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이회창 총재는 김정일 답방 지원하라”

이부영 한나라당 부총재의 제안

  • 이부영 < 국회의원·한나라당 부총재 >

    입력2005-04-12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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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면서 확보된 해방 공간은 우리 민족이 하나의 틀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갈라진 체제로 분단의 길을 걷게 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분단을 막기 위한 민족세력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지만, 외세에 의해 주어진 해방 공간 속에서 우리 민족의 자율적 역량은 전세계적 냉전의 흐름을 극복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얄타회담에 의해 규정된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유럽에서는 독일이, 아시아에서는 한반도가 분단의 길을 걷게 된다.

    냉전으로 인한 분단 구도는 1948년 남한과 북한에 이념을 달리하는 단독정부가 각각 수립되면서 확정된다. 이제 단선 단정의 48체제가 들어선 지도 50년이 훌쩍 넘어섰다. 이 과정에 우리는 6·25라는 동족 상잔을 경험했고, 53년 휴전협정 체제가 성립된 이후 지금까지 어느 지역보다 공고한 냉전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48체제는 중대한 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다. 전세계적 냉전 구도가 ‘얄타체제로부터 몰타체제로’ 변화하고 해체되면서, 한반도에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48체제’에서 ‘02체제’로

    우리 민족 내부에서도 48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있어왔다. 72년의 7·4 남북 공동성명, 88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92년에 맺어진 남북기본합의서, 94년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간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등 성격이 다른 냉전 체제 또는 냉전 해체기 동안에도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여러 변화와 진전을 위한 노력과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지난해 6·15 남북정상 공동선언은 역대 정권에서 쌓아온 여러 관계를 계승·발전시킨 획기적인 선언이었다. 전세계적 냉전 해체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민족 자율 공간 속에서 남북한의 지도자들이 두 손을 맞잡고 상호이해와 신뢰구축을 위한 소중한 발판을 마련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획기적인 일로 평가할 만하다.

    해방 공간에서 분단을 막기 위한 민족 세력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결집되지 못해 결국 좌절의 길을 걸었고 그로 인해 반세기 이상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경험을 반추해볼 때, 지금 조성되고 있는 민족 자율 공간 속에서 남북한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어떻게 이 기회를 활용하여 내부적 개혁과 갱신을 통해 구체적 성과를 거두는가에 따라, 새로운 세기에 우리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리라는 점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역대 선거가 그래왔듯이 또다시 지역갈등구도의 지배를 받는 ‘분열과 대립의 선거’를 치를 것인가, 아니면 지역의 통합과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는 ‘화해와 전진의 선거’를 치를 것인가 하는 막중한 과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내년 대통령 선거 과정을 통해 48체제를 극복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한 국민적 합의와 전망을 공유해 나가야 한다.

    실로 대선이 있는 2002년은 48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의 출발을 알리는 신기원의 해, 새로운 ‘02체제’의 서막을 여는 해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부시 정권의 등장은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 분위기에 난기류를 조성하고 있다. 도식적으로 전망해볼 때, 미국의 부시 정권과 우경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여러 정파들, 내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한국에 등장할지도 모르는 보수적 정권이 함께 북한을 포함한 러시아·중국 등의 북방대륙세력에 대해 대립각을 세울 경우,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다시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남북 양쪽에 신3각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 정책(MD)은 긴장의 강도를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현재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조는 이전의 아버지 부시 정권이나 레이건 정권보다 더욱 강경한, 냉전 절정기의 공화당 초강경파의 정책기조에 근접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따라서 한반도 주변 정세를 규정하는 기본 변수 중의 하나인 미국의 태도는 적어도 부시 행정부의 집권기간 동안에는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민족 자율공간의 흐름을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신3각체제는 과거 냉전시대의 이념대결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적 차원의 경제 통합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미국 부시 정권이 자국 중심적 신자유주의노선을 관철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일시적 긴장 국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세계적 수준에서 대등한 힘을 갖는 국가의 존재, 강력한 경쟁 이데올로기의 존재, 이에 따른 세계의 양분 등 냉전 시대를 규정하는 기본 구성요건이 근본적으로 해체된 상황에서 ‘신냉전 구도’와 같은 긴장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장 확대를 지향하는 미국의 경제통합 노력에 따라 중국이 러시아처럼 상당한 수준의 시장 개방에 이를 때까지는 긴장의 강화와 완화 국면이 단속적으로 되풀이될 것이다. 그 과정에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일시적인 소강 상태에 빠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 발전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이와 같은 외기(外氣)의 변화가 국내 정치세력에게 미묘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하지만, 부정적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보수·우익 세력의 목소리가 김대중 정권의 내정 실패와 한반도 주변의 외기의 변화를 계기로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정치 세력들이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권력 유지와 탈환에만 몰두하며 실천적 노력을 집결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민족의 자율 공간은 좁아지고, 과거 해방 공간에서 범했던 한계와 오류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적어도 남북관계에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관계의 성과를 독점하거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리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 하나가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0년 4·11 총선 당시에는 선거일 직전 남북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여 선거에 이용한 바 있으며, 그 후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공로를 활용하여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국내 정치 강화나 유지에 남북관계를 이용했던 역대 정권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북관계의 전개 과정에서 야당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야당에게 남북관계에 대한 충분한 정책적 협의의 기회를 제공하고 초당적으로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도록 이제라도 노력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인한 자율적 정책 수단의 제약, 내정의 실패로 인한 지지도의 급격한 하락 등이 나타나는 현 상황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과제를 실현해야 하는 김대중 정권의 처지에서 야당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은 더욱 절실한 일이다.

