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대한민국 접대 일번지 룸살롱 요지경

  • 김영철 자유기고가

    입력2006-10-04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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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1~4월에만 4,581개가 새로 생긴 룸살롱. 그룹 ‘지정’ 업소부터 종업원 600명의 중소기업형까지. 여의도 증권가 뺨치는 룸살롱의 정보력, 무서운 생존력.》
    대한민국은 흔히 ‘접대공화국’으로 불린다. 지난해 국세청 국감자료에 따르면 1996∼1998년 3년 동안 국내 기업이 공식적인 접대비로 신고한 액수는 약 9조9898억 원. 비공식적으로 쓰는 접대비가 신고된 것보다 더 많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고 보면 얼마나 많은 돈이 소비성 경비로 지출되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빚에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기업들이 접대비 지출 규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의 이런 기형적인 접대문화의 한 축에는 ‘향락 1번지’라 불리는 룸살롱이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 J사의 경리이사를 맡고 있는 K씨(47)는 “관계나 금융권 인사를 상대로 한 접대의 절반 이상은 룸살롱에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J사의 경우엔 잦은 술자리 접대를 해결하기 위해 강남 역삼동 일대에 몇 곳의 ‘지정’ 룸살롱을 두고 있다. 회사 일과 관련된 접대를 할 때 임원들의 사인만으로도 결제가 가능한 업소들이다. 접대할 손님의 비중에 따라 출입하는 룸살롱의 급수도 달라진다고 한다. 국내 50대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 기업들도 J사와 마찬가지로 두세 곳 정도의 지정 룸살롱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로 지정 룸살롱의 종업원들은 기업의 ‘숨은 정보원’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접대장소로 룸살롱을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편적으로 보자면 ‘값비싼 향응 = 최고급 접대’라는 인식이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탓이다. ‘소주를 권하면서 청탁할 순 없지 않으냐’는 기업체 임원들의 얘기에선 그런 한국식 접대풍토가 그대로 묻어 나온다.

    그러나 룸살롱이 최고의 ‘접대 명소’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룸살롱만이 지닌 폐쇄성과 은밀성이 바로 그것이다. 룸살롱은 밀실(룸) 영업을 전제조건으로 삼은 유흥업종이다. 룸살롱(영어 Room + 불어 Salon)이란 용어 자체가 방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설비한 술집이란 뜻을 지닌다.



    “방은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또 우리를 음산한 꿈속에 가두어 두기도 한다”고 함석헌 옹이 남긴 이 얘기 속에는 방이 지닌 속성이 잘 드러나 있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룸살롱 업주도 룸이 지닌 은밀함이 손님을 끄는 무시 못할 요인임을 인정했다.

    “소주 권하며 청탁할 순 없는 일”

    고급 술과 아름다운 여급은 분위기를 돋워주는 소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업주의 얘기였다. 열린 공간에서는 쉽게 하지 못할 일, 남이 봐서는 안 되는 일을 하기에 룸살롱만큼 적당한 장소가 없다는 것. 청정하리라 믿었던 386세대 의원들이 5·18 전야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던 것도 어쩌면 룸이 지닌 속성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IMF 구제금융 체제의 터널을 지나온 지난 몇 년 동안, 룸살롱은 우리 사회의 우울한 화두 중 하나였다. 무너진 중산층과 서민층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안겨주는 상징적 요소가 돼왔기 때문이다. 하루 술값으로 수백만 원을 탕진하는 부유층 인사들, 밀실에서 이뤄지는 부적절한 로비들…. 과연 우리의 접대문화는 어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걸까.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거론되는 룸살롱신드롬. ‘주식(酒食)’회사 룸살롱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일그러진 접대문화의 현주소가 그대로 비친다.

