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문정인(文正仁) 통일연구원장(정치학)은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의 일원으로 2박3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15일 저녁 서울에 돌아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그냥 쉬도록 내버려둘 리 없다. 그는 저녁 내내 이리저리 불려다니다 방송국 심야토론 프로그램까지 마치고 새벽 1시가 훨씬 넘어서야 자택에 돌아왔다고 했다. 평소 왕성한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던 그도 이번에는 힘이 좀 부치는 듯했다.
“어젯밤도 두 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했어요. 오늘밤 안에는 ‘타임’지 기고문을 써야 하는데…”
그렇지만 문교수의 얼굴에는 2박3일간의 피로감을 압도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55년간의 분열과 대립 끝에 이뤄진 남북 정상의 만남,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다는 보람일까?
―먼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랄까 전반적인 소감을 말씀해주시지요.
“‘김대통령이 은둔에서 해방으로 나를 해방시켜줬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이 농반 진반으로 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북쪽이 이번에는 정말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모든 면에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공항 영접에서, 환영인파에서, 14일의 만찬과 15일의 오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에는 정말 뭔가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북측은 이번에 양보도 많이 했어요. 가령 공동성언 첫째 항에서 ‘외세배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간다’고 했는데, 이건 우리가 주장해온 당사자주의 원칙과 같은 겁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었고….”
‘성명’ 아니라 ‘선언’
―그렇지만 지금까지 북쪽에서 ‘자주’라는 용어는 주한미군 철수, 외세배격을 주장할 때 써온 말이지 않았나요?
“과거 북한이 주장해왔던 ‘외세 개입을 배제한 자주’라는 의미와 이번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어요.
두 번째 항목인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건 기본적인 철칙이지요. 북측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통일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를 말해줍니다.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양측의 입장을 수렴해보려는 의지가 없었어요.
이건 또 지난해 10월에 ‘동아일보’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서 내가 주장했던 내용과 부합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봐요. 양측이 합의를 이루는 쪽으로 수렴해가야지 줄곧 평행선만 그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게 그 때 내 주장이었는데, 이번에 그런 수렴점을 찾는 노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어요.
제가 듣기로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김대통령은 합의문에 ‘한반도에 이제는 전쟁의 공포를 없애야 하겠다’는 정도를 포함시키고 이산가족 상봉문제, 남북한 경제교류·협력을 위한 당국자회담, 이렇게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하고 계셨다고 해요.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까지도 선언문에 포함됐습니다.
또 한 가지,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하는 건 남북이 공동성명이 아니라 ‘선언’의 형태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는 점입니다. 북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선언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6·15 공동선언은 과거 7·4 공동성명이나 남북 기본합의서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지요. 전에는 항상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는 전제가 붙었는데 이번엔 남북 정상이 직접 합의한 거니까…. 이렇게 양 정상의 선언 형식으로 나왔다는 건 마치 3·1 독립선언처럼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겁니다.”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내용면에서 이번 공동선언을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앞으로 이번에 합의된 남북연합 문제를 다뤄가는 과정에서 남북 기본합의서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 모두 포함됩니다. 이산가족 상봉, 미전향 장기수 등 인도적 교류문제, 남북한 사회·문화교류, 경제교류·협력, 당국간 대화…, 모두 이번에 포함돼 있어요. 그러니까 과거에 했던 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던 거지요.
북한이 이번엔 자기들 고집을 접고 서로가 수렴점을 찾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 나는 이게 혁명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고려연방제에서 말하는 연방제나 우리측이 얘기하는 연합제라는 개념 자체가 좀 애매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남북 기본합의서에는 남과 북이 민족 내부간의 특수관계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남북연합’이란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 즉 ‘국가연합→연방제→완전한 통일’에서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국가연합이란 뭐냐, 이건 2국가 2정부 2체제를 의미해요.
반면에 북한에서 얘기하는 고려연방제라는 건 1국가 2정부 2체제입니다. 여기서 1국가라는 건 하나의 국가가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는다는 걸 의미해요.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할 경우에는 남이나 북이나 자기네 헌법에 위배됩니다. 양쪽 헌법 모두가 한반도 전역을 영토로 한다고 돼 있으니까.