    외세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던 냉전 시대의 국제 질서가 해체되고 이제 막 민족 자율 공간이 확장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절대적 요건인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빌리 브란트에서 헬무트 콜로 이어지는 독일의 지속적인 동방정책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합의 도출 노력 속에서 가능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이 진심으로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려 한다면 남북관계를 활용하여 자신의 임기 내에 정계 개편이나 개헌 등을 시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대선 과정에 불가피하게 대두될 수밖에 없는 개헌 논의를 정략적으로 방치하거나 이용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정을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현정권의 임기 내에 국가의 장기 발전 전망에 입각한 개헌 논의는 있을 수 있되 개헌 그 자체는 없으며, 내년 대선을 통해 각 정치 세력이 개헌과 관련된 견해를 국민에게 제시하여 평가받고, 대선 직후에 여야 합의로 개헌하여 차차기 정권부터 이를 실행하는 식의 구체적 일정을 확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회창 총재, 김정일 답방 지지해야

    또한 1차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거둔 남북관계의 성과를 한층 진전시켜 제도화의 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남은 임기 동안 이 문제에 몰두하겠다는 자세와 각오를 보여주어야 한다.

    사실 김대중 정권이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는 올해가 거의 마지막이며, 그 수단은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거의 유일하다. 만약 남북한이 2차 정상회담을 실현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한반도 정책을 극복해낼 수 있다면, 한반도의 화해 협력 기조는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 시기보다 더욱 탄력을 얻게 될 것이다. 2차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실현은 그만큼 중대한 과제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올해를 넘길 경우 거의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대선이 있는 내년에 정상회담을 시도할 경우, 불가피하게 정략적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해 안에 내외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2차 정상회담을 실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야당과 국민의 지지와 협조를 구하는 진심 어린 노력과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내정의 실패를 솔직히 시인하고, 민주당 총재직을 떠나 남북문제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길이 퇴임 이후에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모든 점에서 그렇지만 특히 남북관계에서도 야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정권의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하고, 민족 자율 공간이 위축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야당이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남북관계 발전을 뒷받침하려는 노력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앞서 언급했듯이, 2차 남북정상회담의 연내 실현이 정파를 초월하여 남북관계 진전의 획기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둘러싼 야당 역할의 중요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만약 현재의 조건에서 야당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면, 그 실현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김대중 정권의 총체적 실패로 귀결되어, 야당이 단기적인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부담은 집권기간 내내 커다란 족쇄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민족 자율 공간의 위축 또는 소멸로 인해 장기적 전망이 사라지는 상황이 도래할 경우, 비전 없는 국가를 이끌고 가야 하는 집권측의 어려움은 권력을 획득하지 않은 것보다도 못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이회창 총재는 2차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한 남북문제의 전개 과정에서 장기적이고 대범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즉 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함으로써, 한 정파의 지도자에서 벗어나 스케일이 큰 민족의 지도자로 국민 앞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도 ‘포용력이 없다’는 이회창 총재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대범한 지도자의 풍모를 심어줌으로써, 집권 가능성을 확실하게 넓혀주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때, 국민들은 그 성과를 김대중 대통령의 몫뿐만 아니라 이회창 총재의 몫으로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실체가 무엇이든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부시 정권이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는 데 하나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태도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뿐만 아니라, 전반적 안보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부시 정권의 강경 기조로 인해 클린턴 정권 당시 상당히 유연한 수준까지 확대됐던 북한의 대미 정책과 태도가 당장 난조를 보이고 일시적으로 경색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으로 북한의 그러한 위치는 부시 정권이 주도하는 일시적인 신냉전 기류를 완화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김정일 위원장은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변화의 흐름을 더욱 공고한 방향으로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북한 체제 역시 대립과 갈등의 구도 속에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우며, 결국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남북간의 노력으로 확보된 민족적 자율 공간의 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어려움을 뚫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결국 한국 정부를 매개로 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남북간의 신뢰와 협력의 확보는 우리 민족이 현재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데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김정일 위원장은 군비 통제와 군사적 재배치를 가시화해야 한다. 