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우리도 세금내고 의보증 갖고 싶다”

  • 장윤선 월간 '참여사회' 기자

    입력2006-10-04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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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수도권의 신흥 윤락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경기도 파주군 파주읍 연풍리, 속칭 ‘용주골’. 지난 1월 초 김강자 서울 종암경찰서장의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 선포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곳이다. 미아리 단속 때문에 매매춘 여성과 업주들이 대거 용주골로 몰려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미아리 텍사스촌을 떠난 그들은 지금 용주골로 몰려들고 있는가. 》
    “오빠, 여기…. 잠깐만.” 긴 머리, 짙은 속눈썹, 체리핑크 립스틱, 앞가슴이 깊게 팬 스카이블루 톱에 검정 나팔바지를 입은 여성이 지나던 남성을 잡아끈다. 남자가 인상을 쓰며 짜증스럽게 반응하자 이번엔 오렌지 톤의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은 롱다리의 여성이 다시 접근한다. “사람 잘못 봤다”는 식으로 일관하는 남성의 팔을 그녀들은 안간힘을 다해 잡아끌고 있다.

    하루 24시간 내내 청소년의 출입이 금지돼 있는 파주읍 연풍리 300번지 일대. 매매춘 지역으로 잘 알려진 용주골의 원래 이름은 ‘용지(龍池)’골. 파주공고 옆에 있는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레드 존(Red Zone)인 용주골의 정확한 옛이름은 ‘대추벌’. 1960년대 초반까지 이곳엔 대추나무숲이 울창했고, 마을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대추 수확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단다.

    이 지역 연풍리에 매매춘 지대가 형성된 것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주한미군 2사가 파주읍에 자리잡은 후 파주 지역엔 1개 사단병력의 미군들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과 클럽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당시 미군들을 상대로 한 기지촌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대추벌에 모여든 수천명의 매춘 여성들은 미군들과 살을 섞어가며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다 1970년대 초반 미군이 점차 파주를 떠나면서 기지촌은 쇠락했고, 통닭집이나 호프집 등으로 바뀌었다. 그후 파주에 미군보다 한국군의 주둔 비율이 높아지면서, 용주골은 한국군 대상 매매춘 지역으로 바뀌었고 2000년대가 된 지금은 수도권의 신흥 윤락 명소로 등극하고 있다.

    원룸주택 지은 매매춘 업소



    서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 문산 시내를 거쳐 광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발랑리를 지나 약간 번화한 시골동네가 나온다. 언뜻 보기에도 시골동네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반짝이’ 의류점과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코드점, 미용실 등이 즐비하다.

    붉은색의 청소년 출입금지 간판 레드 존(RED ZONE)을 뒤로 하고 걷다 보면 어느새 홍등가의 중심에 서게 된다. 겨우 한두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개미골목을 빠져나오면 곧장 논밭의 전원풍경이 펼쳐지고, 원룸빌딩 같은 건물이 마치 소규모 연립주택처럼 들어서 있다.

    최근 개미골목 수준의 게딱지 같은 작은 매매춘 업소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 대신 승용차로 오는 손님들과 접촉하기 위해 논밭 사이로 승용차 한대 정도 다닐 수 있는 길을 내고 건물을 새로 지어 이사했다.

    깔끔한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그곳은 마치 한 건축주가 동일한 설계도로 지은 아파트처럼 5층 높이에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페인트를 바르고 서 있다. 만일 1층에 빨간 통유리문만 없다면 매매춘 업소란 걸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초여름 태양이 뜨겁게 콘크리트 바닥을 달구던 어느 금요일 대낮, 10cm 높이의 검정 샌들을 신고 긴 머리를 틀어올린 20대 초반의 여성이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겅중겅중 뛰며 깔깔 웃어대는 그녀는 썬텐 중이라고 말한다.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던 서른살의 포주가 무심결에 한마디 던진다.

    “쟤도 더럽게 뚱뚱하다. 배 나온 것 좀 봐!”

