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자아와 자연, 그리고 자유

  • 엄정식 교수

    입력2005-04-13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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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삶의 주체인가.
    • 나는 억압과 충동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는가.
    •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갖고 수시로 전원을 찾는 철학자 엄정식 교수.
    • 그가 털어놓는 '시골경험'의 즐거움
    충남 당진읍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원당리의 은곡마을은 약 100여 년 전 이곳을 떠난 선친의 고향이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으니 조그마한 흑백사진으로밖에는 그 분을 기억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15년 전 웬 일인지 아버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져서 무작정 이곳에 와서는 150년 가까이 된 농가를 한 채 마련했다. 이 농가는 아버님과 직접 관계가 있는 집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향을 아버님께 찾아드렸다고 믿고 있다.

    그후 한 달에 평균 두 세 번씩 이곳을 방문하여 사색에 잠기고 저술도 하며 때로는 농사일을 돕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오히려 나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이곳에서 고향을 되찾은 셈이다.

    나는 왜 이곳에 그토록 자주 오는가? 사실 대학 교수로서 산촌의 외딴 마을을 자주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보직을 맡기도 하고 학회활동과 철학문화운동 혹은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더군다나 그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입장에서 틈을 내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에 얽매여 옴쭉달싹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모든 일상사로부터 훌쩍 떠나 숨은 골짜기인 이곳 ‘은곡’으로 온다.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그러한 일들이 모두 무슨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을 찾아서 혹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농촌을 좋아하고 이곳에 사는 농민들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흥미가 있다.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기도 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그 변화가 때로는 숨막힐 정도로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욱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의 기하학적 점으로라도 좋으니 그냥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함수로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다른 것과 구분되는 하나의 실체로서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오는 이유는 사회학적이거나 인류학적, 혹은 종교적이거나 예술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것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절규를 들으며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계속 묻는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아주 젊은 시절 아버지를 추상적으로 그리워하면서 생긴 버릇이기도 했다.

    군불과 자아의 실현

    폐가에 가까운 텅 빈 농가로 가끔씩 찾아오려면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먹을 음식은 물론 겨울에는 두툼한 옷과 난방시설을, 그리고 여름에는 해충이나 뱀, 그밖에 독초와 같은 위험물을 제거할 수 있는 약품이나 도구 등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이 산골 마을에 도착하면 항상 부족한 것이 많고 책을 읽거나 글이라도 몇 자 쓸 수 있게 되려면 거의 반나절이 지나가도록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군불 때는 일이다. 겨울에는 물론 난방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여름에도 습기를 제거하거나 벌레들을 쫓기 위해서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으면 안 된다.

    군불을 때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아궁이 맨 밑바닥에 신문지나 마른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지푸라기 더미를 올려놓은 다음 잔 나뭇가지부터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다시 그 위에 좀더 굵은 장작의 순서로 얹은 후 불을 붙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이론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우 오래간만에 불을 지피게 되니까 겨울에는 아궁이가 얼어붙기 때문에, 그리고 여름에는 습기가 가득 차서 좀처럼 장작에 불이 댕겨지지 않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마음이 조급해져서 점점 더 허둥대기 일쑤이다. 온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차고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된 다음에야 비로소 불기를 만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군불을 자주 때면서 여하튼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이론과 실천 사이에 항상 엄청난 거리가 있음을 실감하고 군불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에 관해서 이리저리 생각하게 된다. 우선 군불을 땔 때 장작개비를 정교하게 제대로 배치해도 아궁이 안이 습기로 가득 차 있다면 결코 불은 댕겨지지 않는다.

    이것은 군불을 땔 때도 ‘운’이라고나 할까, 자연의 선험적 조건 같은 것이 있음을 의미하며 그러한 조건들이 호의적이지 않을 경우 작위적으로 시도하면 그만큼 더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마련이다. 아궁이가 바짝 말라 있을 경우에는 배치가 잘못됐거나 심지어 장작개비가 눅눅하더라도 잘 타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장작개비가 아무리 잘 마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결코 전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장작개비들과 어울려야 비로소 불꽃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으며 하나의 불꽃이 꺼져 갈 때 서로 다른 불꽃의 도움을 받으며 더욱 큰 불구덩이로 아궁이를 꽉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장작의 크기에 따라 다른 장작과의 거리가 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잔 가지를 가까이 모아두지 않으면 불꽃이 작아서 혼자 타다가 꺼지고 만다.

    한편 굵은 장작들을 너무 가까이 배치하면 마찬가지로 좀처럼 불길이 일지 않는다. 결국 잔 가지일수록 가깝게 하고 굵은 장작일수록 멀리 배치하여 각기 그 개성을 유지하도록 배려해야 자기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게 돼 텅 빈 아궁이에 한줌의 재만 남기고 전소하는 것이다.

