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이인제 지지는 변치 않는 나의 소신”

이인제 후원회장 파문의 주인공 박찬석 경북대 총장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5-04-15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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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대구가 떠들썩했다. 경북대 박찬석 총장이 민주당 이인제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는 소식에 이 지역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반대여론에 밀려 박총장은 후원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만난 박총장은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는 갈릴레이의 ‘명언’으로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다.
    지난 4월2일, 대구시내 경북대 교정은 개나리와 벚꽃의 화려한 빛깔로 넘쳐났다. 그러나 한 달 전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던 3월 초, 이 대학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경북대 박찬석 총장이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지역 여론이 들끓었던 것. ‘경북대를 대표하는 어른이 특정 정치인의 후원회장을 맡는 것은 옳지 않다’는 학생과 동문들의 비판이 경북대 인터넷 게시판을 점령했다. 지역언론도 거들었다. ‘차기 교육부장관이나 국회의원을 노린 정치적 선택’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나라당도 비판 대열에 동참하고 나섰다. 마침내 경북대 교수회 의장과 단과대 교수회 의장들이 나서서 박총장에게 ‘후원회장 수락을 철회하라’고 요청했다.

    지난 3월16일 박총장은 마침내 후원회장직 수락을 철회했다. 당초 박총장은 “개인적으로 좋아서 한 일”이라며 이최고위원 지지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지역여론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떠밀리듯 후원회장직에서 물러난 박총장, 하고픈 말이 적지 않을 듯했다.

    경북대 총장실에서 만난 박총장에게 먼저 대학문화의 변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인터넷이 전면에 등장한 이후 달라진 대학문화가 궁금했는데, 박총장이 인터넷 여론에 밀려 뜻을 꺾은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94년 총장에 취임한 뒤 후 연임하고 계신데요. 그 동안 대학문화는 어떻게 변했나요.

    “학생운동이 극렬했을 때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들도 학생운동 핑계를 댔습니다. 과거에는 연구와 강의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을 학생운동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행정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 운동이던 학생운동이 퇴조하면서 학생도 관심을 학교 내부로 돌리고 있습니다. 대학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대학경영도 투명해지는 긍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학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나라 대학도 세계 표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유학이다, 편입학이다 해서 대학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현실도 표준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문제 커질 줄 예상 못해”

    ―총장님은 교수회의 의장 출신이어서 평소 교수회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최근 ‘이인제 후원회장 파문’처럼 교수회가 정치적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나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교수들은 ‘총장이 후원회장을 맡으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죠. 교수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발을 뺄 수도 있죠. 지금 우리는 국립대학연합 같은 조직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수협의회를 설득하고 같이하려 합니다. 이렇게 무슨 일이든 교수협의회가 의논하고 같이하면, 굳이 책임을 면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가 총장 한 사람의 책임은 아니잖으냐 하는 겁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경북대를 나와 이곳에서 교편을 잡은 분인만큼, 이인제 후원회장을 맡을 경우 논쟁이 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감지하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사람들은 후원회를 잘 모릅니다. 나 역시 후원회가 뭐하는 조직인지 몰라 주위에 물었어요. 후원회 당일 가서 얘기나 하고, 뭐 그런 거라고 해요. 총장이 돈을 낼 일이 있어요?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맡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오히려 후원회장은 동창회나 이런 조직과 달리 연고가 없는 사람을 해주는 게 괜찮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그러나 인터넷에 올라온 총장님의 결정을 비판한 글들을 보면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지역정서라는 현실의 벽이 상당히 두텁더군요.

    “어쨌든 나도 대구 사람입니다. 우리 애들도 대구에서 공부시켰습니다. 서울의 상위급 대학에 갈 만한 실력을 갖췄지만 나를 원망한 자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역사랑에 관한 한 나만한 사람 없다고 자부합니다.”

    ―2002년 총장 임기가 끝난 뒤 교육부장관 입각 등 정치 행보를 노린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임기가 끝나도 대학에 남고 싶어요. 내가 총장을 하는 동안 11번이나 교육부장관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단명하는 장관에 무슨 매력을 느끼겠습니까? 이런 장관에게 존경심이 생기겠습니까? 그런 자리에 연연해 지금부터 움직인다는 얘긴데,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깁니다.”