그러니까 상호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국가 인정까지 포함된 걸로 보면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민족 내부의 모순적 문제 때문에 ‘국가연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남북연합’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남북연합 단계라는 건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관세동맹을 만들고, 공동시장을 만들고,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문화교류를 확대시키고, 이렇게 해나가면서 남과 북의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국민투표에 의해서 통일의 형태를 결정하는 단계가 됩니다.
이렇게 보면 북쪽에서 많이 양보했다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점진적 통일방안을 북쪽도 인정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공동선언의 첫 번째 ‘통일 원칙’ 항목과 관련해서, 앞으로 북한이 ‘자주’라는 용어를 과거처럼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연계시킬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됩니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한이 앞으로 민족 공조를 하는 데 있어 이제 더 이상 주한미군이 결정적인 걸림돌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번 평양 방문을 통해 느꼈다, 이게 우리의 공통적인 관측입니다.”
―그러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세요?
“그 문제를 지금 미리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당장은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협력하는 게 중요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서 과거처럼 주한미군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관찰이에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공동선언문의 1, 2항을 놓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한미관계에 대해서 불안해 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그런 불안감은 과거의 세력균형 결정론이 가져온 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안해 할 것은 없다고 봐요. 요즘 나오는 얘기로, 평양-베이징-모스크바를 잇는 북방 3각관계와 한·미·일의 남방 3각 관계가 대립하는 새로운 구도가 생겨나는 것 아니냐, 이런 얘기가 있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미국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입니다. 내가 보기에 북한이 여기에만 협조해주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건설적인 일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면 남북한간 민족 공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남북 두 정상은 이걸 분명하게 알아야 해요. 즉, 남북간 화해·협력·단결이라는 민족공조의 문제와,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조의 문제를 어떻게 잘 엮어 나가느냐, 이건 마치 마차의 수레바퀴같은 것인데 이걸 어떻게 잘 조율해가느냐, 이것이 두 정상이 안고 있는 공동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핵과 미사일 문제는 우리 정부의 소관사항이라기보다는 국제사회, 다시 말해 미국과 북한 사이의 어젠더로 계속 남는 겁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북한은 핵·미사일을 계속 대미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터이구요.
“그럴 가능성이 분명히 있지요. 북한에게 그것마저도 없다면 불안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 대통령이 하신 얘기, 민족공조와 국제공조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씀이 의미가 있어요. 이번에 이걸 김정일 위원장에게 많이 얘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대목만 해결된다면, 한반도 문제는 전향적으로,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앞으로도 난관이 많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남북경협이 크게 활성화되고, 우리가 한·미·일 3국 공조를 통해 북한에 대해서 과거처럼 채찍보다는 당근을 많이 쓰면 북한도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과거처럼 깡패국가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마침 최근 외신 중에, 북한이 미국에 대해서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거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나는 이렇게 봐요. 김정일 위원장이 장쩌민 주석을 만났다, 그러면 장쩌민은 클린턴과 그것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고 봐야죠. 또 푸틴이 평양에 간다, 그러면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이미 얘기가 돼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런 식의 국제공조를 통해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이라는 것이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전달하는 겁니다.
우리 대통령도 이번에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북쪽에서 반응은 없었지만, 분명히 전달했어요. 이렇게 보면 북쪽에게는 아직 카드가 있습니다. 그 카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결정되는데, 우리 정부가 여기에 주목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 중에 백악관 대변인 논평이 한번 나왔는데, ‘잘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는 식의 유보적인 태도였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미국 정치학자 한 사람이 도쿄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미국으로서는 입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얘기한 게 ‘동아일보’에 실리기도 했는데….
“소견이 좁은 사람들인데, 앞에서 말한대로 대량살상무기와 핵문제, 인권문제는 추후에 나올 문제이지요.”
―다시 묻습니다만, 앞으로 한미관계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십니까?
“나는 북한이 다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는 한 한미관계에는 문제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사실 우리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런 문제가 불거져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라고 볼 수 있어요.”