    나는 군불을 때면서 가끔씩 “하나의 장작개비가 영생한다면 그것이 무슨 뜻일까?” 하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 보곤 한다. 그것은 한줌의 재가 될 때까지 전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로서는 하나의 마른 장작개비에 영혼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타버린 다음에도 여전히 정체성을 유지하는지, 그리하여 내세에 윤회를 거치거나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인지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떠한 존재이든지 그것이 스스로 지닌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그러한 뜻으로 그것은 자신을 초극한다고 말할 수 있고 동시에 영생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영생은 자기 초월의 한 형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의미의 영생이 가능한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적 자아의 인식이 전제돼야 그리스도적 영생이나 석가모니적 해탈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거나 기능할 수가 없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면 자기를 초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기의 욕구와 능력과 당위를 제대로 가늠하고 그 한계 내에서 실천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 실천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려면 하나의 장작개비가 다른 장작개비와 어우러지듯이 좋은 이웃을 만나고 원만한 인간관계 속으로 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자기 혼자서는 영생할 수 없다. 이웃을 사랑한다든지 자비를 베푼다든지, 혹은 어진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도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장작개비가 시커먼 아궁이 속에서 스스로를 태우면서 나에게 가르쳐준 상징적 의미다.

    한 달에 두세 번, 혹은 일에 쫓겨서 그보다 더 뜸하게 이곳 산촌을 찾아오면 군불 때는 일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우선 뒤뜰에 있는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다가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하고 집안을 치워야 하며 찢어진 창호지를 바르는 등 여기저기 부서진 곳을 수리해야 한다.

    자연과 자아의 개발

    그 중에서도 한 여름에는 거의 허리까지 올라오도록 자란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고달픈 일이다. 낫질이 아직 서투른 나로서는 앞마당이며 집 주위에 가득 적군처럼 진주해있는 잡초를 대할 때마다 일종의 ‘전쟁’을 연상하게 된다. 비지땀을 흘리며 온몸이 뻐근해질 때까지 풀을 베어 나가다가 나는 문득 ‘잡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여기서 내가 제기하는 질문은 잡초가 어떤 과에 속하는 식물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특정한 종류의 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문제는 왜 그 일군의 식물들을 우리는 ‘잡초‘라고 부르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잡초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거나 호감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잡’자가 붙는 어휘, 가령 ‘잡상인’ ‘잡배’ ‘잡동사니’ ‘잡것’ 등이 그렇듯이 잡초도 쓸모 없고 때로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혹시 우리가 너무 편협하게 유용한 것만을 협소한 관점에서 추구하기 때문 아닌가. 어떤 대상을 그 자체로서 바라보지 않고 그 기능과 역할에만 집착해서 조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웃에 사는 박씨나 최씨는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나의 표현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잡초에 대해 늘 부정적인 개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잡초라는 것이 농사를 짓는 데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없어져야만 할 대상도 아니다. 그들은 잡초를 모아서 소죽을 쑤기도 하고 썩혀서 비료로 사용하기도 하며 말려서 군불을 때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용도가 있을 것이다. 가령 농지 근처에 잡초가 없다면 폭우가 있을 때 어떻게 홍수와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식으로 바라보면 결국 잡초는 유용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일반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폭을 넓혀준다. 그렇게 관점을 넓히면 어떤 사물에서 많은 측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이 풍요로워지고 삶이 ‘살아낼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곳 산촌에서 생활하노라면 잡초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뱀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뱀은 일반적으로 기분 좋은 존재가 아니다. 각종 전설이나 신화에도 뱀은 사람을 해치며 죄악의 구렁으로 유혹하는 사악한 동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뱀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이곳에서 자주 강박관념에 빠진다.

    어느 해 초봄에는 꽃뱀 한 마리가 앞마당에까지 기어들어 온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날 나는 최씨를 찾아가 뱀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는 나의 사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너털웃음을 웃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우선 뱀은 크게 독이 있는 독사와 독이 없는 꽃뱀으로 나누어진다. 물론 구렁이 같은 큰 뱀은 있지만 요즘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독사는 주로 풀숲에 숨어 있으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한 결코 먼저 공격해 오지 않는다. 다만 꽃뱀만이 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에 자주 띄는데, 쫓으면 으레 도망가고 문다고 해도 별로 깊은 상처를 주지 못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계할 것은 독사뿐인데 풀숲으로 들어갈 일이 있을 경우 장화만 신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설명을 듣고 난 다음부터 비로소 뱀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뱀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는 않는다. 특히 늦여름이나 초가을에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전처럼 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과거에는 나에게 두 개의 적이 있었다. 하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적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뱀에 대한 나의 관념이 그것이다. 이 두 개의 적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늘 불리한 입장에 있었고, 더구나 그 중 하나는 간첩처럼 아군 진지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내부의 적, 다시 말해서 뱀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한층 여유가 생겼고 뱀이라는 동물을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대상을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이 거듭될수록 그러한 관점에서 그것을 개념화한 다음, 이번에는 그렇게 개념화된 결과로서 그 사물을 조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자주 주위에서 접하게 되는 대상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포함해 자연 그 자체와의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잡초를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용하고 또 보호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뱀을 싫어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약용식품으로 활용하며,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심지어 그것을 우상화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잡초나 뱀 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잡초는 그냥 잡초일 뿐이며 뱀은 그냥 뱀일 뿐이다. 결국 자연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자유와 자아의 승화

    어떤 때 여유가 생기면 나는 이곳 산촌에서 여러 날 머물러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당진읍에 들러서 필요한 물품을 사 가지고 들어온다. 물품이란 대개 밑반찬, 라면, 국거리, 각종 약품, 철물 도구, 창호지 등등이다.

