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이회창의 대권도전 그랜드 디자인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9-28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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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대선까지 2년동안 국정운영 능력을 배가하는 내부준비가 중요하다는 데 참모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특히 정상회담 이후 차기 대선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남북문제와 관련한 ‘내공’을 쌓기 위한 특단의 대책들이 강구되고 있다. 》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는 5·31전당대회에서 총재수락연설을 통해 “정권탈환을 위해선 ‘새로운 국가경영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反)DJ정서와 투쟁의 리더십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모진 외풍에 맞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 온 힘을 쏟을 수 밖에 없던 이총재였지만 총선승리와 전당대회 승리를 발판삼아 차기대권행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이제는 수세적 저항적 위치에서 벗어나 포용의 이미 지를 보완하고, 비전제시 및 정책개발에 주력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총재가 과거 구호에 그쳤던 ‘상생의 정치’를 총선 이후 실천에 옮기려 애쓰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사실 이전까지 이총재의 행보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정책을 내거나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보다는 지역정서에 기대 앞날을 도모 하려는 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당신이 제1당 총재가 된 것은 당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반(反) DJ성향 유권자들이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당안팎에서는 흔히 이총재에게 부족한 세 가지 요소로 명료한 비전과 구체적 정책대안, 포용력 있는 이미지 등을 꼽는다. 특히 정책대안과 관련, DJ는 야당총재 시절 당소속 의원들의 국감성적까지 매기며 ‘자네는 박스 기사는 많이 나오는데 스트레이트 기사가 부족하구먼’이라는 등 의원들의 정책대안 제시를 일일이 독려할 정도로 높은 열의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이총재 측근그룹은 이와 같은 지적에 따라 총선 이후 깊은 논의를 통해 “앞으로 대선까지 2년여 기간에는 직접적인 대여 정치투쟁보다는 주 요 정책경쟁에서 이총재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내부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정리, 이총재에게 올렸다. 이총재가 투쟁과 반대일변도의 이미지를 벗고 전국적 지도자로서 국정운영 능력을 갖춘 ‘준비된 대통령’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뉴 이회창 전략’이 수립됐다는 것이다. 이총재의 한 측근의 말.

    “햇볕정책이나 DJ의 기업·금융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대안을 내놔야 한다. 이런 이슈들은 다음 대선에서 TV토론 등의 주요쟁점이 될 게 뻔하다. 지금 이총재는 상대적으로 선발주자로서 체계적 공부를 해나갈 시간이 있다. 97년 대선 때는 솔직히 일정에 쫓겨 TV토론 등을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그 결과 실전에서 큰 손해를 봤다. 자료도 많고 머리도 좋은 이총재지만 구체적 현실에 대해 학습 이 덜 된 채 당일치기를 해서 나가는 것으로는 승리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다.”



    ‘내부역량 강화’로 요약할 수 있는 이회창 진영의 새로운 대권접근 플랜에서 이총재가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은 차기 대선에서 최대 이슈 가 될 남북문제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남북문제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최대의 정국변수가 된 상황에 이총재가 정국 주도권을 상 실하지 않으려면 차기 대선에서 이 문제에 관해 ‘준비된 능력’을 자신의 언어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가 탈냉전의 거대한 물결 속으로 접어드는 역사적 전환기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안목과 해결능력은 2002년 대선주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북정책 참모본부, 남북관계 특위

    이를 위해 남북문제를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내에 구성된 것이 남북관계대책특위다. 김영삼 정부시절 남북 정상회담 실무협상을 맡았던 윤여준 전 여의도 연구소장도 핵심멤버로 참여했다.

    지난 5월 신설된 남북특위는 남북문제에 관해 이총재가 수세에서 벗어나 김대중정부의 정상회담 드라이브를 비판·견제할 수 있도록 이총재 를 뒷받침하고 있다. 총선 직후 당내에는 남북특위와 함께 현대사태 등 경제문제에 대처하는 경제대책특위, 과외문제 등 공교육 부실화 문제 에 대처하는 교육대책특위도 구성됐다. 그래도 가장 활발한 것은 역시 남북특위라고 할 수 있다.

    남북특위는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국회결의안과 관련, 전폭지지 의견이 담긴 민주당안과 달리 보수적 원칙을 담은 결의안 초안을 6월8일 이총 재에게 제출했다. 특위는 이와 함께 정상회담과 관련, ‘김대중대통령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 우방국들과의 관계설정을 위한 가 이드라인 등도 정리해 이총재에게 보고했다. 여기는 경제협력이나 군사문제 등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 부분, 납북자문제 등 북한이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 등도 포함돼 있다.

