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장 교수는 ‘신동아’ 2000년 1월호에서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어서 3월호에 자신이 터득한 영어학습 방법론을 일부 공개해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재영(在英) 신학자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앞서 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인이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듣고 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공개했다.》
이제 우리 민족이 웅비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인 영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필자가 나름대로 검증하고 체계화한 영어의 듣기와 발음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는 이 방법론이 이제까지 우리의 영어 학습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즉 영어와 한국어 소리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필자는 이것을 학술적으로도 정리하기 위해 응용언어학 과정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미 결론은 주어져 있고, 연습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 급한 상황에 3년여의 시간을 검증을 위해 투자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읽고 익혀서 나름대로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미리 방법론을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방향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터득하는 것이 우리의 시급한 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 국민이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영어에 끌려다닐 필요는 더욱 없다.
영어교육의 방향
얼마 전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 영어문제집을 보내 왔다. 문제집을 훑어 보던 필자의 딸이 “아빠, 한국 중학생들은 이렇게 stupid해요?” 하고 물었다. 문제 가운데 “Is that building tall?”(저 건물은 높습니까?) 하는 질문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딸 아이의 말인즉, 건물을 보면서 건물이 높은지 낮은지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물론 한국의 중학생이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영어 교재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어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이 수준 낮은 것일 뿐이다.
이런 유사한 예는 성인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다. 얼마 전 필자가 한국을 잠시 방문해 있는 동안 교육방송의 영어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 날의 주제는 ‘전화받기(Taking a message)’였다. 필자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얼굴이 뜨거워졌는데, 그것은 그 프로그램에 나온 젊은 미국인 친구의 설명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전화를 받을 때에는 할 말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겠고, 메모지도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아무리 영어를 가르치는 방송이라지만 한국의 성인들에게 전화 받는 방법까지 가르칠 필요가 있나. 한심하구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 다음에 또 다른 외국인 친구가 한국 대학생 영어 동아리를 만나면서, “Let’s meet these bright students.”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전화 받는 연습을 했다. 전화로 “누구 있어요, 없어요” 하는 간단한 대화를 영어로 할 줄 안다고 해서 한국 대학생이 똑똑하다는 평가를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한국 대학생들이나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화가 났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방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학습하는 데에는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하겠지만 자존심까지 버려가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영어를 터득하려는 것은 영어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다. 영어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 현실이 그런 지경이 되기까지에는 영어 교육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영어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주체적으로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을 위한 영어학습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이 나와야 한다.
영어학습, 무엇이 문제인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영어학습에 무엇이 문제인지 또는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지를 간략하게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문제 해결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듣기와 말하기일 것이다. 외국인이 하는 영어를 알아 듣고,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소리에 담아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잘 안된다. 한국인들이 영어 듣기와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왜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가?
한국인이 영어를 듣고 말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한국어의 소리와 영어의 소리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귀에 들리는 영어 소리들이 낯선 소리들이고, 내가 발음하려는 영어 소리들이 한국어 소리들과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이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듣기 및 발음 교육은 이런 상식적인 사실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영어와 한국어 소리에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한국인이 영어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구명하지 못했다. 여기에 바로 한국 영어교육의 실패요인이 있는 것이다.
영어 소리를 듣고서 따라 하라고만 가르쳤지, 어떻게 따라 하면 되는지 방법을 설명해 주지 못했다. 무조건 따라서 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본토 발음을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주먹구구식 교육을 했다. 그러니 귀가 트일 까닭이 없고 발음이 좋아질 리가 없다. 그렇게 시키는대로 열심히 해도 되지 않으니까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실마리는 다음 두 가지를 구명하는 데에 달려있다. 첫째, 영어와 한국어 소리에 차이가 나는 이유, 둘째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영어와 한국어의 소리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혀를 굴리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입 안에서 혀가 움직이는 길이 다르다. 따라서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어의 혀가 움직이는 길과 영어의 혀가 움직이는 길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르치면 된다.
