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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연구

4-4-2는 기마전술, 히딩크는 한니발 신화 꿈꾼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본 한국축구

  • 김화성 < 동아일보 체육부 차장 > mars@donga.com

4-4-2는 기마전술, 히딩크는 한니발 신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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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의 취약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아군의 배후지역이다. 상대 기병들이 아군 최종수비진의 뒤로 돌아가도록 놓아두면 순식간에 배후가 빈다. 이것을 막으려면 양쪽 4명의 아군 기병이 강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양 사이드를 뚫지 못하도록 전 선수가 상대 공격수를 압박해 공을 경기장 가운데로 몰아 넣어야 한다. 상대가 공을 잡는 순간 전 선수가 양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4-4-2에서 수비는 수비수 4명만 하는 게 아니다. 홍콩 칼스버그컵이나 두바이 4개국 친선대회에서 한국은 양쪽 사이드백이 번번이 뚫려 골을 쉽게 허용했다. 그만큼 4-4-2에 대한 적응이 서툴렀다는 얘기다.

또 있다. 4-4-2는 중앙이 두텁지 못하면 무너진다. 네덜란드의 98프랑스월드컵대표팀 중앙수비수는 주장 프랑크 데부르와 키 193cm의 초대형 수비수 스탐이다. 그 위 중앙 미드필드엔 네덜란드의 최고 스타인 다비즈와 용크가 조자룡과 관우처럼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다.

4-4-2포메이션의 프랑스가 98프랑스월드컵과 유로2000에서 우승한 이면에는 마르셀 드사이-로랑 블랑이라는 뛰어난 센터백 콤비가 있었다. 브라질은 94미국월드컵에서 4-4-2를 들고 나와 무패로 우승했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호마리우-베베토 투톱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중앙 수비수였던 아우다이르-마르시우 산토스의 철벽수비가 없었다면 우승은 어려웠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4-4-2로 우승한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준결승에서 지코 소크라테스 등 호화멤버의 브라질을 꺾은 데 이어 결승전에서 독일마저 누르고 우승한 데는 가에타노 시레아-풀비오 콜로바티의 빗장수비가 있었다. 그들이 뒷문을 꽁꽁 잠가줬기에 로시-알토벨리의 투톱이 번개같이 역습할 수 있었다.

한국대표팀 센터백엔 홍명보-이민성이 있고 미드필드 중앙엔 이영표-박지성(유상철)이 있다. 홍명보는 왼쪽 김태영의 자리와 오른쪽 이민성의 자리뿐만 아니라 앞쪽에 있는 이영표의 자리까지 오가며 1인 3역을 수행해야 한다. 이민성도 마찬가지다. 비록 홍명보가 아시아 최고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세계적인 수비수들과 비교하면 개인기나 협력수비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홍명보는 패싱은 뛰어나지만 순발력이 부족하다.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이 끝난 뒤 차범근 감독은 “홍명보는 94년에 비해 체력이 많이 달린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선수가 어디 있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이민성은 스피드와 투지는 좋지만 패싱이 좋지 않다. 협력수비에도 문제가 많다. 이들은 이미 프랑스월드컵에서 그 능력이 검증된 바 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전에서 전반 38분에 허용한 첫 번째 골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은 홍명보를 비롯 최영일 이민성 등 5명의 수비수가 골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지만, 네덜란드의 코쿠 단 1명을 막는 데 실패했다. 후반 26분에 터진 베르캄프의 골도 마찬가지다. 골 에어리어 정면에서 볼을 잡은 베르캄프는 이민성을 따돌린 데 이어 김태영마저 가볍게 제치고 오른발로 강슛, 네트를 흔들었다. 다섯 번째 터진 로날드 데보어의 골도 비슷했다. 골에어리어 가운데로 전진패스된 공을 잡은 로날드 데보어는 성급하게 달려드는 이민성과 김도근을 차례로 제친 뒤 골문으로 가볍게 찔러 넣었다.

칸나에 전투와 4-4-2

한니발과 로마군이 싸웠던 그 유명한 ‘칸나에전투’를 통해 축구 4-4-2 포메이션의 강점을 살펴보자. 지금부터 2200여년 전이지만 당시의 전투대형은 오늘날 축구의 포메이션과 너무도 비슷하다. 이중에서도 칸나에 전투는 너무도 유명해서 세계 각국의 사관학교에서 빼놓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 전투내용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서 발췌, 재구성했다.

기원전 216년 초여름 이탈리아의 칸나에 평원. 로마군 병력은 모두 8만7200명(보병 8만명, 기병 7200명). 카르타고의 한니발군은 총 5만명(보병 4만명, 기병 1만명). 보병과 기병의 비율은 로마가 11 대 1, 한니발이 4 대 1로 한니발이 상대적으로 우세했지만, 보병전력을 비교하면 로마 8만명 한니발 4만명으로 로마가 2배였다. 한니발은 당시 31세였다.