    다음날인 6월9일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있은 이총재의 기자회견.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나 안보를 위협하는 타협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상회담은 반드시 남북상호주의 원칙에 기초해야 하며 이 원칙은 경제·사회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 문제에서도 철저하게 적용돼야 한다”

    특위의 의견을 거의 전적으로 원용한 이총재는 특히 대북경협이나 지원과 관련, “북한이 이를 군사적으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보장하에 추 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총재는 같은 날 채택된 국회결의안에서도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 조건으로 상호주의를 명시토록 당의 협상관 계자들에게 지시, 결국 ‘호혜적 상호주의’라는 표현을 결의문에 집어넣었다.

    물론 정상회담 정국에 임하는 이총재의 기본입장은 ‘선(先) 협력 후(後)비판’이다. 분단 55년 만의 국가적 대사인데 뒷다리를 잡거나 시비를 거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총재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 급변의 큰 흐름에 휩쓸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에 마냥 수수방관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또한 분명하다.

    정상회담 이후 민족문제를 앞세운 여권의 정국주도 드라이브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결 적극적인 견제의 고리는 걸어놓 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정책의 실질적인 산실 노릇을 하고 있는 남북특위에는 통일원장관을 지낸 이세기 위원장을 비롯, 김용갑 정형 근 박세환 윤여준 이한구의원, 송영대 전통일부차관, 구본태 전통일부 통일정책실장 등 보수색 뚜렷한 당내의 쟁쟁한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특히 박세환의원 등은 예비역 장성그룹의 여론을 이총재에게 전달하는 창구역을 맡고 있다. 당내에는 이 밖에도 보안사령관 출신인 강 창성의원과 육본 인사참모부장 출신인 최승우 현대사회연구소장 등이 국방문제와 관련, 이총재에게 틈틈이 조언하고 있다.

    취약한 대미라인 보강작업

    통일·안보·외교 분야에 관해 이총재가 틈틈이 조언을 구하는 당외 인사로는 안기부1차장을 지낸 현홍주 전 주미대사, 외무장관을 지낸 한승 주 고려대교수 등이 있으나 한교수는 최근 접촉이 상대적으로 뜸한 편이라고.

    한 전장관과 현 전대사를 비롯해 김경원 전 주미대사, 이상우 서강대교수와 백진현 서울대 교수 등은 모두 서울국제포럼 멤버들로 이총재측 의 관심이 두터운 편이다.

    여기에 전재욱 여의도연구소 객원연구원 등 박사급 연구원과 청와대나 국정원 근무경력을 가진 인사, 이명우보좌관을 채널로 해서 연결된 소 장학자 등이 일종의 네트워크 내지 포럼 형태로 움직이며 이총재의 ‘남북문제 공부’에 필요한 자료 및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미래연 대 등 젊은 감각을 가진 소장파의원들과도 교감을 갖고 움직이는 이들 ‘386네트워크’는 남북문제에 관해 자칫 보수일변도로 기울기 쉬운 이총 재의 균형추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보좌관의 의원회관팀은 요즘 남북문제와 관련된 주요 흐름을 정기적으로 정리해 이총재에게 보고하고 있다. 회관팀은 김정일의 전격적인 중국방문이 있은 지 불과 이틀 만에 두툼한 관련보고서를 작성, 이총재에게 제출하는 기동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보좌관은 총선 직후인 5월 6일부터 21일까지 미 국무성 초청 형식으로 워싱턴 등지를 방문, 한반도 정책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을 만난 뒤 귀국 했다.

    이총재 자신도 5월2일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와 2시간 가까이 오찬을 함께 했다. 이총재는 정기국회가 시작되기 전인 7~8월 중에 미 국을 방문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속의원 일부를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와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보내 대선을 앞둔 미 양당 대선캠프와도 관계를 증진한다는 방침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야당시절 미국 조야에 두터운 인맥을 형성했던 반면 이총재는 유력한 대권주자인데도 대미 인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당내에서 미국통으로 분류되는 이신범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낙 선하고 주미대사 경력을 갖고 있는 한승수의원은 공천배제로 남이 돼버리는 등 이총재의 대미 라인은 더욱 취약해진 상태다. 이총재측의 활 발한 대미접촉 움직임은 이와 같은 취약성을 보완키 위한 노력의 일환이랄 수 있다.

