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섬세한 터프가이가 광고쟁이로 성공한다”

  • 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11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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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회사에서 광고회사로 옮긴 지 6년. 채수삼 사장은 예상을 뒤엎고 광고업계 거물로 입지를 굳혔다. 그는 터프함,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정성,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창의력을 광고회사 CEO의 필수요소로 꼽는다.
    “채수삼? 아니, 그 노가다가 뭘 안다고 광고회사에 갖다 앉혀? 정말 현대답군. 순 무대뽀야 무대뽀….” 1994년 1월, 채수삼(蔡洙三·57) 현대건설 부사장이 당시 현대계열 광고대행사인 금강기획 사장으로 발령나자 광고업계에선 그렇게들 비아냥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68년 현대양행 신입사원으로 현대와 인연을 맺은 이래 채사장은 줄곧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었다. 더러 다른 계열사에 몸담은 적도 있지만, 그래봤자 중공업, 정공, 자원개발 등 건설 못지않게 ‘노가다’ 분위기가 강한 곳들이었다.

    회사측에서 미리 언질을 준 것도 아니었다. 명색이 현대그룹 모기업의 부사장이었지만, 93년 12월31일 오전 10시에 급작스레 인사통보를 받고 12시에 송년회를 갖고 신정연휴를 보낸 뒤 1월4일 허둥지둥 보따리를 싸들고 왔다. 금강기획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자신을 왜 이 회사로 보내는지도 몰랐다. 뭐, 그렇다고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 게 바로 ‘현대식’이었으니까.

    그후 6년. 채수삼 사장은 광고업계의 터줏대감으로 입지를 굳혔다. 사장취임 당시 광고 취급고가 업계 6위로 한국 최대그룹 계열사의 명성을 무색케 했던 금강기획은 지난해 5400억 원의 취급고로 전년대비 78% 성장률을 기록하며 2위에 올라섰다.

    올해에도 8월말 현재까지 4300억 원의 취급고로 35%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이후에만 삼보컴퓨터 조흥은행 등 50여 개의 굵직굵직한 광고주를 새로 유치해 경쟁사들을 긴장시켰다.



    채사장은 지난 1학기부터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에서 ‘광고실무론’을 강의할 만큼 광고인으로서 전문성도 인정받았다. 무엇이 이런 ‘상식 밖의’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현대정신’은 광고에도 통했다

    -건설 출신의 ‘비전문가’가 아무런 인연도 없는 광고업계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데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을 법도 합니다.

    “지난해 말 우리 회사가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가 됐습니다만, 32년 동안 현대에서 일했던 저는 지금도 ‘현대맨’이고 ‘정주영맨’입니다. 그룹 창업주 중에는 무역회사만 차려놓고 공장은 죄다 남의 것을 인수해 사업을 늘려간 이도 많지만, 정주영 명예회장은 맨땅에다 직접 말뚝을 박고 공장을 세웠습니다. 쌀 배달로 사업을 시작해 자동차, 건설, 조선, 중공업 등 중후장대 산업으로 그룹을 일으켰고, 80년대 후반부터는 전자, 백화점 같은 소프트한 업종에까지 진출했지만 실패한 게 없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현대정신’을 몸으로 실천하신 거죠. 그 분 밑에서 일한 저희는 그런 집념과 투지, 도전정신, 추진력 같은 것들이 자연스레 몸에 뱄습니다. 저 또한 광고회사 CEO가 되고 나서도 그런 정신을 잃지 않았기에 지금껏 쉼없이 달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력만 갖고 될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일견 거칠고 저돌적인 ‘현대맨’의 이미지가 세련되고 섬세한 감각과 유연한 사고를 요하는 광고회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다만….

    “건설이나 중공업의 일은 광고쪽과는 판이하죠. 그렇지만 매니지먼트는 결국 똑같다고 봅니다. CEO는 사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스스로 솔선수범하면 됩니다. 뭐 그리 대단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에요. 필요한 게 있으면 하나하나 배워가는 거죠. 저는 대졸사원으로 들어와서 청사진 복사 뜨는 일부터 배웠어요.

