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전략기동함대 갖춰 독자작전 펼치는 게 꿈”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0-04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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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에서 5시간 동안 진행된 해군함상토론회의 주제는 ‘장보고 대사의 해양경영과 21세기 한국 해군의 해양안보’였다. 토론회가 끝난 후 만찬석상에서 이수용 해군참모총장이 건배를 제의했다. 그가 ‘바다로’를 외치자 좌중은 ‘세계로’라고 받았다. 》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이수용 해군참모총장(58·해사20기)은 1함대사령관과 작전사령관을 거친 작전통이면서 평소 해군과 관련한 각종 토론회를 즐기는 학구파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지난 5월19일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에서 약 5시간에 걸쳐 진행된 제8회 함상토론회에 참석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직 해군 장성 및 장교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해군 원로’들과 해군유관단체·학계 인사들이 주제 발표자 및 토론 참가자들과 큰 소리로 다투기까지 하며 해군의 발전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광경에 감명을 받은 기자는 그후 함상토론회와 관련해 이참모총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는 지난 6월7일 해군참모총장 서울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해군함상토론회는 언제부터 어떤 목적에서 시작된 것입니까.

    “함상토론회는 해양안보의 중요성과 해군의 임무, 그리고 해군력 건설 방향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확산시킬 목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해군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바다에서 항해중인 군함을 토론회 장소로 잡았습니다. 제1회 함상토론회는 92년 10월 독도 부근 해상 강원함(구축함)에서 열렸습니다. 그후 매년 한 차례씩 열려 올해 8회째를 맞게 됐습니다.”

    ─제8회 함상토론회의 주제가 ‘장보고 대사의 해양경영과 21세기 한국 해군의 해양안보’였는데 장보고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먼저 해양안보 측면에서 보면 장보고는 약 1200년 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군사 1만여명으로 해상에 출몰하던 해적을 완전히 소탕하는 한편 중국과 일본에 이르는 바닷길을 안전하게 지켰습니다. 요즘 개념으로 치면 해상방위태세를 확고하게 갖춘 것이죠. 또 해양경영 측면에서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일본과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국익을 창출했습니다. 이러한 장보고 대사의 해양개척 정신이 해군력 발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시점에 맞아떨어진다고 본 겁니다.”

    ─장보고의 해양경영이 한국 해군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1세기 한국의 국가전략을 장보고 대사의 해양경영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과업을 장보고는 이미 1200년 전에 성취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보고는 해양개척 정신의 사표라 하겠습니다. 해양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해양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국가정책, 해군력 등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합니다. 현재 해군력 증강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장보고의 해양경영에서 보듯 국가보위와 번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적절한 해군력을 갖춰야 하며 이는 곧 지역안정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자들이나 토론 참석자들이 발표한 내용 중 특별히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요?

    “목포해양대의 김형근 교수가 발표했듯 장보고 시대 이후 우리나라는 해양세력이 소멸하기 시작했고 그와 때를 같이해 동북아시아 해양은 왜구들에게 침탈당했습니다. 특히 해양에 무관심했던 조선시대의 정책은 치욕적인 임진왜란으로 이어져 우리 역사의 진취성과 개방성을 잃게 했다는 김교수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장보고는 민족의 사표”

    이참모총장은 장보고에 대해 많이 연구한 듯싶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관련 기록뿐만 아니라 일본측 사료인 ‘입당구법순례행기’까지 꿰고 있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당시 일본의 승려였던 옌닌이 쓴 일기다. 일기에 따르면 옌닌은 당나라로 가기 위해 청해진 부근 바다를 지날 때 일본 규수 지방 태수가 장보고 앞으로 써준 추천장을 품고 있었다. 이참모총장은 장보고에 대한 사료가 많지 않다는 점을 무척 아쉬워했다.