    경제는 남북문제와 함께 이총재가 최근 ‘내공’을 강화하기 위해 역점을 두는 분야다. 경제와 관련해서 이총재의 ‘전속교사’ 노릇을 하는 이가 바로 지난 연말 영입한 이한구 제2정조위원장이다. 이총재는 지난 대선 당시에는 경제문제에 관해 서상목의원을 ‘전담교사’로 활용했다. 이한구의원은 이총재가 감사원장 시절부터 궁금한 경제사안에 대해 이따금 전화 등으로 자문을 구하던 사이.지난 대선 때 이총재를 돕다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는 아예 ‘내 곁에서 도와달라’는 이총재의 요청을 받고 입당했다. 본래 정치체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의원은 단국대 대학원 정교수 발령까지 받아놓은 상태에서 이총재의 ‘경제교사’로 스카우트된 것이다.

    대우경제연구소장 출신인 이한구 제2정조위원장은 지난 총선에서 국부유출론 등 경제논쟁을 주도, 여당을 곤혹스럽게 만들면서 이총재의 핵 심 정책참모로 급부상했다. 특히 경제문제와 관련, 이총재의 전적인 신임을 받으며 현안검토는 물론 틈틈이 이론적 베이스까지 교습하고 있다.

    이의원은 “이총재가 기본이 탄탄한 분이라서 세부사항만 보충하면 금세 이를 소화한다”고 전제한 뒤 “과거에는 간단히 요약된 자료를 올렸 다는데 나는 자초지종을 다 갖춰 이를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핵심, 원인분석, 결과 등등의 순으로 이총재에게 설명을 하고 이총재가 질문을 하면 이에 답변하는 식이라는 것. 그 과정에 유사상황도 숙지하게 돼 다시 일일이 자료를 올릴 필요 가 없다는 얘기다.

    정치지도자는 경제 뿐 아니라 사회 남북문제 정치 등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이를 살아있는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남북문제와 관련한 어떤 사안이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상호주의를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느냐, 금융시장불안과 관련,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앞으로 1년간 생길 수 있는 경제현안은 어떤 게 있나 등등.

    현대사회는 복잡·다단한 만큼 정치지도자는 종합적인 시스템의 내부 연관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종합적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어야 집권 후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위원장은 “근본적 문제나 특수한 분야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결국 교수·전문가들을 통해 아웃 소싱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는 이위원장이 연구소 계통의 소장으로 15년간 재직하면서 쌓은 광범위한 인맥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 이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한 이 위원장은 최근의 공적자금 투입문제, 경제위기론,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도 정부·여당의 불투명 성을 적극 비판, 쟁점화하는 ‘대여공격수’ 구실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런 이위원장에 대해서 “평론가이지 실물경제 운용능력은 검증된 바 없 어서 이총재에게 탁상이론 위주의 경제관을 주입시킬 위험성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을 지내다 올 3월 여의도연구소장에 취임한 유승민 박사는 남북 및 경제문제 등과 관련한 중장기 정책개 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박사는 한국재벌연구와 산업조직론 분야에서 촉망받는 중견학자지만 재벌개혁에 대한 김대중정부의 정책에 비판 적 견해를 보이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지난 2월 사직했다. “잘못된 경제정책이 정치논리 때문에 선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게 유박사의 지론이다. 그러나 여의도연구소는 정권교체 이후 당의 재정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는 바람에 일부 유능한 박사들이 떠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 유박사는 이에 따라 우선 외부의 젊은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유지하거나 외부팀에 아웃소싱을 하는 등 맨파워의 한계를 극복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조직 중심으로 정치참모 정비

    남북문제나 경제처럼 집중적 학습만으로는 보강될 수 없는 게 정치력이다. 이총재의 정치력 제고와 대국민 이미지관리 등은 핵심당직자들과 참모그룹 등 다양한 인력 풀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대선과 총선, 그리고 몇차례의 경선을 치르면서 이와 같은 전력증강은 사조직보다는 점 차 공조직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총재가 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할 당시만 해도 서먹서먹했던 당이 이제 명실상부한 이회창의 ‘최고 참모본부’로 변모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총재가 확고한 기반을 장악했다는 얘기다.