―일각에서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중국은 이득을 얻었고, 미국은 손해를 봤다고 얘기를 합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 나는 우리 대통령과 시각을 같이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 문제를 과거의 냉전적 사고의 틀 속에서 바라보거든요. 부정적인 제로섬 게임, 다시 말해 ‘네가 져야만 내가 이긴다’는 식의 개념으로만 봤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윈-윈(win-win)의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손해를 보고 중국은 이득을 봤다는 시각은 전략적 현실주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인데, 나는 오히려 이번 게임은 남북한과 주변 4강 모두가 다 이기는 윈-윈의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반도 주변정세를 미·중간의 헤게모니 쟁탈전, 이렇게 보는 시각도 엄연히 있지 않습니까?
“그건 현실주의적인 시각인데, 나는 그것도 좀 과도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제를 그런 시각으로 보면 실제로 문제가 그렇게 발전된다는 겁니다.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나는 차라리 신현실주의적 시각, 신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신현실주의라는 이론은 모든 걸 상대적인 게임에서 봅니다. 저 나라보다 우리가 더 얻느냐, 덜 얻느냐만 따지니까 국가간의 관계가 더 복잡해지고 갈등관계가 되기 쉽거든요. 그러지 말고 국가간의 관계를 포지티브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저 나라도 얻고 나도 얻는다, 이런 발상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고 주변국들과 얘기하면 우리가 주도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설득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를 설정해 나갈 수 있다, 이거지요?
“내가 항상 주장하는 게 역할분담입니다. 교류협력과 통일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한편 주한미군과 평화체제 전환문제는 4자 회담에서 다루고,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문제는 미국이 3국 공조에 의해서 하고. 이것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3두마차입니다.”
―그 세가지 중 양자 관계(bilateral relations)는 그럭저럭 해왔지만, 4자 회담은 지금까지 별 힘을 쓰지 못했지요.
“주한미군 문제가 본격 대두되면 4자회담도 활성화될 수 있어요. 앞으로 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교류협력이 확대되면 그것이 군사적 신뢰구축으로 이어지면서 남북한간에 평화선언도 나올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이런 모든 것을 위해서는 북한이 현 난국에서 웬만큼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도 좀 활성화되고, 자체 변화도 좀 있고, 자신감도 생기고, 덩샤오핑식의 그런 변화가 오도록 우리가 만들어주자는 게 김대통령의 생각이고, 나는 그게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바람직한 과정을 거쳐 통일도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입니다. 통일은 합의에 의한 통일이어야 하니까. 그 때까지 저쪽에 유일체제가 계속된다면 김정일의 결정으로 통일이 될 수도 있고…. 우리 남쪽은 다원주의 사회니까 선거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고. 저 쪽에서 큰 변화가 없는 한 우리 쪽에서 먼저 통일을 하자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이 왕래하고, 경제공동체가 되고, 이렇게 사실상의 통일만 이뤄지면 되는 거니까.”
옆에서 본 김정일
―이번에 남북간에 오고간 얘기 중에서 정부가 공개하기 곤란한 부분도 꽤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배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 특히 보수 진영을 어떻게 설득해 나가느냐가 향후 큰 숙제일 것 같습니다만.
“공동선언 1항에 있는 자주의 해석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고,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대목에 대해서도 큰 논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앞으로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이 많이 만나서 좋은 방안을 만들어보자고 한 겁니다. 이건 좋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걸 해놓았으니까 큰 의미가 있는 겁니다.”
―이번 정상회담 자체가 일반인들에겐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TV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그렇게 장시간 본 것도 처음이고, 그런 과정에서 인식상의 큰 변화 내지는 혼란감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옆에서 직접 보니까 어떻던가요?
“카리스마가 아주 강하고, 자신만만하고, 통솔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한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어느 정도냐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춘향전이 지금까지 남북 다 합해서 일곱 편이 나왔는데, 북에서 세 편, 남에서 네 편인데, 이번에 임권택 감독이 만들어서 칸느 영화제에 출품한 ‘춘향전’은 사실주의가 상당히 강한 영화더구만요’ 이러더라고….”
