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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보고|어느 남자기자의 육아일기

아기키우기는 ‘잠과의 전쟁’이었다

  • 권복기 한겨레신문 교육공동체부 기자

아기키우기는 ‘잠과의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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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짙은 쑥색의 태변을 본 뒤 얼마 뒤부터 싸는 똥의 빛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황금색보다 훨씬 밝고 개나리 꽃잎보다 훨씬 맑고 투명한 그런 황홀한 똥색을 보면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저 똥으로 염색을 하면 너무나 고운 빛깔이 나오겠다고 감탄을 했다.

기저귀를 들고 화장실에 뛰어가 변기에 털어 넣을 때마다 그 아름다운 빛깔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까워했다. 지금은 황금색과 쑥색이 뒤섞인 그야말로 똥색인 똥을 아무런 미련없이 변기에 버리지만 그 빛나던 똥색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말못하는, 아니 온몸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와 대화하는 법을 체득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울면 녀석이 원하는 게 뭔지 알기가 힘들었다. 기저귀도 만져보고 젖병도 물려보고….

하지만 조금씩 지나면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지해의 울음소리는 두 가지였다. 첫 소리에 잔뜩 힘을 줘서 터져나오듯이 ‘응∼애’라고 시작해 약간 악을 쓰듯이 울면 십중팔구는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응아 소리의 높이와 간격이 비교적 규칙적이면서 조금은 앓는 듯, 호소하는 듯한, 콧소리를 담은 울음소리는 젖을 달라는 뜻이다. 안방에 뉘어놓은 지해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녀석의 상태를 알아내 기저귀를 갈아줄지 아니면 우유를 탈지 몇번 맞힌 뒤 아내에게 자랑까지 했다.

그런데 차츰 지나니 두 가지였던 언어가 복잡해졌다. 그래봤자 세 가지로 는 데 불과하지만 지해 쪽에서는 언어능력이 자그마치 50%나 는 것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녁 7시쯤이었을까. 기저귀를 만져보니 오줌을 싼 것도 아니고, 젖병을 물려주어도 자꾸 보채는 것이었다. 얼러도 보고 달래도 보고, 안고 방안을 거닐어도 봤지만 울음은 악을 쓰는 것으로 변해갔다. 울화가 치밀었다. ‘이걸 그냥 확 던져버려’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곧 이성을 찾았다. 이틀이 지나서야 잠덧임을 알았다.



그러던 지해는 두 달이 다 되어갈 무렵부터 사람 얼굴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치면 쬐끄만 입으로 옹알이를 하거나 활짝 웃었다. 아이가 웃을 때 그 기쁨은 뭐라 형언하기 어렵다. 무릎 위에 앉혀놓으면 까르르 소리를 내며 방긋방긋 웃던 딸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지금도 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와 함께 나를 보고 그렇게 방긋거리던 둘째 아이를 떼놓고 복직해 첫 출근하던 날에 무거웠던 마음도 잊을 수 없다.

저녁에 방치되는 아이 곁엔 TV만

아이가 둘 이상인 주부가 일과 중 가장 힘든 때는 큰애가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때부터 자기 전까지일 것이다. 나도 큰놈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 5시부터 아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밤 9시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서래는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려 내 손을 잡는 순간부터 입에 무엇이 들어갈 때까지 “아빠, 배고파”를 염불하듯 한다. 잼 바른 식빵, 우유에 탄 죠리퐁, 떡, 고구마, 방울토마토, 수박, 참외 등을 대령해야 한다.

시장기가 가신 뒤부터는 “심심해”라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저녁준비도 해야 하고 작은놈도 봐줘야 하는데 큰놈이 다리를 잡고 늘어지며 놀아달라고 조르면 그저 난감할 뿐이다. 작은놈은 울고, 압력밥솥은 칙칙거리고, 큰애가 켜 놓은 텔레비전 소리에 전화벨까지 울릴 때면 넋이 나가는 것 같다. 이때는 지해가 방치되는 때이기도 하다. 작은놈의 자지러지는 울음을 외면하고 다른 일을 할 때면 마음이 짠하다.

