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애드 이인호 사장(李仁浩·59)의 취미에 재미있는 게 하나 있다. 그는 그간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받은 명함을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빠짐없이 모아놨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A4용지에 복사해서 철해둔다. 35년간 직장생활을 했으니 이렇게 모은 명함들이 서류철로 수십 권이다. 그중에서 오래된 서류철을 들춰보면 지금은 유명 대기업의 사장, 고위 공무원, 언론사 고위간부가 된 사람들의 초년병 시절 명함들이 가득하다. 인연의 소중함을 중시하고 ‘홍보맨’으로서 대인관계에 공을 들이는 그의 생활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유 뒤의 칼 같은 질서
그의 이런 자세는 경영철학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매우 중시하는 아버지 같은, 맏형 같은 경영자다. 아무리 바빠도 임직원들과 정기적으로 저녁식사를 하거나 MT 떠나는 것을 거르지 않는 것도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회의나 업무에는 까다롭기 그지없고 호통을 쳐대기도 하지만 이때만큼은 직원들과 격의없이 술도 마시고 고스톱도 치고 식사도 함께 준비한다.
이사장의 충남 청양 시골집은 150년 된 고옥으로 직원 단합대회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직원들은 이를 ‘청양파티’라 부른다. 마포 사무실에 출근할 때는 ‘사랑방 카페’라는 것을 만들어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한 직원들을 위해 직접 커피를 끓여주기도 했다.
광고회사라면 으레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직장 분위기를 연상하지만 LG애드는 여기에 선후배간의 질서, 의리가 혼재하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청바지를 입고 콧수염을 기른 신세대라도 선배 앞에서는 절대 까불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엄격한 규율이 공존해야 한다’는 이사장의 철칙 때문이다.
또한 이사장은 서류정리와 시간관리에 극히 엄격하다. 누구라도 책상 위에 서류를 어지럽게 해놓거나 책장을 흐트러뜨린 채 퇴근했다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업무 바깥에서는 관대하고 창의적이다. 광고회사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직원들의 복장이나 외모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사장인 그 자신부터 정장보다는 캐주얼한 복장을 즐기며 골프장에 한복을 입고 가는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소 꼴불견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요즘은 이사장을 따라 한복을 입고 골프장을 찾는 그룹 임원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자유 뒤의 칼 같은 질서, 군대보다 더 강한 단결심을 갖추기 위해선 스킨십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살을 비비며 밤을 보내면 인간적인 정이 싹트는 거죠.”
그가 LG애드의 사령탑이 됐을 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는 CEO라면 으레 그렇듯 조직관리나 회계, 구조조정 전문가가 아니라 홍보맨 출신이다. 그는 홍보담당자로 CEO가 된 유일한 케이스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그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지만 홍보는 여전히 기업의 핵심부서가 아니라 지원부서로 간주된다. 때문에 그가 과연 경영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우려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LG애드는 LG그룹 11개 상장사 중 주가가 가장 높다. 2000년(사업연도)에는 전년보다 30.3% 증가한 2360억 원의 매출과 36.3% 늘어난 298억 원의 경상이익을 올렸다. 여기에 99년부터는 이자가 단 한 푼도 나가지 않는 무차입경영을 실시, 재무구조가 그 어느 회사보다 탄탄해 주식 투자자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LG애드의 진정한 강점은 회사의 외형보다는 맨파워에 있다는 게 기업인들의 평가다. LG애드와 일해본 기업들은 LG애드 직원들의 ‘노가다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일이 잘 안 풀릴 땐 상소리도 하고 자기들끼리 핏대를 올리기도 하지만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고 해내며, 실패해도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 직원이라는 엘리트 의식을 드러내지 않고 구수한 인간 냄새를 풍기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평가다.
“직원들에게 항상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광고주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하라’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되라’ ‘실패를 거울 삼아라’가 그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인정하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만 전문가라고 인정한다면 그게 돈키호테지 어디 프로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남이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제원표’를 알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부족한 점은 보충하고 남는 점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맨은 아주 힘든 직업이다. ‘진검승부’라 불리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경쟁사와 치열하게 경쟁해 광고를 따내기도 힘들지만, 광고주의 요구와 불평을 고분고분 들어주며 모셔야 하는 것은 더욱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그 힘든 일을 35년이나 묵묵히 해낸 이사장의 노하우가 궁금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지요. 뭐, 그게 인생 아닙니까? 최선을 다했지만 떨어질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자기반성이 중요합니다. 그 반성은 철저해야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보호본능으로 자기위안을 삼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러면 안 되지요.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대안이 나오는 것이고 다음에 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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