―그건 김위원장이 영화광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남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이번에 KBS와 ‘조선일보’는 북쪽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했었거든. 그런 터라 KBS 박권상 사장이 식사 때에 조금 씁쓸해 보이는 겁니다. ‘한겨레신문’ 최학래 사장은 헤드 테이블로 갔는데…. 그래서 내가 박사장도 이 쪽으로 오시라고 권했어요.
그래서 김대통령이 박사장을 KBS 사장이라고 소개하니까 김위원장이 ‘내가 KBS를 제일 많이 봅니다’ 이러는 겁니다. 내가 옆에서 ‘MBC와 SBS는 어떡하구요?’ 하고 물었더니 김위원장 말이 ‘내가 항상 관영방송을 보는 버릇이 있어서…’래요. 그게 15일 오찬장에서였어요.
사실 15일 오찬이 이번 정상회담의 클라이맥스였어요. 북측에서 권력서열 20위 안에 든 사람들은 모두 참석했거든. 조명록 총참모장을 비롯해서 현철해 총정치국 조직담당, 장성택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우리측 경제계 인사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얘기했고, 연형묵, 김용순 등 실세들은 모두 다 왔어요. 물론 14일 만찬에도 왔었지만 15일 오찬에는 핵심들이 모두 참석했어요.
김정일 위원장은 뛰어난 사람이에요. 15일 오찬장에서 조명록 총정치국장에게 인사말을 시켰거든. 내용은 간단해요. 6·25 50주년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남북이 군사적 대결상태를 하루 빨리 극복해서 평화의 길로 가자는 내용이었어요. 우리쪽에선 임동원 국정원장이 일어나서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양측의 최고 지도자 앞에서 각각 안보 책임자들이 일어나 ‘싸우지 말자’ ‘화해하자’는 말을 한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 아닙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이런 농담도 했어요. ‘오늘 아침에 국방위원회 회의를 열었는데 내가 국방위원회 위원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대남비방, 상호중상 하는 일 없도록 하라고 했더니 우리 국방위원들이 그럽디다. 남쪽이 하지 말아야 우리도 안할 거라고. 이거, 김대통령께서 알아서 조치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김위원장의 분위기를 조정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남북 안보책임자의 인사말
―우리 쪽에서 임동원 원장이 인사말을 한 건 현장에서 바로 결정된 겁니까?
“저 쪽에서 ‘우리는 조명록 차수가 나가니까 임동원 원장이 나오라’고 했던 거지요. 김위원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말하는 건 이런 식이에요. ‘우리가 전기를 달라는 건 그 쪽에 없는 것을 달라는 게 아니라 여분이 있으면 좀 달라는 것이다’ 이거에요.
북쪽에 가면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가 붙어 있는데, 운전수에서 안내원, 전체 사회가 이번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 혼신의 정성을 기울였어요. 왜, 우리 기업인들이 대체로 보수성향이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이 ‘나도 세뇌돼서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들 말했어요.
국가간의 정상회담이라는 게 사실 격식을 따지는 자리인데, 격의없이 돌아가면서 모두들 술 따르고, 재벌총수들도 김위원장에게 술 따르고 술 따라받고, 장성택 부부장이 재벌총수들 모시고 김위원장에게 가서 돌아가면서 술을 따랐습니다. 그런 분위기였으니, 엄청나게 혁명적이던 거지. 우리 대통령께서도 와인을 대여섯 잔이나 마셨으니….”
―14일 만찬 때에도 모두들 술을 꽤 마신 것 같더군요?
“14일도 그랬지만 15일 오찬 때는 더했다구요. 그러니까 서로들 술 따르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불렀지. 분위기가 완전히 잔치집이었으니까.”
