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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1주년 특별기고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 최장집 < 고려대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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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의 한미정상회담을 어떻게 보느냐는 앞으로의 한미관계, 미국의 대북정책, 남북한관계를 포함한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돼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국내의 보수적 여론과 언론은 크게 비판적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필자는 여기서 이러한 평가가 옳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들 비판적 여론은 전략전술적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전략전술적으로 본다는 것은 반공을 절대적인 가치와 목표로 설정한 기반 위에서, 위계적·폐쇄적·경직적 특징을 가진 한미동맹관계를 유일하고도 불변의 것으로 상정했던 지난 냉전시대의 틀로 이해하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략전술은 이 관계의 구조를 변하지 않도록 하는 전략적 수단과 방법이며, 또 이것이 외교의 최대목표요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뜻한다.

냉전의 해체는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의 해체 또는 성격변화로 인해 이 틀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유연하고 상호의존적이며, 다면적이고 다자적인 국제관계를 발전시킨다. 냉전 시기에 한국과 같은 약소국이 갖지 못했던 자율 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전환과정에 자율적 공간을 적극 활용할 기회를 준다. 탈냉전과정은 동맹체제 내 국가들간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변화를 수반한다.

따라서 필자는 냉전해체라는 국제관계의 구조적 변화라는 관점에서, 지난 3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비판적 여론은 이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탈냉전의 전환과정에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미간의 일정한 차이, 주권국가로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율 공간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비판자들은 주로 세 가지에 초점을 둔다. ①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내용의 문제로, ‘햇볕정책’이 미국의 대북정책과 충돌함으로써 한미관계 공조의 틀에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 ②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러시아대통령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부시 정부의 기본정책중 하나인 ‘미 본토(또는 국가)미사일방위(NMD)’와 ‘전역미사일방어(TMD)’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한국이 한미관계보다 한러관계로 경도하거나 아니면 미국과 소련, 중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 ③ 회담의 타이밍 문제로서 김대중-부시의 대면이 너무 빨랐고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사전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주권국가의 자주외교

우선 첫 번째 문제를 보자. 남북정상회담이 클린턴 전대통령의 포용정책과 페리보고서의 틀과 충돌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하나의 주체적 행위자로서 자율 공간을 활용하고 적극적 외교를 펴는 것은 필수적이다. 탈냉전을 지향하는 자율적 외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그 시각과 가치가 냉전 수구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독립된 주권국가가 취할 수 있는 자주외교의 한 표출 형태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차이가 그토록 심각한 외교적 문제라면 미국의 이해를 구하거나 협상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지금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일방적이고도 공격적인 방어전략은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중국과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주요 국가로부터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형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분명히 드러나듯이, 부시의 새로운 전략구상은 너무나 과격하고 충격적이어서 전세계가 그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말대로 “부시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정도다(5월5~11일호). 핵미사일통제와 핵확산방지, 그리고 육해공에 기초를 두었던 종래의 방위전략으로부터 우주공간으로 장(場)을 확대하여 이를 선점하려는 전면적 전환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 때문에, 심지어 일본조차 정책을 확정하지 않고 관망하면서 신중히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다(아사히신문, 5월3일자).

현재적·잠재적 비판자들과 지지를 유보하는 전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자국의 전략 변화를 설득하고, 새로운 전략체계에 참여 인센티브를 주어야 할 측은 미국이지 다른 나라가 아니다. 5월 초 미 국무부의 아미티지 부장관과 겔리 아태차관보의 방한은,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는 대가로 새로운 전략체계를 지지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중요 목적이었다.

셋째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신정부의 정책 결정자들과 외교채널을 유지하지 못한 무능력이나, 치밀한 준비부족 같은 외교적 실책을 탓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준비를 위하여 회담을 수개월 늦춘다 하더라도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클린턴 민주당정부의 포용정책을 그대로 되밟지 않는 것이라면 한미간에 발생한 불편한 관계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시 정부의 방위전략변화로 커다란 도전에 부딪힌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동방정책이 진행되던 도중 두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소련이 ‘프라하의 봄’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소련 영향권 내의 국가들에게 제한주권을 부과하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선포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닉슨 행정부의 출현이다. 반공을 강조하고 매카시즘과 깊숙한 관계를 가졌던 공화당 보수파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는 막 진행되고 있던 데탕트에 대한 역진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후 소련은 팽창정책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닉슨 정부 역시 냉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보였던 이 시기, 닉슨 정부는 서독의 동방정책에 결코 우호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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