    올 들어 하루 38개씩 개업

    최근 룸살롱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세청 홈페이지(www.nta.go.kr)에 올라 있는 ‘개업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넉달 사이 새로 문을 연 룸살롱은 전국에 걸쳐 4581개소. 하루에 38개꼴로 룸살롱이 들어선 셈이다. 유흥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의 경우 올들어 지난 4월까지 매일 1.18개꼴로 문을 연 것으로 나타났다. 99년 1년 동안 전국에서 개업했던 룸살롱이 6200개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신장 추세다. (표 참조)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룸살롱 개업 붐이 인 것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해 10∼12월 석 달 동안 개업한 룸살롱 수는 무려 2900여 개에 이르렀다. 국세청 관계자는 “당시 IMF 시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코스닥 등 증권시장에 불기 시작한 주식 열풍이 룸살롱 개업을 부추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룸살롱 업주들의 ‘모자 바꿔쓰기’ 때문에 개업 업소 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점도 있다”고 했다. 모자 바꿔쓰기란 유흥업주들이 인정과세 등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폐업을 하고 새로 개업하는 행위를 일컫는 유흥가 은어.

    그러나 룸살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배경에 대한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서울 강남 삼성동 L룸살롱 업주인 J씨(45)의 얘기.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매스컴에서 연일 고급술집이 손님들로 꽉꽉 들어찬다는 보도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 떼돈 욕심에 업소를 차리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죠. 또 원래 룸살롱의 경우 고급향락업소라고 해서 사업자금을 은행에서 대출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파이낸스사 같은 유사금융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편법 대출이 가능해진 겁니다. 이런 회사들이 새로 룸살롱을 하려는 사람들의 자금줄 노릇을 하거나 거액의 대출금을 풀었던 거죠. 당시엔 하룻밤 자고 나면 어디에 새 업소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들려 깜짝 놀라곤 했어요. 그러나 우리 룸살롱이란 게 겉보기와는 달리 ‘속빈 강정’이에요. 쉽게 보고 덤비다간 망해 나가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시중자금이 엉뚱한 방향으로 풀려 룸살롱 개업 붐을 뒷받침했다는 J씨의 얘기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지난해 금감원이 전국 600여 개 파이낸스사 가운데 41개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파이낸스사 중 상당수가 룸살롱 등 향락업소의 자금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최근 룸살롱의 무분별한 개업 붐은 유사금융회사들의 문란한 자금운용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셈이다.

    룸살롱의 급격한 증가는 룸살롱업계의 양극화 현상을 부채질했다. ‘빈익빈 부익부’. 한정된 손님을 상대로 경쟁을 하다보니 자연 호황을 누리는 업소와 불황을 겪는 업소의 간격이 더욱 크게 벌어진 것. 룸살롱업계에서 ‘잘 나가는’ 업소로 알려진 상당수 룸살롱들은 방이 40∼50개 이상인 매머드급이거나 내부 구조가 호화롭고 술값 비싸기로 유명한 고급 룸살롱이다.

    국내 최대의 룸살롱으로 알려진 업소는 서울 강남 논현동의 D룸살롱. 지하 3개층에 걸쳐 거미줄처럼 복잡한 구조로 모두 100여 개의 룸이 설치돼 있다. 술자리의 야전사령관 격인 마담만 해도 40여명. 이들이 거느리고 있는 ‘아가씨(호스티스)’들은 무려 300여 명에 이른다. 일명 ‘D걸’(디스코 걸 : 무대에서 춤추는 무희)과 웨이터, 주차, 주방 일 등을 하는 종업원까지 합하면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

    D룸살롱은 강남 일대에서 큰 규모뿐만 아니라 ‘높은 매상’으로도 유명하다. 평일에도 밤 10시쯤이면 100여 개 룸이 손님들로 가득 찰 정도. 룸 한 개가 하루 평균 100만원의 매상을 올린다고 치면 D룸살롱의 1일 매출 규모는 어림잡아 1억원. 종업원 수로 보나 매출 규모로 보나 이쯤 되면 웬만한 중소기업은 우스울 정도다. 지난 6월초 접대를 위해 D룸살롱을 찾아갔던 Y씨(39·제약회사 영업과장)의 ‘체험기’.

