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커피에 관한 한 거의 모두가 전문가 수준이다. ‘커피 한잔 합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커피는 한국 사람들에게 차나 음료를 대표하는 보통 명사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음식점 못지않게 많은 곳이 커피점·다방이며, 도시의 빌딩은 전부가 커피점이나 다름없다. 자판기를 1~2대 갖춰놓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60~70년대의 그 유명했다는 양지다방이며 학림다방의 전설, 곧 고담준론의 장으로서 문화 사랑방 구실을 했다는 사실 등 커피와 관련한 저마다의 추억이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커피는 어떤 음료보다 가까운 기호식품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누구든, 언제든 손만 내밀면 먹을 수 있는 음료가 커피인 까닭에 ‘커피 마니아’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음료라는 데서 커피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생겨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으나, 커피가 지닌 독특한 성격과 맛을 알고 마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커피라면 모두 비슷하겠거니’ 여기는 통념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에서는 커피를 선택해 마실 수 있는 환경조차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커피를 다른 사람보다 많이 마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커피를 비교적 잘 안다고 자부해 왔다. 하루 6~7잔이면 보통은 훨씬 넘는 수준인 데다, 중학교 시절부터 마셨다는 만만치 않은 경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이른바 ‘원두 커피’를 집에서 뽑아 먹기는 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인스턴트 커피 애호가였다. 인스턴트 가운데서도 MJC에서 맥스웰로, 맥심으로, 네슬레 같은 브랜드로 넘어갈 때 잠시 즐거워했을 뿐 80년대 중반에 처음 접한 커피 메이커며 사이폰 커피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원두 커피라 불리는 커피들이 인스턴트를 압도할 만한 미각적인 충격을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던 탓이다.
커피의 참맛에 대한 신선한 충격은 역시 해외 출장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1995년 제49회 칸 영화제의 프레스센터에서 받은 에스프레소의 진한 충격, 그해 여름 유럽 미술관을 돌면서 로마·플로렌스·파리·런던 같은 도시에서 만난 새로운 커피들.
내가 남들로부터 ‘커피를 좀 유별나게 마신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 계기는 뉴욕에서 생겨났다. 1996년께부터 나는 휴가를 내든 취재 거리를 만들어서든, 해마다 ‘기를 쓰고’ 뉴욕에 갔다. 기자로서 ‘현대 예술의 메카’라는 뉴욕의 펄펄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직접 보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거기서 비로소 커피의 참맛과 만났다.
뉴욕 소호의 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중인 화가 이모씨가 나에게는 커피 메신저였다. 그는 내가 뉴욕에 갈 때마다 소호와 첼시의 화랑가 순례를 시켜주었다. 한 번에 사나흘씩 계속되던 화랑가 순례는 커피점에서 시작해 커피점으로 끝났다.
강한 마력의 스타벅스
먼저 소호 중심에 있는 커피점 ‘바리’. 그 화가는 ‘백남준 선생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투박하게 생긴 하얀색 머그잔에 진한 커피를 따르고 생크림을 잔뜩 넣어 먹게 하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타일을 내놓았다. 창 밖을 바라보게 만든 높고 좁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즐기며 거리를 지나치는 다양한 인종의 예술가들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두 번째는 지난해 한국에도 들어온 스타벅스. 지금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스타벅스의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신 뒤 ‘커피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의아해했다. 스타벅스의 장기는 간단히 말하면 생두를 강하게 볶아 커피를 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쓴맛과 신맛을 느끼기도 전에, ‘강하다’는 데서 오는 충격이 만만치 않다. 그 충격은 다시금 스타벅스를 찾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은 소호 뒷골목에 있는, 커피를 직접 볶는 자그마한 커피점이었다. 가게 넓이는 중고등학교의 복도를 10m 정도 잘라놓은 듯했는데, 벽에다 작은 테이블 네개를 붙여놓았다. 갓 볶은 커피를 향이 날아가기 전에 바로 갈아 손님에게 내주는 것을 나는 처음 구경했다. 