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모조품 천국에서 패션벤처로 변신해야

  • 하태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0-04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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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조명과 활기찬 음악, 쇼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형 쇼핑몰, 그리고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로 24시간 몸살을 앓는 동대문 시장. 97년 말 경제위기를 벤처정신으로 극복해 ‘패션의 실리콘 밸리’란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동대문 시장이지만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빈곤, 상인과 디자이너들의 벤처정신 퇴색, 외국 바이어들과 국내 고객들의 외면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데…. 재래시장의 이미지를 벗은 동대문 시장이 세계적인 패션시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남산에서 내려다본 동대문 시장 주변은 그야말로 불야성(不夜城)이다. 두산타워에서 뿜어올리는 불빛은 하늘을 찌를 듯 찬란하고 밀리오레를 알리는 붉은 네온사인은 천리 밖에서도 알아볼 만큼 선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디자이너클럽을 알리는 형형색색의 알림판, 혜양엘리시움, 팀204, 누존, 신평화상가 등 32개의 동대문 상가는 저마다 독특한 멋을 뽐내며 쇼핑객들을 유혹한다.

    돋보기를 대고 동대문 시장 주변 거리를 보면 동대문 시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차도(車道)는 24시간 시속 20㎞미만의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인도(人道)는 노점상과 쇼핑객들로 점거돼 실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대형 쇼핑몰 앞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이벤트가 끊이질 않고 10대들은 스피커를 통해 귀를 찢을 듯 터져나오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에 열광한다. 2000년 6월 현재 동대문 시장의 겉모양은 이렇다. 대단한 호황 같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안을 살펴보면 동대문 시장이 겉에서 보는 것처럼 장밋빛 미래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곧 느낄 수 있다.

    ‘짜가천국’ 동대문

    회사원 박모씨(32·서울 종로구 효자동)는 부인이 동대문 시장에 쇼핑하러 가자고 하면 짜증스럽다. 지난번 쇼핑 때 당한 진저리나는 기억 때문. 5월13일 오후 11시 박씨는 부인과 처제들과 쇼핑에 나섰다. 하지만 청계천에 다다른 버스는 움직일 줄 몰랐다. 도로 3,4차로를 무단 점유한 화물차와 관광버스, 자가용들 탓에 버스와 택시들은 그야말로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거의 한시간이 다 돼 동대문 시장에 내린 박씨는 엄청난 인파에 또 한번 질렸다. 세밑의 명동거리를 연상시킬 만큼 거대한 인파 속에 구겨지듯 파묻힌 박씨는 조금씩 조금씩 밀려 두산타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파김치가 된 박씨와는 달리 부인과 처제들은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신나게 쇼핑을 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돌아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쇼핑을 마친 박씨.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도 순탄치 만은 않았다. 또다시 인파를 뚫고 지하도로 내려간 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택시는 도통 멈추질 않았다. 어렵사리 모범택시를 잡아탄 박씨는 속으로 ‘내가 여기 또 오면 성을 간다, 성을…’이라고 되뇌고 있었다.

    동대문 시장에 쇼핑하러 왔다 박씨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동대문 쇼핑의 참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 옷을 산 후 쫓기듯 집에 가기 바쁜 동대문 시장을 ‘10대들의 쇼핑천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젊은이들의 ‘패션 특구(特區)’란 그럴듯한 슬로건으로 포장됐지만 재래시장을 현대식 건물에 옮겨 놓았다는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IMF 경제위기를 맞아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백화점에 비해 유행성 면에서 앞선다는 이유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동대문 시장. 하지만 동대문 시장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5월18일부터 3일간 대한주택공사가 동대문을 찾은 시민 1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동대문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와 개선방향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동대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패션시장’을 꼽은 사람이 665명(60.5%)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혼잡함(162명·14.7%)을 떠올렸다. 동대문시장 주변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교통혼잡 565명(51.4%) ▲휴식공간 부족 292명(26.5%) ▲쇼핑공간 협소 182명(16.5%) 등을 꼽았다. 또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동대문 시장 주변에 넓은 보행로(49.8%)와 편히 쉴 수 있는 휴식공간(37.6%)을 마련해줄 것을 희망했다.