그렇다고 큰애를 제대로 돌보는 것도 아니다. 집안일을 하려면 아이를 떼어놓아야 하는데 텔레비전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서래는 지금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텔레비전 5개 채널의 프로그램을 모두 외웠는지 리모컨으로 채널을 자유자재로 돌려가며 주로 만화영화인 어린이 프로그램을 본다. 아이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지 혼자서 한숨만 쉴 때가 많았다. 아마 이 문제는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저녁 무렵 학원이나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방치할 수밖에 없으니까. 아이들이 만날 텔레비전만 본다고 부인을 다그치는 남편들은 하루나 이틀쯤 온전히 아이들과 생활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아파서 온가족이 힘들던 때도 있다. 나에게서 시작된 감기가 두 아이에게 옮아 작은놈은 목에 가래가 끓고 코가 막혀 실제로 ‘말못할’ 고통을 겪었다. 코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목에 걸린 가래 때문에 기침을 하느라 하룻밤에도 두세 차례 먹은 우유를 토하는 바람에 아내와 나는 제대로 잠도 못 잤다.

방안 온도와 습도를 높이기 위해 가습기를 틀어놓고 젖병소독기와 주전자까지 동원해 안방에서 물을 끓여야 했다. 김이 자욱한 안방 한켠에서는 가습기가 퐁퐁퐁 습기를 뿜어대고 다른 쪽에서는 휴대용 버너 위 주전자와 젖병소독기의 끓는 물에서 수증기가 올라가는 광경을 생각해보라. 옷과 이불이 눅눅해지고 살갗도 축축해지고 기분까지 축 처졌지만 그 난리를 친 덕분에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다고 첫애까지 알레르기성 자반증이라는 흔하지 않은 병에 걸려 입원하는 바람에 아내와 나는 열흘동안 집과 병원을 번갈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보는 비상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의사는 자반증이란 혈관에 염증이 생겨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병인데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죽을 수도 있는 중병이라고 겁을 잔뜩 주었다. 실제 입원 첫날 서래는 두 발이 퉁퉁 부어 한걸음도 걷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기 안에 생긴 염증으로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통을 호소했다. 한 사람은 집에서 걸핏하면 먹은 것을 토하는 어린것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밤새 배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큰애를 돌보느라 거의 녹초가 되곤 했다. 아내와 나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되는 통과의례를 이렇게 치렀다.

육아는 힘든 일이지만 개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도 있다. 다른 게 아니라 기저귀를 빨아 너는 일이다. 천기저귀는 일회용과 달리 한 번 오줌을 싸면 곧바로 갈아줘야 하므로 빨래를 꽤 자주 해야 한다. 지금은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세탁기에 넣어 돌리지만 처음에는 매일 아침 손빨래를 했다. 욕실에 쪼그리고 앉아 빨래판에 기저귀를 문질러 빠는 일은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두 번에 한 번 꼴로는 삶아 빨아야 하기 때문에 손도 많이 간다. 하지만 기저귀를 널 때면 그 모든 고생이 싹 잊혀진다.

햇살이 눈부신 날 희디흰 기저귀를 탁탁 털어 널 때의 그 기분이란. 기저귀를 널 때마다 넓은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기저귀를 너는 꿈을 꾼다. 마을길에 늘어선 가로수에서 매미가 울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흰 기저귀 아래로 아이가 기어다니는 그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기저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부인 셰리가 얼마 전 환경을 고려해 새로 태어나는 아이 때는 천기저귀를 쓰겠다고 했다는데 우리 집은 첫째 때부터 천기저귀를―밤이나 외출 때는 일회용 기저귀를 쓰지만―썼으니 적어도 이것만큼은 블레어 부부보다 앞선 셈이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집 안에 갇혀 지내면서 점심 때 식당에 떼지어 몰려다니는 주부들의 심경을 이해하게 됐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픈 욕구가 꿈틀꿈틀 솟아난다. 전업주부들이 집 안에서 보내는 세월에 비하면 내게 주어진 한 달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나는 대여섯 차례나 이 핑계 저 핑계로 심야 외출을 감행해 해방감을 맛봤다. 밤 9시 아내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뛰쳐나가 새벽 한두시까지 술자리를 지킨 적도 서너 번이나 됐다. 바깥일에 지쳐 돌아온 아내에게 저녁 먹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옷 갈아입을 틈도 주지 않고, 두 아이에게 시달릴 일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집을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몰려다니는 주부들의 탈출욕구