―이번 정상회담에 대단한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로서는 그런 분위기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이해가 안되지요. ‘뜨거운 가슴’으로 이대로만 하면 잘 되는 거라고. 그런데 여기서 ‘냉철한 머리’를 갖고서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겠지…. 김대통령이 뛰어난 사람이에요. 말하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분이 말씀을 아끼면서 상대방 말을 듣고, 김정일 위원장이 말을 더 많이 하게 했어요. 단독 회담 때에는 우리 대통령이 말씀을 더 많이 했다는데, 공식석상에서는 김대통령이 말을 아끼시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말하는 걸 많이 들었지요.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김대통령에게 예우하는 것은 참 지극 정성이었어요. 14일 만찬장에서는 다른 테이블에 계신 이희호 여사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고…, 그걸 단순히 쇼맨십이라고 보기는 어렵지요. 그 양반이 얘기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게 그냥 빈 말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분명한 것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는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는 겁니다.”
―평화정착과 신뢰구축안을 공동선언에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1차 회담 때는 얘기가 나왔다가 2차 회담에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나중에 김위원장이 서울 올 때 평화선언을 하려고 아껴둔 것 아니냐, 그런 추측도 있었는데.
“공동선언의 2항 남북연합의 기본 잣대는 결국 남북 기본합의서의 실천입니다. 그러면 기본합의서의 기본은 무엇인가,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서 다룰 게 결국은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통령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하자고 하면 어려움이 많으니까 그런 식으로 다 포함되는 형식으로 한 겁니다.
사실 나는 그런 내용을 공동선언에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15일 오찬에서 임동원·조명록 두 사람이 서로 싸우지 말자고 말한 것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실천이 돼야 하겠지만.”
―김대통령이 나중에 회담과정에서 상당히 힘들었고, 때로는 절망감도 느꼈다고 말한 부분이 바로 북측의 양보를 얻어내는 문제였습니까?
“자주의 문제,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문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문제, 이런 걸 갖고서 ‘뭘 그걸 넣습니까’ 하는 것을 수용하도록 한 것을 두고 한 말씀이겠지.”
―아무튼 이제 남은 과제는 국보법이나 주한미군 문제 등에서 국내 보수진영을 어떻게 설득해가면서 컨센서스를 만들어 가느냐는 것일텐데, 국가보안법 문제만 해도 그것이 폐지될까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국보법 개정 문제는 노동당 규약에 나오는 남조선 적화통일이라는 북측의 기본 시각과 바로 맞물리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로 자민련 이완구 의원도 많이 고민하고 저와 많이 토론했어요. 그래서 김대통령이 ‘실천이 가능한 것부터 해나가면서 북이 변화를 보이면 사람들이 신뢰를 갖게 된다’고 계속 강조하는 겁니다. 김대통령은 바로 거기에 희망을 두고 있는 겁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날짜를 박아서 하자고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고….
지금까지 남북관계가 왜 이랬습니까? 주한미군 철수 문제, 정전협정 문제, 이렇게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했기 때문 아닙니까? 여기서 내가 놀라웠던 게, 김대중 김정일과 같은 실사구시의 실용주의자는 다시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은 호탕한 성격이고, 다른 한 사람은 꼼꼼한 사람인데, 이런 것도 조화가 맞았겠지만, 여기에 두 사람을 엮어주면서 수렴점을 찾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두 사람 모두 실사구시의 실용주의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두 사람이 왜 2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만났을까요? 훨씬 전에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건 역사를 보면 간단히 나와요. 80년대 말부터 독일 통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소련 해체 등을 보면서 북한은 엄청난 위기의식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무언가 해보려고 하던 차에 92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했고, 그러다가 핵문제가 나오면서 94년에 전쟁 위기를 겪었고,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3년상을 치렀어요. 그러고나서 이제 2년이 지난 겁니다.”
―북쪽 입장에서 보면 남북 기본합의서에 서명하던 92년 상황과 지금은 다르지요. 92년에는 북한이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꼈던 때라면, 지금은 극단적인 경제침체 상태에서 이제 최악의 상황은 겨우 면한 상태라고 할 수 있고, 92년에는 북한이 전반적으로 불리해진 상황에 대한 국면전환 차원에서 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남북 기본합의서에 서명하던 당시 북한이 냉전해체 과정에서 위협을 느꼈다고 보고 있는데, 잘 보세요, 그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이 남한의 전술 핵을 다 뺐습니다. 남북 기본합의서는 바로 그것에 대한 화답인 겁니다. 이게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의 지론인데, 사실 부시의 전술핵 철수가 상당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라는 상대는 우리가 뭔가를 보여주면 자기들도 반드시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이런 점을 너무 간과해왔어요”
―그렇다면, 북한의 정책결정 과정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라는 견해가 많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적어도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상당히 합리적이고, 솔직하고, 일이 성사되게 하는 방향으로 나왔으니까.”