    이인제의 삼고초려

    ―그래도 왜 이인제인가 하는 부분은 여전히 궁금합니다. 이최고위원에게서 어떤 장점과 비전을 발견하셨습니까?

    “우선 여러 번 나를 찾아오는 등 정성을 쏟더라구요. 젊은 사람이 상대방 얘기를 잘 듣더군요. 지방의 발전, 지방대학의 발전에 관해 내가 주장하는 이론들이 있는데 그 이야기에 동감한다더군요. 또 21세기 지도자라면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도 했고, 아무튼 그 양반의 정당 배경이나 그런 것은 보지 않았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던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여러 번 찾아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점이지요. 지방에 있는 내가 정치인 누구를 알겠습니까? 와서 얘기를 하니까 알게 된 거죠.”

    ―평소 한나라당 강재섭 부총재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강 부총재도 총장님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개인적 견해보다 당의 입장 때문이었겠지요. 사실 언론만 조용했으면 무슨 일이 있었겠어요. 아무튼 일이 생기고 나니 개인의 생각보다는 당의 입장에 따라 그러셨겠죠. 개인적으로는 강부총재를 좋아해요.”

    ―그 후 강부총재와 따로 만나셨습니까?

    “만난 적은 없는데, 대학과 관련해 부탁할 일이 있으면 또 강부총재를 찾아갈거예요.(웃음)”

    ―이회창 총재도 자주 만난 것으로 아는데, 왜 이 총재는 ‘후원 대상’이 아니었습니까?

    “이총재에게는 내가 필요없지요. (후원회장 제의를) 받아본 적도 없지만 그렇지 않겠어요? 지식이 항상 예측한 대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적 정신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내 소신대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총재를 존경하고, 강재섭 부총재도 좋아하지만 내 생각에 따라 선택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박 총장은 돌연 이최고위원을 선택한 이유를 다시 한 번 힘주어 강조했다.

    “내가 안 물었겠습니까. 내가 바봅니까? 이최고위원이 여러 번 찾아와 정치적 소견을 밝히고 지역문제를 얘기하는데 (서로)뜻이 맞더란 말입니다. 지난번 경선에 불복한 사정 얘기를 하는데 들어보니 설득력이 있었어요.”

    ―이최고위원 본인은 경선불복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던가요?

    “가족끼리 회의를 해 어느 장군을 대표로 전쟁터에 내보내기로 했는데 그 대표가 나가기도 전에 (아들 병역문제로) 부상을 당한 것 아니냐, 일어서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대타가 나가 전쟁을 치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 그래서 나간 거라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이 대선결과에 불복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겁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총장을 가리켜 ‘운동권이다’ ‘TK(대구·경북)가 아닌 BK(부산·경남)다’는 등의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나를 BK 출신이라고 몰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엄청난 손해입니다. 나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생활을 해왔습니다. 서울에서는 단 5일도 하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나라당 의원 중 순수한 TK 출신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나를 BK라고 몰아붙이면 안 되죠.”

    ―이인제 후원회장을 맡은 것이 심사숙고한 결정이라고 봐도 됩니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했다는 얘기가 ‘La tierra es redonde(라 티에라 에스 레돈데),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 아닙니까? 하도 말이 많으니까 (후원회장을) 안 한다 했지만 그 사람들 생각은 그 사람들 생각, 내 생각은 내 생각 아닌가요.”

    ―후원회장 그만둔 뒤 이최고위원을 만나셨습니까?

    “만났죠. 미안하다고 했죠. 사정이 이래서 못하게 된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남대와 인재교류도 하고 지역갈등문제 해결을 위해 애를 많이 쓰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피상적으로 이 지역갈등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자기 필요할 때는 지역감정을 이용하면서 평소에는 문제라고 해요. 나는 그런 게 싫더라고요. 영호남 갈등 해소한다며 만나 공 한번 차고 악수하고 술 마시고는 돌아와서 상대를 욕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지속적인 문화의 교류, 이해가 있어야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학에는 전남대 학생 110명이 와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시행하는 학생교류 프로그램인데, 우리 학교 학생 110명도 전남대에 가 있습니다만, 정부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체 협찬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학교 장학금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더라구요. 학생들이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두 지역의 학생들이 있는데 어떤 학생들이, 어떤 교수들이 경상도 욕을 하고 전라도 욕을 하겠어요.”

