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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남북 긴장 녹인 러브샷의 감격”

방북인사 14인이 말하는 감동의 순간

  • 특별취재반

“남북 긴장 녹인 러브샷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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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14일 저녁 만찬 때였다.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했는데 남북공동성명이 합의된 직후였다. 서명은 밤 늦게 했지만 이미 합의 내용이 만찬장에 알려진 까닭에 분위기가 참 좋았다. 남북은 동족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말이든 ‘통역’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정상회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날 만찬은 한 나라와 다른 나라 대표의 공식 행사가 아니라 마치 친구나 이웃 간의 정 넘치는 모임 같았다. 격의 없었고 따로 복잡한 격식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 때 내 오른쪽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이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평양시 양만길 인민위원장이 있었다. 양만길 인민위원장은 평양시장인 셈인데 내 이름과 한자까지 똑같았다. 양위원장도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송호경 부위원장에게는 “지난번 평양에서 열려던 음악회가 무산돼 아쉬웠는데 이제 한번 잘 해보자”고 말했다. 그 역시 “잘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날 만찬에서 김위원장의 요청으로 시인 고은 씨가 자작시를 낭송했다. 그 아이디어는 내가 낸 것이다. 전날 고은씨가 어느 신문사의 요청으로 자작시를 지었다며 내게 보여주었는데 내용이 좋아 만찬장에서 낭송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광옥 비서실장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한실장이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에게 건의를 했던 모양이다.

15일 오찬 분위기도 좋았다. 대낮인데도 술들을 좀 했다. 북쪽 사람들 술 실력이 상당히 좋았다. 내 옆에는 현석해라는 육군대장이 앉았는데 술을 아주 즐겼다. 모두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김대통령은 우리 일행에게 포도주 한 잔씩을 따라줬고 김위원장은 산삼주를 돌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지원 장관이 ‘우리의 소원’을 부르자고 제의했다. 모두 일어나 같이 노래를 불렀다. 무척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오찬을 마칠 무렵 김위원장이 “20분 후에 공항까지 배웅을 나가겠다”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김위원장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상당히 소탈하고 담백한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의는 남북한이 대결구도에서 화해구도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또 선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남북 양쪽에 연락사무소를 둔다든지 하는 식의 가시적 성과가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나는 평소 김대통령 집권기에 남북관계가 확대돼야 한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할 듯도 싶어 희망적이었다. 설사 다음에 보수적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남북 관계를 후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일정 수준의 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선 양측 실무자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강성모(린나이코리아 회장)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은 놀라운 것이었다. 북한 당국은, 40만명쯤 나올줄 알았는데 짐작보다 20만명이 더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의 이런저런 환영 인파라면 많아야 2줄이었는데 이번엔 3∼4줄로 늘어섰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다들 설마 했다가 무척 깜짝 놀랐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14일 만찬석상에서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위로 치켜들었을 때였다. 그런데 주변에 사진기자가 없었다. 누군가 옆에서 “이건 무척 귀중한 장면이니 꼭 찍어 두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결국 두 정상은 사진기자들 앞에서 같은 동작을 한번더 연출해야 했다. 주변에서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3일 동안 충격의 연속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을 웃기는 데 소질이 있다. 태도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군사위원회 소속 간부들을 불러내 김대중 대통령에게 술을 권하도록 지시하는 등 북한쪽 인사들의 경직된 자세를 풀어주기 위해서도 애를 많이 썼다. 김대통령은 그들이 건네는 술잔을 다 받아 마셨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김성진(청와대 보도지원비서관)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합의문 서명의 역사적 순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합의문이라는 ‘최고 형태’로 일이 마무리지어지자 무척 감격스러웠다.

또 한가지는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이었다. 물론 도착할 때의 60만 인파나, 떠나올 때의 40만명 모두 동원된 사람들일 것이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남성이나 수업이 있는 중고등학생은 거의 없었다. 대개 여성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합의문 작성일과 귀경일에 오가는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 어린 인사와 친절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싶다. 손 흔드는 그들의 표정엔 따뜻함이 있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과거와는 많이 다른 듯 했다. 체재나 이념 논쟁 대신 시종 불편한 일은 없는지 챙기며 부드럽게 다가섰다.

그 변화의 정점에는 두 정상이 있었다.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이 악수하고 포옹하고 같이 차를 타고 식사를 하고 농담을 주고받게 되다니. 곁에서 보면 누가 남이고 누가 북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오랜 지기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로 둘 사이가 상당히 친밀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외 몇가지 에피소드들이 기억난다. 김위원장은 프랑스산 포도주인 매독을 큰 잔에 따라 한 번에 주욱 들이켰다. 술 실력이 상당한 듯 했다. 함께 차를 탈 때는 꼭 김대통령이 상석인 오른편에 앉도록 배려했고 나란히 걸을 때도 자신은 항상 뒤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했다. 얼굴이 검게 타 있어 이유를 물으니 ‘현장 지도’를 많이 다녀서라고 했다.

