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원은 앞으로 더 ‘큰 뜻’을 품고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4년 중임 정부통령제로 헌법이 개정되고 차기 대권 후보로부터 런닝메이트가 되어줄 것을 요청받는다면 응할 생각이 있습니까.
“어디서요?”
박의원의 이 반문이 흥미로웠다. 한나라당 부총재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어디서요’라고 반문을 던졌다.
―야당은 당연하지만 여당에서도 박의원을 꼽는 의원들이 있습니다만… .
“우선 당이 다르면 안되죠. 제가 한나라당 소속이고, 탈당한다는 얘기도 안했는데… . 지금 런닝메이트 얘기도 정부통령제로 개헌된다는 전제인데, 저는 4년 중임제만 해서 권력구조를 국민들에게 좋게 바꾸자고 얘기하는 거죠.”
―개헌과 별도로 현재 정당 구도가 지역 분할구도라는 것은 모두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정계도 정책이나 노선에 맞게 개편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글쎄요… 다음 지도자는 어느 한 지역의 지도자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겠죠. 그래도 여러 지역으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게 우리 시대의 의무죠. 제가 어떤 해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도 그런 얘기는 하고 있잖아요, 거국내각 얘기를 여당에서 하면, 대통령이 당적을 떠나서 초연하게 한다면 참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야 영수가 감정대립을 한다는 것은 국민이 보기에 얼마나 불안해요. 이렇게 돼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정권을 다시 찾자, 재집권한다, 이런 목표로 여야가 싸워서 이기는 건 정치가 아니거든요. 국민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지, 여야 지도자가 감정대립까지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고 하면 국민 마음은 떠나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난국을 푸는 열쇠는 여당이 갖고 있지 않겠어요.”
―여야 영수회담에서 풀어줘야 되는데, 김대통령의 자세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고 이회창 총재가 대법관 출신이어서 그런지 정치적 화법이 서툴러 대통령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
“제가 보기에는 이총재가 한나라당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잘 이끌어 오셨는데, 때때로 대여 관계에 있어서 너무 강하게 나가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대통령과 이총재한테 각각 난국을 풀 수 있는 해법을 주문한다면… .
“집안에서 부모님이 감정대립으로 싸우면 어린이들이 불안해서 어디다 마음을 붙여야 될지 모르죠. 더군다나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여야 지도자가 감정대립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화로써 풀고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박의원의 눈에는 똑똑한 ‘노인’의 고집과 꼿꼿한 ‘대법관’의 감정대립이 훤히 보이는 모양이었다.
―대권 출마를 주변에서 요청한다면 박의원은 받아들이겠습니까?
“언론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제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그런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죠. 소위 권력이라는 것은 쟁취하는 거란 말도 있지만 저는 그게 21세기의 바람직한 지도자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위적으로 뺏는 것은 잘될 리가 없습니다. 국민이 편안하게 잘 살기 위해서 맡겨봐야 되겠다, 위임하고 싶다고 해서 창출되는 리더십이 바람직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되겠죠. 제가 그런 지지를 받는 건 아니니까 제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나라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꿈을 이야기하자면 경제적으로 부국이 돼야 되겠죠. 어려운 현상을 타파하고 경제 부국이 돼서 국민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남북 문제에 있어서는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풍요와 평화의 바탕 위에서야 문화대국이 될 수 있거든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5천년의 문화민족으로서 노하우가 얼마나 많아요. 그걸 개발해서 세계에 알려야죠. 이게 조국에 대한 저의 꿈입니다.”
박의원은 이미 우리나라에 대한 큰 청사진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어떤 리더십으로 그 청사진을 실현해 나갈 것인가. 우회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 세계 각국을 보면 여성 정치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데요, 인상적인 분이 있습니까?
“여성 정치인 중 가장 인상적인 분이라면 역시 영국의 대처 수상입니다. 정치인은 인기에 영합하거나 편하게 가고 싶은 유혹을 받기가 쉽거든요. 박수만 받고 싶겠지 비난 받고 싶겠어요. 그러나 정말 조국을 사랑한다면 당대의 비난을 감수하는 거예요. 당시에는 욕을 먹더라도 나중에 평가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해요. 조국을 살리겠다는 애국심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거죠. 그 당시 영국이 재정 적자, 실업, 인플레 등으로 구조적인 경제 문제가 심각했는데 대처 수상이 그때 욕을 많이 먹고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원칙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서 경제병을 치유해서 오늘의 영국이 됐잖아요.”