    “일식집에서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9시30분쯤 (D룸살롱에) 갔어요. 워낙 큰 업소라고 소문이 나서 예약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가보니 빈 방이 거의 없더라구요. 작은 방 한두 개가 비었는데 너무 좁아서 홀로 나왔죠. 홀에도 테이블이 설치돼 있었는데 우리말고도 두 팀이 더 대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홀 옆 스테이지에서 D걸들이 춤을 추고 있기에 자세히 보니 각자 옷에 번호판을 달고 있었어요. 궁금해 웨이터에게 물었더니 아가씨의 번호를 말해주면 동석을 시켜준다는 거였어요. 우리 일행이요? 10시30분 무렵이 돼서야 방이 비어 룸으로 들어갔지요. D걸도 부르고 호스티스도 앉히고 그렇게 큰 거 서너 병 마셨더니 120만원쯤 나오더라구요.”

    서울시내에서 대형화 하고 있는 룸살롱은 D룸살롱 이외에도 여러 곳. 강남 S호텔 인근의 P업소의 경우엔 5층짜리 여관건물 전체를 개조해 룸살롱으로 쓰고 있고 여의도의 D업소도 최근 대형 빌딩의 한 개 층을 임대해 업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D룸살롱의 기네스 기록도 몇 개월 안에 깨질지 모른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강남 G아파트 주변의 S룸살롱은 규모보다는 고상하고 고풍스러운 최고급 시설로 손님을 끌고 있다. S룸살롱의 업주는 4층 빌딩을 사들여 지난해 건물 전체를 룸살롱으로 꾸몄다고 한다. 지상 4개층은 S룸살롱 업장이고 지하 2개층은 자매업소인 F룸살롱이 쓰고 있다.

    S룸살롱의 룸은 30여 개에 불과(?)하지만 마치 아방궁처럼 넓고 사치스럽게 꾸며져 있다. 인테리어 비용만 10억이 들었다는 룸들은 천장이 이중구조로 돼 있고 벽에는 가야금 같은 고풍스러운 물건이 걸려 있다. 서너 명이 마시려면 최소 150만원은 들고 가야 할 정도로 비싼 곳. 하지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덕에 부유층 접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S룸살롱의 ‘성공’사례는 ‘호화시설이 고액 손님을 부른다’는 업계의 속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주식회사 룸살롱’의 등장

    룸살롱의 대형화·고급화와 함께 한 가지 눈에 띄는 추세는 다름아닌 ‘법인화(法人化)’다. 서울 시내의 룸살롱 가운데 서너 곳은 현재 주식회사로 운영되고 있고 다른 대여섯 개 업소도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 서초구 Y호텔 지하에 있는 B룸살롱과 중구 K빌딩 건너편의 P룸살롱이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대표적 업소들. B룸살롱의 경우 관할 세무서에 법인 사업자로 등록을 마친 상태. B룸살롱은 룸 38개에 ‘아가씨’를 200여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대형 업소로 대외적으로는 ‘종업원 지주제’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B룸살롱의 모(母)기업이 중견 건설회사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중구 P룸살롱은 룸이 20개 정도인 중형 업소. 지배 주주인 업주와 임원, 그리고 10여명의 마담이 일정액을 출자해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매월 순이익에 대해 주주로서 배당금을 받는다고 한다. B룸살롱 D마담의 지난달 배당 수입은 30만원대. ‘지난 연말 룸살롱이 최대 호황을 누렸을 때엔 100만원이 넘는 배당 수입을 올렸지만 경기가 곤두박질친 지난 봄부터는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라는 게 D마담의 설명이다.

