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 백영화

    입력2006-10-04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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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6년 대구 출생. 경북대 법대 졸업
    • 경북 일대 중·고등학교에서 30여년 동안 교편 생활
    • 1999년 8월 정년퇴직
    내 인생은 내가 산다. 네 인생은 네가 산다. 누가 뭐라 하건 내 인생은 남이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빈 비닐봉지를 채우기 위하여 탑골 공원 둘레를 네 바퀴나 돌아야 했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을 대하므로 생활이 새로워지는 것 같다. 기분이 신선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두 서넛씩, 십여 명씩 떼를 지어 의자에 앉아 있다. 서로 의지하며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라는 곳이 없어 갈 데를 잃은 표정과 마주치게 된다. 지금은 하는 일이 미미하여 지위가 약하다. 누구나 한 번은 늙어야 한다. 나도 호숫가에 쓸쓸히 설레는 갈대…. 세월은 화살과 같다.

    옛날 이 곳을 스쳐간 조상의 발자취는 모두 흐르는 달처럼 일그러져 사라져갔다. 유명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던 민족혼의 결전장으로 파고다공원 하면 모두 안다. 탑골공원 하면 알쏭달쏭해지기 쉽다.

    탑골공원은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황폐하여 13층 대리석과 비만 남은 유적지였다. 1897년 무렵 영국인 총세무사 브라운에 의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1919년부터 경성도서관으로 사용됐는데 그해 3·1운동 때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유서 깊은 곳이다. 1983년 시민공원으로 복원됐다. 건물 옆에 만국기 수백 장이 휘날리고 있다. 유서 깊은 곳이라고 암시라도 하는 듯이.



    노인네들이 아마 500명쯤 되지 않을까. 소외 받고 무관심한 꽁초나 넝마가 아니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시간 여행을 벗어날 수 없다. 너저분한 헌옷을 입고 혼자라는 고독을 이 곳에서 풀고 있다.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이 떨어져, 갈 곳이 없는 비감을 잊으려는 표정들이다.

    인간은 생산적 활동에 만족을 느낀다. 정보화사회란 용어가 유행하는 세상에서 사회 복지시책을 속으로 갈망하며 고즈넉한 말년은 쉬고 있다. 어떤 이는 ‘개천절과 우리’라는 강연을 듣고 있다. 바둑 장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한다. 수지침을 무료로 받기도 하고. 줄을 서 무료급식 차례를 기다리기도 한다. 음료수를 서로 주고받으며 즐기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삶의 무게를 담배에 실어 태우고 그 꽁초를 어지럽게 버려 놓았다. 그는 묵묵히 누워 있는 꽁초를 줍기만 한다. 술 취한 어떤 분이 “좋은 일 하십니다” 하며 반가이 인사를 한다. “네. 뭐 운동 삼아”라고 대답한다. 그는 또 여러 곳에 놓인 둥근 휴지통에 깊숙하게 숨어 있는 꽁초를 부리나케 수거한다. 허망하고 덧없는 꽁초를 줍는데 지독한 냄새는 극기로 다스린다.

    누군가 앞을 지나며 “그걸 뭘 하려고요?” 묻는다. “그저 조사를 해보려고요. 누가 해도 할 일 아닙니까” 하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나는 무슨 약품을 만들려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천한 일, 더러운 것만 다룬다며 얼마나 별볼일 없는 인생으로 여길까 생각하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주변은 춥다. 쥐꼬리만치 남은 해가 다 저물고 어두움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삽시간에 모두 빠져나갔다. 공원 스피커로부터 ‘시간이 지났으니 문을 닫겠다’는 방송이 나온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물결처럼 분주히 지나갔다. 어떤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아저씨 춥지요?” “아니 괜찮습니다.” “여기 우리 식당에 가서 음료수나 한 잔 해요.” “네. 괜찮습니다.” 그는 사양한다.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데, 그 아주머니가 고맙다.

    호의가 놀라워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풍년식당이란 간판이 있는 식당이다. 추위라도 녹였으면 싶었다. 그는 배낭을 풀어놓고 의자에 앉았다. 뭔가 유별난 호의를 맛보는 기분이다. 서툰 모습이나 색다른 인생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다.

    “저 고향이 어디인가요?” “네. 경북 포항이지요.”

    소주 한 병에 김이 나는 시래기 국을 가져 왔다. 점심도 빵 몇 조각이었기 때문에 이내 얼굴이 얼큰하게 된다. 그렇게 흐뭇하고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혼자 자연보호를 하는 모습, 착해 보여 약주 한 잔 드렸습니다.” “아 고마워서…. 얼마입니까.” “돈 받자는 것 아닙니다.” 그는 지갑에서 몇 천원을 꺼내려 했으나 주인은 거절한다. 그 집의 상호와 전화번호를 묻고 주인과 작별했다.

    초저녁 종로 주변 작은 수레, 포장마차가 줄지어 붕어빵을 팔고 있다. 그 밖에 영세한 잡상들이 제법 활기차다. 그 가운데 선물을 파는 가판점에서 수녀 두 분이 서서 기도하는 석고상을 사고 있다.

    그쪽으로 다가간다. “이거 얼마인데요.” “3000원입니다.” 곧 발길을 돌려 풍년식당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석고상을 내어놓으며 말했다. “인사치레로 선물이라도 하고 싶어서.”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진 빚을 갚는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그만 잠이 들어 종점인 방화역까지 가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모두 다 나가요. 방화 종점까지 다 왔어요.” 승무원이 지나간다. 차안엔 아무도 없다. 다 내린 모양이다. 무의식 결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승무원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외친다. “아저씨! 혼나요. 빨리 담뱃불 꺼요.” “아 참 죄송합니다. 내가 확 정신이 나갔나 봐요.” 승무원은 “조심하세요” 하고 한 번 더 화를 내고 가버린다. 이제 풍년식당의 풍경도 사라졌다. 자비심 가득한 낙원 같은 느낌도 사라져 버렸다.

    누가 “인생은 느낌의 맛으로 산다”고 했던가. 그는 다시 차를 바꾸어 타고 돌아가야 했다. 너는 왜 여기에 와 있고 어디로 가려 하는가.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이 있다.

    “왔던 길 알게 되면 갈 길이야 물어 무엇?”

    시골에서 올라온 우물안 개구리가 서울 한 바다에서 어떻게 된 노릇인지 지금 현장 학습을 하고 있다. 수도 서울에서 친절한 한국인의 경로 정신에 감읍하는 순간도 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출입구 쪽으로 자주 물러서 있다. 자리를 양보하는 지하철 안의 흐뭇하고 밝은 광경에 머리를 숙인다. 서울 한 바다에서 전철 길을 익히며 세상 구경하는 즐거움이 싫지 않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는 일이 시원찮다. 달을 보고 짓는 개가 구름 그늘에 언제 몰려올지 모른다. 임시로 일을 하고 있는 불안 속에 고단하고 얼큰해 전철 속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방화 종점역이라고 외치는 소리.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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