―요즘 페미니즘 논의가 상당히 활발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요.
“여성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많이 나타나는 건 세계적인 추세거든요. 우리 나라도 제가 듣기로는 남녀공학에서 항상 남성만이 학생회장으로 뽑혔는데 최근에 여러 대학에서 여성 회장도 나왔잖아요. 여성들이 상생 화합에 더 강하거든요. 21세기의 리더십이 그런 쪽으로 많이 기대가 되기 때문에 제가 정치하면서 불편한 것은 못 느꼈습니다.”
―박의원은 어떤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싶습니까?
“국민의 편에 서서 소신을 가지고,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심없이 일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될 정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심을 갖게 하면 정치를 하면 안되고 다른 일을 해야 돼요.”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되는지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이 있습니까.
“우선 국가관이 확고해야죠. 국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이런 게 희미하면 곤란하죠. 믿을 수가 없으니까.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정신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들 중에 마음에 드는 정치인이 있습니까. 가령 여권에서는 이인제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이나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거론되잖아요.
“그분들에 대해서 지상을 통해서 보게 되는데, 제가 얘기한 것하고 부합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없죠. 제가 다 보고 있지만 아직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죠.”
사심없는 정치 배워
박근혜 부총재는 한나라당을 대표해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에 참석한다. 하와이는 다녀온 적이 있지만 미국 본토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시 당선자가 앨 고어 후보와 힘겹게 겨루는 모습을 보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느낀 점이 있을텐데요.
“민주주의라고 하면 미국 영국을 떠올릴 정도로 대표적인 나라인데 그런 나라도 선거 과정에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구나 하는 점을 새삼 느꼈어요. 그런데 문제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에 이어서 이번에는 아들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겠죠.
“미국 대통령은 이제 40여대째 내려오니까 그런 일도 있을 수 있겠죠. 어쨌든 대를 이어서 미국과 같은 큰 나라를 이끌어가고 나라에 봉사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부시 가문으로서는 큰 영광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박의원은 돌아가신 어머님 대신 아버님을 도와드리면서 알게 모르게 정치 수업을 받았을텐데요.
“아버지가 정치하시는 걸 옆에서 직접 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역할을 대신 하면서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졌어요. 아버지를 모시고 지방에도 다니고 손님도 만나고 그랬으니까 아버지 가까이에서 보면서 배운 게 많죠.”
―아버지의 어떤 점을 배운 겁니까.
“사심 없이 정치하셨다는 것,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을 지시하시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체크하고 끝까지 챙겨서 완성될 때까지 정확하게 하신다는 것이 좋은 교훈이 됐어요. 저는 정치에 사심이 끼어 들면 망한다고 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느낀 점이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그 시대에는 권력의 최정상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주위에 있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돌아서서 매도를 하는 권력의 극과 극을 보면서 느낀 게 굉장히 많습니다. 권력의 속성이랄까, 권력이라는 게 과연 뭐냐,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정치를 하게 된 마당에 저로서는 그런 경험들이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권력의 속성을 알았다면 정치에 대해 염증을 느낄 법도 한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우리 나라 정치가 편안하게 잘 되고, 경제도 잘 풀리고 그랬으면 제가 정치를 택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자유로운 일을 택해서 부담없이 살았을 것 같은데… . 조국이라는 게 뭔지… 자기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IMF사태를 맞고 나라가 망한다니까 그때는 그런 느낌이 아주 절박했어요. 이 나라가 다시 서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지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뛰어들지 않고 미적 미적 편안하게 지내다가 나중에 늙어서 일도 못하게 되고 세상을 뜬다고 할 때 스스로 제 가슴을 치게 될 것만 같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를 택했죠. 권력의 속성이랄까, 권력과 연관해서 일어나는 극과 극을 다 봤기 때문에 오히려 자리나 권력에 연연하는 건 별로 없어요. 더 바랄 것도 없어요. 다만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나라에 대해서 뭘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정치를 완전히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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