    청주에서 카페를 하다 망해 대추벌로 돈 벌러 왔다는 김연주씨(가명·26). 그녀는 흘끗 포주의 눈치를 보며 “그래도 쟤 밤에는 없어. 낮에만 보여. 꽤 영업을 잘 한다나봐” 하며 훌라후프를 쥐고 논 옆으로 나가 열심히 돌린다. 이곳의 매춘 여성들도 뭇여성들과 다름없이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낮이라 손님도 없고….”

    푸념 섞인 서른살 여자 포주의 말을 옆에서 듣다 기회를 포착해 몇 마디 붙여보았다. 그녀는 이곳을 취재 못한 방송기자들이 편집장에게 깨지는 것을 많이 봤다면서 뭐든 묻는 말에 대답하겠다고 선뜻 나섰다. 더운 데 음료수나 한 잔 하라며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쥐어주기도 했다. 기자는 행여 포주의 마음이 변할세라 재빨리 물어보았다.

    ―요즘 경기는 어떻습니까?

    “IMF 직후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 주말엔 차가 안 빠질 정도예요.”

    ―파주는 군부대 지역인데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나요?

    “군인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민간인이 많지. 서울, 인천, 일산에서 3인 1조로 택시 타고 오는 사람이 많아요. 승용차로 오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애 하나 데리고는 장사 못하겠더라구.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린 얼마 전까지 법원리 20호에 있었는데, 여기 온 지는 3일밖에 안 됐어요. 법원리보다 여기가 낫다고 해서 왔는데….”

    매매춘여성의 월수입 1천만원 이상?

    파주에는 두 개의 커다란 매매춘 지대가 형성돼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법원리 20호다. 파주읍 법원리에 자리한 그곳은 용주골보다 소규모로 총 30개 업소에서 50여 명의 매매춘 여성이 영업하고 있다. 그녀는 파주에서만 줄곧 이 장사를 해왔다고 한다.

    지금은 6개월 전 결혼한 남편과 함께 종업원으로는 김연주씨(가명) 한 명, 밥하고 빨래하는 아주머니 한 명을 데리고 영업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녀는 용주골이 법원리 20호보다는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이리로 이사왔는데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 그러나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손님들이 꽤 많다고 전한다. 대개 영업 피크는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서울 등지에서 1차로 술을 마시고 대개 남자들끼리 이리로 몰려온다는 것.

    ―여기서는 술 안 팔아요?

    “여기는 미아리처럼 술 먹고, 쇼하고 지저분하게 노는 데가 아니에요. 여긴 깨끗하게 연애만 하는 데예요. 미아리하곤 영업방침이 다르지. 그리고 미아리는 ‘미짜’(미성년자)들이 많아. 왜냐하면 대개 얘들이 가출하고 기차역 화장실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하거든요. 숙식제공, 월수 200 보장. 혹해서 미아리로 가는데…, ‘미짜’들이 일을 알아요? 그러니까 일 가르쳐서 영업시키고, 도망가려고 하면 감금하고, 그러다 보면 폭행하고 싸우고. 그러니까 미아리에서 얘들이 못 버틴다니까. 그리고 여긴 기본이 6만원인데 업주랑 아가씨랑 계산해서 돈을 딱 나눠요. 우리는 방값 밥값 정도만 받는데, 미아리 업주들은 ‘미짜’한테 1만원만 떼어준대. 그러니 그게 임금착취지 뭐야.”

    ―김강자 서장의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 이후 미아리에 있던 매매춘 여성과 업주들이 대거 용주골로 몰려왔다는데….

