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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김정일 쇼크’ 은둔자에서 슈퍼스타로

  • 신동아 특별취재반

‘김정일 쇼크’ 은둔자에서 슈퍼스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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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침없고 카랑카랑한 말투에 당당한 걸음걸이. 그리고 호탕한 김정일의 모습은 남한사람들에게 충격과 혼란으로 다가왔다. 그간 ‘위험한 지도자’로만 알려져 왔던 김정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TV에 비친 김정일은 과연 그의 참모습인가 아니면 계산된 연출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들을 적지 않게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김정일은 서방세계에 그저 ‘수수께끼의 인물’ 혹은 ‘위험한 인물’ 정도로 인식되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6월14일 2차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구라파에서 나를 은둔생활한다고 말한다는데, 나는 그동안 외국에도 많이 다녔다. 이번에 김대통령이 찾아오셔서 나를 은둔에서 해방시켰다”고 농담을 건네는 등 시종일관 여유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하는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고 활기차며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안주섭 대통령 경호실장과 악수하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면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좌중의 웃음을 유도했다.

그는 김대통령에게 “지금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김대통령께서 왜 방북했는지, 내가 왜 방북을 승낙했는지에 대해 의문 부호를 갖고 있다. 2박3일 동안 대답해줘야 한다”고 호기있게 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직접 찾아가 장시간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김대통령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연장자’인 김대통령에게 감동적인 방법으로 예우를 차렸고, ‘겸손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외신을 통해 세계에 알렸다.



한마디로 그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중국 장쩌민 주석과의 정상회담→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밟으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평양과 자신으로 돌려놓은 다음, 단번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분명히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세계 속의 김정일’이라는 이미지를 심으려 했고, 남한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하한가였던 자신의 주가를 일거에 상종가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김정일에 대한 세 가지 평가

그러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보여준 그의 모습이 참모습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 동안 너무 몰랐기 때문에 그의 새로운 모습이 더 크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인가? 우리는 그동안 김정일을 제대로 본 것일까, 아니면 허상을 보아온 것일까?

지금까지 남한에서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인상 비평의 기준으로 보면 대체로 세 갈래로 나타난다.

하나는 과거부터 김정일을 결론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보아온 ‘전통적인’ 평가다. 또 다른 한 갈래는 비록 일부의 주장이긴 하지만 ‘대단한 인물’로 보려는 듯한 평가다. 북한에서 발간한 ‘김정일 전기’ 류에 바탕하여 이른바 ‘내재적 연구’ 방식으로 북한의 선전물을 별 여과없이 답습한 책도 있다. 이러한 책들은 김정일에 대한 관점이 문제가 아니라, 대체로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검증이 안된 것들이다.

나머지 한 갈래는 김정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긍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다룬 것이다. 최근 들어 비교적 사실에 바탕한 책들이 나오면서 이러한 시도도 활발해지고 있는 편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에 대한 인상이 180도 바뀌었다고 해서 흥분할 필요도 없고, 또 괜히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말이다.

그는 김일성으로부터 수십 년 동안 ‘제왕학’을 습득해왔고, 20여년 간 북한 사회의 지도체제인 수령주의 하에서 독재자로 군림해왔다. 그의 말대로 ‘젊은 통치자’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경험을 겪어본 정치인이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감 있고 여유있는 태도나 유머 등이 없을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는 것이 잘못된 일일 것이다.

이와 동시에 TV에 비쳐진 몇몇 장면을 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굳히는 것 또한 경솔한 태도일 것이다.

어느 정치 지도자를 평가할 때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택하게 된다. 하나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평가, 또 하나는 ‘인간’으로서의 평가다. 말하자면 ‘정치인 김정일’과 ‘인간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 김정일’일 것이다. ‘인간 김정일’은 그의 사생활과 관련한 주변의 소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정치인 김정일’은 북한의 2300만 인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남북한과 동아시아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이 아마도 ‘정치인 김정일’의 측면일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 김정일’의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일의 정치’도 결국 ‘인간 김정일’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 정치인 김정일을 차분하게 바로 보고, 그가 그동안 해온 정치적 행위들을 바탕으로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주체사상의 유일한 해석권자

먼저 북한에서 김정일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에 대해 ‘북한식 관점’에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 동지’는 그 지위에서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현재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김정일을 수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나 ‘김정일 장군님’으로 부른다. 북한에서의 ‘공식 수령’은 아직도 김일성이다. 수령은 호칭이지 직함이 아니다. ‘어버이 수령’ 김일성의 직함은 당 총비서 겸 국가주석이었고, 김정일은 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을 수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북한 사람은 거의 없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적어도 겉으로는 김정일을 수령으로 받들어야 한다. 그게 제도화되어 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일성이 김정일이고, 김정일이 김일성이다’는 구호가 나왔다. 이는 김정일이 실질적인 수령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령’은 사상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유일한 지도적 권한을 갖는다. 스탈린의 이론에 따르면 수령은 ‘가장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상 분야의 리더십이 중요한데, 김정일은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의 ‘유일한 해석권자’로 되어 있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사상의 대가’처럼 행세하길 좋아했다. 72년 닉슨이 모택동을 만나 미·중간의 현안에 대해 언급하자, 모택동은 “그런 것은 총리(주은래)와 상의하시고, 우리는 철학이나 토론하자”고 말했다. 자신은 중국과 세계 인민의 사상적 지도자이지, 시시하게 현안문제를 말할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이 다 그랬고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은 82년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자신의 명의로 발표했고, 그 외 모든 노동당의 사상 관련 공식 문건들은 김정일의 이름으로만 발표되어야 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수령’으로 불린 사람은 두 명 있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이다. 스탈린 체제는 1953년에 끝났다. 그후 50년 가까이 지났지만 현재의 북한은 아직도 분명한 스탈린 체제다. 프랑스의 유명한 좌파 신문 ‘리베라시옹’은 지난 4월18일자 보도에서 평양 등지를 현지 취재해 북한사회를 ‘지구상 남아 있는 유일한 스탈린 체제, 공산주의의 쥬라기 공원’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으로 남북관계는 새로운 역사의 장(場)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는 분단 55년만의 일대 전환점이자 민족의 쾌거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김정일 체제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인 독재의 수령주의를 계속 고수하면서 경제발전과 외교 수립에 박차를 가할지, 아니면 노동당을 민주화시키고 적어도 스탈린 체제 이후의 소련 체제나 중국식으로 진입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면 정치인 김정일은 어떤 자격으로 북한을 다스리는가. 북한은 기본적으로 주체사상이 제시하는 지도 노선에 따라 당에서 모든 주요 정책이 결정되면, 국가가 이를 받아 집행하는 체제다. 즉 당은 지도기관, 국가는 집행기관인 것이다. 군도 당의 지도와 통제를 받는다. 따라서 당이 모든 주요 권한을 갖고 있다.

김정일은 당 총비서의 자격으로 북한을 다스린다. 다만 북한이 김일성 사망 후 체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면서 국방위원회에 국가 수호의 권한을 준 것일 뿐이다.

북한은 당과 사상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당과 사상을 장악해야만 1인자가 될 수 있다. 현재 북한에는 ‘주체사상의 유일한 해석권자’인 김정일 다음으로 당과 사상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이 없다. 오로지 1인자 김정일만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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