날아갈 듯한 발걸음과 절로 나오는 콧노래. 술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이전에는 자정 무렵이 되면 내가 먼저 술자리를 파할 것을 제안하곤 했는데 휴직 기간에는 내가 먼저 일어나자고 한 적도, 술자리를 1차에서 끝낸 적도 없었다. 주부들의 일탈사례가 가끔씩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대부분의 주부들은 그렇지 않을 거다. 남편들이여, 오랜만에 외출한 아내의 귀가가 늦다고 화내지 말자. 밖에서 쓸 술값으로 그럴 듯한 안주거리를 준비해 아내와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는 맛은 또 어떤가.

집으로 찾아온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도 적잖은 재미가 있었다. 그 재미를 알고는 회사 동료나 취재원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놀러 오라고 닦달하곤 했다. 나의 초대를 인사치레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진짜로 사람이 그리웠다. 그런 점에서 휴직 첫날과 마지막날 우리 집을 찾아준 두 선배가 너무 고맙다. 한 선배는 NGO에서 일하는 분이고 다른 한 선배는 월간지에서 일하다 지금은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는 분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상대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나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나절이나 되는 그 시간이 왜 그리 짧은지.

주부들이라고 해서 쓰잘 데 없는 수다만 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록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우리 동네만 하더라도 깨끗한 먹을거리와 농촌 살리기에 관심 있는 주부들의 모임이 꾸려져 첫 모임을 누구 집에서 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모임이 어찌 의미 없는 수다겠는가. 대부분의 주부모임도 그럴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교육과 환경친화적인 쓰레기 처리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고 정치 및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다.

한 달의 짧은 경험으로 명색이 OECD가입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참으로 미개한 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은 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에 대해 우리 사회, 나아가 국가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출산휴가 외에 국가가 해주는 일이 무엇인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순전히 각 가정에 맡겨져 있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는 친조부모나 외조부모가 아이를 맡아 기르는 경우가 많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게 기쁨이라고 말하지 말라. 주말에 찾아온 손주들을 본다면 모르되 매일 기저귀 갈아주고 우유 먹이고 안아서 얼러주고 해보라. 젊은이도 힘든데 노인들은 어떻겠는가. 젊은 시절의 온갖 의무와 희생에서 놓여나 인생을 정리하며 이제 좀 여유를 누려야 할 우리 부모님들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육아인력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육아 문제를 사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양성이 평등한 사회의 건설 또한 애당초 불가능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사이에 낀 5월6일, 큰놈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카네이션 축제를 한다고 해서 작은놈까지 온 가족이 몰려갔다. 원장님 인사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아이들이 커서 딸아이는 엄마 같은 여성이 되어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고 아들은 아빠 같은 어른이 되어서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다고 한다면 비록 사회적인 성취는 남보다 덜했을지라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씀이었다.

또 우리 아이들이 좀더 커서 무엇을 좀 알 만할 때가 되면 그때부터 잘해주어야지 하지만 이렇게 미루다 보면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이 필요없게 커버린다는 것, 어릴수록 부모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준 것들에 대한 기억은 더욱 생생하게 남아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자양분이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평생을 살면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인 자식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그런 아빠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두 딸과 아내가 고맙다. 육아휴직이 계기가 돼 앞으로 교육, 환경, 여성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이전보다 훨씬 절실하게 피부에 와닿을 것 같다.

신동아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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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기 한겨레신문 교육공동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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