    실제로 상인들도 올해 들어 구매고객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밀리오레 4층에서 남성 캐주얼복 상가를 운영중인 정모씨(24·여)는 “과거에는 지방에서 단체로 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지방에도 대형 쇼핑몰이 등장해 예전 같지 않다”며 “매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옷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구경꾼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타워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도 “‘짝퉁(유명 메이커 제품을 모방한 제품에 대한 속칭)’을 팔면 손님들이 좀 관심을 가질까 요즘은 아예 동대문 패션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동대문 시장에는 점포수만큼의 사장이 있다. 2000년 6월 현재 2만7000여 점포가 있으니 동대문 시장에만 3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사장이 있는 셈. 이들의 목표는 물론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당연히 장사가 잘되는 옷을 만들어 팔아야 하고, 외국 고급 브랜드의 모조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의식은 결국 동대문 시장을 ‘짝퉁천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어제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 걸린 신상품이라도 내일이면 동대문 시장에서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동대문 시장의 ‘베끼기’는 가위 신(神)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복제상품의 범람은 스스로 창의적으로 디자인을 개발하지 않아도 순발력 있게 베끼기만 잘하면 장사를 잘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상인들의 디자인 개발의욕을 꺾어버린다. 실제로 동대문 소매시장의 경우 복제품을 파는 가게와 그렇지 않은 가게는 30∼70%까지의 매출액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대문 시장에 켜진 적신호

    이렇게 시장에서 불법 복제품을 만드는 것에 대해 관계당국이 단속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조직적으로 대응한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의 분위기를 확 바꾸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최신 테크노 음악이 흘러나오던 매장에서 갑자기 트로트가 흘러나오면 단속반이 온다는 신호다. 이정현의 ‘바꿔’가 나오다가 이은하의 ‘멀리 기적이 우네’가 흘러나오면 알아서 복제품을 치우란 소리다.

    게다가 한때 성시를 이뤘던 외국인 바이어들도 최근에는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동대문 시장 외국인 구매안내소의 방문객 현황을 보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평균 방문객이 290여명을 기록했지만, 올해 1월부터 4월까지의 방문객 수는 260여명으로 10% 정도 줄어들었다. 동대문에 자리잡은 도매상가 중 가장 호황을 이루고 있는 ‘디자이너클럽’에서 2년째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28·여)는 “디자이너클럽을 찾는 대만이나 일본의 바이어들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며 “그나마 가장 장사가 잘된다는 디자이너클럽이 이 정도니 다른 곳은 물어보나 마나”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외국인 구매안내소의 고동철(高東澈) 소장은 남의 물건 베끼기에만 의존한 채 새로운 디자인 개발을 게을리할 경우 가까운 장래에 중국이나 여타 동남아 시장에 비교우위를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고소장은 “중국 시장의 경우 아직까지 주문에서 배달까지 1개월 이상이 걸려 10일에 불과한 동대문 보다 늦고 바느질 마무리가 거칠어 동대문 시장을 능가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중국 시장은 동대문 시장보다 인건비 등에서 압도적으로 저렴해, 가격경쟁을 펼칠 경우 동대문 시장을 앞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소장은 최근 일본도 섬유산업 등의 불황으로 공장 가동률이 저조해지면서 동대문 시장에서 완제품을 사가기보다는 원단을 가지고 가 현지공장에서 직접 가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동대문 시장측의 서비스 정신. 광고나 안내표지판 등의 영어표기는 물론이고 말이 안 통한다는 문제는 10년 전부터 지적된 문제점이지만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동대문 시장이 안고 있는 이와 같은 위기상황은 최근 삼성패션연구소가 내놓은 ‘재래의류시장 실태 및 문제점’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한층 구체화된다. 이 보고서는 4월 전국 20∼49세 남녀 56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을 통해 실시한 ‘패션쇼핑몰 소비자 의류구매 행동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이 조사결과는 소비자들의 구매의식이 IMF 경제위기 때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하며 동대문 시장도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생존경쟁에서 뒤처질 것임을 보여준다.