    “장보고에 대해선 출생시점이나 출생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정도로 연구가 미진한 실정입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처럼 장보고 대사도 일기를 남겼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조명을 받고 이순신 장군 못지않게 우리 민족의 사표로 추앙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보고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해군은 장보고 대사의 해양개척 정신을 승화·발전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2010년까지 30여개 사업을 선정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보고 대사 선양추진위원회’를 운영하는 한편 각종 교육교재를 제작하고 있으며 장보고상(賞)도 제정했습니다. 또한 전남 완도군의 장보고 축제에 해군 함정과 군악대 및 의장대를 지원했습니다. 아울러 장보고 대사의 조형물을 제작하는 한편 영정을 제작해 해군사관학교에 전시했으며 장보고 대사의 무역선을 복원해 박물관에 전시한 바 있습니다. 또 청해진 민속촌에 해군관을 건립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1200년 전 군사력에 바탕을 둔 해양경영을 실현했던 장보고와 그를 추앙하며 선진해군을 꿈꾸는 한국 해군.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 해군의 발전 방향으로 이어졌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니 해양자원 확보니 해서 바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국가의 해양력은 해군력에 비례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해군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주변국들과 비교한다면….

    “사실 각국의 군사력을 한마디로 비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주변국의 해군력 발전 방향이나 흐름을 개괄적으로 얘기할 수는 있습니다. 일본은 97년 4월 ‘미·일신방위협력지침’ 제정과 미국과의 책임분담이라는 명목으로 군사대국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위상을 확대하기 위해서죠. 든든한 경제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 해군에 이어 세계 2위의 전력을 갖췄습니다. 이지스급 구축함을 주축으로 88함대를 구성해 원양해군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유사시 경항공모함으로 바꿀 수 있는 대형수송함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조만간 1만톤급 군수지원함을 확보할 예정입니다. 대형 군수지원함과 대형 수송함의 확보는 곧 동북아에서 해양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도 대단합니다. 중국은 해군 전략개념을 연안 방어전략에서 해군의 활동영역을 확대한 적극적 근해 방어전략으로 바꾸었습니다. 아울러 대양해군 건설을 위한 50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를 위해 러시아로부터 7000톤급 구축함을 구입하기로 계약했으며 98년 말에는 6000톤급의 루하이 미사일구축함을 자체 건조해 취역시키고 무기체계의 현대화를 꾀하는 등 해군력 강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한편 러시아는 경제난에 따른 예산 삭감과 군사독트린의 변경으로 군사력을 대폭 감축했으나 전략핵잠수함과 1만톤급 순양함을 보유한 해군력은 여전히 아시아 최강입니다. 태평양을 중시하는 정책은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며 적정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해군력을 유지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 해군력은 매우 미약한 수준입니다. 조선수주량 세계 1위, 어획량 세계 8위, 무역량 세계 10위의 해양경쟁력에 걸맞은 해군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주변국 해군력과 비교하면, 우리 해군의 전투력은 일본 해군의 18.6%, 중국 해군의 22.4% 정도로 평가되는 실정입니다.”

    ─우리 해군력이 그토록 열세에 놓이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먼저 그동안 해군력을 키울 만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해군력 증강에까지 군사비를 투자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남북 분단의 대치국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급한 지상 및 공중 전력 강화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해군에 대한 투자가 적었던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경제발전을 토대로 해군력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해군의 화두는 대양해군이다. 1990년대 들어 해군의 공식석상이나 해군 관련 토론회에서는 대양해군이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거론됐다. 광개토대왕함에서 열린 지난번 함상토론회에서도 “한국 해군은 대양해군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양해군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먼저 대양해군의 개념을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해군력은 세계적 해군, 대양해군, 접속 또는 지역해군, 연안해군 등 크게 4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연안해군은 연안국의 배타적 권한이 적용되는 수역을 초계하며 제한된 수준의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을 뜻합니다. 반면 대양해군은 말 그대로 지역해는 물론 대양에서도 활동하는 해군입니다. 즉 수상 수중 및 공중에서 작전이 가능한 입체전력을 갖추고 해양통제와 해상교통로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도발을 억제하는 능력을 갖춘 해군인 것입니다. 우리 해군은 지금 연안해군에서 지역해군으로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만 지역해군이 되기에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대양해군이라는 용어가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나 싶습니다. 국민들을 상대로 왜 우리 해군이 대양해군이 돼야 하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신다면?