    “누가 그래요? 여긴 미아리 아가씨들 없어요. 그리고 미아리 업주들은 여기서 영업 못할 걸요? 동네사람들이 대대로 영업하던 덴데 뭘. 그리고 미아리엔 ‘미짜’(미성년자)들이 많은데 여긴 ‘미짜’가 하나도 없어요. 미아리야 대개 어린것들이 멋모르고 처음 가는 데지만 여기는 아가씨들이 알고 찾아오는 데라 미아리처럼 감금하고 영업시키는 일도 없어요. 저 좋으면 와서 돈 버는 거고, 저 싫으면 딴 데로 떠나면 그만이지. 붙잡는 사람도 없고, 붙잡히는 사람도 없어요. 그리고 새로 아가씨가 오면 업주랑 같이 파출소에 가서 주민등록번호 대고, 지장 찍고, 다 신고하니까 나이며 고향이며 거기서 다 알지요.”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은 돈을 얼마나 벌어요?

    “글쎄…, 얼마나 벌 것 같아요? 내가 솔직히 말해주면 까무라칠 걸? 제일 못 버는 애들이 한 달에 1000만원 정도. 왜? 아닐 것 같아요? 그런데 뭐, 버는 만큼 씀씀이 큰 애도 있고, 정신 못차리는 것들은 ‘호빠’(호스트바)나 다니면서 물 쓰듯 돈 쓰고 그러는 거지 뭐. 그런데 알뜰한 애들도 많아요. 여기 있다고 다 사치 심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고 그러지는 않아요. 벌어서 동생들 학비 대고, 집에도 부치고, 집 사고, 차 산 아가씨도 많아요. 야무진 애들도 있고, 어영부영하는 애들도 있고. 사회에 나가도 마찬가지잖아요. 여기도 똑같아요.”

    ―그럼 업주는 얼마나 버는 거예요?

    “몰라요. 그건 묻지 말아요.”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는 함구해버렸다. 파리채를 휘두르며 이쯤 했으면 가라는 눈치를 준다.

    최고의 영업기술, 샤워

    현재 용주골에서 매매춘 영업을 할 수 있는 업소는 총 92개. 285명의 매매춘 여성이 연풍지소에 등록돼 있다. 김강자 서장의 단속 이전 이곳은 총 156개 업소에 370∼380명의 매매춘 여성이 영업중이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곳도 파주경찰서의 지휘 아래 ‘50일작전’이 펼쳐져 그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략 100여명의 매춘 여성이 줄어들었다는데도 여전히 이곳은 밤이 되면 불야성을 이룬다. 용주골에서 이렇게 매매춘이 활발한 이유는 뭘까? 파주경찰서 방범계 지도계장 강대순 경사의 말을 들어보자.

    “여기는 손님들이 인천, 서울, 의정부 등 외지에서 많이 옵니다. 주로 호기심으로 이 지역을 찾더라구요. 인천에서 온 한 손님은 용주골이 서비스가 좋아서 찾는다고 하데요. 그래서 그 서비스가 뭐냐고 물었더니 ‘샤워’를 시켜준대. 영업상술이겠죠 뭐.”

    1층 쇼윈도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가정집 같은 구조의 작은 방들이 있다. 3∼4평 크기인 작은 방에는 침대 하나, TV, 작은 옷장 그리고 샤워 꼭지만 있는 욕실이 있다. 매춘 여성의 개인 방이자 영업장이다. 매춘 여성들은 쇼윈도에 나와 있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주로 이 방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20대 초반 여성이 70%, 19∼20세 사이의 여성이 29%, 35세 이상의 업주 겸 매춘 여성이 1%인 이곳의 영업 패턴은 오로지 ‘연애’.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기본 30분짜리 쇼트타임과 긴 밤을 보내는 롱타임이 그것. 쇼트타임은 30분에 6만원, 롱타임은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0만∼40만원 선. 주로 쇼트타임을 요구하는 손님이 많다. 연풍지소에 출장 나온 한 경찰관에 따르면 매춘 여성들의 영업 서비스는 이렇다.