혀의 길을 알아야 한다
영어의 소리 세계로 들어가고 본토 발음을 익히는 지름길은 혀의 길, 즉 혀가 움직이는 길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혀를 굴릴 수 있다. 기존 영어 음성학 교재나 기타 영어 발음교재의 문제점은 우리에게 바로 이 혀의 길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소리를 만드는 기관을 발성기관(spee ch organ)이라고 한다. 입술, 이, 혀, 성대, 폐 및 턱 등이 발성기관이다. 영미인들의 발성기관이나 한국인들의 발성기관이나 차이가 없다. 다만 소리를 만드느라 발성기관을 움직이고 사용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한국인이나 영미인이나 발성기관은 같지만, 조음구조(articulatory setting)가 다르다. 조음, 즉 소리를 만들기 위하여 발성기관을 움직이고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한국 아이는 본토 영어를 발음한다. 선천적으로 조음구조가 달라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영어를 조음하기 편한 구조로 발성기관이 연습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도 이것을 연습하기만 하면 본토 발음을 할 수 있다. 영어의 조음구조를 알아내고 혀를 굴리는 연습을 하면 본토 발음을 낼 수 있다.
기존 영어 음성학에 따른 설명은 한국인에게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 음성학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영어를 발음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영어 음성학 교재들을 보면 개별 모음과 자음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모음을 분류하는 기준은 혀의 높이다. 즉 발음할 때 혀의 가장 높은 부위가 어디인가를 기준으로 모음을 분류하고 설명한다. 자음은 ① 성대 진동의 여부에 따라 ② 조음 지점에 따라 ③ 조음방식에 따라서 분류하고 설명한다. 유성음이냐 무성음이냐, 파열음이냐 마찰음이냐, 양순음이냐 순치음이냐 하는 설명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영어 자체를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정확한 것이지만, 한국인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영어 음성학 책을 읽고 발음이 좋아졌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영어의 소리와 발음을 연구하는 영어 음성학이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어 음성학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혀가 움직이는 길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혀의 높이를 기준으로 모음을 설명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별의미가 없다. 자음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혀 끝이 입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해주는 것이다.
발음할 때의 입 모양, 호흡 또는 발성기법 등도 영어 발음을 익힐 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입 모양이나 입술 움직임 등은 잘 알아두어야 한다. 발성기법도 도움이 된다.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호흡법이나 발성법을 배워서 실제 발성에 도움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한국인이 영어 소리를 익히는데 있어 발성법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아랫배로부터 소리를 끌어 올려 발음한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곤란하다.
혀가 평상시 쉬는 위치가 다르다
한국어와 영어는 평상시에 혀가 쉬는 위치가 다르다. 평상시 혀가 쉬는 위치를 우리는 혀의 기본 위치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기본 위치에서 발음이 시작된다. 혀가 입 안을 돌면서 발음을 한 다음에는 다시 쉬기 위해서 기본 위치로 되돌아온다. 한국어에서 혀가 쉴 때 혀 끝은 윗니-위잇몸에 붙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혀 끝이 어디에 붙어 있나 확인해 보라. 영어에서 혀가 쉴 때 혀 끝의 위치는 아랫니-아래 잇몸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좁은 입 안이지만 혀 끝이 쉬는 위치를 한국어의 위치에서 영어의 위치로 옮기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상시 혀 끝을 아래에 붙이고 있어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혀 끝을 옮겨도, 어느샌가 혀 끝은 위로 올라가 붙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가 10년 세월이 걸려 미국에서 제작된 발음연습 테이프를 가지고 연습하고, AFKN이나 다른 영어 방송들을 듣고 연습한 다음에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음성학 책을 보고 터득한 것이 아니고, 누구 이론을 배워 터득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근거없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혀 끝의 기본 위치의 차이가 발음의 차이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것을 연습하면 (모방이 아닌) 조음구조의 변경을 통한 본토 발음을 익힐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2년여에 걸쳐 올라가는 혀 끝을 아래에 붙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것은 태어나서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습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던 혀의 근육, 입의 근육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이 뻐근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연습한 결과, 지금은 혀 끝을 위에 붙이고 있어도 편하고, 아래에 붙이고 있어도 편하다. 혀 끝이 저절로 위로 올라가 붙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이 누구나 이런 연습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혀 끝을 아래에 붙이는 연습이 새로운 학습의 시작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연습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조음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훌륭한 영어 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필자는 ‘신동아’ 3월호에서 본토 리듬을 익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어의 경우 말을 하려고 할 때 혀 끝은 쉬는 위치에서 떨어져 입안에 평평하게 있게 된다(그림 참조). 이것을 혀의 준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이제부터 말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혀 끝이 쉬는 위치 혹은 기본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발음을 하기 위한 준비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말을 마친 다음에는 다시 기본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에는 말을 하려고 할 때 혀 끝이 움직이지 않고 기본 위치에 그대로 있다. 다만 (그림에서와 같이) 턱이 조금 아래로 내려가 입술이 약간 벌어져 발음하기 편한 모양을 가지게 된다. 영어의 모든 발음은 혀 끝이 기본 위치에서 출발하고, 입 안을 돌면서 소리를 만든 다음, 다시 기본 위치로 돌아온다.