    또 한편으로 제가 확실하게 느낀 것은 광고회사와 건설회사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둘 다 터프해야 돼요. 건설회사에서는 2등이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사 입찰에서 1등을 못하면 일감을 못 얻으니까. 광고회사도 마찬가지예요. 광고주 프리젠테이션에서 1등을 해야 광고를 따냅니다. 2등은 차라리 꼴찌보다 못해요. 광고 못 따낸 건 마찬가진데, 2등까지 하느라고 꼴찌보다 돈과 시간은 더 많이 썼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1등을 목표로 총력전을 펴면서 밀어붙여야 합니다. 다행히 저는 매우 터프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처음엔 좀 막막하지 않으셨나요?

    “전문성은 없었지만 감각은 꽤 있었다고 생각해요. 70년에 괌 건설현장에 나가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영국 미국 독일 등지의 해외지사에서 11년을 근무했는데, 덕분에 외국어도 배웠고, 마케팅이 뭔지도 알게 됐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전파매체와 인쇄매체를 접하면서 견문을 넓혔어요. 해외지사에 있을 때는 해외광고와 마케팅업무도 봤지요. 특히 런던에 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전유럽을 돌아다닌 경험이 광고감각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강기획에 처음 왔을 때도 떨리진 않았어요.

    다만 광고쟁이를 하려면 사람을 많이 알아야 되는데, 외국생활을 오래 한 탓에 국내에 인맥이 없다는 게 걱정거리였어요. 현대그룹 울타리 밖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야간대학원을 나가기 시작했죠. 사람도 사귀고 공부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지금까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카이스트 등에서 6개의 최고경영자과정을 마쳤습니다. 덕분에 많은 분을 알게 됐고, 이 분들의 도움으로 여러 광고주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사기부터 살려놓자

    -채사장께서 부임하신 후 금강기획은 짧은 시간에 업계 정상으로 뛰어올랐습니다. 그 가장 큰 요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 사람이죠. 광고회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먹여살리는 거예요. 제가 처음 왔을 때 금강기획이 업계 6위라고 하는데, 밖에서 들으니 실제 인지도는 10위밖에 안될 거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직원들 모아놓고 그랬죠. ‘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최고가 아닌 회사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6위라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현대건설은 한국 최고 건설회사, 현대중공업은 한국 최고 중공업회사, 현대정공은 세계 최고 컨테이너 회사, 현대자원개발은 국내 유일의 자원개발회사 아닙니까. 93년 말 광고 취급고가 1160억 원이었는데, 제가 그 자리에서 ‘올해 목표는 2000억 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다들 맥없이 웃더군요. 광고맨의 무기인 창의력과 적극성은 자신감과 활력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분위기가 너무 침체돼 있었어요. 무엇보다 직원들의 사기부터 올려놓고 볼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이 자기 자신과 직업에 대해 프라이드를 갖게 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었다. 전 직원을 면담하며 애로와 불만을 들었다. 그때 가장 밑바닥에 있던 이들이 여직원들이었다. 그들부터 불러모았다. 가장 큰 불만은 진급에서의 남녀차별이었다. 차별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말단사원일수록 불만이 많았다. “복사기가 몇대밖에 없어 복사하러 계단 오르내리다 시간 다 보낸다” “총무부가 필기구 같은 소모품 지급하는 데 인색해 일할 맛이 안 난다”는 유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말이 되는’ 불만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싼 월급쟁이들이 ‘쓰잘데 없는 일’로 시간과 정신을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 들어주마고 했다.

    임금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올렸고, 국제 광고대회 견학이니, 아이디어 헌팅 여행이니 하는 명목으로 거의 전 직원을 해외로 내보내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했다. 사옥 10층 스카이라운지에는 헬스클럽과 사우나실, 골프 퍼팅 연습실까지 설치했다. 아이디어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느 날엔가는 노동조합 간부가 채사장을 찾아와 “그런 일은 단체협상 때 노조가 요구해 사측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해야지, 사장이 일방적으로 다 해주면 노조는 뭘 하란 말이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기를 올려주니 회사 분위기도 확연하게 변했고, 외부 손님들이 회사를 찾는 일도 잦아졌다고 한다. 이 단계에서 그간 유명무실했던 마케팅 파트를 강화했다. 그때껏 마케팅 노력이 부족했던 나머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었으면 얻어냈을 광고를 놓친 게 많았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이런 조직 개편이 실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당시 5∼6명에 불과했던 마케팅 인력이 지금은 100여 명으로 늘었다.