    “내 아들 먼저 전남대로 보내”

    ―처음부터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학생교류의 뜻을 알리고 장학금도 준다며 모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학교에서만 160명이 지원했어요. 그런데 부모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했더니 동의서를 받아온 학생이 60명밖에 안 되더군요. 100명은 달아나버렸습니다. ‘전라도를 어떻게 가’ 이런 식이었죠. 당시 전자과 2학년이던 아들에게 ‘네가 먼저 전남대에 가서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애를 먼저 보내고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박총장은 득의 만면해서 “지금 모집하면 경쟁률이 4 대 1”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런 일은 우리만 할 게 아니라 다른 대학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간 500억원이면 1만 명의 학생을 1년간 교류할 수 있는데 영호남 사이에 88고속도로 뚫는 것보다 지역감정 해결에 더 효과가 높다”는 것이 박총장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인제 후원회장을 그만두신 것은 결국 지역감정에 굴복한 것 아닙니까?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는데도 그렇게 오해를 한다면 굳이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정치를 할 생각이었으면 국회의원 출마를 하든, 시장출마를 하든 선거판에 나서야지 후원회장 맡는 게 무슨 정치냐, 이런 정치도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어느 신문의 기자칼럼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후원회장을 맡았으면 이렇게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곳에 살면서 이 지역 정서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기는 싫습니다. 내가 부덕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낫지, 지역의 물이 흙탕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내가 물길을 따라가지 못했다, 할 수 있지만 내가 잘못했다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일로 교수협의회에 섭섭한 마음이 드셨을 텐데요?

    “1~2년은 사람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3~4년은 못 속입니다. 나는 말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이번 건도 세월이 지나면 판가름날 겁니다. 세월이 지나면 ‘총장이 옳았구나. 우리가 무리했구나’ 할 겁니다. 지금도 그러잖아요. 우리가 너무했다고….”

    박총장은 총장관저에서 학교까지 14km를 매일 40분씩 자전거로 달려 출퇴근하고 있다. 97년 9월에 시작했으니 3년 넘게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출퇴근뿐 아니라 시내에 약속이 있어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 자전거에 심취하면서 박총장은 자전거에 관한 책도 읽고 전국자전거운동연합회에도 가입하는 등 단순한 취미가 아닌, 자전거 마니아로서 활동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라는 제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총장 집무실 한켠에는 자전거 모형이 자리잡고 있어 그의 자전거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자동차를 졸업한 사람”

    ―출퇴근은 물론 외출 때도 자전거를 타신다는데, 까닭이 있습니까?

    “처음에는 운동할 시간이 없어 시작했는데 타다 보니 의미를 두게 됐어요. 나는 ‘자동차는 졸업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장거리 갈 때는 버스나 기차를 타지만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는 것은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 양복을 입고 다닐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약속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양복을 입고 갈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고 하면 상대방도 흔쾌히 그러라고 합니다.”

    박총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인재지역할당제’다. 서울사람이 듣기에 일단 거부감을 주는 이 제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 지방이 몰락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방도 인프라는 잘 돼 있습니다. 농촌 가보면 더 놀랄 정돕니다. 도로도 잘 포장돼 있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울로 갑니다. 교육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재들이 서울로만 몰리면 지방은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막아야 하는데 지방에 장학금을 더 준다, 기숙사를 지어준다, 좋은 교수들을 배치한다는 대책으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방에도 좋은 학생들이 몰리는 학과를 보면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교육대학 등인데 이들 학과를 졸업하면 자격증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지방에 정착하게 되면 파급효과도 적지 않습니다. 대구에서 100명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당장 지역경제에 파급효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부심으로 남게 되고, 지역발전을 가져옵니다. 지역발전의 핵심은 자부심입니다. 그러려면 좋은 학생들이 있어야 합니다.