혀 끝이 움직이는 길 : 한국어
이제 한국어에서 혀 끝이 움직이는 길과 영어에서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의 차이를 설명해 보자.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을 연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연습을 자동차 운전을 배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동차 운전을 처음 배울 때, 우리는 브레이크, 가속페달, 그리고 기어 변속 등을 이론으로 먼저 배운다. 기어를 중립에서 1단으로 넣을 때는 오른 발은 어디에 있어야 하고 왼발은 어디에 있어야 한다는 등 복잡한 절차를 배운다. 차가 움직이는 상태에서 기어를 2단, 3단으로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물론 처음에는 배운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론과 몸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사용하고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 연습을 하는 동안 차츰 운전 기술이 내 몸의 일부가 되고 습관이 된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이론은 사라지고 본능적으로 또한 습관적으로 편안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영어에서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을 익히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한국어에서 혀 끝을 움직이는 길에 습관이 들어 있고 길들어 있는 한국 사람이 영어에서 혀 끝을 움직이는 길을 따라 혀를 움직이려면 처음에는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한 마디로 혀가 잘 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설명하는대로 따라 하다 보면 영어를 발음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미숙하다 할지라도, 이론을 알고 원리를 알고 있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혀가 움직이는 길을 모르면 영어 발음 연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발음이 제대로 되는 것인지 자신이 없게 된다. 원리를 알고, 이치를 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어를 발음할 때 혀 끝은 기본 위치에서 떨어져 준비 위치로 간다. 한국어에서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은 준비 위치와 기본 위치 사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한국어의 거의 대부분의 소리들은 혀 끝이 입 안의 공간과 윗니-위잇몸 사이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동하면서 조음된다. 혀 끝이 아랫니와 아래 잇몸 쪽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예는 거의 드물다. 따라서 한국어의 조음지점은 입 안의 앞쪽 상단이 된다.
혀 끝이 움직이는 길 : 영어
영어에서는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이 한국어와 다르다. 영어에서 혀 끝이 이동하는 위치는 네 곳이다. 이 네 위치를 움직이면서 영어의 모든 소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필자는 영어의 모음과 자음을 한데 묶어서 이렇게 네 위치를 중심으로 분류하고 설명한다. 자음도 혀 끝의 위치를 중심으로 분류하고 설명한다. 이것이 기존 영어 음성학 교재들이나 발음 교재들과 다른 점이다. 필자는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을 알고 발음을 연습한다면 한국인의 발음과 듣기 학습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혀 끝의 움직임과 함께 앞에서 언급한 영어 음성학의 전통적인 분류 방식 가운데 성대 진동 여부나 조음 방식 등은 참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f/나 /v/를 설명할 때, 혀 끝은 기본 위치에 두어야 한다는 설명과 더불어, 윗니로 아래 입술을 가볍게 무는 식으로 발음해야 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물론 /f/는 무성음이요, /v/는 유성음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영어에서 혀 끝이 놓이는 위치는 다음 네 위치다.
제1 위치: 아랫니 뒤와 아래 잇몸 사이
제2 위치: 앞니 사이
제3 위치: 입 안 공간
제4 위치: 위 잇몸
ⓐ 혀 끝의 제1 위치: 아랫니-아래 잇몸
영어에서 혀 끝이 놓이는 제1 위치는 아랫니와 아래 잇몸 사이다. 혀 끝은 아랫니와 잇몸 사이를 움직이는 동안 떨어지면 안된다. (그림 참조) 혀가 쉬는 위치, 즉 혀 끝의 기본 위치도 제1 위치의 일부에 해당한다. 이 위치를 움직이면서 발음되는 모음과 자음들은 다음과 같다.