    “손님이 오면 먼저 샤워부터 싹 시켜준대요. 그리고 애무하고 성관계를 갖는데 딱 30분 안에 모든 게 끝난다고 하더군요. 긴 밤은, 뭐 초저녁부터 시작하면 웃돈을 주기도 하는데 대개는 부르는 게 값인 모양이더라구요. 돈이 없다 하면 깎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더 받기도 하고.”

    그에 따르면 용주골엔 특별한 사건사고는 별로 없지만, 자잘한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개는 이런 유형의 사고다.

    “대개 술 마시고 온 사람들과 업주가 시비 붙어 파출소까지 오게 되는데…, 남자들 중 술 마신 사람들은 사정이 더디게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윤락녀들은 30분 시간이 지나면 나가라 하고, 남자들은 사정도 안했는데 못 나간다 하고… 이러다 싸움이 나서 오는데, 대개 업주들이 ‘네 돈은 안 먹어 임마!’ 하고 돌려보내죠. 하지만 더러는 시비가 안 끝나 파출소까지 오게 되는데 업주들은 가능하면 파출소까지는 안 오려고 해요. 왜냐하면 손님이야 간단한 시비 수준이겠지만 업주들은 매매춘행위 금지에 관한 법에 걸려 세게 맞거든요. 영업정지 등. 다 불법이잖아요.”

    용주골엔 상호가 붙은 업소가 단 한 군데도 없다. 고작해야 신관3호, 신관 20호 하는 식이다. 모두 쇼윈도 앞에 증명사진 사이즈의 번호판만 붙여놓았을 뿐이다. 이에 대한 용주골 한 포주의 말.

    “윤락행위 자체가 불법인데, 무슨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겠어요. 그리고 여기는 단란주점이나 미아리 텍사스처럼 주류 판매를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성행위’만 하는 곳이에요. 다른 곳들과 달라요. 그러니까 딴 동네에서 영업하던 사람들은 여기서 적응을 못한다니깐.”

    성을 사고파는 장소. 따라서 이곳에선 오로지 쇼윈도에 나와 있는 여성이 상품의 전부일 뿐, 여타 다른 부수적 요소를 기대하기 곤란하다.

    현재 영업중인 92개 업소는 모두 무허가. 당연히 세금도 전혀 징수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업주와 매춘 여성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얼마나 될까? 계산해보자.

    A라는 여성이 있다고 치자. A의 쇼트 타임(30분)은 6만원, 초저녁부터 시작하는 롱타임은 40만원선. 롱타임은 쇼트타임 횟수를 모두 상계할 수 있어야 하니까 대개는 롱타임 가격과 쇼트타임 여러 번의 가격을 동일시할 수 있다. 그럼 A가 벌어들이는 하루 수입은 6만원×7회=42만원 꼴. 여기에 용주골 매매춘 여성의 수를 곱하면(42만원×285명) 1억1970만원. 여기에 30일을 곱하면 한 달에 35억91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산이다.

    이를 다시 285명으로 나눈다면 개인이 월평균 벌어들이는 소득은 1260만원꼴. 이렇게 번 돈을 업주와 매춘 여성이 대개 5:5(업주 주장 3:7, 경찰조사 5:5)로 나누니까 개인당 돌아가는 한 달 수익은 630만원꼴. 이 기준에 따른다면, 매춘 여성의 하루 일하는 시간은 210분(3시간 30분), 주간 단위로 계산하면 3시간 30분(1일)×주 6일=1260분(21시간).

    용주골에 있는 업소들은 대개 적게는 1명, 많게는 6명의 매춘 여성을 두고 영업한다. 6명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월평균 630만원×6명) 매달 3780만원이 업주의 몫이다. 여기에 그들이 내는 세금이란 각종 공과금(전기세, 수도세 등)이 전부. 매월 400만∼500만원 선의 건물 임대료를 내고 있지만 그들이 벌어들이는 연간 소득을 계산한다면 임대료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 계산은 최고의 소득을 전제로 계산했고, 월별, 일별 편차가 있을 테니 100% 들어맞을 수 없다. 그러나 대략의 수익을 꼽아본다면 이런 계산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쪽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그 지역을 사회문제로만 조명할 것이 아니라 과세지역으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용주골의 건물주들은 주로 서울 등지의 외지인. 건물만 지어놓고 업주들에게 임대한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의 한 업주는 “대개 이곳에 땅을 가진 사람들이 논을 갈아엎고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아요. 업주들이 땅을 갖고 여기서 직접 영업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요”라고 말한다.