    이총재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거쳐 정치권에 입문할 당시 이총재를 따라온 원내인사는 황우려의원이 유일하다. 97년 대권레이스가 본격화 하면서 원내에서 하순봉 서상목 백남치 의원 등이 가세, 7인방이라는 측근그룹이 형성됐다. 그러나 7인방 가운데 지금까지 측근으로 비중을 인정받고 있는 이는 하순봉의원 뿐이다. 총풍 세풍 사정과 총선 등 정치적 격동을 거치면서 폭넓고 다양한 측근그룹이 새로 형성됐다.

    5·31전당대회 이후 재편된 당 지도부에는 특히 이총재의 측근들이 전면포진했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부총재 7명 중 6명, 지명직 부총재 4명 중 3명이 범 이회창계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양정규 하순봉 부총재는 특히 가장 확실한 측근 중진이다. 16대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이라는 막강한 자리를 맡았던 양부총재는 이번 총재경선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양부총재는 부총재 경선 및 중하위당직 인선에 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호가호위가 지나치다’는 당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부총재는 97년 대선 당시 이총재의 비서실장, 4·13총선 때는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공천물갈이 등 악역을 도맡아왔다.

    부총재 경선에서 1위로 당선된 최병렬부총재는 이총재에게 가장 비중있는 조력자. 지난 대선 당시 선거기획을 총괄했던 최부총재는 “이총재 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이총재가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김기배 사무총장은 97년 대선당시 이총재의 후보경선대책위본부장을 맡아 지금까지 충성심을 보여온 인물이며 목요상 정책위의장 역시 지 난 대선 때부터 이총재를 적극 지지한 친이회창 중진이다. 정창화 원내총무 역시 총무경선에서 이총재의 지원설로 논란을 일으킬 만큼 신임 을 받고 있는 처지다.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맹형규(孟亨奎)의원과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홍신의원의 몫도 부쩍 늘고 있다. 특히 이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낸 맹의원의 기획위원장 기용은 2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하라는 이총재의 뜻에 따른 것 이다.

    중하위직 인선에서 정보취합 및 분석력이 뛰어난 정형근의원을 제1정조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남북정상회담 정국에 대한 적극 대처를 위한 포석이다.

    특보단 중에서는 언론인 출신으로 이번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한 이원창 홍보특보와 고흥길 섭외특보 등이 이총재의 심중을 아는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원외에서는 지난 3월 합류한 양휘부 언론특보가 이총재에게 ‘부드럽고 포용력있는’ 이미지를 심으려고 애쓰고 있다. KBS 금요토론과 정책진단 등 토론프로그램 사회자로 잘 알려진 양특보는 정치부기자와 해설위원을 거친 방송전문가로서 이총재의 대중적 이미 지 개선에 적임이라는 판단에 따라 활동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밖에 원외에서는 이흥주 박신일 이성희 특보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금종래정무특보, 재야·노동운동출신의 정태윤비서실차장이 각각 나름의 비중을 갖고 주진우 비서실장과 연계 아래 이총재를 보좌하고 있다. 해외공보관장과 보스턴 총영사를 지낸 박신일 외신특보는 외신 동향을 취합·분석해 정기적으로 이총재에게 보고하고 있다.

    조용한 막후참모 윤여준

    이총재를 외곽에서 지원하는 사조직들은 처음에는 측근들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개인조직 형태였다가 책임자의 거취를 따라 대부분 공조 직에 용해되는 길을 밟고 있다.

    윤여준 전여의도연구소장이 98년 총재경선을 앞두고 이끌었던 정동팀과 총선에서 각종 전략전술을 수립했던 금종래 정무특보의 정무팀, 진 영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법률가 그룹, 후원회 업무를 담당하는 부국팀 등등이 그런 예다. 정동팀은 98년 경선을 치른 이후 사실상 해체됐고 멤버들도 각기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상태지만 윤 의원은 개별적으로 청와대와 안기부 시절 형성한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여론동향과 대 북문제에 관한 다양한 정보 및 건의를 수시로 이총재에 제공하고 있다.

    윤의원은 98년 총재경선 때 이총재 팀에 합류한 뒤 지난 총선기획 및 공천에 이르기까지 이총재의 정국구상과 당 운영 전반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까닭에 공천파동 당시 탈락자들로부터 ‘원흉’으로 찍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번 16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한 그는 언 론계 출신으로 안기부 특보와 청와대공보수석 환경부장관 등을 거쳤다. 권부핵심에서 체득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바탕으로 자신을 드러 내지 않는 조용한 행보로 이총재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주요 당무나 정치현안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부딪힐 때면 그는 버릇처럼 발을 뺀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이라는 전제를 붙여 조심스레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방식으로 조용히 상대방을 설득해 나간다. 자신의 의견을 고집해 마찰을 일으키지는 않으면서도 결 국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외유내강형’이다. 윤 의원은 이같은 물밑보좌 방식으로 민산재건을 추진하는 김명윤 강삼재 박종웅 등 민주계의 원들에 대한 징계조치, 공천 물갈이 등 민감하면서도 이총재의 정치적 입지와 직결된 사안들에 관해 ‘원칙에 따른 정면돌파’라는 밑그림을 그린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윤의원의 말.