●모음: /r/ 소리가 포함되지 않는 모든 모음. 즉 / r/ 계열이 아닌 모음 전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i e æ a u i: : u: ai ei oi au ou) (모음 종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다. 이 모음들은 한국인 영어학습자들을 염두에 두고 필자가 임의로 정한 것이다.)
●자음: p b k g f v s z m h j w
위의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모든 음절(syllable)은 그림에서와 같이 혀 끝이 아랫니와 잇몸 사이를 이동하면서 발음된다. 이 때 혀 끝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국어 발음은 영어에서와 같이 혀 끝이 아래에 붙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발음하기 쉽지 않다. 한국인들의 혀 끝은 자꾸만 들려 입 안의 공간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한국어에서 혀 끝이 움직이는 영역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혀 끝이 제1 위치를 움직이며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다음의 음절들을 발음해 보라. pig b s k m giv fiks veis sai zig mis him jes weik.
ⓑ 혀 끝의 제2 위치 : 앞니 사이
혀 끝이 앞니 사이에 놓여 발음되는 소리는 자음 /θ /와 자음 /ð/ 두 소리이다(그림 참조). 모든 발음은 혀 끝이 기본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기본위치는 제1 위치에 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혀 끝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제1 위치)→제2 위치→제1 위치 또는 제1 위치→제2 위치 (제1 위치).
θik, ðis 등의 발음이 첫 번째에 해당하고, mi 의 발음이 두 번째에 해당한다.
ⓒ 혀끝의 제3 위치: 입 안 공간
혀끝이 입 안의 공간에 떠서 발음되는 소리들은 자음 /r/, 자음 /∫/, 그리고 자음 / /의 세 소리다. 혀끝 부분은 입 안의 어느 부위에도 닿지 않아야 한다(그림 참조). 혀 끝은 제3 위치→제1 위치, 제3 위치→제2 위치, 제3 위치→제4 위치 또는 제1 위치→제3 위치로 움직이며 발음한다. 다음 음절들이 이에 해당한다: risk, ∫u:, ri:θ , ∫ed, s∂:r, pu∫. 모든 발음이 끝난 다음에는 혀 끝이 기본 위치로 돌아온다.
ⓓ 혀끝의 제4 위치 : 위 잇몸
혀끝이 위 잇몸에 붙었다 떨어지며 발음되는 소리들은 다음의 자음들이다. (t d n l)
이 자음들을 발음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혀끝이 윗니에 전혀 닿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혀 끝의 움직임은 제4 위치→제1 위치, 제1 위치→제4 위치가 기본이다. 이에 해당하는 음절들은 다음과 같다. ti:, taim, pit, fi:l.
ⓔ 혀끝의 위치 변화
모음과 자음이 결합하여 음절을 이룬다. 영어 음절을 발음할 때, 모음과 자음을 발음하는 혀끝의 위치가 변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이것은 모음이 자음의 영향을 받고, 자음이 모음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 /t/ /e/ /n/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면, 혀끝이 놓이는 위치는 각각 제4 위치, 제1 위치, 제4 위치다. 그러나 /ten/을 한 소리로 발음하면 혀 끝이 제4 위치→제1 위치→제4 위치로 이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혀 끝은 제4 위치에서 떨어진 다음 곧바로 다시 제4 위치로 올라간다. 왜냐하면 혀 끝이 /e/를 발음하기 위해 제1 위치까지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 기존 발음교재들의 문제점
기존 발음교재들은 대부분 개별 자음과 개별 모음들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 모음과 자음을 연습할 수 있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에서 설명된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이것이 원칙없이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영미인 학자들이 만든 교재들의 경우에도 그렇다.
모음 /i/의 설명을 예로 들어보자. 발음교재들은 먼저 모음 /i/ 자체를 혀의 높이를 기준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런 다음 /i/가 들어있는 단어들을 열거한다. 모음 /i/ 소리를 연습하기 위해 /pik did ri / 등과 같은 단어들을 섞어서 제시한다.