    IMF의 영향을 받던 99년에는 동대문 시장을 찾는 소비자 5명 중 3.9명이 ‘비싼 옷 한 벌보다 싼 가격으로 여러 벌을 구매’했으나, 경제가 다시 활성화된 2000년에는 이런 성향을 가진 소비자가 3.19명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다. 대신 ‘비싸더라도 이왕이면 유명 브랜드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오히려 IMF 때 2.76명에서 3.04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1주일에 한 번이나 2주일에 한 번 동대문 시장을 방문하던 사람은 지난해 27.3%에서 올해는 12.4%로 절반 이상 줄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하는 사람은 38.3%에서 57.1%로 크게 늘었다.

    인적 네트워크 결여

    삼성패션연구소는 동대문 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줄어드는 이유에 대해 최근 재래시장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가격경쟁력과 제품유행성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동대문시장을 찾는 고객 10명당 5.7명이 ‘적당한 가격대’의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가격에 대한 만족도는 지난해 4.12점(5점 만점)에서 3.7점으로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는 소비자들은 경기가 호황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의복구매시 고려하는 속성에서 ‘적당한 가격’의 중요성에 99년 4.24점보다 높은 4.31점을 주었다.

    또한 경기가 안정되면서 소비자 쪽에서는 패션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의 유행성’을 주요 고려사항으로 삼는다. 99년 조사의 경우 유명 브랜드 제품에 3.73점의 만족도를 보인 반면 동대문 시장의 만족도는 4점으로 오히려 높았다. 하지만 1년 후인 2000년 조사에서는 동대문 시장 제품에 대한 유행성 만족도가 3.58로 0.42점이나 감소했다. 즉 동대문시장의 최대강점 중 하나였던 ‘신속한 기획력을 통한 유행성이 높은 제품의 집적지’라는 매력이 저하되고 있어 동대문 시장을 포함한 재래시장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불행히도 삼성패션연구소의 분석은 동대문 시장에서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동대문 시장을 발전시켰던 원동력이 오히려 동대문 시장발전에 딴죽을 거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대문 시장에는 시장 상인들간의 인적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 개인 플레이를 하는 상인들이지 동대문 시장 전체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지 않다는 것.