맛도 맛이지만 바깥에까지 풍겨나오는 커피의 진한 향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나의 여행 가방에는 스타벅스며 던킨도너츠 같은 대중적인 커피뿐 아니라, 소호의 그 뒷골목에서 볶은 커피가 항상 몇 봉지씩 들어 있었다. 뉴욕에 사는 친구는 커피가 떨어질 때가 되면 서울로 오는 인편에 커피를 몇 봉지씩 보내주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에 대한 허기와 갈증을 인스턴트로 대충 때울 수 있었다. 커피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선한 맛’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공수해온 커피가 가장 신선한 것인 양 신봉하던 나에게, 서울에서 발견한 커피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울에도 생두를 직접 볶아, 손으로 추출해주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 여러 곳 생겼다는 사실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수는 비록 많지 않지만, 그 커피점들은 최소한 서울에서 마시는 커피 가운데 가장 좋은 맛을 내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커피나무에서 딴 생두는 1년이 지나도 그 성질이 별로 변하지 않는다. 반면, 생두를 볶아 원두로 만들면 2주일 안에 커피의 다양한 맛이 모두 사라져버린다. 생두는 커피 볶음기에서 220~230도의 열을 받아 내부 조직이 물리적·화학적으로 변한다. 변화하는 과정에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이 생성되는데, 커피 향은 휘발성이 강해 원두가 공기에 닿는 순간부터 달아나기 시작한다. 진공 포장을 하거나 원두를 비닐 봉지에 꼭꼭 싸서 냉동실에 보관하는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달아나는 커피 향을 잡을 수는 없다. 커피를 즐기는 최상의 방책은, 갓 볶은 원두를 향이 달아나기 전에 갈아서 마시는 것이다.
커피라는 음료가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니, 커피 선진국이라는 이탈리아·프랑스·독일·미국·일본 등지에서 제아무리 잘 볶은 커피라 해도 서울에서 볶는 커피의 맛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나는 지난해 초 서울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처음 맛보았다. 내가 나 스스로를 ‘마니아’라고 부르기에 주저하는 까닭은, 진정한 커피와 만난 것이 2년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커피의 정수와 만난 적은 있으나, 커피의 맛을 알고 조금씩 공부해가며 찾아 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커피의 참맛은 바로 이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곳은 서울 안암동 고려대 후문 쪽에 있는 ‘인터내셔널 커피하우스 보헤미안’이라는 커피 전문점이다. 보헤미안 커피의 진수는 강하게 볶은 커피를 강하게 추출하는 데서 나오는 진하고 풍부한 맛이다.
살아 있는 맛, ‘보헤미안’의 커피
모르고 마시는 이들에게도 보헤미안 커피는 ‘진하다’라는 첫인상 외에 ‘커피가 참 맛있다’라는 느낌을 준다. 커피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커피를 분류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살아 있는 커피’ ‘죽은 커피’라는 말을 쓴다. 살아 있는 커피는 말 그대로 커피 고유의 맛이 싱싱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고, 죽은 커피는 커피의 맛과 향이 다 사라진 채 쓴맛만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헤미안의 주인은 혜화동에서 시작해 13년째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이추씨. 1950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 목장을 경영하다가 ‘커피의 길’에 들어선, 한국에서 손꼽히는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80년대 중반 ‘평생을 걸 만한 일거리’를 찾다가 커피와 만났다. 일본 도쿄로 돌아가 2년 동안 커피 전문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한 뒤 서울에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박씨는 ‘커피를 추적한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것은 책을 통해서든, ‘실전’을 통해서든 커피를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뜻이다. 그는 일본에서는 배우지 못한 커피 볶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볶은 커피를 일본에 보내 검증받는가 하면 국내 전문가에게 맛을 보이며 원두의 질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왔다.
그는 사나흘에 한 번씩 커피콩을 볶는다. 좀더 손쉽게 볶을 수 있는 모터 달린 기계가 국산으로도 여러 종 나와 있으나, 그는 가스 불 위에 원통을 올려 돌리는 다소 고전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불 위에서 원통을 돌리는 속도와 시간, 커피의 볶음 상태, 콩을 분쇄하는 방법, 물의 종류, 물의 온도 등에 따라 커피는 맛이 달라진다. 박씨는 13년 동안 커피를 ‘추적’해 오면서 진하면서도 입안을 가득 채우는 커피의 풍부한 맛을 만들어냈다.