    어슴프레 농촌에 석양이 물들면 논밭 저편의 시골동네에선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시골 아낙들은 머릿수건을 풀며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데 반해 용주골 여자들은 저녁 7시부터 활기를 찾는다. 헤어드라이어로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볼륨업 브라에 허리를 졸라 섹시한 이미지를 배가한다. 어깨엔 유리알 반짝이를 붙이고, 짙은 마스카라에 속눈썹을 붙여 다시 한번 시커멓게 눈가를 색칠한다. 텅텅 비어 파리 날리던 미용실은 혼잡해지고, 짙은 화장의 늘씬한 여성은 업소의 밤꽃으로 단장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대개 오후 4시에 기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부지런한 여성들은 오전에 일어나 에어로빅을 하거나 운전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밤늦게까지 영업하기 때문에 주로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잔다고. 일어나 씻고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영업 후엔 PC방으로

    영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자유. 근처 상점에 나가 쇼핑도 하고, 비디오를 빌려다 보거나, 노래방 혹은 PC방에서 게임이나 채팅을 즐긴다고. 그들에게 매매춘은 단지 직업일 뿐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즐기는 문화를 그들도 그대로 누리고 있었다.

    용주골의 영업시간은 몇시부터 몇시까지라고 정해지지 않았다. 대개 자기가 편한 시간을 선택해 일하면 된다. 이곳은 철저히 영업 결과에 따라 급여가 책정되기 때문에 더러는 매춘 여성들이 업주보다 더 영업에 열을 올린다. 그러다 때로는 호객행위로 단속을 받기도 한다고. 그렇게 호객행위로 인해 경찰 단속에 걸리면 구류형에 처해지는데 대략 업주는 6일, 매춘 여성은 3일을 살게 된다.

    매춘 여성들은 대개 생면부지의 여성이 접근하면 아래위로 쳐다보며 당장 육두문자를 토해낼 듯 경계심을 표한다. 말을 붙여도 천편일률적으로 “할 말 없어요” 하고 돌아서버린다. 파주경찰서 연풍지소의 도움을 받아 말머리를 터도 대개는 실패하고 만다.

    실개천 둑 옆에 위치한 업소에서 물끄러미 기자를 바라보는 5명의 여성. 그들을 향해 꾸벅 절을 하고 “몇 마디 할 수 있겠냐”며 문을 열었다. 그들은 근처 빵집에서 케이크를 배달해 먹으며 기자 일행에도 박카스 두 병을 선뜻 건넸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 5명이 옹기종기 앉아 담배 디스와 말보로를 나눠 피우며 자유롭게 떠들다 기자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편하게 세상 사는 얘기를 하자 해도 경계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저 때문에 분위기가 괜히 썰렁해졌나봐요?

    “기자들이 싫어요. 여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추측해서 쓰고, 사실대로 안 써요. 와서 제대로 묻지도 않고 함부로 지껄이니까요. 여기 있는 아가씨들 별로 말 안할 걸요?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많아서 그래요. 그런데 왜 여자기자가 왔어요? 이런 데는 대개….”

    까르르. 심각한 말끝에 터져나온 한마디가 나머지 여성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연신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꼬며 천장에 눈길을 주던 그녀는 “여기라고 별다른 사람이 사는 별천지는 아니다”고 못박았다. 다만 밖에 있는 사람들과 스스로 단절하고 살 뿐이지 언제든지 돈 벌면 밖으로 나가 자기세계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하루 일과 좀 얘기해주세요.