    동대문의 발전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생산-판매’ 간에 이루어진 완벽한 팀플레이였다. 동대문 상인을 명확한 구심점으로 해 제품 구상에서 생산 판매의 전(全)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전 세계에서 가장 신속한 생산체계를 갖춘 것이 동대문의 힘이었던 것. 이는 동대문이 공간적으로도 패션에 관련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해낼 수 있는 자기완결적 산업집적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1000만명이 모여 사는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이와 같은 ‘패션의 실리콘 밸리’가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최적의 입지인 것이다. 이에 덧붙여 동대문 상인들은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적인 노력으로 재래시장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자생적이고 자기집적적인 동대문 시장은 상인과 상인 간, 상인과 시장 간, 그리고 시장과 시장 간의 횡적 네트워크의 부재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모래알’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 동대문 시장의 상인들이야말로 모래알 중의 모래알이라는 것. 개개인은 그렇게 단단하고 야무질 수 없지만 절대로 뭉칠 수 없는 존재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재래시장에 안주하는 상가 상인들의 전근대적인 경영 마인드도 동대문 시장이 위기에 처했음을 알려주는 적신호다. 동대문 상인들은 최선을 다해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동대문 시장 상인이면서 동대문 시장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동타닷컴(www.dongta.com)을 운영하고 있는 신용남(申龍男)씨의 말을 들어보자. “동대문 시장은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입니다. 달리 말하면 진짜보다 더 좋은 가짜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이 있는 곳이지요. 하지만 그런 상인들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동대문 시장 제품에 대해 어떤 사람도 동대문 시장 제품이 세계 최고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유는 있습니다. 물건을 제대로 만들려면 엄선한 재료를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동대문 시장은 비싼 원자재를 감당할 수가 없지요. 자연 ‘메이드 인 동대문’ 제품은 최고의 제품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동대문 상인들은 물건하나 하나에 정성을 들여 만들기보다는 대충대충 빨리빨리 만들기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결국 ‘제목 조르기’식의 단가인하 경쟁만 펼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점포에서 인기를 끈 상품을 복제하는 소위 ‘샘플 따먹기’가 횡행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생산된 제품은 결국 “시장제품이 그렇지…”라는 싸구려 이미지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적은 외국인들의 입에서도 나온다. 외국인 구매안내소의 고동철 소장은 “많은 일본인 바이어들이 ‘과거와 달리 최근 디자이너클럽을 다녀보아도 눈에 확 띄는 제품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 시장은 향후 유통구조 변화에 대한 인식 미흡으로 유통정보화나 신업태 개발 등에 무관심하다. 현재 장사가 잘되면 됐지 10년 후나 20년 뒤를 내다보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 또 인터넷 마케팅이나 전자상거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필요성을 느낀다 하더라도 목전의 실익이 없어 무관심한 편이다.

    또한 공동 수출 마케팅 부재로 세계시장 진출에도 애로를 느낀다. 즉 디자인, 가격, 신속한 납기 등에서 잠재적인 수출경쟁력은 있지만 마케팅에 대한 인식결여와 공동투자 부족으로 수출시장 진출도 부진하다. 일부 상가이기는 하지만 재개발 및 상가소유나 상가운영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간 대립과 분쟁도 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속된 말로 동대문 시장이 좀 뜨자 뒤늦게 지원책을 발표하고 생색내기식 지원을 약속하는 행정당국의 태도도 동대문 시장 상인들이 보기에는 못마땅하다. 사실 동대문 시장은 관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발전한 경우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문제도 민간차원에서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는 것. 결국 인프라가 갖춰진 탓에 아직도 민간 개발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재개발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산업자원부, 서울시, 무역협회 등이 지원책을 내놓으면 상인들의 대다수는 “정책은 좋지만 공무원들이 책상에서 머리 굴려 만든 정책이 실효성이 있겠어”라는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고, “왜 뒤늦게 난리야”라며 ‘뒷북 행정’을 질타한다.

    실제로 일부 지원책은 시장생리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 지원책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각종 지원기관의 생색내기식 정책이 상충하거나 중복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심한 경우 어떤 상인들은 “관은 나서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길”이라며 관의 생색내기식 행정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5월9일 동대문 시장의 한 일식집에서는 재래시장의 위기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서울시 산하 서울산업진흥재단은 이날 오전 11시 동대문 시장 각 상가 대표들을 대상으로 ‘서울패션디자인센터’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먼저 서울시측의 비전 설명. 서울산업진흥재단의 정귀래(鄭貴來·57) 대표이사가 서울패션디자인센터의 설립 배경과 주요기능 및 사업을 설명했다. 패션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우뚝 선 동대문 시장이 규모가 영세하고 전문인력이 부족하며 디자인 개발 및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패션종합정보를 제공하고 ▲디자인·브랜드 개발을 지원하는 한편 ▲해외진출 등을 도와 국제경쟁력을 갖춘 상권으로 육성, 발전시키겠다는 취지. 7월1일까지 중구 을지로 5가에 새로 선뵌 ‘엠폴리스’ 지하에 218평 규모로 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측의 목표다. 정씨는 “센터 설립까지는 서울시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지만 이 센터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센터장은 동대문 시장 상인들이 직접 추천해 그중 최적임자를 선발하는 것이 좋겠다”며 이날 회의소집 이유를 설명했다.