    “야당총재도 소권력이다. 내부에서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편파적 보고를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다수국민이 바라는 것과 바라지 않는 것을 정 직하게 살펴서 총재께 말씀드리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한다.” 윤의원이 이를 위해 특히 중시하는 것은 언론인들의 의견이다. 청와대 공보수석 때부터 기자들을 많이 만나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특정 부류의 이해관계에 휩싸이지 않고 비교적 공정성을 유지하는 기자들을 많이 만 나는 게 현실에 대해 냉철히 중심을 잡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윤의원의 얘기다.

    지난 5월 광주 망월동 참배여부를 놓고 당내에서는 예비역 장군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반대론이 만만찮았다. 그러나 윤의원 등은 광범위하 게 여론을 들어본 결과 ‘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이총재도 ‘못갈 것이 뭐 있느냐’면서 방문길에 나섰다.

    금종래 정무특보는 정통 당료출신으로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이총재가 취약한 분야였던 정세판단·분석 기능에서 효 자 노릇을 하고 있다. 윤전소장의 추천으로 이총재의 비서진에 합류한 금차장은 최근 2명의 보좌역까지 거느리면서 더욱 비중이 높아진 상 태. 이총재의 비서실은 특보가 비서실 차장으로 영입된 뒤 실무를 총괄하게 되면서 종래의 단순 행정기능에서 탈피, 이총재의 이미지 관리 를 위한 본격적인 참모노릇을 시작했다. 그때그때의 상황을 감안해 가령 지방순회 방문이나 복지시설 방문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일 정을 잡는 등 총재의 동선(動線)을 관리하고 있다.

    진영 변호사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주도하며 당 외곽에서 정책에 관한 여론을 이총재에게 전하고 있다. 진변호사는 이총재 의 경기고 서울대법대 법조계 후배로 이총재의 정계입문 초창기 소장파로는 유일하게 ‘원외 8인방’에 끼어 눈길을 끈 인물.

    세풍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친동생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고문은 지난 대선 때와 달리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상태.

    4·13총선 이후에는 그동안 몇 개로 흩어져 운영돼온 태스크 포스 형태의 각종 사조직을 묶어 하나의 대선기획팀으로 발족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이제는 모든 계획을 2002년 대선 자체에 맞춰 장단기 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하고 이를 위해 각종 조직을 효율적으로 역할 분담시키는 통합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윤여준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대선기획팀이 여의도 라이프빌딩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기획은 실제 집행과 연계될 수 있도록 당의 공조직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비서실의 강력한 의견을 이총재가 수용, 결국 기획위가 그 중심역을 맡도록 교통정리가 됐다. 총재특보들이 개별적으로 꾸려온 팀만 해도 많은데다 공조직도 넘쳐나는 상황에 기획기능이 효율적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총재의 일은 곧 당의 일’이니만큼 당사무처와 의원총회 등 당공식 기구 중심으로 기획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의 중심에 서게 된 기구가 기획위원회다. 기획위원회는 지난 2년 동안 언론문건사건, 대통령 친인척 비리 폭로 등 여당에 치명적인 약점과 비리를 들춰내는 데 중점을 뒀었다. 그러나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대선과 관련한 전략전술과 이총재의 이미지 관리방안 등을 종합적 으로 스크린하고 있다.

    과거 당공식 기구 가운데 기획에서 가장 빛을 발한 것은 민정당 시절 국책조정위원회를 들 수 있다. 위원급으로는 최병렬의원이 총괄하고 외교안보 분야에 현홍주 전 주미대사, 경제에 김종인 전 청와대경제수석 등이 있었으며 이때 실무보좌를 맡았던 이가 이양희 자민련의원과 금종래 현 이회창총재정무특보다. 당시 국책조정위는 개헌·호헌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한 기자회견문을 만들고 관훈토론 리허설은 물론 5공청문회 기본계획 수립까지 맡았다. 반면 김영삼전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식조직보다 외곽의 브레인 풀과 사조직을 난립시키고 대선도 지 나치게 사조직 중심으로 치렀던 까닭에 재임중에도 공조직이 많이 흔들리는 부작용을 겪었다.