―아무튼 북한이 정상회담의 시점으로서 왜 2000년 6월을 선택했는지, 해석이 가능할까요?
“나는 김대통령의 포용정책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요. 지속적인 포용정책이 저 쪽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서 내가 북쪽 참석자들에게 한 얘기가 김대중 정부가 있을 때 빨리 대화하라, 북한도 평행선만 그리는 논리는 이제 버려라, 당신네가 계속 그런 식이면 남쪽에서 당신들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 다 등 돌린다고 얘기했었어요. 나는 그런 얘기가 북측에게 상당히 먹혔다고 나름대로 믿고 싶습니다.”
김정일은 자기 자리에 있는 술병을 들어 따라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버티려면 끝까지 버텨야지, 경희가 먹인다고 드시면 됩니까?”
황비서는 하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입에 털어 넣었다. 놀랍게도 그 술은 맹물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정일이 맹물을 마시고 있다는 걸 아는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김정일은 잦은 비밀 연회 등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몇차례 들었다.
”개혁·개방이란 말은 이제 그만”
―이제 화제를 좀 돌려보지요. 요즘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해서 엄청나게 많은 안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북측으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아무래도 경제면에서 기대하는 게 많을 텐데, 실제로 현장에서 어떤 제안이 나왔습니까?
“그렇게 많이 나온 건 아니고, 14일 저녁에 우리측 대표단이 북측 사회단체 대표들을 만났는데, 경제 분야와 비경제 분야로 나눠서 했어요. 경제 분야에서는 재벌 회장들이 많은 얘기를 했는데, 우리측이 우선적으로 제기한 것이 제도정비 문제였고 북측도 여기에 동의를 했어요. 예컨대 이중과세 방지, 투자 보장, 결제 수단 확정 등 제도적 틀을 만드는 문제입니다. 구체적인 사업으로 대표적인 것은 경의선 복선화였어요. 김위원장이 식사 중에 그 얘기를 꺼내더군요”
―종합적으로 볼 때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전망은 어떻습니까?
“나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개방·개혁을 하지 않으면 이런 모든 게 안될 테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방·개혁이라는 표현을 가급적이면 쓰지 말자는 겁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래요. 교류·협력을 하다 보면 결국 개방이 될 것이고, 다른 한편 개혁의 핵심은 제도 개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류·협력을 해서 투자가 들어가는데, 열악한 제도 때문에 못 들어가게 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니에요? 결국 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지요. 중국의 덩샤오핑이 73년에 개방을 했다가 83년부터 개혁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도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자꾸만 개혁·개방과 북한이 자유화되는 것을 얘기하니까 오히려 더 안되는 겁니다. 지금은 북한이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교류·협력을 강화해서 개방·개혁을 해도 문제가 없고 잘될 것이다, 이런 확신을 갖게 해주자는 겁니다. 이런 식의 긍정적인 강화 전략으로 나가야지 자꾸만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보면 안됩니다. 내 생각엔 보수진영에 속하는 분들은 그런 점을 생각하시는 게 좋겠다고 봐요”
―사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사고의 틀 자체는 바꾸기가 힘들지 않겠어요?
“바뀐 상황이 사고의 틀을 바꿀 수 있지요.”
―정상회담과 관련해 앞에서 윈-윈 게임을 말하셨는데, 김위원장이나 김대통령이나 국내정치 차원에서도 윈-윈게임이 될 수 있을까요?
“대통령 말씀대로 쉬운 것,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나간다면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게 안되면 어려워지겠지요. 김대통령의 접근법은 기대를 낮추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가시화해나가면 정치적인 지지세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국민적 합의를 따라서 하나하나 해나가면 설령 국회에서 여당의 세력이 약하다고 해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김위원장의 핵심 브레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던가요? 에피소드라도 있으면 소개해주시지요.