    외견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모임이었다. 재래시장의 중흥을 위해 서울시가 발벗고 나섰고 동대문 시장 상인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자리로 보였다. 하지만 상인들의 발언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서울시측은 서울패션디자인센터 설립을 기정사실로 하고 다만 이 센터를 대표할 사람을 상인중에 뽑는 것을 논의하려 했지만 상인들은 패션디자인센터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상인들은 “디자인센터가 생긴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는데 밑도끝도없이 무슨 센터장을 뽑으라는 말이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훈련원공원 지하에 설치한다는 디자인센터의 위치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한 상가의 대표는 “동대문 시장 상인들은 엠폴리스가 생겼는지지조차 모르고 있는데 그곳에 디자인센터를 설치한다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다른 상가 대표도 “괜한 예산 낭비 하지 말라”는 말로 거침없이 서울시측을 몰아붙였다.

    상인보다 상가가 많다?

    서울시측은 장소물색의 어려움을 역설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동대문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패션디자인센터의 발족이 시급하다고 역설했지만 상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 모임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2시간여의 격론 끝에 끝을 맺었다. 모임이 끝난 직후 서울시 관계자는 “시장 상인들을 위한 야심찬 기획인데 정작 시장 상인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무조건 7월1일 오픈을 강행하겠다는 서울시 산업진흥재단측과 “오픈하려면 해라. 우리는 관심없다”는 상인들 사이에 시민들의 혈세만 낭비될 개연성이 큰 실정이다.

    디자인센터 개관을 보름여 앞둔 6월15일까지도 센터를 대표할 센터장은 인선되지 않고 있다. 상인협의회측이 2명, 상가관리자협의회측이 1명을 추천, 3명의 센터장 후보가 경합을 벌이고 있지만 서울시측이 선뜻 적임자를 선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상인들의 반대로 센터장을 비상근 명예직으로 했지만 이해가 다른 상인을 대표할 만한 적임자를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렇게 센터장 선정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지만 서울시측은 패션디자인센터를 7월1일부터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패션정보 제공업체는 삼성물산이, 패션기획은 인터패션플래닝과 명지대의 컨소시엄이 각각 맡기로 했고 팀장과 직원들 공채가 마무리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동대문 시장의 한 관계자는 “상인들 동의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건물만 덜렁 지어놓고 진정 상인들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관련사업의 취약성도 동대문 시장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동대문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거나 포화상태를 지난 것으로 판단되고 있지만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탓에 아직도 새로운 상가가 계속 들어서고 있다. 동대문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도매상가의 경우 최근 문을 연 누존이나 apM, TTLL2000, 엠폴리스 같은 곳에는 상인들이 입주하지 않아 빈 상점이 곳곳에 보인다. 동대문 시장에서는 “이제는 상인보다 상가가 많다”는 자조적인 농담도 나돌고 있다.

    밀리오레나 두타식 대형 쇼핑몰의 증가는 서울 동대문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들어 문을 연 곳과 추가로 오픈 예정인 대형쇼핑몰(300개 이상의 점포)과 중소형 쇼핑몰의 수가 전국적으로 40여곳에 이르러 현재 운영중인 70개 패션 쇼핑몰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올 한 해동안 새로 생겨나게 된 셈이다. 동대문 따라하기식 쇼핑몰의 급격한 증가는 지방 재래시장과 이대앞, 성신여대앞, 건대앞 옷가게와 같은 ‘로드숍’의 붕괴로 이어질 전망이다. 재래시장의 위기와 로드숍의 붕괴는 동대문 시장의 물건을 소화해내는 인프라의 붕괴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대문 시장으로서는 심각한 문제다.

