는 24세였으나 군에 징집되지 않았음. 김은 대사관 관리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단순히 소집되지 않았을 뿐이며, 따라서 징집 기피로 분류될 수는 없다고 함. 그러나 당시 부유층이나 유지급 가족의 자제가 병역 면제를 받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이를 반증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것임.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대중의 참모들이 준비한 김의 이력에 따르면, 김대중은 1950년 10월에는 ‘공민 해안경비대 전남 지부 부사령관’으로 되어 있음. 조사에 따르면 공민 해안 경비대는 지역 방위와 해안 경비를 임무로 하는 비공식적인 자원 단체임.


[ 정일권이 본 김대중의 두 가지 문제 ]

1971년 1월15일자 미 국무부의 비밀 대화 비망록은 3개월 후에 치러질 한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을 방문한 정일권 전 국무총리가 국무부 고위 관리들을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한국과 미 의회의 관계, 정일권의 방문 일정 가운데 하나인 미국 농업용 관개수로 시찰 및 세미나 참석 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 대한 평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일권은 김대중 후보를 명석하고 활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함. 그러나 김은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함. 1950년 한국전 때 김은 20세였으나 군 복무를 하지 않았음. 한국의 안전은 군에 의지하고 있음. “김이 어떻게 그들(군부)을 컨트롤하겠는가?” 더구나 김은 학자 같아서 이론과 원칙에만 치중하고 실제에는 취약함. “임금은 올리고 세금은 낮추면서 예산을 짜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할 수 있는가?” 한국은 ‘실무에 밝은 사람,’ 즉 박 대통령 같은 사람이 필요함. 정이 생각하기에 박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임.

박 대통령이 한번만 더 임기를 채우면 한국은 북한에 대해 우위에 설 것이며 통일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임. 박 대통령의 통일관이 김대중보다 훨씬 나음.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침투 행위를 중단하라, 그러면 교류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김은 반대로 지금 북한에 서신왕래, 인적 교류 등 모든 것을 열겠다는 것이다.’


정일권은 김대중 후보를 이렇게 평한 다음,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물어본다. 미국의 대답은 이렇다. “베스트 맨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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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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