“커피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깊은 에너지가 숨어 있다. 커피가 지닌 진가를 뽑아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라고 그는 말했다. 커피를 모르는 사람도 에스프레소 같은 강한 커피를 마시면 ‘맛있다’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커피가 지닌 강력한 힘을 뽑아내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사장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이 커피를 이용할 게 아니라, 커피가 지닌 맛과 에너지를 각자 개성에 맞게 뽑아내라고 가르친다.
내가 그에게서 커피를 배우는 곳은 보헤미안에서 매달 둘째·넷째 수요일 저녁 7시에 여는 커피 교실이다. 보헤미안에서는 그 시간만 되면 ‘손님이 왕’이 아니라, ‘커피 교실 수강생이 왕’이 된다.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음악도 틀지 않는다. 커피 교실 수강생들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 값(3000원)의 수강료를 내고 최고급 커피를 적어도 3~4잔 마실 수 있다.
박씨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커피 교실을 열 뿐만 아니라, 95년에는 커피점 경영자·커피회사 관계자 들과 함께 한국커피문화협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지금은 그 협회 고문으로 있다. 커피 전문점이라는 ‘장사’를 하면서도 그는 “먹고살 정도면 된다. 내 목표는 국제적인 음료인 커피를 한국 사람뿐 아니라 미국인·일본인의 입맛에도 맞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올해 안에 ‘조용히 커피를 연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강원도 두메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내가 만난 커피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박이추씨처럼 ‘커피 전도사’들이었다. 커피점을 운영하든, 커피 회사에 근무하든 커피를 조금이라도 안다는 이들이 전도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커피 시장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커피는 파고들면 들수록 어렵고, 어려운 만큼 혼자서는 공부할 수 없는 특이한 음료이기 때문이다. ‘좋은 커피를 맛보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커피가 지닌 가장 큰 매력으로 보인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음료로 자리잡은 커피, 그런데 알고 보면 얼마나 어려운 음료인가를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커피나무는 북위 25도에서 남위 25도 사이의 ‘커피 존’에서만 자란다. 커피 품종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총생산량의 75%를 차지하는 아라비카와 24%의 로부스타, 그리고 지금은 생산량이 미미한 리베리카이다.
먼저,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로부스타부터 이야기하자. 이 커피 종은 잡초처럼 끈질긴 성격을 지니고 있다. 환경에 민감한 아라비카와는 달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서리나 가뭄에도 강하다. 아무 곳에서나 쑥쑥 잘 자라는 대신, 로부스타는 맛이 쓰고 거칠며 향이 약하다. 값도 저렴해 고급 커피와 배합해 커피의 가격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인스턴트 커피의 주재료로 사용된다.
C레이션으로 들어온 로부스타
한국의 커피 소비량은 로부스타로 만드는 인스턴트가 85%를 차지한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미군에서 흘러나온 C레이션 깡통으로 커피를 마시던 전통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커피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쓴맛’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그것은 바로 향기가 거의 없는 로부스타가 커피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데서 연유한다.
그러나 한국 바깥에서 일반적으로 ‘커피’를 일컬을 때는 아라비카를 의미한다. 커피 존의 해발 1000m가 넘는 산악 지대에서 수확하는 커피가 아라비카 종이다. 아라비카는 고산 지대에서 생산될수록 고급 커피로 대접받는다. ‘커피의 황제’라 불리는 블루마운틴은 해발 2000m 이상에서만 재배되는 자메이카산 커피다.