    “아침에 영업 끝나면 다 자요. 우리 집엔 거의 다 ‘잠순이’들만 있어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그냥 잠자고, 일어나 화장하고, 또 영업하고… 그런 식이죠 뭐.”

    다섯 명의 여성 중 가장 연장자라는 경상도 말씨의 20대 중반 여성은 대개 머리하고, 화장하는 데 시간을 쓸 뿐 다른 취미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옷도 연풍리에 있는 의류점에서 한 벌에 7만∼8만원 수준 하는 스판덱스의 투피스를 사 입는 것이 고작이라고. 하지만 이런 영업용 의복은 한 벌씩 사서 서로 바꿔 입을 뿐 특별히 돈을 들여 사지는 않는다고 한다. 주로 20대 초반인 이들은 여가에 주로 무슨 일을 하며 지낼까? 용주골 업소에 석유를 납품한다는 40대 남성은 이렇게 귀띔한다.

    “이곳 여자들은 대개 아침에 영업 끝내고 바로 잠자지 않고 PC방에 많이 가더라고요. 아침 8∼9시 사이 큰길에 있는 PC방에 가면 많이 만날 수 있어요. 또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도 많고요. 게으른 여자들은 잠만 퍼질러 자고, 부지런한 여자들은 이것저것 많이 하더군요.”

    피곤한 경찰의 업무

    이렇게 한 달 일하는 동안 본인이 원하면 업주와 협의해 휴가를 쓸 수 있다. 휴가 때는 주로 집을 방문하거나 친구 혹은 애인을 만난다고. 용주골 매춘 여성들은 용주골이 자유로워 일하기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군산 등지는 택시기사와 유착된 업주들이 매춘 여성을 감금해 임금을 착취하는 등 사고가 많은 데 비해, 용주골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챙겨가니 별 어려움 없이 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업소에서 4년씩 일하는 여성들도 많다고.

    현재 이 지역은 파주경찰서 연풍지소 관할 아래 있다. 연풍지소는 원래 연풍파출소였는데 지난 1월 구조조정 끝에 지소로 격하됐다는 것. 연풍지소장 김형수 경사는 귀양살이하는 심정으로 이곳에서 일한다고 털어놓았다.

    “원래 6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직원 셋이서 일을 다 해야 해요. 그래서 힘들다고 막 떠들었더니 의경 둘을 보내주더라고요. 그걸로도 안 돼 웅담파출소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기는 사실 굉장히 일하기 힘든 데예요. 솔직히 기회만 생기면 나가고 싶어요.”

    지원 나온 또 다른 경찰도 “밤이 되면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징그럽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막상 이곳을 없애면 생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사회범죄를 생각해보면, 이 사회의 ‘계륵’처럼 매매춘 지역을 존치시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물론 그들은 김강자 서장의 부임 이후 몰아친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 탓에 미성년자 귀가운동을 자체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79년생, 80년생, 81년생까지의 어린 윤락녀들을 대상으로 집에 서한을 발송했어요. 댁의 자녀가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으니 데려가라고. 한 100여통 보냈을 걸요? 그런데 직접 파출소로 찾아온 가정은 열 집 안팎이에요. 여기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가정의 자녀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용주골에서 일하면서 겪은 가슴아픈 사연 한 토막. 지금도 그는 그때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제주도가 고향인 스무살의 여자였어요. 부모님과 언니가 직접 올라왔는데 오자마자 언니는 흥분해서 따귀를 때리며 막 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가씨가 집에 안 가겠다는 거예요. 여기가 더 좋다고. 그렇게 막 싸우다 집으로 데려갔는데 도로 왔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참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잘하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설령 밖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미용사, 봉제기술사로 80만∼90만원 받아가면서는 살지 못해요. 살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또다시 이리로 들어오게 되던 걸요.”