    한편 급격한 상가의 증가에 비해 숙련공의 노령화, 신규인력의 충원 부족, 노동력 부족 등으로 인해 가까운 장래에 수급 불균형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대문 시장 경쟁력의 핵심 중의 하나인 봉제공의 경우도 어려운 봉제일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어 길게 잡아야 3년 후면 봉제인력난이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동대문 시장에서는 무자료 거래로 인한 공공연한 탈세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거래량의 90% 정도가 무자료 거래로 이뤄지고 있어 동대문 시장 전체가 거대한 탈세시장이 되고 있다. 또한 일부 소매시장에서 신용카드 매매가 이뤄지고 있으나 명목일 뿐 대부분 현금이 아니면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동대문 시장은 물류기반이 영세하고 취약하다는 것. 주차시설 부족으로 고질적인 주차난을 보이고 있고, 이는 주변지역의 정체로 파급돼 결국 서울시내에서 가장 교통난이 심각한 지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게다가 밀리오레·두산타워 등의 경우 거의 24시간 쉬지 않고 영업하는 바람에 밤낮 할 것 없이 교통지옥을 이룬다.

    동대문 시장을 지나려면 인내심을 가져라

    실제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청계천5가∼청계천7가 구간의 경우 낮 12시∼오후 1시 사이에 도심 방향은 3.7㎞, 오후 6시∼오후 7시 외곽 방향으로는 3.3㎞의 속도를 내는 데 그쳐 문자 그대로 기어가는 수준의 교통상태를 보였다. 또한 동대문∼을지로6가 구간인 흥인문로의 경우 오후 6시∼오후 7시 도심과 외곽 방향 차량의 통행속도가 각각 7.2㎞와 9.9㎞에 그쳤다. 시정개발연구원의 연구는 결국 밀리오레나 두산타워 등 대형 쇼핑몰이 위치한 블록이 동대문 운동장 주변의 정체를 일으키는 핵심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시는 조사를 토대로 4월27일 동대문 시장 주변을 교통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가졌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시정개발연구원 황기연 도시교통연구부장의 주제발표에 이어 건설교통부·서울시 등 관리들과 서울시의회 의원, 시민단체 등 50여명이 격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건교부와 서울시는 동대문 시장 주변을 ‘교통혼잡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내년부터 ▲주차가산금 2000원 ▲승용차 10부제 ▲이면도로 불법주차 단속과 처벌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 안에 대해 상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상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동대문 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의 평균 구매액이 2만∼3만원에 불과한데 구매액의 10%에 이르는 요금을 주차 가산금으로 내면서까지 동대문 시장을 찾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지적한다.

    주차난과 교통혼잡을 해결하겠다며 이 계획을 추진하는 서울시가 기존의 주차장을 허물고 새로운 상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상인들을 허탈하게 한다. 서울시는 최근 동부건설이 동대문주차장 부지에 상가건물을 신축할 수 있도록 도시사업계획 변경을 인가했다. 동부건설이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하면 조만간 연면적 4500평, 지상 5층 규모의 상가용 건물을 신축할 계획.

    5월7일 오후 3시 일본 도요나카(豊中)시의 아시다 히데키(芦田英機·57) 정책추진부장과 연세대 사회학과 김찬호 교수, 서울여대 원예학과 이은희 교수, 대한주택공사 유상오 도시개발기획단 연구부장 등이 동대문 시장에서 모임을 가졌다. 아시다 히데키는 1990년 오사카(大阪)부 도요나카시에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도시 만들기 작업(마치 츠쿠리)’을 기획한 도시정책 전문가. 이날 동대문 시장을 둘러본 히데키는 “동대문 시장의 상인들은 활력이 넘치는 역동적인 사람들”이라고 평가한 뒤 “하지만 현재의 동대문 시장 공간구조는 다중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게 구성돼 있다”고 평가했다.