    ‘실전’이 최대의 학습

    이총재는 대선패배 이후 지난해말까지 주말에 자택 등에서 전문가와 ‘1대1 수업’을 통해 주요 정책현안에 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올들어서는 총선과 전당대회 등으로 바빠서 그런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이총재측은 앞으로 이 ‘주말과외’를 재개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부에는 “실전훈련이 따르지 않는 공부는 생명력이 없다”는 ‘실전파’들의 반대도 없지 않다. “공부는 무슨 공부냐. 그만큼 배웠으면 됐다. 현실 속에서 사람과 부대끼는 게 지금 이총재한테 필요한 공부다”는 논리다.

    이총재의 한 핵심측근의 말. “실전이 최고의 학습이다. 솔직히 정치인, 그것도 지도자가 책 읽을 시간이 있느냐. 우리가 가끔 필요한 책을 30페이지 정도씩으로 요약해서 넣어 드리지만 총재는 그것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다. 책이나 신문보다는 짧은 시간에 정독이 가능한 보고서가 실제 기본적인 텍스트이며 정당을 이끌어가는 총재의 임무수행이야말로 최대의 정치학습이다.”

    이총재는 물론 당의 공식라인에서 모든 현안과 관련된 보고를 받고있다. 사무총장을 통해 받는 ‘당무보고’, 원내총무를 통해 올라오는 ‘원내 보고’, 정책위의장을 통해 올라오는 ‘정책활동 보고’ 등은 주로 총재단회의나 주요당직자회의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식적이고 정형화된 보 고들이다. 이총재는 이와 별도로 당총재비서실을 통해 정무 및 정세관련 보고를 수시로 받고 있으며 기획위원회와 여의도연구소 기조국 의 원회관팀 등을 통해 각종 현안 및 검토사항을 보고받고 있다. 필요할 경우 학계 전문가 등과 당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여 이총재에게 건의할 방향을 정립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를 이총재가 미처 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은 자택에서 12시 가깝도록 책상에 수북히 쌓인 보고서를 하나씩 읽어가며 체크를 한다는 게 한 측근의 말이다.

    집무실의 유머집

    이총재는 상당한 속독 스타일이다. 판사시절 판결문도 책상 가득히 쌓아두고 핵심위주로 체크하며 속독해나갔다고 한다. 한가한 주말에는 부국빌딩에서 책을 읽을 때도 있으나 요즘은 좀처럼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신문기사 요약 및 논조분석은 총선 때까지는 선대위에서 맡았는데 요즘은 이총재가 자택에서 가판까지 직접 보고 현안에 대한 여론을 스스 로 파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신문을 보다가 필요한 경우 한밤중이라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응책 등을 지시하고 있다고 당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처음에는 무미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원칙적이고 교과서적인 표현에 매달렸던 이총재의 연설에는 최근 점차 ‘응용화법’이 늘고 있다.

    경선이 한창이던 5월25일, 비서진에서는 ‘내일의 소사’라는 보고서에 A4용지 2쪽 분량으로 ‘인간이 에베레스트산을 처음 정복한 날’에 관한 얘기를 정리해 이총재에게 전달했다. 다음날인 5월26일 대구지역 대의원 간담회에서 이총재는 “오늘은 인간이 에베레스트산을 처음 정복한 날입니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총재는 이어 “이제 우리 당은 아무도 가지 않은 출범을 5월31일 전당대회를 계기로 가고자 한다. 어떠 한 정당도 사람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정치를 펴고자 한다”며 에베레스트 정복과 전당대회에서의 승리를 연관지어 나갔다.

    딱딱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이총재 스스로도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이총재의 승용차에는 요즘 ‘빵장수 야곱의 영혼의 양식’이라는 책이 놓여 있다. ‘노아벤샤’의 시문을 산문처럼 쓴 이 책을 출퇴근 시간 차 안에서 짬짬이 읽고 있는 것이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얼마 전 이총재의 집무실에 유머집이 한권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총재에게서 최근 부쩍 농담과 여유있는 표정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다. ‘준비된 대통령’을 목표로 삼아 다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뉴 이회창 전략’이 어떤 내실을 거둘지는 2년 뒤에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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