    주간조사를 나가 직접 면접해보면 대부분 부모가 이혼하거나 아버지가 술 마시고 행패 부려 도저히 집에서는 살 수 없는 환경이라 뛰쳐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출해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곳으로 흘러든다는 것. 따라서 경찰이 단속을 한다고 이런 업소가 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게 경찰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특히 김경사는 “5000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는 윤락업소를 어떻게 없애겠느냐”며 차라리 다른 방편을 알아보는 게 낫겠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도 있었단다.

    “나이 어린 윤락녀에게 차비까지 줘서 집으로 가라고 했더니 사생활 침해하지 말라고 되레 큰소리를 쳐요. 그러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 참 경찰 노릇하기 어렵죠?”

    경찰을 대동해도 취재기간 내내 별로 협조적이지 않던 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좋게 쓸 거면 말해주고, 또 다른 왜곡을 일삼을 거라면 가버리라고 일단 협박(?)을 했다. 장초를 물고 곁눈질로 기자를 바라보던 그녀는 처음부터 도발적인 질문을 기자에게 던졌다.

    “나라에서 우리 다 구제해줄 수 있어요?”

    “…….”

    “이런 데는 사회의 필요악 아니에요? 윤락가 없애면 우리 같은 여자들 어디로 갈 것 같아요?”

    “글쎄, 더 음습한 곳으로?”

    “잘 아네. 그러면서 왜 없앤다고 그래. 아마 더 음성적인 데로 빠져들 거예요. 못하게 하니까 더 비인간적인 데서 월급 뜯겨가며 살게 될 거예요. 여기는 ‘미짜’만 아니면 커튼도 치지 않고 대놓고 영업할 수 있지만, 단속이 심해지면 그럴 수 있어요? …아, 왜 김강자, 그 여자가 ‘미짜’ 없앤 건 잘한 일이에요. 우리도 ‘미짜’들 영업하는 거 원하지 않아요. 전국에 이런 데가 50군데도 넘어요. 내가 알기론 아마 ‘시’자 붙은 도시엔 이런 사창가가 하나씩은 다 있을 거예요. 아가씨도 1만명은 훨씬 넘을 거예요. 전국적으로 아가씨들이 한 파수씩 옮겨가면서 영업하는데 이런 데 없애면 다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우선 우리나라 성범죄가 늘어날 거고, 아니 총각들은 어떻게 해서든 발산을 해야 하는데 이런 데가 없으면 어디 가서 풀겠어. 안 그래요? 둘째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는 거고, 우리 다 실업자 되는 거잖아요. 뚜렷한 대책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없애자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는 거라고요.”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말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매춘 이력이 꽤 되는지 자신들의 처우 문제부터 공창제도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마치 매매춘 지역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투였다.

    술 취한 남자들 힘들어

    “내가 ‘공창’ 하자는 말은 못하겠어요. 그런데 우리도 이게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 특히 언론은 불쌍한 것들, 혹은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우리를 바라봐요. 물론 여자가 몸을 파는 게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같은 여자들이 업주한테 임금 착취받지 않게 노조도 만들게 해주고―외국은 그렇게 한다던데, 휴가도 지정해주고, 의료보험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해달란 말이에요. 지역마다 나라에서 가구수도 정해 이 지역엔 몇 개 이상의 집이 영업할 수 없다 하는 식으로 제도도 만들고, 무허가라고 보건증도 안 주고 형식적으로 검사하지 말고 신경써서 진료받을 수 있게 대책마련을 해주고 말이야.”

    ‘노동자로 인정하라’는 그녀의 요구는 생활에서 불거진 불만과 갈등이 응결돼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 대개 중학교 때 가출해 변변한 학력 없이 매매춘 지역을 떠돌다 특별히 모아둔 돈 없이 20대 중반이 되면 정말 할 것이라곤 이것뿐이라면서 한숨짓는다. 누군들 학력이 있으면, 모은 돈이 있으면 원하지 않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며 살고 싶겠냐고 물기어린 눈으로 기자를 바라봤다.