    ‘주식회사 룸살롱’을 과연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까.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호화유흥업소의 대형화라는 점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선 세무공무원들은 오히려 룸살롱의 법인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자본금이 일정액 이상만 되면 회계 및 세무 감사 등을 통해 업소의 실질 수입을 파악할 수도, 또 투명한 경영과 납세를 유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볼 때 일선 세무공무원들의 바람은 당분간 ‘희망사항’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직도 상당수 룸살롱 업주들이 세무 감사 등의 부담 때문에 주식회사 형태의 운영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룸살롱의 법인화는 요즘 업주들이 맞닥뜨린 새로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룸살롱은 매우 독특한 인력구조로 운영되는 하나의 ‘기업’이다. 일반적으로 룸살롱의 인력은 업주인 회장이나 사장을 정점으로 전무, 상무 등으로 불리는 ‘임원진’과 마담과 웨이터, 아가씨(호스티스), 보조웨이터로 이어지는 ‘실무진’으로 구성된다.

    규모가 클 경우 대개 동업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회장과 사장이 여러 명인 업소도 적지 않은 편. 일부 업소의 동업 업주 가운데엔 표면에 나설 수 없는 ‘신분’ 때문에 마치 주주처럼 자기 투자분에 대한 배당금만 받아가는 사장들도 있다고 한다.

    ‘바지 사장’과 영업 상무

    상당수 룸살롱 업주들은 대외적으로 사장 노릇을 할 월급쟁이 ‘대리사장’을 따로 고용하곤 한다. 유흥업주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부정적인 데다 ‘걸면 걸리기 쉬운’ 단속 규정 탓에 업주가 전과자가 될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실권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이들 대리사장들을 업계에선 ‘바지사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업주 다음의 실권자는 전무와 상무. 전무의 경우 업소 살림과 함께 마담 웨이터 호스티스 등을 감독하고 교육하는 매니저를 겸임하는 게 보통이다. 룸살롱 업계에는 최근 들어 종업원들을 상대로 ‘정신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업소들이 늘고 있는데 이때 전무가 ‘전임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는 것.

    흔히 ‘영업상무’라고도 불리는 상무의 경우엔 대개 궂은 일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는다. ‘불량 손님’을 조용히 쫓아내고 불상사가 생겼을 때 매끄럽게 처리하는 게 바로 영업상무의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의 성격상 주먹세계와 연이 닿는 사람이나 현역 ‘어깨’를 영업상무로 두는 업소가 많았지만 요즘엔 오히려 법적으로 ‘깨끗한’ 사람을 선호한다고 한다. 어깨를 상무로 쓸 경우 수사기관의 집중관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룸살롱의 ‘실무 책임자’격인 마담과 웨이터는 누가 아가씨를 장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권력서열이 달라진다. 웨이터가 아가씨를 관리하는 업소는 자연 웨이터에게 힘이 실리고 마담 휘하에 아가씨가 배속된 업소는 마담이 실권을 쥐게 된다. 웨이터가 막강한 힘을 지니는 나이트클럽과는 달리 룸살롱의 경우 마담 중심의 영업을 하는 게 대다수.

    마담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된다. ‘구좌마담‘과 월급마담. 구좌마담은 실적급 연봉을 받는 프로스포츠선수와 비슷하다. 업소와 계약할 때 미리 계약기간(보통 1년)에 얼마의 매상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일정액의 선불금(업계 은어로는 ‘마이낑’)을 받는다. 일종의 무이자 대여금인 선불금은 마담의 능력에 따라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른다. 대개 구좌마담들은 이 돈을 아가씨를 새로 스카우트하거나 휘하 아가씨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데 쓴다고 한다.

    강남의 능력있는 A급 구좌마담들의 ‘계약액’은 수억원. 업소에 소속된 동안에는 자기 손님이 올리는 매상의 30∼40%가 구좌마담의 몫이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만료된 뒤 연간 매상이 계약액에 못미칠 경우엔 냉혹한 벌칙이 뒤따른다. 모자란 액수만큼 채워넣어야 하는 게 업계의 불문율. 구좌마담들의 고객유치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월급마담의 경우 매월 고정급이 지급된다. 급여 액수는 마담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 300만원짜리 마담이 있는가 하면 매월 800만∼900만원을 받는 연봉 억대의 마담도 있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경력에 따라 마담을 왕마담-마담-새끼마담-낙하산마담 네 부류로 나누기도 한다. 왕마담은 말 그대로 업계의 터줏대감인 마담. 새끼마담은 아가씨로 일하다 초보 관리자로 ‘신분’을 바꾼 마담을 의미한다. 프로야구의 플레잉코치처럼 새끼 마담의 경우 급하면 아가씨로도 뛸 때가 왕왕 있다고 한다. 낙하산마담은 아가씨 생활을 거치지 않고 특채로 관리자가 된 마담을 일컫는 말. 낙하산 마담의 경우엔 처신을 잘못하면 아가씨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 그래서일까. 낙하산 마담 가운데 장수하는 마담은 드문 편이다.