아라비카 종도 생산 국가·도시·농장에 따라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커피의 이름도 생산 국가·선적항·생산 지역·원두의 등급 등에 따라 붙인다. 이를테면 ‘브라질 산토스 버번’은 ‘브라질에서 재배되어 산토스 항을 통해 수출된 버번 종 커피’를 의미한다. 수준급에 올라 있는 아라비카 종 커피라면 이름만 가지고도 족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커피에서는 족보를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족보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족보가 있는 커피라면 기본적으로 신맛이 나게 마련이지만 탄자니아 커피는 그중에서도 신맛이 좋다. 탄자니아의 최고봉 블루마운틴은 부드러운 커피로 정평이 나 있다. 코스타리카 커피는 묵직하면서도 쓰고 입안에서 팡팡 튀는 맛을 지녔다. 케냐산 커피의 진수를 맛보면 신맛에서 커피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족보를 파악했다고 해서, 커피의 맛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피 전문점을 경영하는 이들은 대체로 자기가 갈고닦은 노하우를 전달하는 데 너그럽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물을 어떤 것을 쓰고, 원두는 어느 수준에서 볶으며, 배합은 어떻게 하고, 물 온도는 어떻게 한다’는 것을 거리낌없이 이야기해준다. 커피 전문점 경영자들이 인간성이 유별나게 좋아서가 아니다. 자기가 가진 방식을 남에게 아무리 전해줘도 똑같은 커피를 추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커피 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집을, 얼마 전 일본 커피 여행에서 처음 보았다. 오사카에 있는 ‘마르푸쿠’라는 그 커피점은 1934년에 문을 연 뒤 그 자리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지금까지 예전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집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여러 커피를 혼합한 블렌드(blend·섞다) 커피와 블렌드 아이스 커피가 전부다. 한 모금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한 탕약 같은 커피다. ‘어떻게 뽑았기에 잔에 커피 가루가 남느냐’고 물으면 종업원마다 답이 다르다. 결국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것은 커피 선진국 일본에서도 예외에 속하는 일이다. 생두를 볶은 지 20년이 채 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커피점 주인에게 물어보면 아직까지는 ‘커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반가워서’라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커피를 우려내는 방식은 각 단계가 세분되어 있다. 볶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커피를 재료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들어가보자.
먼저, 볶는 단계에서부터 맛이 달라진다. 커피는 약하게 볶느냐, 강하게 볶느냐에 따라 맛의 성질이 달라진다. 볶기는 보통 8단계로 나뉜다. ‘아주 약하게’에서 점차 올라가 ‘풀 시티 로스트’라 불리는 ‘조금 강하게’에서 ‘프렌치 로스트(강하게)’ ‘이탈리안 로스트(아주 강하게)’에까지 이른다. 약하게 볶은 콩에서는 신맛이 많이 나고, 강하게 볶을수록 쓴맛·단맛이 많이 생긴다.
다음은, 어떤 열로 볶느냐 하는 것이다. 커피 볶는 방식은 철망에 커피를 넣고 불 위에서 손으로 흔들어 볶는 가장 원시적인 ‘수망(手網) 볶기’에서부터 가스 불을 이용한 볶기, 전기를 이용한 열풍(熱風) 볶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가스 불로 볶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그것도 볶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맛이 나올 수 있다.
세 번째는 커피를 뽑아내는 물의 온도에 따라 커피 맛이 다르다. 92~95도까지 끓인 물로 커피를 적시면 컵에 다다를 때 80도가 되게 하고, 입에 들어갈 때는 70도 내외가 되게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네 번째는 커피 양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 150cc에 커피 10g이면 커피 맛을 가장 적절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다섯 번째는 원두 콩을 가는 방식이다. 입자가 굵을수록 구수한 맛이 나고, 가늘수록 신맛이 난다. 커피를 뽑는 기구에 따라 입자 굵기를 정해야 하는데, 가장 강한 커피인 에스프레소에서는 입자를 가루처럼 곱게 갈아야 하고 유리컵에 눌러서 추출하는 프렌치 프레스에서는 굵게 갈아야 제맛이 난다.
흔히 쓰이는 방식은 커피 메이커라 불리는 기구와 드립퍼에 주전자로 물을 부어 추출하는 것이다. 커피 메이커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기는 하지만 맛에 개성이 없어 고급 커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 주전자에 담은 물을 손으로 부어 뽑는 핸드 드립이 고전적이면서도 만드는 사람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핸드 드립에도 방식이 세 가지나 된다. 드립퍼라 불리는 커피 깔때기, 곧 독일에서 개발한 메리타, 일본의 칼리타·고노에 따라 맛의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천을 이용해 커피를 거르는 방식이 있고, 사이폰도 커피 마니아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커피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다양한 커피를 어떻게 섞어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어느 종은 신맛이 강한 반면 쓴맛이 부족하고 어느 종은 그 반대라면, 그 둘을 섞어 신맛·쓴맛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스페셜티라 불리는 고급 커피를 뽑는 전문점에 가면 블렌드 커피가 스트레이트 커피(예멘 모카, 브라질 산토스, 케냐AA 등 한 가지 커피 종으로 뽑은 커피)보다 값이 싸다. 여러 고급 커피를 섞어 만들면 값이 올라가야 할 터인데, 오히려 싸다니? 커피를 섞으면 그만큼 풍부한 맛을 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한 맛이 강한 스트레이트 커피를 만들 때는 훨씬 정교한 기술이 요구된다. 특정한 맛을 살리면서도, 그 커피에서는 부족한 다른 맛까지 정교하게 내야 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결합해 만든 카푸치노·카페라테, 휘핑 크림을 올려 만든 비엔나 커피 등 커피는 첨가물에 따라 수십, 수백가지의 맛을 낼 수 있다. 커피가 지닌 향이 800가지라고 하는데, 과장해서 말하면 800가지 이상의 커피를 뽑을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입맛에 맞게 커피를 뽑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에게 가장 좋은 커피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대중화한다면 자기 이름을 붙여도 무방하다.