    또한 무조건 아이디어를 짜내라고 강요하는 대신 회사에다 아이디어를 팔라고 제안했다. ‘RGB’라는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현금 보상을 해주기로 한 것. ‘RGB’는 ‘Resource Generatong Bee’, 즉 지식을 모으는 꿀벌이라는 뜻으로, 우리말 어감(알지비)과도 의미가 통한다.

    -누군들 사원들 대우 잘해주고, 복지 향상시키고, 분위기 바꿔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과거 경영인들도 그러고는 싶었지만 예산 없고 오너 눈치 보느라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룹오너가 제게 경영전권을 줬으니까요. 당시 회장께서는 이젠 현대도 광고회사를 키워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저를 보내신 것 같습니다. 현대 출신을 금강기획 사장으로 발령한 경우도 제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와서 보고 느낀 것을 보고하고 필요한 것을 건의했더니 명예회장께선 다 수용하셨어요. ‘저희 회사 임금이 업계에서 이런 수준밖에 안 됩니다’ 하면 ‘그럼 올려줘’ 하셨거든요. 그후로도 제 의견에 반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너가 임명한 ‘고용경영인’인 이상 진정한 의미의 전문경영인에 비하면 운신의 폭이 좁았을 텐데요.

    “적어도 제 경우엔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명예회장께선 ‘금강기획은 미국식 경영으로 간다’고 공언하면서 저를 전문경영인으로 인정하셨어요. 그래서 예산 쓰고, 사람 뽑고, 새 사업에 투자하고, 조직 개편하는 일까지 모두 제가 알아서 결정했습니다.”

    지난해 말 현대그룹은 금강기획 지분의 80%를 영국 코디언트그룹(CCG)에 매각했다. 이로써 금강기획은 현대 계열에서 벗어나 CCG 한국지사로 거듭났다. 매각협상 때 CCG 회장은 채사장이 계속 CEO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고 채사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국내 기업 CEO와 외국 기업 CEO를 다 경험하고 계신데, 어떤 차이를 느끼십니까.

    “일장일단이 있지요. 제가 현대에 있을 때는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갔습니다. 회장님 앞에서 ‘저 가족 데리고 휴가 좀 다녀오겠습니다’고 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휴가를 가든 출장을 가든 ‘나 언제부터 언제까지 회사에 없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정기적으로 그룹에 들어가서 보고하고 회의할 일도 없어요. CCG 본사에서 간부가 와도 마중 나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공항에서 택시 잡아타고 와요. 회사에 왔다가도 실무자만 만나고 돌아갑니다. 저야 속 편할 수 밖에요.

    그렇지만 현대라는 버팀목이 없어져서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가령 현대에 있을 때는 제가 ‘이곳에 투자하고 싶다’면 오너가 그 자리에서 OK했는데, 여기에선 사안마다 이사회를 거쳐야 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더욱이 본사에서 ‘가능하면 사업확장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라, 투자 리스크는 낮겠지만 속전속결에 익숙한 저희들로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금강기획은 CCG에 편입되면서 영화와 방송사업 부문을 정리했다. 광고사업에만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CCG의 방침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금강기획은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 4대 매체 광고와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 광고, 프로모션 활동 등의 마케팅 전략을 일관된 목표를 향해 펼칠 수 있게 됐다.

    CCG는 세계 185개 지역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에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확보한 셈. 이 때문에 금강기획 직원들에게 연수기회를 갖게 하거나 현지 전문가를 한국으로 불러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시너지효과가 크다고 한다.

    매출 직결돼야 좋은 광고

    채수삼 사장의 승용차 트렁크에는 보해소주 ‘천년의 아침’, 삼양 수타면, 크라운제과 국희크래커 같은 먹을거리가 가득 들어 있다. 모두 금강기획이 광고를 대행하고 있는 회사 제품이다. 판촉활동을 위해서다. 가령 술집에 가서 ‘천년의 아침’을 달라고 주문했다가 “없다”고 하면 짐짓 목소리를 키워 “아, 소주 중에는 이게 물이 최고인데 왜 안 갖다놓느냐”고 너스레를 떤 뒤 차에서 소주 한 박스를 가져와 “손님들에게 한 병씩 돌리라”며 떠안기고 간다.