    보조웨이터는 ‘살롱동네’에서 가장 고달픈 계층. 월급이 아예 없거나 교통비 정도만 지급된다. 나머지 수입은 팁이 전부. 룸살롱 계산서에 T/C(테이블차지)명목으로 계산되는 돈이 바로 보조웨이터가 받는 팁이다. 같이 팁으로 먹고사는 처지인 탓일까. 간혹 룸살롱 아가씨들이 술자리 파트너에게 “오빠, 웨이터 수고비 좀…”이라고 속삭이는 것도 그런 속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유흥업계에선 흔히 룸살롱은 ‘여자장사’라고들 말한다. 어리고 예쁜 A급 아가씨를 많이 보유할수록 손님을 많이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룸살롱 손님에게 테이블 옆자리의 아가씨가 ‘꽃’이라면 룸살롱 업주들에게 있어서 꽃은 다름아닌 A급 마담이다. 능력있는 A급 마담 한두 명이 업소 매상의 30∼40%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상당수 업주들은 A급 마담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감시’하기도 한다. 마담이 움직일 때마다 휘하 아가씨들이 뒤를 따르고 단골들까지 등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탓이다.

    업계에 어떤 업소의 마담이 장사 잘한다는 소문이 돌면 그 마담은 금세 스카우트 대상으로 떠오른다. 때론 남의 업소 A급 마담을 빼내가려다 작은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업계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서초동 B룸살롱의 업주가 논현동 D업소의 A급 구좌마담을 몰래 스카우트했다. 마담이 업소에서 받은 선불을 대신 내주고 약간의 보너스까지 얹어줬던 것. 이 사실을 뒤늦게 안 D업소 사장이 길길이 날뛰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마담을 스카우트했던 B룸살롱 업주는 상대 사장의 보복이 두려워 한 달 동안 대여섯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마담 쟁탈전이 빚어낸 촌극인 셈이다.

    최근 룸살롱 업계는 일부 대형화한 단란주점들이 몰래 마담을 끌어가는 바람에 골치를 썩고 있다. 룸과 아가씨를 두고 불법영업을 하는 이들 단란주점들은 룸살롱 업계의 ‘숙적’. 단란주점들은 특소세가 부과되는 룸살롱에 비해 적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업 수익률이 높은 편이다. 일부 단란주점 업주들이 이렇게 생긴 여유 자금을 뿌려대며 마담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는 것. 속 타는 업주들과는 달리 몸값이 치솟는 A급 마담들로서는 즐거운 비명이 나올 만하다.

    마담들은 흔히 “룸살롱에는 두 부류의 아가씨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2차’에 쉽게 따라 나서는 아가씨들과 거의 ‘2차’를 나가지 않는 아가씨들. 초보 호스티스일 경우에는 대부분 2차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겁도 나고 일종의 죄의식도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초보들의 ‘방어벽’은 돈의 위력 앞에서 서서히 허물어지곤 한다.

    룸살롱 마담경력 5년차인 K씨(33)의 경험담.

    “처음 이 일을 하면서부터 2차를 자원해서 나가는 애들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빼는 애들이 많지요. 그래서 손님들과 싸우기도 하고. 하지만 이 생활 하다 보면 돈에 감염되기 마련인가 봐요.

