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나이를 따질 때 곧잘 띠가 뭐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직까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띠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 놓은 바가 없다. 그저 정초가 되면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하는 식으로 띠를 논할 뿐이다. 사람마다 열두 짐승의 띠가 매겨져 있고, 해마다 차례를 정해 띠를 배속시켜 놓으면서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아무도 그 의미를 말하지 않으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열두 짐승의 띠는 학술이나 종교적 신념에 관계없이 우리 한국인의 심성 한 켠에 늘 자리하고 있다. 이 열두 짐승은 혼인할 때 혹은 팔자 타령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참으로 인간과 기이한 인연을 맺은 짐승들이라 할 수 있다.
열두 짐승은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멀리는 인도와 티벳, 가깝게는 중국, 일본, 몽골에서 민중 속에 두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인식 속에 왜 이 짐승들이 굳게 자리잡고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열두 동물은 단순히 토템신앙의 산물이거나 혼인 여부 등을 예단하기 위해서 짐승들의 이름을 끌어다 붙인 것이 아닌, 고대인의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역학(易學) 저서에서는 발톱이 짝수면 음(陰)이고 홀수면 양(陽)이 되는 이치에 의하여 열두 짐승을 차례로 배속시켰다는 중화인(中華人)들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베껴 놓은 것말고는 다른 설명이 없다.
결론부터 먼저 밝히자면 띠에는 인간의 일체 성정(性情)이 다 들어 있다. 열두 마리 짐승을 하나로 묶어 놓으면 바로 사람의 심성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상징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불교조각 예술에서는 열두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기이한 12지상(十二支像)이 있는데, 이는 관세음보살의 현신(現身)으로 구원과 응징, 진리의 소리 등을 비유한 것이다.
시간별로 쥐는 야밤(23∼01시)에 배속되고, 소는 새벽(01∼03시), 범은 이른 아침(03∼05시), 토끼는 아침(05∼07시), 용은 늦은 아침(07∼09시), 뱀은 오전(09∼11시), 말은 정오(11∼13시), 양은 오후(13∼15시), 원숭이는 해거름(15∼17시), 닭은 초저녁(17∼19시), 개는 밤(19∼21시), 돼지는 늦은 밤(21∼23시)에 배속돼 있는데 이런 시간에 맞추어서 관세음보살이 짐승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서 인간을 경계하거나 인간세계를 두루 살펴본다고 한다. 실제 불교의 주요경전 중 하나인 천수경의 다라니는 이 짐승들에게 구원을 청하는 주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12지 신상(神像)은 경주의 괘릉이나 김유신 묘에 호위석으로도 등장하고 있다. 이 12지 신상은 땅의 열두 방위에 맞추어 배열돼 있는데, 각기 열두 동물의 얼굴에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어디 그뿐이랴! 인도의 힌두교에서 등장하는 시바(Siva)와 비시누(Visinu) 신도 열두 가지 괴이한 형상으로 묘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열두 짐승이 종교철학의 깊은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띠는 인간의 일생을, 변화하는 기(氣)의 성질에 맞춰 펼쳐 놓은 것이고 더 나아가 기(氣)의 실체를 신(神)으로 승화시켜서 불교적 해석의 12지상이나 힌두교의 12가지 신의 형상으로 표현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열두 짐승을 한 줄에 꿰어 놓으면 인간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거니와 생로병사의 윤회법칙 내지 천지(天地)의 이치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의약품 등을 개발하며 동물 실험을 할 때 열 두 짐승 중에서 골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열두 짐승의 성질이 사람의 생명 기운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띠와 고대 천문학
그러면 이제 이론적인 시각으로 띠의 성질을 분석해보자. 열두 짐승의 의미를 알아보기에 앞서 띠라는 말의 뜻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짐승 이름에 붙여 놓았기 때문에 얼른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띠는 우리가 늘 쓰는 말인데, 어린아이들을 업을 때 두르는 포대기의 띠와 같은 뜻이라 생각하면 된다. 마치 굴비를 새끼줄에 길게 꿰 두 끝마디를 매듭지어 놓은 것처럼, 사람의 일생에 열두 짐승을 차례로 나열해서 윤회시키면 띠를 두른 모양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대인의 눈으로 우주를 이해한 법칙이 내재한다. 고대인들은 지구가 자전하는 하루를 열두 시간으로 나누었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1년을 열두 달로 구분했다. 또 지구가 우주의 중심 공간을 한 바퀴 도는 기간을 120년으로 보고 각기 열두 짐승을 나열해서 띠를 두르게 하였다. 서양의 고대 천문학에서도 우주 공간을 물고기좌, 전갈좌, 황소좌 등 열 두 별자리로 구분해 띠를 두르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열두 별자리가 사람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의 이치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응축되어 나타난다. 인체의 등과 복부의 중심을 열두 마디 임·독맥이 띠두른 모양으로 흐르면서 육신의 모든 기관을 관장하는 것이나, 12경락 12지장 등이 모두 같은 논리로 설명된다.
필자는 종교 철학 의학 등 광대하게 적용되는 열두 띠의 상징성을 역학의 기론적(氣論的) 카테고리 안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즉 띠를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에 배속시킨 사주팔자가 그것이다.
사주팔자란 기(氣)의 성질을 표시한 여덟 개의 문자이자 일종의 부호(符號)라고 할 수 있다. 이 여덟 개의 부호는, 태아가 모태로부터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천지(天地)를 운행하던 어떤 기질(氣質)이 육신(태아)에 덮치고 배어들어서 올가미처럼 얽어맨 운명의 거울이요, 한 인간의 심성을 느낄 수 있는 향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기의 성질을 표시한 부호이자 띠를 이른바 후천운(後天運)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를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의 실체라는 게 동양의 역학 이론이다.
후천운과 대비되는 것으로 선천운(先天運)이 있는데, 이는 혼백(魂魄)의 씨앗과 대물림, 받아온 유전성 기질을 일컫는다. 선천운은 마치 깊은 바다와 같아서 범인의 인식으로 헤아리기가 불가능한 반면 후천운은 파도와 같아서 여덟 개의 부호(사주팔자)를 자세히 분석하면 능히 운명의 행로를 판단할 수가 있다.
아무튼 후천운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운명과 마음의 행실을 찾아내면 그 인간의 본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동·식물은 물론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의 기운을 묶어놓은 소우주체(小宇宙體)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열두 가지 짐승과 가장 흡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마음은 열두 짐승의 성품을 그림자처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질을 파악하려면 근본적으로 열두 짐승의 띠 코드를 해석해내야 한다. 이제부터 띠를 차례로 하나씩 예를 들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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