먼저 10㎞의 평야를 사이에 두고 대치가 시작됐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작은 충돌이 계속됐다. 로마 진영에서 1000여 명을 내보내면 한니발 진영도 그 정도의 병력을 내보내는 식이었다. 여기에선 로마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그 동안 한니발에게 당하기만 하던 로마군은 잔뜩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자신감을 얻은 로마군은 진지를 한니발 진영 2㎞ 앞으로 전진 배치했다.

그때부터 한니발은 낙심했다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로마가 싸움을 걸어도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소규모 병력조차 내보내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한니발의 책략이었다. 가뜩이나 경계심이 많은 로마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작전상 패배했던 병력도 한니발의 정예부대가 아닌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지방) 동맹군이었다. 한니발의 정예군은 손톱 하나 다치지 않고 건재했던 것이다.

마침내 기원전 216년 8월2일. 동이 트자마자 로마군이 먼저 진을 쳤다. 로마군의 주력은 역시 중무장 보병. 로마군 총사령관 바로는 로마군의 강점인 이 중무장 보병을 이용해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려 했다. 그래서 한가운데 경무장 보병을 앞세우고 그 뒤에 중무장 보병을 배치했다. 병력은 모두 7만명. 그리고 그 뒤에 1만명의 보병을 대기시켰다. 이것은 중앙 7만명의 경무장·중무장 보병이 한니발 진영의 중앙을 돌파하면, 대기병력 1만명을 투입해 승리를 확정짓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보병대의 진영은 세로가 긴 사각형, 즉 두꺼운 사각형이었다.

한편 기병은 오른쪽에 2400명 왼쪽에 4800명을 배치했다.

로마군이 진을 친 것을 본 한니발도 전군을 이끌고 나와 로마군 정면에 진을 쳤다. 한니발은 로마군 경무장·중무장 보병 7만명과 맞설 대응군으로 맨앞에 갈리아 용병 2만명을 중앙부가 불룩 나오게 활 모양으로 포진시켰다. 그리고 그 뒤에 자기의 정예 중무장 보병 2만명을 배치했다. 로마군 오른쪽 2400명 기병과 맞설 왼쪽 기병은 6000명을, 로마군 왼쪽 기병 4800명에 대응하기 위한 오른쪽 기병은 4000명을 배치했다.

첫번째 싸움은 로마군 경무장 보병과 활 모양으로 진을 치고 있던 한니발의 갈리아 용병 사이에서 벌어졌다. 당연히 수가 많은 로마군이 우세했다. 로마군은 중무장군까지 투입해 중앙을 돌파하려 했다. 그러자 한니발의 전위부대인 갈리아 용병 2만명은 후퇴하며 포진을 가운데가 불룩한 활 모양에서 움푹 들어간 활 모양으로 바꾸었다. 한니발이 불룩한 활 모양으로 포진한 것은 로마보병대가 중앙을 돌파하는 데 되도록 많은 시간과 힘을 쓰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좌우 양쪽에서는 기병전이 벌어졌다. 먼저 왼쪽 기병은 로마기병에 비해 숫자가 3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우세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기병은 뒤로 밀리더니 결국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한니발 오른쪽 기병과 로마군 왼쪽 기병의 싸움은 처음 얼마 동안 대등했으나 승마술이 뛰어난 한니발 기병에 밀려 대부분 달아나 버렸다.

이러는 동안 보병들간의 싸움에서는 움푹 들어간 활 모양의 한니발 갈리아 용병들이 로마군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좌우로 쪼개졌다. 로마군은 여세를 몰아 물밀듯이 쫓아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눈앞에 느닷없이 한니발의 정예 중무장 보병이 나타났다. 이제 전투는 7만 로마군 보병과 2만 한니발 정예군 간에 벌어졌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숫자가 많은 로마 쪽으로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것이 바로 한니발이 노렸던 상황이었다. 한니발의 정예부대가 점차 뒤로 밀리면서 로마군의 맹공을 견디는 동안 양쪽으로 갈라졌던 한니발의 갈리아 용병들이 로마군의 양쪽 옆구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로마군 뒤에서도 로마의 기병을 섬멸한 한니발의 1만 기병들이 로마군을 공격했다. 결국 로마군은 완전 포위되었다. 이때부터 전투는 한니발의 섬멸작전이었다. 로마의 집정관 2명과 원로원 의원 80명이 죽었다. 로마 희생자는 7만 명. 살아남은 로마 병사는 채 1만 명이 안되었다. 반면 한니발군의 전사자는 불과 5500명, 그것도 3분의 2는 갈리아 용병이었다.

결국 칸나에 전투는 ‘기병’이 우수한 한니발의 완승으로 끝났다. 기병이 우세한 한니발이 로마군을 갖고 놀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니발의 정예군이 중앙을 두텁게 막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4-4-2에서 중앙 미드필더(갈리아 용병 2만명)와 중앙 수비진(정예 중무장 보병 2만명)이 로마군의 공격진, 즉 경·중무장 보병 7만명의 공격을 지연작전으로 막아주는 동안 한니발의 기병들은 적진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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