필자의 이론에 따라 이것을 평가해보자. 모음 /i/ 자체를 발음할 때 혀 끝의 위치는 아랫니 뒤에 붙어 있다. /pik/는 음절 전체가 제1 위치에서 발음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음 /i/에 대한 발음 설명을 따라 비슷하게 연습할 수 있다.
그러나 /did/의 경우, 혀 끝이 제4 위치→제4 위치로 움직이는 동안에, 그리고 /ri /의 경우에는 혀 끝이 제3 위치→제4 위치로 이동하는 동안에 /i/ 소리가 만들어진다. 즉 혀 끝이 입 안에 떠 있으면서 /i/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음 /i/를 발음하기 위해 혀 끝이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결국 /pik did ri /을 발음하면 /i/ 소리를 만드는 혀 끝의 위치가 이동함을 알게 된다.
결국 기존 발음교재들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 개별 자음, 개별 모음에 대한 설명만 있지 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둘째, 개별 자음 및 개별 모음의 연습을 위해 주어진 단어들이 원칙없이 나열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인 한국인의 발음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발음 학습에 있어서 단어들의 연습도 혀 끝의 움직임을 훈련하는 원칙에 따라 새롭게 분류하고 정리해야 한다.
ⓖ 혀 끝이 움직이는 영역
영어의 모든 소리들은 혀끝이 위에서 설명한 네 위치를 이동하면서 만들어진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을 보면 영어에서 혀끝이 움직이는 궤적은 한국어에서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쉽게 말해, 영어를 제대로 발음하려면 혀끝을 위로 앞으로 아래로 많이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혀를 많이 움직이려면 리듬과 강세를 넣어 발음하는 것이 수월하다. 따라서 영어에 강세가 있고 리듬이 들어가는 것은 혀끝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도와주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종합
우리는 이렇게 혀 끝이 놓이는 네 위치를 기준으로 영어 발음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 결국 영어의 모든 소리는 혀 끝이 이 네 위치를 움직이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어에서 굴러가는 이치를 알고, 우리도 혀를 굴리면 된다. 아무렇게나 굴리는 것이 아니라,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굴리면 된다. 혀가 굴러가는 방법에 일정한 패턴을 잡아낼 수 있다. 이러한 혀의 길, 혀끝을 움직이는 패턴을 터득하면 2음절, 3음절 소리들, 긴 문장의 소리들을 발음하는 것에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게 된다.
영어에서 혀 끝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발음을 하다 보면, 몇 가지 변화가 있게 된다. 연음, 자음동화, 구개음화 등이 그런 변화들이다. 앞에서 자음 사이에 모음이 올 때 혀 끝이 모음의 고유 위치로 가지 않는 것과 같은 종류의 변화들이 생긴다. 여기서 그러한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위에 설명한 혀 끝의 움직임을 알고 있으면 소리의 변화들이 왜 생기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혀 끝의 위치와 움직임을 중심으로 영어 발음을 설명하면 영어의 모든 단어가 발음되는 방법이 간단히 설명된다. 단어를 외울 때 이러한 혀 끝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소리를 익힌다면 정확한 발음을 익힐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어를 발음하기에 편한 조음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영어를 발음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혀끝이 움직이는 거리가 다르고 놓이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의 소리와 영어의 소리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거꾸로 영미인들이 한국어의 소리를 힘들어 하는 이유도 간단하게 설명된다. 혀끝을 네 위치로 움직여 발음하던 사람에게 입 안의 앞쪽 상단 영역에 제한하여 혀끝을 움직이고 발음하라고 하면,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주문이 아닐 수 없다.
귀 훈련 : 영어 소리의 식별
우리는 입을 훈련하여 영어 발음을 제대로 익힐 뿐만 아니라, 귀 훈련도 해야 한다. 귀 훈련의 1단계는 소리의 식별이다. 영어 음성학습 단계에서 소리를 식별하도록 하는 훈련이 있다. 종래에는 소리를 들려주고 “이 소리는 영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영어 소리가 아닙니다” 하는 식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필자가 설명한 것처럼 영어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서 영어 소리를 식별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은 시간 낭비가 크다.