    인재할당제란 중요한 국가고시에 관한 한 그 지역의 인구비례로 선출하는 제도입니다. 사시나 행시, 회계사 시험 등 중요한 국가고시를 인구비례로 지방에 할당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법시험에서 1000명을 뽑는다고 할 때 대구·경북의 인구비율이 12.5%니까 125명을 대구경북 지역에 할당하는 겁니다. 그러면 서울로 가지 않을 거예요. 지방대학이라도 약대 한의대 의대 등의 대학입시경쟁률이 높은 이유가 뭡니까? 한의대 등은 사실상 할당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할당제라는 이름만 안 붙였을 뿐입니다. 의대 교육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걸 하자는 겁니다.”

    ―그럴 경우 형평성 문제라든지, 합격자의 질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이미 인재할당제를 알고 입학하면 학생들의 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역차별이 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인재할당 특별법을 만들자고 주장해왔습니다. 지난번 15대 국회 때도 법률안을 제출했습니다만 임기가 끝날 때까지 통과가 안돼 자동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운동차원에서 지역대학 총장들과 힘을 모아 입법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지역대학 총장들이 자기 지역 출신 의원들을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서울로 올라가는 학생들이 대략 6만 명입니다. 6만 명이면 연간 들어가는 돈이 6조원입니다. 매년 6조원의 돈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겁니다.”

    ―김대중 정부를 평가해주십시오.

    “김대통령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모가 약합니다. 대학을 운영하더라도 내 지시를 집행하는 사람과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그분의 통치철학은 어느 정권보다 훌륭하지만 라인이 약합니다.”

    이어 박총장은 ‘자전거 철학’을 공개했다.

    “자전거를 탈 때 자신감이 있으면 폭이 10cm만 돼도 자신있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으면 1m라도 못 갑니다. 더 자신이 없으면 10m도 부족합니다. 변화는 부득이합니다. 노동도 학교도 공공도 은행도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가는 과정에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99년에 ‘옥수수박사’ 김순권 교수와 함께 방북하신 것으로 아는데 북한은 상호주의에 근거해서 교류와 통일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던가요?

    “북한문제를 북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보려 하지 말고 남한을 중심으로 보자 이겁니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통일 방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북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북한의 붕괴입니다. 남침은 안 됩니다. 북은 남침을 할 능력이 없어요. 간단히 말하면 우리나라 GNP가 북한의 25배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다른 나라 경제의 25배가 넘는데 어떻게 전쟁을 벌일 수 있겠습니다. 북한이 붕괴하면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으로 내려올까요? 우리도 북한 구경 하고 싶어하지요.

    그런데 북한사람이 남한 구경하고 싶어하는 데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돼요. 북한 주민들은 남한을 천국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통제된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아느냐, 그게 의문 아닙니까? 북한 사람들은 굶어죽게 되자 압록강을 건너 인접한 중국 연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한국이 잘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나는 북이 붕괴되면 적어도 1000만명은 내려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디에 수용합니까? 우리나라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대안이 뭡니까? 전쟁도 안 된다, 붕괴도 안 된다는 겁니다. 저희끼리 살게 해줘야 합니다.”

    “이회창 총재와 생각이 달라”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정책과 일치하는군요.

    “김대통령은 그렇게 설명 안 하더라구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라고 하는데 나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공존하면서 문호를 여는 것은 우리가 살기 위한 방안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보니 남북문제에 관한 한 이회창 총재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군요.

    “이총재 주장처럼 김정일한테 남침에 대한 사과를 받으면 좋지요. 그러나 사과 하겠어요? 만약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 남한을 포격한다면 유도탄도 필요없어요. 대포면 됩니다. 앞으로도 ‘불바다’ 소리 여러 번 나올 겁니다. 저쪽도 굶어죽게 됐는데 그런 상황에는 얼마든지 협박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배가 부르기 때문에 그런 위협 못합니다. 북한을 도와주지 않으면 문제를 풀 길이 없어요. 그런 면에서 김순권 박사는 보배입니다.”

    지난 4월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이인제 후원회. 박총장은 후원회장은 아니지만 이최고위원을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 연단에 나섰다. 그리고는 이최고위원을 지지하는 이유를 힘주어 설명했다. 비록 현실과 타협했지만 믿음까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평가와 지역의 여론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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