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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500호’ 의 언론사적 의의

심층보도 틀 세우며 민주화 견인

  • 유재천 < 한림대 부총장 · 언론정보학 >

심층보도 틀 세우며 민주화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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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최석채 회장의 술회는 당시 3선 개헌을 앞둔 시점에 박정희 정권의 교묘한 언론통제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 후 3선 개헌이 되고 재집권한 박대통령은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해 헌정을 중단시키고 만다. 유신체제에서 언론은 극심하게 탄압받았고 뒤이은 긴급조치로 암흑시대를 맞는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 언론은 자유를 잃고 제 구실을 못하게 됐으며,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이 동아일보의 언론자유수호투쟁과 같은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정치권력의 모진 탄압으로 투쟁은 무산됐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에서 일종의 ‘우민통치’를 했다. 정권을 비판하는 어떤 언론도 용납하지 않는 대신 선정주의적 상업주의는 너그럽게 용인한 것이다. 선정적인 주간지나 월간지가 활개치게 된 것도 우민정책 덕분이었다.

이런 상황은 전두환 정권 아래서도 지속됐다. 그런 세월 속에서 한국 잡지의 성격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상업주의로 굳어졌다.

잡지는 신문과 달리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를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으며, 책과도 달라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특성을 가진 매체이다. 우리는 종합월간지가 어떤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를 특집 형식으로 다각적이며 심층적으로 다뤄주던 시대를 기억한다. 바로 그 점이 잡지의 매력이었으며 잡지를 구독케 하는 유인이었다.



그러한 특집이나 깊이 있는 기사, 자료 등으로 인해 잡지의 항구성, 즉 보존가치도 높았다. 학자들은 잡지에 게재된 자료를 인용하기도 하고 특정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글을 두고두고 참고하기도 했다. 그것이 더욱 가능했던 것은 필자들이 사계의 전문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잡지는 그래서 교양의 샘이었고 세상을 인식하는 교과서이기도 했다. 그만큼 잡지는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종합잡지에서 특집다운 특집은 볼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잡지들이 특집을 꾸며 다각도로 깊이 있게 파헤칠 관심사가 현실에서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잡지들이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외면하는 까닭도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런 기사를 독자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거운 기사를 기피하는 독자들의 취향변화가 이유라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관점과 주장에 세태의 변화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이유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상업주의가 항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다. 독자들의 흥미에 영합하는 기사를 위주로 잡지라는 상품을 만든다 할지라도 소재에 참신함이나 깊이를 줄 수 있을 텐데, 오늘의 종합잡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신동아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종합잡지들을 보면 가십의 뻥튀기가 거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신문에 이미 보도된 가십성 기사를 이리저리 모아 담은 데 그치는 경우가 흔하다.

신동아에 거는 기대

그래서 요즘 종합잡지가, 호기심으로 사서 읽고 버리는 스포츠신문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이다. 그런 일회용 읽을거리는 보관할 까닭이 없으니 항구성은 더 이상 잡지의 미덕이라고 할 수 없게 됐다. 잡지가 다른 매체와 차별되는 항구성과 심층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잡지매체의 특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모든 잡지가 진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선정주의를 판매하는 잡지도 있어야 하고 오락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잡지도 있어야 할 것이다. 다양성의 의미에서도 그러하며 시장의 기능에 비춰 보아도 그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잡지가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세계를 깊이있게 이해하도록 돕는 내용과 당대 우리사회의 공동 관심사와 쟁점을 다각적으로 깊이있게 천착하는 잡지가 몇 개는 있어야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럴 때 비로소 다양성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잡지를 만들어줄 것인가. 아마도 사명감을 지닌 개인이나 비영리재단 등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실현성에 의문이 따른다. 재원의 한계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기대를 걸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면서 신동아 지령 500호의 의미를 짚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1931년 창간 당시의 신동아가 추구했던 목표와 오늘의 실상을 대비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지금의 신동아가 옛날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기 때문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를 무시한 요구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신문잡지’의 위상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신문사가 잡지를 발행하는 것은 다각 경영의 일환이므로 그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특히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신문 경영이 ‘규모의 경제’에서 ‘범위의 경제’를 지향하는 추세임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신문잡지’는 신문사라는 배경으로 인해 개별 잡지사가 발행하는 잡지보다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누린다는 점이 중요하다. 풍부한 자본, 광고 확보의 용이성, 취재원에 대한 접근의 유리함, 본지 지면을 활용한 홍보효과 등 ‘신문잡지’의 이점은 무척 많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지령 500호를 맞은 역사적 사명에 견주어 오늘의 신동아를 성찰했으면 한다. 신동아가 본지를 위시한 여타 간행물에 비해 그 위상이 걸맞은지를 비롯해 편집정책 전반을 검토하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흥밋거리를 전적으로 배제하라는 주문은 적절하지 못함에 틀림없다. 다만 전체 기사 중에 몇 가지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그야말로 양식이 되고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배려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럼으로써 신동아가 지령 500호라는, 우리 잡지 사상 가장 오랜 종합잡지의 역사를 빛내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잡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신동아 200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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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천 < 한림대 부총장 · 언론정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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