“어느 집이 내 입맛에 맞는다”
커피를 뽑는 과정에는 이처럼 다양한 방식이 있는 까닭에, 커피 맛은 곧 그 사람의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정한 수준에 오른 커피점이라면 ‘어느 집이 맛있고, 어느 집은 맛이 없다’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느 집 맛은 어떻다, 내 입맛에는 어느 집이 맞는다’라는 말이 정확하다.
나는 앞서 말한 보헤미안의 그 진하고 풍부한 맛도 좋아하지만, 박원준씨가 볶는 다도원 커피도 퍽 좋아하는 편이다. 커피업계에서는 이른바 ‘쓰리 박’이라 불리는 커피 전문가가 유명하다. 보헤미안의 박이추씨, 다도원의 박원준씨, 커피 맛을 판별하는 데 탁월한 미각을 지닌 박상홍씨가 그들이다. 세 사람 모두 일본에서 커피를 공부했다.
다도원 커피는 여러 커피점에서 가져다 쓰고 있으나, 나는 다도원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방배동에 있는 ‘엘빈’을 찾는다. 다도원 커피의 그 깔끔하고 귀족적인 풍모를 유감없이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의 유명한 커피점 ‘커피명가’의 맛은 강남역 부근의 ‘라퓨타’에서 볼 수 있고, 압구정동 ‘커피 볶는 집 크레마치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최상급 원두를 들여와 다양하고 신선한 맛의 세계로 안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청담동에 가면 ‘커피미학’과 ‘하루에’라는 곳에 들를 만하고, 신림동에 가면 ‘시실리아’가 있다. 대학로에는 ‘에스프레소’ ‘학림’ ‘데미타스’, 포항에는 ‘아라비카’, 경주에는 ‘슈만과 클라라’, 울산에는 ‘빈스톡’이 있다. 저마다 다른 커피 맛을 내는, 한국에서 커피 문화를 일구어가는 말 그대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들이다.
몸에 해가 없는 각성제
내가 틈날 때마다 커피점을 찾고, 아침저녁으로 집에서 커피를 볶고 갈고 뽑아 하루에 적어도 7~8잔을 먹는 이유는 커피가 주는 상쾌한 기분과 커피가 지닌 마력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커피가 몸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나, 나는 하루 10잔을 마셔도 잠을 못 자거나 하는 일은 없다. 새벽 2~3시에 커피를 마셔도 잠은 잘 잔다.
내가 느끼기에 커피가 지닌 힘은, 몸에 해가 없는 각성제와 같은 것이다. 커피를 볶거나 원두를 갈 때, 물을 부어 추출할 때,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었을 때 느껴지는 향 또한 만만치 않은 즐거움을 주지만,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담배·술·차 같은 다른 기호식품과 달리 오묘한 맛과 더불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작곡가 베토벤, 소설가 발자크 등 국내외 수많은 ‘커피 중독자’들이 예찬론을 펼쳤다. 그러나 나는 얼마 전에 접한 다음과 같은 말만큼 명쾌한 것을 보지 못했다. 박원준씨가 어디에다 적어놓은 글이다. “커피는 지적 활동의 윤활유입니다.” 커피는 마시는 사람에게 만드는 재미와 마시는 기쁨, 정신에 활력을 주는 그만큼 신비로운 음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