한국어와 영어 소리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한국어 음절을 영어의 조음구조를 가지고 읽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영미인이 한국어를 발음하는 것과 유사한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개미(gæmi)’ ‘샘이(sæmi)’ ‘맵시(mæpsi)’ ‘미소(mis )’ ‘기쁘게(gibbuge)’ 등의 소리들을 발음하는 데에, 혀끝을 제1 위치에서 움직이면서, 그러나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발음해 보라. 소리에 대한 느낌이 굉장히 달라질 것이다. 또한 ‘달동네’ (dald ŋne), ‘잘 됩니다’ ( al d imnida)를 발음해보라. 혀 끝을 제4 위치, 즉 위 잇몸에 붙였다 떨어뜨리며 발음하게 되면 우리말 발음이 아주 이상해질 것이다. 이러한 소리의 차이를 아는 것은 소리를 식별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혀 끝이 움직이는 것을 중심으로 영어의 음절을 설명하고 연습을 하면 영어의 소리 그 자체가 들리게 된다. 영어 소리의 식별은 1음절부터 시작하여 2음절, 3음절, 그리고 문장의 순서로 이어진다. 이것을 체계적으로만 연습하면 2∼3개월 안에 영어의 소리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어 소리를 식별하는 훈련으로 흔히들 받아쓰기를 권장한다. 어떤 이는 영어 학습자의 수준에 적절한 테이프를 선택하여 받아쓰기를 하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 소리의 세계에는 수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만 빠르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어 소리의 세계로 들어가면, 중학교 1학년 교과서 테이프는 듣기 쉽고, 영어 방송 테이프는 듣기가 어렵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자기 수준에 맞는 테이프를 골라 받아쓰기를 하도록 충고하는 것은 영어 소리의 식별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어를 듣고 문장의 뜻을 듣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영어 소리의 세계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영어 듣고 이해하기 : 단어 학습방법
필자는 ‘신동아’ 3월호에서 영어 청해와 단어 학습에 대한 원리를 간략하게 피력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려고 한다.
영어 소리를 식별하는 것이 영어 듣기의 목표는 아니다. 영어 듣기의 목표는 상대방이 말하는 영어를 듣고 그 뜻을 이해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들이 즉각적으로 뜻으로 전환돼야 한다. 둘째, 들리는 소리들의 뜻을 안다고 해도 그것이 이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어를 학습하는 목표가 단순히 영미인들과 만나 회화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각 개인의 전문 분야에서 영어가 필요할 때 불편없이 영어를 활용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영어 학습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다. 영어를 위한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말로 들릴지 몰라도, 필자는 한국의 영어 학습은 영어 그 자체가 목적인 것양 주객이 전도돼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렇게 영어의 듣기 학습은 전문 영역의 실력을 키우는 것과 병행해야 한다. 전문 분야의 실력이 늘어야 듣기 실력도 늘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도 무식한 이가 많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철학에 대한 전문적인 대화를 하기 어렵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똑똑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할 때, 우리의 듣기 학습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영어 단어를 소리로 외워야 한다. 우리가 식별한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우리의 단어 학습은 방법 자체가 틀렸다. 소리를 외우지 못한 것이다. 철자와 눈으로 단어를 외웠을 뿐 소리와 귀로 단어를 외우지 못했다. 그렇게 단어를 외우고서 청취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모든 단어에는 고유한 소리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외워야 한다. 그래서 소리가 들릴 때 그리고 그것이 곧바로 우리 머리에서 뜻으로, 영상으로 전환돼야 한다. /∂p lis m∂n di reks ð træfik/이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자. 우리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p∂lis m∂n/ /di reks/ /ð træfik/ 이라는 개별적인 소리들이 즉각적으로 영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상황을 그려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소리 흐름의 법칙에 대한 학습이 병행되어야 한다. “(교통) 경찰이/ 정리한다/ 교통을”의 순서로 소리가 흘러가는데, 우리의 언어 감각이 이것을 따라갈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영어식 사고를 익힐 수 있고, 영어를 영어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소리와 귀를 통해 단어를 학습하고, 소리의 흐름을 영상과 뜻으로 연결시키는 훈련만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면 한국인의 숙원인 영어 듣기 문제도 정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