당장 군비 축소까지는 어렵더라도, 휴전선 주변에 배치된 수천 문에 달하는 장거리 포대와 수백 기에 달하는 프로그와 스커드 등 단거리 미사일의 재배치를 위한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장거리 포대와 단거리 미사일은 미국이 구상하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로도 방어할 수 없는 한반도의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요인이다. 이러한 위협요인을 스스로 제거하고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줄 때, 남북 쌍방간의 신뢰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특히 냉전 질서 해체 후 국제 관계가 다변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제사회의 신뢰 획득은 대미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며,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본인을 포함하여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바라는 남한의 많은 인사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국가보안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폐지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만만치 않은 반대에 부딪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평화친화적 체제를 만들기 위한 남한사회 내부의 노력이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줄 수 있다. 즉 남한을 외세의 식민지로 규정하여 혁명 대상으로 선언하는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여 공존의 대상으로 선언하는 작업을 김정일 위원장이 선도해 준다면, 상호간의 보완적 노력을 통해 평화친화적 체제는 조속히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통일은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통합(integration)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는 48체제 수립 이후 반세기 넘게 다른 체제에서 살아가는 남북한이 모두 상대의 체제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내부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북한 두 사회의 통일의 과정은 48체제 이후 왜곡되어온 각각의 사회구조를 평화친화적 구조로 내부적으로 개혁하고 정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년 대선은 통일을 지향하는 화해와 협력의 시대에 맞는 국가운영의 원리와 골격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추출해 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운영원리의 총화인 헌법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당장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과 같은 통일 단계를 거론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반란지역으로 규정한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그대로 두어서는 논의가 진전될 수 없다. 국가보안법 문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방향으로 다듬어져야 한다.

    내년의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는 모든 정파와 후보들은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자신들의 정견을 정확하게 내걸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 미래의 존재양식과 전망, 민족적 담론이 담긴 중장기적 그림,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첫 대선을 또다시 20세기 말의 지역주의, 돈, 보스가 지배하는 선거로 치러서는 안 된다. 20세기의 어두운 분단정치, 48체제 정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21세기에 우리 민족이 그려야 할 큰 그림을 제시하는, 새로운 체제의 출발을 알리는 대통령 선거를 준비해 가야 할 것이다.

    허구적인 부국강병론에서 벗어나야

    48체제의 극복은 곧 허구적인 부국강병론의 극복과 맥이 닿아 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소위 강성대국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부국강병론에 의한 강대국이 되겠다는 논리다. 그런가 하면 남한 사회가 내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초일류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도 부국강병론, 강성대국론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우리 국민도 해외 여행, 유학, 언론 등을 통해 세계의 여러 정보를 듣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강대국이 되는 것이 가능한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구호는 외세에 침략당하고,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고, 시달려온 국민들의 열등감을 자극하여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부국강병론은 48체제를 지탱하기 위한 허구적 슬로건이다.

    그렇다면 48체제를 극복한 새로운 체제 속에서 우리 민족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필자는 내부적으로는 복지와 민주주의가 충만한 나라, 밖으로는 평화를 나눠주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이러한 국가의 모습을 ‘평화국가’, ‘균형국가’, ‘완충국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주변국 어느 나라에게도 기울지 않는 나라, 우리로 인해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가 유지되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통일 이후에도 시장경제와 균형경제 그리고 대의민주주의가 굳건히 지켜지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21세기의 대통령 후보는 어느 지역의 지지를 받는가, 누가 돈을 많이 모아서 쓰는가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부국강병론과 같은 허풍이 아닌, 겸손하지만 미래의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48체제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율 공간 속에서 진정으로 조국의 미래를 밝혀주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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