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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일본 우익의 선봉 산케이신문

산케이 한국보도 親韓인가 反韓인가

일본 우익의 선봉 산케이신문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산케이 한국보도 親韓인가 反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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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정부 개발 원조)’로 명명된, 저개발국가에 대한 원조금을 가장 많이 지불하는 나라다. 일본은 침략에 사과하는 뜻으로 그 동안 적잖은 ODA 자금을 중국에 제공해 왔다. 그러나 차이나 스쿨 멤버들은 중국이 ODA 자금을 어디에 쓰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고모리 특파원은 달랐다. 그는 중국이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ODA 자금을 주로 투입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심층 기사를 연속적으로 써 내려갔다. 이 기사는 일본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켜, 마침내 일본 정부는 용처가 어디인지 따져본 후 중국에 ODA 자금을 제공하게 되었다. 기요하라 사장은 이렇게 적고 있다.

‘베이징 지국장에 임명된 고모리 기자는 출발을 앞두고 “저는 기자로서 사실을 왜곡해서 보도할 수 없습니다.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추방을 당해도 좋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하자마 시게아키(羽佐間) 회장과 나는 “그것이 산케이의 존재의의다. 쓰고 싶은 대로 써라”고 대답해 주었다. 고모리 기자는 중국 당국의 압력을 물리치고 중국이 위조(僞造)와 모조(模造)의 대국이라는 사실과 일본이 제공한 ODA 자금으로 베이징의 인프라를 정비해, 군사력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 등을 보도했다. 이것은 다른 매체가 전혀 보도하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까다로운 상대인 중국과 구 소련 정부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신문이 산케이니, ‘공산주의의 악동’ 북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욱 많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구로다 특파원이 선봉장이다.

산케이는 일본을 때릴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 북한이 납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인 실종자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정부가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해 왔다. 산케이의 이러한 논조는 일본을 햇볕정책에 참여시키려는 김대중 정부의 의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하지만 여기서 산케이는 한국의 우익인사들과는 의기가 투합한다. 산케이가 한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구로다 특파원이 한국 기자를 제치고 특종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로다 특파원은 황장엽씨 논문을 먼저 입수하게 된 경위를 예로 들어 이렇게 말했다.

“북한 귀순자들은 목숨을 걸고 찾아온 한국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무시를 당하니, 그들은 하소연을 들어줄 상대로 외국 언론을 찾는 것이다. 옛날에는 한국의 민주운동가들이 그러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대통령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말하기 힘들면 외국 언론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180도로 사정이 바뀌어, 우파 사람들이 외국 언론을 찾고 있다. 한국의 우익들이 산케이를 찾는 것은 산케이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는 한국 언론의 문제다.”

“군국주의와 우경화는 다르다”

‘할 말은 하겠다’는 산케이가 두 번째로 주장하는 것이 ‘일본판 역사 바로 세우기’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일본의 우경화’ 등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의 일본 언론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제 식민지배 시절 적잖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군인이나 정신대 등으로 전쟁에 끌려나가, ‘개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상당수 일본인들도 도조 히테기(東條英機)를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의 강압과 선동에 말려, 그들의 젊은이들도 ‘헛된 죽음’을 맞았다고 본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도조 히테기를 포함한 일본 전체를 가해자로 보는 데 반해, 일본 국민들은 가해자는 도조 히테기를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이고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이다.

군국주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전쟁과 군국주의를 혐오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때문에 맥아더 원수가 일본은 ‘외국과 교전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헌법(평화헌법)을 만들 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유사 군사 조직인 자위대를 만들 때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초래한다며 반대한 식자층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일본인의 의식을 대변하는 신문이 아사히와 마이니치고 잡지로는 ‘세가이(世界)’다.

반면 전전(戰前)에 가졌던 일본의 가치관이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으니 산케이가 그 대표다. 월간지 ‘분게이순슈(文藝春秋)’도 때때로 산케이와 같은 견해를 취했다. 구로다 특파원의 말이다.

“한국에서는 산케이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산케이는 군국주의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일본이 지녀온 가치관 중에서 옳은 것은 그대로 지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1960년대 일본의 좌익 학생조직인 전공투(全共鬪)가 전면에 나서 투쟁을 벌일 때의 일이다. 일본의 주류 언론은 학생들 편에 서서,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산케이는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학생운동 세력을 비판했다.

학생운동 세력이 적군파(赤軍派)로 발전해 총격전까지 벌이고 난 다음에야 일본의 주류 언론은 폭력은 안 된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러한 투쟁의 연장선에서 산케이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문제가 있다’ ‘일본의 교육제도와 행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일본의 정체성을 부정한 전후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을 연속적으로 보도했다. 산케이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과거 일본인들은 귀기울이지 않았으나, 80년대를 분수령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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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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