    제가 뛰고 있는 강북의 업소는 애들 팁을 다음 날 일괄적으로 지불하는데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서 ‘시제(施濟)’라고 적힌 흰 봉투에 넣어주죠. 겉봉에 액수가 적혀 있는데 그때 2차를 뛴 애와 안 뛴 애의 차이가 한순간에 드러나요. 테이블 서빙만 한 아이들은 ‘더블’(한번에 두 손님 테이블에 들어가는 것)을 뛰어도 20만원 정도가 고작인데 비슷한 상황에 2차를 간 애들은 40만∼50만원이 넘어가거든요. 순간적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돈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2차를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아이들도 적지 않아요.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스스로의 결심을 합리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어차피 돈벌러 나온 것, 빨리 목돈이나 만들자’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결사적으로 2차에 반발하던 아이들도 조금 시일이 지나면 찾아와서 말을 건네요. ‘언니, 2차 나가면 안 무서울까. 착한 손님 있으면 한번 나가볼까’. 세상에 여자 사려는 착한 손님이 몇이나 있겠어요? 그렇게 2차에 길들여지는 거죠.”

    마담 K씨는 처음으로 휘하 아가씨들을 2차 내보냈을 때 심한 마음고생을 겪었다고 했다. 같은 여성인데 몸 파는 모습이 좋을 리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현실 때문일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룸살롱 마담들 사이에선 이런 자조적인 농담이 오간다고 한다.

    “2차 제일 많이 보낸 X이 벼락맞는다”

    룸살롱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밀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북창동식 룸살롱 문화’의 확산이다. 서울 북창동의 몇몇 룸살롱이 원조라고 해서 이름붙여진 북창동식 룸살롱문화의 실체는 다름아닌 난잡한 성의 상품화다. 어두운 밀실에서 벌거벗은 채 ‘유두주’ ‘계곡주’를 제조해 돌리고 심할 경우 ‘현장’에서 유사 성행위가 이뤄지기도 한다.

    ‘북창동식’ 룸살롱

    북창동식 룸살롱문화는 지난해부터 서소문, 무교동, 장안동을 거쳐 현재 강남 일대의 룸살롱에도 상륙한 상태. 북창동식 영업을 하는 업소는 밀실에서 온갖 쇼를 다한다고 해서 ‘쇼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 업소들의 쇼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 최근에는 손님 중 한두 사람을 골라 테이블 위에서 즉석 성행위를 하게 하고 나머지는 그 광경을 구경하는 변태성 스페셜메뉴까지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업소에서는 천장에 매달려 쇼를 할 수 있도록 내부 인테리어를 고치고 사전 리허설까지 벌인다는 것.

    무역회사 과장인 K씨(41)는 지난 5월 중순 일본인 바이어를 접대하기 위해 강남의 한 ‘쇼집’에 갔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최근에 일행을 이끌고 다시 방한한 일본인 바이어가 “그때 그 룸살롱이 인상깊었다”는 얘기를 몇 차례 꺼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쇼집을 다시 찾아가야 했던 K씨의 토로.

    “저는 그런 술자리가 전혀 달갑지 않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바이어가 가자니 갈 수밖에. 두 번째 갔던 날은 이미 안면을 튼 손님이라고 더 농도 짙은 쇼를 벌이더라구요. 우리 일행이 다섯 명, 아가씨들도 다섯 명이었는데 처음엔 전부 옷을 벗고 ‘칙칙폭폭놀이(여러 칸이 연결된 기차처럼 남자와 여자가 교대로 서서 허리를 붙잡고 노는 형태)’를 하더니 특별 서비스라며 한 사람을 지목해 테이블 위에서…. 대체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보겠어요. 괜히 수치심이 일고 화가 나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아무튼 그 일을 겪은 뒤 한동안 마치 ‘동물의 왕국’에 출연하고 온 기분이었어요.”

    강남 일대의 일부 룸살롱까지 북창동식 룸살롱 영업방식을 도입한 것은 최근 들어 경기 불안 심리로 손님이 차츰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님을 다시 끌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쇼집들. 만약 신 IMF시대가 도래한다면 대체 어떤 ‘충격 메뉴’가 등장하게 될까.