    국익보호, 우리 해군력으로

    “대양해군 건설의 대전제는 국익 보호를 타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해양환경을 살펴보면, 해상교통량이 증가하고 해양개발이 확대되는 등 해양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해군력이 발전하지 않으면 그러한 국가적 차원의 해양이익을 증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냉전 체제 붕괴로 동북아 지역의 위협축선이 다변화하고 분쟁 양상이 다양해지는 현상도 눈여겨봐야 할 점입니다. 해양에서의 이런 위협과 분쟁 양상에 대응하기 위해선 융통성과 기동성을 보유한 해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양해군입니다.”

    ─대양해군 하면 항공모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비판론자들은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가 반폐쇄형인 데다 세계 최강인 미해군의 7함대가 지켜주는데 무슨 대양해군이 필요하냐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비판은 대양해군의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대양해군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한 척에 45억달러나 하는 대형 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전세계 어느 해양에서든 장기적으로 체류하며 작전할 능력을 갖춘 미해군, 즉 세계적 규모의 해군과는 분명히 구분이 됩니다. 또한 꼭 통일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것만도 아닙니다. 국가의 해양활동 확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필요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양해군 건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근해 및 원해에서 국익을 지키는 데 적절한 규모의 수상 전투함과 잠수함, 해상작전이 가능한 항공기 등으로 구성된 전략기동함대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해군도 상당 기간 독립적으로 작전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우리 해군이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제에 한 축을 맡기 위해서라도 대양해군 건설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미국이 우리의 해양안보에 중요한 몫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미해군의 전력을 기초로 삼되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우리 해군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적 해군력 건설에 대한 소신이 강하다고 이참모총장을 국수주의자로 보면 잘못된 판단이다. 그는 일찍이 ‘해군 외교’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주변국 해군과 교류·협력에 힘써왔다. 93년 1함대사령관 재직시 호위함 2척을 이끌고 한국 해군 지휘관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해군교류의 물꼬를 텄다. 지난해 11월엔 국제해양력 심포지엄 참석차 미국을 방문, 해군성장관을 비롯한 미해군측 주요 인사들을 만나 양국 해군간의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최근엔 중국 해군을 찾아가 우의를 다졌다.

    ─얼마 전 중국을 방문하셨지요? 중국 해군 지휘부와 어떤 얘기를 나눴습니까.

    “중국과 일본을 불행했던 과거의 개념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 해군은 한·미간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주변국 해군과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군사외교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의 해양안보에 이바지하겠다는 목적에서입니다. 중국은 지난 4월 방문했는데 국방부장을 비롯한 중국군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중 해군간 군사교류 증진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청도와 상해에 위치한 함대사령부를 방문해 중국 해군의 전력과 전비태세를 확인했습니다.

    중국 해군 수뇌부를 만나 제가 한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양교일장(兩校一場)입니다. 양국 해군이라는 두 개의 학교가 황해라는 하나의 운동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이러한 양교일장의 관계에 있는 양국 해군의 군사교류 증진은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유익하므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그에 따라 주요 인사들간 교류, 상호 함정 방문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지난 5월 일본의 해군참모총장 격인 해상자위대 총수 후지타 코세이 대장을 초청해 교류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입니다.”

    이참모총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해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해군을 홍보할 기회가 되는 질문을 던졌다.

    ─끝으로 부드러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해군 입대를 권유한다면 어떤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까.

    “21세기를 ‘해양의 시대’라고 할 만큼 바다는 날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3면이 바다이고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바다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바로 바다에 미래와 희망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해군에 입대해 진취적인 해양의식을 기르고 바다로 세계로 향하는 자신의 꿈과 능력을 맘껏 펼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해군은 국제성이 돋보이는 군입니다. 국제신사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전세계 해군은 해군만의 독특한 제복과 문화 등을 공유하고 있으며 상호 항구 방문이나 연합훈련 등 국제적인 교류도 활발합니다. 이처럼 해군은 세계화시대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국제적인 안목과 열린 사고를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울러 변화무쌍한 바다와 싸우며 성난 파도를 이겨내는 해군은 불굴의 용기와 진취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국민도장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해군 입대를 권유하는 이유는 그 밖에도 많지만 너무 자랑만 하는 것 같아 이 정도에 그치겠습니다. 저는 꿈과 패기가 있는 젊은이들이 해군에 들어와 바다를 배우고 경험함으로써 우리나라가 해양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밑거름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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