    “공장에서 일하지, 식당에라도 나가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거예요. 그런데 몸 조금 고생시켜 큰돈 만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공장이나 식당을 택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요즘 대학 나온 여자들도 우리만큼 벌기 어려울 걸요? 몸은 고되도 이게 낫더라고.”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쉽게 쉽게’ 돈 벌려는 파렴치한 인간들이라고 돌팔매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술 취한 남자들과 몸을 섞으며 당하는 수모를 직접 와서 목격한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일하면서 제일 힘든 게 뭐예요?

    “술 취한 남자들 상대하는 거요. 행패부리고 안 가. (웃음) 돈 주고 아가씨 샀으니까 하면서 함부로 대하는 남자들 많아요. 거칠게 다루고, 때리고, 욕하고, 무시하고. 그런 사람 많아요. 우리가 어떤 손님들 좋아하는지 알아요? 막노동자. 인간적이거든. 그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 가서 여자랑 자보겠어요. 이런 데 와서 돈이나 주니까 자기를 상대해준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편하게 대해줘요. 제일 싫어하는 손님은? 변호사, 의사, 검사들. 이른바 중산층 이상의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더해요. 여기도 아주 고위공직자는 아니어도 꽤 있는 사람들이 오는데 보면 한결같이 뒤로 호박씨 까는 사람들이야. 특히 의사들은 자기들이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주 말하기가 곤란할 정도예요.”

    서른셋이 되면 더 할 수 없는 일이 ‘이 짓’이라는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후회는 없지만 오래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1∼2년씩 매매춘 지역을 떠돌다 보면 그동안 투자한 시간 때문에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세월이 가는 게 현실이라고.

    “오래 못하죠. 그만두면…, 결혼하고 싶어요. 애인은? 없는 애들 없을 걸요. 대부분 고향 오빠나 친구들인데, 여기서 이런 일 하는지는 몰라요. 어디서 살고 싶냐고요? 전… 제가 한번도 일하지 않은 동네요. 그게 아마 고향일 거예요. 고향에선 아무도 이런 일 하지 않으니까. 전라도에 가면 경상도 아가씨가 많고, 경상도에 가면 전라도 아가씨가 많은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애인이 알면 뭐라 하지 않겠냐고요? 결혼은 정신이 문제지, 몸이 문제는 아니잖아요. 정말 사랑한다면….”

    착한 남자, 이해심이 깊은 남자, 감싸주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남자, 돈 많은 남자. 용주골에서 만난 매춘 여성들이 결혼하고 싶은 남자의 조건이다. 1년 후에서 7년 후까지 각자 결혼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들의 학창시절 꿈은 대부분 간호사, 연예인, 교사 등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몸 파는 처녀가 된 것.

    김강자 서장의 ‘전쟁선포’ 이후 수많은 매춘 여성이 대거 용주골로 몰려들었다는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니었다. 용주골에선 미아리 출신 매매춘 여성과 업주를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온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한 매춘 여성의 말처럼 한 파수가 지나면 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좀더 나은 조건을 찾아…. 그렇다면 단속을 피해 미아리 텍사스를 빠져나온 소위 ‘미짜’들은 어디로 갔을까? 용주골 터줏대감의 말을 들어보자.

    “미아리 애들 찾아왔다면 여긴 잘못 짚은 거요. 제2의 강남이라는 일산 신도시 ‘여관바리’(전화로 매춘 여성을 불러주는 것)들을 찾아봐요. 요즘 일산에 ‘여관바리’들이 부쩍 늘었대. 그것도 아니라면 보도방, 스포츠 마사지실, 안마시술소. 미아리 ‘미짜’들 여기 못 와요. 대부분 그리로 풀렸을 거요. 일산 신도시 그랜드마트 뒤에 가서 차 대놓고 딱 24시간만 대기해봐요. 금방 알 수 있을 거유. 진짜 취재는 거기부터 시작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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