    히데키는 이곳을 이용하면서 불편을 느끼는 시민들과 이곳 시장의 주인인 상인들이 나서 가장 이상적인 공간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히데키는 “관(官)은 이렇게 시민들과 상인들이 만들어낸 공간구조를 실현시켜주는 소극적인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대문 시장은 외적으로 화려하지만 내적으로는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물론 동대문 시장이 과거의 재래시장에 머물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제 동대문은 과거의 재래시장이 아니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상품을 선호하는 전 국민의 시장으로 태어난 것이다. 아니 한국인의 시장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동대문 시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품질과 서비스 향상은 등한시한 채 싼 가격에만 집착해 경쟁력을 스스로 해치고 있다. 저가 모조품을 만들어 외국의 보따리 상인들을 상대로 펼치는 수출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장래에는 동대문 시장은 물론 한국제품은 복제품이라고 불신하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동대문 시장의 주인은 누구일까? 물론 시장을 이루는 개개 점포의 주인은 시장 상인일 것이다. 하지만 동대문 시장이라는 큰 공간의 주인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동대문 시장이 모든 사람이 즐겁게 찾고, 만족을 느낀 채 편안하게 귀가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은 동대문 시장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동대문 시장 주변을 다시 디자인한다

    동대문 시장 주변을 걷는 사람은 묘한 매력과 짜증을 동시에 느낀다. 흡사 출근시간 환승역이나, 빅 게임이 끝난 경기장과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느낌은 건물 안팎에서 고객의 쾌적함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된다. 접근성 면에서 대중교통은 서울에서 찾아보기 드물 정도로 좋다. 여러 노선의 지하철과 버스가 동대문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끼리 승용차로 동대문을 이용하려면 여전히 불편함과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동대문 운동장을 공원으로

    많은 사람이 일시에 통행하기 위해서는 보행공간 확충과 유지가 필요한데도 보행로는 각종 포장마차가 차지하고 있어 정작 보행자는 차도로까지 내몰린다. 사고위험이 항상 잠재하는 차도로 보행해야 하는 현실을 우리 청소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은가. 밀리오레·두산타워 등으로 진입하는 차량, 차도로 통행하는 사람, 직진하는 차량들이 서로 경계하며 도심곡예를 벌이는 곳이 동대문이다. 화려한 네온과 건물, 각자의 꿈을 찾는 패션 메카의 명성 뒤에는 도시의 잔인함과 부끄러움이 존재한다. 이런 동대문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간구조가 교통과 환경을 고려해 강구되어야 한다. 이 부분 해결을 위해서는 공공의 적극적인 구실과 책임이 필요하다.

    동대문 시장이 문화적 명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동대문 운동장과 마장로 주변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동대문 운동장은 공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동대문 운동장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완공되면 그 용도와 기능이 급감하므로 도심생태공원과 광장 그리고 패션문화를 선도하는 테마파크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둘째, 주변에 산재한 도심 부적격 시설은 외곽 이전을 해야 한다. 즉 도심공동화에 따른 중등학교 문제, 대형병원, 미군기지, 영세 기계업종 등의 이전이 동대문 명소화 차원에서 적극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서측 마장로, 즉 우일프라자에서 동대문운동장까지 거리는 보행자 전용도로가 되어야 한다. 이 길은 동대문 도매시장 중심부를 이어주는 혈관과 같은 길이다. 따라서 이 거리의 매력과 활력이 동대문 시장 이미지 부각에 중요하다.