    지난 연말부터 올초까지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주식열풍은 룸살롱업계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원이나 마담들 치고 ‘유망주’ 수백 주씩 손에 쥐지 않아본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 그때 주식투자가의 심리를 한 수 읽었기 때문일까. 요즘 ‘살롱동네’ 사람들은 대개 하루 영업의 성패여부를 그 날 오후 3∼4시쯤 되면 족집게처럼 알아맞힌다.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 그 날 손님은 몇 테이블이 차고 또 몇 포인트 이하로 떨어지면 파리를 날리게 된다는 식이다. 최근 들어선 ‘종합주가지수의 등락과 룸살롱의 매상 변화가 거의 정확하게 비례한다’는 게 룸살롱업자들의 얘기. 신문 경제란에서 주가지수를 확인하는 것이 요즘 룸살롱 마담들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됐다.

    “손님이 원하면 어우동도 대령”

    경제전문가들은 룸살롱 매출이 주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징후라고 말한다. 분별력을 잃고 거품만 양산해내던 소비문화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는 여전히 화려한 접대문화의 향수에 젖어 사는 부류가 있다. 벤처기업 K사 사장 L씨(33)의 얘기.

    “벤처기업을 둘러싼 거품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에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테헤란밸리 벤처빌딩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접대받는 것, 접대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부류도 상당수죠. 오죽하면 코스닥 상장을 앞둔 몇몇 벤처기업주와 창업투신사 간부들이 어디 술집에서 ‘펀딩(funding)’작업을 한다는 얘기가 업계에 나돌겠어요. 못 믿겠으면 벤처인들의 단골인 강남역 부근 B룸살롱 같은 델 찾아가 보세요. 컴퓨터 대신 마이크를 잡고 있는 20대 사장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 룸살롱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 보면 대개가 벤처기업가나 부유층 2세, 그리고 접대가 일인 사람들이에요. 그 외에 다른 부류가 있다면 아마도 접대를 받는 힘있는 사람들이겠죠.”

    서울 강남 청담동과 역삼동 일대의 몇몇 룸살롱은 이른바 ‘비밀회원제 업소’로 알려져 있다. 회원이 아닌 뜨내기손님들은 룸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다. 대기업 임원, 유명 정치인이나 공직자 2세, 재벌가 후예, 신흥 벤처 기업인 등이 바로 업소에서 회원으로 모시는 ‘자격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회원제 업소에는 한 병에 100만원씩 받는 발렌타인 30년산이 창고에 쌓여 있고 때로는 아주 특별한 ‘주문형 접대’가 이뤄지기도 한다.

    ‘주문형 접대’란 손님의 취향에 따라 파트너가 될 호스티스가 ‘변신’을 하는 것. 한 예로 손님이 조선시대 기생을 옆에 앉힌 분위기에서 마시고 싶다고 하면 그 날 하루는 호스티스가 ‘어우동 복장’으로 서빙을 한다는 것. 하룻밤 술값 1000만 원의 ‘신화’를 다시 쓰는 곳도 바로 이런 회원제 룸살롱이다.

    현충일 전날인 지난 6월5일 밤. 부유층 젊은이 전용클럽으로 유명한 서울 청담동 J클럽에선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다음날 클럽이 쉰다는 사실(현충일은 전국 유흥업소의 공식적인 휴무일) 때문에 평상시보다 배나 많은 부유층 자제들이 업소에 몰려들었던 것. J클럽 측은 부랴부랴 복도에 테이블과 보조의자를 설치했는데 그 행렬이 화장실 문 앞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날 J클럽의 해프닝은 강남의 일부 룸살롱에서도 비슷하게 되풀이됐다. A룸살롱은 손님이 너무 많아 이웃 업소에서 아가씨를 빌려 와야 했을 정도. 이들의 술자리는 다음날인 현충일 새벽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이들의 모습과 5·18 전야 ‘386’들의 모습이 자꾸 교차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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