    -‘광고주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라는 뜻에서겠지요?

    “그래요. 오길비 앤 매더사를 세운 광고 선각자 데이비드 오길비가 쓴 책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야, 이 광고 멋있다’는 반응을 끌어내기보다는 ‘어, 이런 제품도 있어? 이거 한번 사봐야 겠는데’라는 반응을 끌어내는 광고가 정말 좋은 광고라는. 요즘 광고 중에는 크리에이티브(창의력)만 너무 강조한 탓에 광고 본연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어요. 좋은 광고는 시선을 끄는 것은 물론, 매출과 직결돼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우리 광고주 회사의 제품을 쓰라고 늘 강조합니다.

    몇 년 전 진로 ‘참나무통 맑은 소주’ 광고를 맡았을 때는 현대그룹 사장단과 계열사 총무부장들에게 소주티켓이 든 편지를 보내 애용해달라고 홍보했어요. 그걸 계기로 참통 소주 판매고가 급증하는 바람에 그해 광고대상에다 촌지까지 받았죠. 광고는 이렇듯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하는 겁니다. 광고쟁이는 대단히 피곤한 직업이에요.”

    -광고회사 CEO라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유행과 취향, 젊은이들의 감각을 따라잡기 위해서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신문, 잡지를 많이읽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강연회나 모임에 자주 참석합니다. 조찬 약속이 없으면 아침식사도 구내식당에서 젊은 직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 자리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나 처음 보고 듣는 건 빠짐없이 메모합니다. 메모하는 습관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모시면서 생활화됐어요. 지시사항이 수시로 떨어져 그때그때 받아적지 않고는 일처리가 불가능했거든요. 저는 상의 주머니에 수첩을 세 권 넣고 다닙니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관리입니다. 젊게 살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20년째 매일 새벽에 수영을 하고 출근합니다. 제가 정말 젊긴 젊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엔 머리를 땋아서 물을 들인 남자직원을 봤는데, 그게 얼마나 이뻐 보이던지, 나도 한번 컬러 염색을 해볼까 싶더라니까요.”

    그는 5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하고 직원들의 생일이면 친필 축하카드를 보내준다. 광고회사에선 상명하복보다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CEO와 직원들 사이의 ‘벽’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하루에 두 통만 써도 1년이면 7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낼 수 있을 테니 그게 뭐 대단한가 싶겠지만 보통 정성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몇 통씩 밀리기라도 하면 집에까지 들고 가 써야 하고, 사장이 똑같은 내용을 쓴 게 아닐까 하고 서로 카드를 돌려보는 직원들도 있으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절한 내용을 쓰려면 신상이며 가족관계를 웬만큼 꿰고 있어야 한다.

    -CEO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CEO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어느 CEO가 어느 기업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그 회사 주가가 급등하고 폭락합니다. CEO의 브랜드 시대가 열렸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이젠 CEO들도 스스로 브랜드 파워를 창출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잭 트라우트가 지은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이 특정기업의 CEO를 전면에 내세워 ‘성공한 경영자’를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크라이슬러를 위기에서 구해낸 리 아이아코카의 경우 그의 자서전을 팔기 위해 낸 신문광고가 그대로 크라이슬러의 기업광고로 활용되기도 했어요.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 CEO는 무엇보다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전략과 구조, 시스템의 수준을 뛰어넘는 목표와 수단, 과정을 제시하고 그리고 이를 실천할 인적 자원을 경영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 나가는 능력부터 배양해야 합니다.”

    말단사원으로 출발해 CEO까지 오를 확률은 얼마나 될까. 1000분의 1? 1만분의 1? 채사장에게 그런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답은 재미없었다.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맡기든 최선을 다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을 배우려고 언제나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서 30분 늦게 퇴근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책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몸이 가벼워 궂은 심부름도 마다않고 날쌔게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상식은 아름답다.



    CEO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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