“에피소드는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고, 하여튼 정중하게 우리를 환대해줬어요.”
―그들이 합리적인 대화 상대라는 느낌이 들던가요?
“물론이지요. 그런데 저 쪽 체제는 기본적으로 지도자가 결정하면 다 되는 겁니다. 총론만 잡히면 각론은 다 따라가게 돼 있어요.”
―그런 게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결정하면 나머지는 일사불란하게 따라간다는 식의 비민주적인 시스템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사실 현실세계에서 보편적인 합리라는 것은 참 찾아보기 힘들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게 합리성의 기본이라면, 북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에 합리성이 있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쪽의 유일지도 체제의 합리성과 우리 다원주의 체제의 합리성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어요. 상호 이득이 되는 윈-윈 게임으로 서로 얻을 게 많다면 큰 변화가 나올 수 있는 거지요.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는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민족주의
―앞서 오찬장의 분위기를 말씀하셨지만, 외국 사람들이 볼 때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남북한간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한국 민족주의, 나쁜 의미에서의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볼 가능성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남북이 화해·협력과정에서 ‘닫힌 민족주의’를 추구한다면 물론 걱정스럽겠지요. 그러나 이번 일은 분단 55년만에 만난 한 민족으로서 인지상정,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것을 폐쇄된 민족주의로 비하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봅니다.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그냥 ‘만남의 감격’이라고 하는 게 훨씬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또, 손님을 지극 정성으로 접대한다는 동양문화, 거기에 감격한 쪽은 감사를 표하는 것이고…. 이런 게 한국의 문화적인 특성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는 자주적인 통일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첫 날 공항에 도착할 때 김정일 위원장이 나타난 것.”
―우리 정부에서는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했지요?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올지는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김대통령에게도 ‘저 쪽에서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유보적으로 보고한 겁니다. 나온다고 했다가 만약 나오지 않으면 누가 그걸 책임질 겁니까? 아무튼 그때 김정일 위원장의 공항영접으로 깜짝 놀랐어요.
또 한 가지는 15일 오찬때 남북의 최고 안보책임자가 나와서 앞으론 싸우지 말자고 연설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상회담 전에 북측과 계속 조율이 있었겠지요? 어느 정도 큰 틀은 합의해 놓고서 평양에 간 것 아닙니까?
“내가 듣기로 그건 아니에요.”
―모든 합의를 현장에서 다 만들어낸 겁니까?
“협상과정에서 북쪽이 왜 의제를 사전에 정하지 말자고 나왔느냐, 그건 김정일 위원장에게 ‘이거 하십시오’ ‘저건 안됩니다’ 이렇게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걸 받아들인 게 이번 회담이 성공한 비결입니다. 우리 식대로 사전에 다 정해놓고 정상회담을 했더라면 이산가족 문제와 경협문제 정도로 그치고 말았을 겁니다.”
―지금 분위기로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올 가능성이 크지요?
“아, 공동선언에 기재돼 있는데….”
―문교수께서도 개인적으로 평생 남을 경험을 하신 겁니다?
“이번에 평양에서 나와 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가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아마 평양에서 생중계로 대담한 첫 케이스일 겁니다.”
시계를 보니 시침은 새벽 3시에 거의 도달해 있다. 더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이젠 인터뷰를 끝내야 한다. 주섬주섬 녹음기를 챙겨 일어나는데 문교수가 계속 말했다.
“15일 오찬 때 정말 굉장했어요. 김위원장이 박지원 문광부 장관을 지목해서 노래를 청했는데 박장관, 노래 정말 잘하시데…. 앵콜이 나와서 박장관이 또 한 곡을 부르고, 김정일 위원장 주변에서는 술잔들이 마구 돌아가고, 000사장은 술도 못하시는 양반이 몇 잔 드시고서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앉아 계시고, 다같이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데…”
그에겐 남북이 함께 어울렸던 그 날 낮의 흥분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하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중 누군들 그러지 않으랴. 그 열정이 남북을 진정한 화해로 이끌고 통일로 나아가는 기관차의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