남쪽에서 TV를 시청하는 국민들은 간혹 들리는 ‘드르륵’ 하는 소음이 조금 짜증이 났을 것이다. 북측 기록담당요원이 사용하는 촬영기 소리였다. 기계가 낡아 그렇다는데 하도 시끄러워 “저 소리 좀 안 나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2차 정상회담 때는 안 틀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 촬영기는 영화관 상영용 필름을 찍기 위한 것이었다. 보존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고 했다. 현장에는 물론 ENG 카메라도 있었다.

촬영은 그렇게 많이 하지만 지금껏 방송에 나온 김위원장의 육성은 ‘조선인민군에 영광 있어라’는 한마디밖에 없다고 한다. 이번에 목소리까지 송출이 가능했던 건 나름대로 우리를 배려한 결과다.

그렇더라도 북한 방송에서는 여전히 목소리 없이 김위원장의 모습만 화면에 비춰졌다. 우리가 가 있는 동안 특집 프로그램으로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 모습이 나왔는데 역시 육성은 없었다. 촬영을 할 때도 김위원장 위주로 하고 김대통령은 꼭 필요할 때만 조금 찍는 수준이었다. 방송의 목적 자체가 ‘지도자의 말씀하시는 모습’을 생생히 기록해 놓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김재철(무역협회회장)

김정일 위원장의 솔직하고 유머 넘치는 대화술, 북쪽 주민들의 진심 어린 환영이 인상 깊었다.

6월14일 만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김위원장이 북한 군사위원회 간부들을 헤드 테이블 앞으로 불러내 김대통령에게 인사할 것을 지시하고 그에 따라 간부들이 즉석에서 김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던 광경이다. 15일 오찬에서는 내가 김위원장에게 먼저 술을 한 잔 권했다. 받아 마신 김위원장은 내게 “김대통령에게도 한 잔 권하라”고 했고 그래서 김대통령에게도 잔을 내밀었다. 그 직후 모두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백낙환(인제학원 이사장)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영접을 나오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대통령 내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북한에서 우리를 위해 배정한 차는 모두 벤츠 승용차였다. 한 대에 대표단 2명, 안내원 1명과 운전기사가 탔다. 나는 22호 차였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는 50km가량 됐는데 왕복 4차선 길은 아주 잘 닦여 있었고 주위 산의 조림도 훌륭했다. 논은 모내기가 다 끝난 상태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다른 지역 상황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황해 쪽으로 돌아 평양을 향해 날았는데, 밑으로 주욱 지나가는 산들은 헐벗어 있었다. 모내기도 절반 정도밖에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평양 방향 길 양쪽에는 시민들이 도열해 있다 우리 차가 지나가면 큰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18km 정도 길에 60만~70만 명쯤이 나와 선 것. 차가 워낙 천천히 움직여 그 표정을 소상히 살펴볼 수 있었다. 동원된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얼굴에는 자발적인 환영의 뜻이 떠올라 있었다. 억지로 웃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화끈한 환영이었다.

여자가 3분의 2, 남자가 3분의 1정도였다. 여자들은 모두 잘 생기고 표정도 밝았다. 이것이 가장 감격적이었다. 그렇게 환영하는데 그냥 있을 수 없어 양쪽 팔을 번갈아 가며 1시간 가까이 흔들었다.

14일의 김위원장 초청만찬은 전날 벌어졌던 김영남 상임위원장 초청만찬 때와는 달리 경호가 매우 엄격했고 절차도 까다로웠다. 사람이 많아 원래 시나리오에는 김위원장 입장 때 박수만 치기로 돼 있었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김위원장이 일일이 악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김위원장은 얼굴이 작고 배가 나온 비만형이었다. 들으니 요즘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최근 담배를 끊었고 술도 포도주만 마신단다. 당뇨 등 여러 가지 병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던 줄 아는데 가까이서 보니 모두 잘못된 소문 같았다.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키가 작고 목이 짧은 비만형인 것이 뇌졸중을 일으키기 쉬운 체질로 보였다. 그것 하나만 조심하면 별 문제는 없을 듯 했다.

김위원장은 주위에 술을 자주 권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독주가 아니라 포도주였다. 원래 김대통령은 술을 잘 못한다. 그럼에도 김위원장이 계속 권하니 어쩔 수 없이 여러 차례 잔을 비웠다. 의사로서 걱정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대통령 주치의 허각범 교수와 친한 사이다(허각범 교수가 후배). 그래서 허교수에게 “주치의가 뭐 하는 거요. 이럴 때 의사가 나서 제지해야 하지 않겠소” 하고 말했다. 김위원장이야 늘 저렇게 마신다지만 대통령은 술을 잘 못하는 분이라 자꾸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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