    동대문 운동장은 약 4만평으로 축구장, 야구장, 씨름장, 테니스장, 수영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시설이 노후해 상당액의 수리보선비 및 인건비가 투여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수영장, 테니스장, 씨름장은 시설경쟁력이 없어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축구장도 2002년 상암동 월드겁 경기장 개장 이후 용도와 기능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걷고 싶은 거리로 거듭나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97년 발행한 ‘시립체육시설 운영의 민간활용 방안’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동대문 운동장 시설은 침체와 이용 가능성이 줄어드는 바 다른 활력방안 모색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운동장을 바라보아야겠다. 첫째는 비교적 활용도가 높은 동대문 야구장의 대안 마련과 둘째는 그동안 동대문 운동장이 우리에게 제공한 수많은 기억과 현대사의 중요 현장이었다는 장소성을 어떻게 보전하느냐 하는 점이다. 먼저 야구장의 경우 1)서울돔 확보 방안 2)상암 경기장 주변에 야구장 마련 3)목동 경기장 기능 강화 4)대안 마련시까지 존치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둘째, 동대문 운동장은 20세기 체육사와 사회문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운동장 일부에 박물관을 마련해 그 역사를 적극 보전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또 현대체육의 흐름이 엘리트체육에서 사회체육으로 변화되는 바 지하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사회체육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하겠다.

    동대문 운동장을 공원으로 개조하기 위해 몇 가지 생각해야 할 전제와 개념이 있다. 첫째, 보물1호 동대문의 역사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둘째, 패션 메카인 동대문 시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셋째, 어떻게 도심공원 노릇을 하고 책임을 구현할 것이며, 시민들의 도시생활에 활력을 더하는 문화이벤트 기능으로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넷째, 동대문을 찾는 청소년에게 꿈과 매력, 그들만의 문화를 선도하는 기능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다섯째, 주변에서 발생하는 교통, 환경 등 도시악화 요인의 제거 및 완충작용을 유도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대문이 패션 메카로 거듭나려면

    이러한 개념을 배경으로 동대문 운동장을 다시 디자인해야 하겠다. 먼저 지상부 80~90%, 최소 3만6000평 정도는 공원용도로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공원 어디서든 동대문이 조망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하겠다. 또한 운동장 주변 어디서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친근한 공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머지 5000여평의 부지에 설치할 건물용도는 동대문 인프라 지원시설, 즉 패션인큐베이터센터, 패션정보센터, 외국인전용 서비스 아파트와 비즈니스 호텔, 패션관련 오피스, 동대문체육박물관 등 기능과 함께 서울시에 꼭 필요한 도심지지기능이 확보되기 바란다. 또한 건물 디자인은 동대문 이미지를 현대화하는 것에 국한하되 역사성·환경성이 뛰어난 환경친화적 빌딩이 들어서길 바란다. 지하공간은 지하 1층에 상업시설과 패션기능을 혼합해 배치하면 일정규모 사업비 환수가 가능할 것이고, 지하 2층에는 다기능의 사회체육시설이 들어서야 하겠다. 또 지하 3층에서 5층까지 주차장을 설치한다면 도심공항터미널과 환승기능 등을 수행해 서울 동부의 교통기능 회복에 이바지할 것이다.

    지상 공원부분은 기본적으로 오픈 스페이스를 확보해 과거 여의도광장같이 청소년들이 자유롭고 밝게 뛰어놀고 자전거를 타는 등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광장기능 확보가 중요하다. 또 이 공간은 패션이벤트, 행사 등이 개최될 수 있는 다용도 복합공간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향후 이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문화행사가 자유롭게 개최돼, 동대문이 패션 메카로 정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해야 한다.

    오픈 스페이스와 더불어 도시 생태적인 측면에서 도심에 새와 나비, 잠자리가 춤추는 모습을 차세대에게 보여주어 꿈을 심어주는 기능도 중요하다. 또한 이 기능은 혼란스러운 도심생활에 차분한 정적 기능을 부여할 것이다. 또 필요한 기능 중 하나는 동대문이 가진 상징성을 공원에 투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대문 시장은 IMF 속에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 상인정신과 젊은 디자이너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졌다. 21세기에도 동대문 시장이 세계 중저가 의류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도시문화와 패션문화가 상생하는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동대문 운동장 부지를 합리적으로 이용하여 도심 오아시스 같은 멋진 공원을 형성해야겠다. 이러한 구상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나라 초유의 대단위 도심환경개발이 될 것이다. 또 도시구조 변화와 도시기능 회복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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