    봄철이 되면 묘목을 사기도 하고 겨울철이 다가오면 방한복이나 모자를 사기도 한다. 이곳 당진읍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매번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하루 아침에 새로운 길이 생겨나고 건물이 여기저기에 버섯처럼 솟아나며 최근에는 주차장이 생겨서 아무 데나 자동차를 세울 수가 없게 됐다.

    그것은 마치 개발도상에 있는 우리나라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언제인가부터 ‘읍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주로 이질적인 요소가 한류와 난류처럼 부딪쳐서 일대 혼란을 빚는 현상을 말한다.

    읍에는 현대와 전근대가 전혀 섞이지 않은 채로 공존한다. 거기에는 도시의 회색빛 건조함과 농촌의 초록빛 풍성함이 함께 어울려 있다.

    그러나 도시만 지니고 있는 세련미를 아직 찾아볼 수 없고 농촌만 간직할 수 있는 순박함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로 도시적인 것과 농촌적인 것이 모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또 어떤 의미로는 도시적인 것도 없고 농촌적인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도시적인 복잡함이 싫고 그 세련미를 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주 산촌으로 찾아온다. 그러므로 내가 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읍에 들어오면 나는 다시 한 번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던 고대 아테네를 연상하게 된다. 페리클레스가 등장해 본격적으로 상업문화를 형성하기 전까지 아테네는 유목민 혹은 농민들의 장터로 이용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중해 연안과 상거래가 본격화되면서 생활태도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농경문화에서 추구하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가치나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에 더 이상 관심이 없어졌고 군주의 절대적인 전력 같은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풍토에서 상대적인 가치관과 그것을 창출한 자주적인 인간관, 그리고 이러한 인간관에 근거한 민주적인 정치사상이 등장했으며 그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다양한 학문과 예술이 꽃을 피게 됐다.

    동시에 엄청난 재부(財富)가 축적됐는데, 아테네 시민들은 갑자기 성장한 육체와 관능적 욕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처럼 부패와 타락과 불의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의미의 진리와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파했고,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우리의 읍에서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농촌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상업문화로 옮겨오면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갑작스럽게 바뀌지만 이에 걸맞은 신념체계나 새로운 가치관이 확정되지 않아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편이다.

    가령 주민들은 자동차를 구입해 거리를 질주하지만 교통 규칙을 지키는 일에는 아직 생소해 표시를 무시하는 일이 많다. 그것은 꼭 준법정신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새로운 생활 양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 소를 몰고 논두렁을 다니던 농부가 신호등의 의미를 갑자기 실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달구지를 끌고 다니던 사람이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스피드를 감당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읍 주위에서 유난히 교통사고, 그 중에서도 인명사고가 많이 생기는 것은 결국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기존의 생활방식은 이미 통용되지 않는데, 새로운 가치관은 정립돼 있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규칙과 규범이 새롭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새삼스럽게 소크라테스의 절규를 다시 음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읍에서 확산되는 자본주의적 상업문화와 시장경제 논리는 급속히 농촌 깊숙한 곳으로 파급되고 있다. 농민들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전통적인 농심(農心)을 고수하기가 어렵게 됐다. 농촌풍경은 이제 ‘비닐 하우스’ 촌락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농지는 각종 산업시설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남아 있는 경작지도 다양한 농산물의 생산을 위한 공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농작물이 상품으로서만 그 존재 이유를 지니게 된 이상 농민의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이제 농심(農心)이 아니라 상심(商心)일 뿐이다. 오늘날 실제로 산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은 농심이 아니라 바로 이 상심들끼리의 충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목격하기는 아주 흔한 일이 됐다. 다만 그 ‘상심’이 아직 세련된 합리주의로 다듬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오해와 불화의 골을 더욱 깊게 파고 있을 뿐이다.

    이 외딴 산골 마을이 일종의 도피처일 수도 없고 천국이길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너무 급속하게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는 현상을 의식할 때마다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민심은 점점 더 삭막해져가고 사람들은 상대방을 일종의 도구나 수단으로 대하는 경향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일까.

    나는 가끔씩 짙은 안개 속에 파묻힌 산촌의 오솔길을 거닐 때마다, 혹은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망연히 수평선을 바라볼 때마다 심미적 가치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광활한 바다가 어부들의 어획량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산천초목이 농부들의 농산물만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의미로든 심미적 가치의 자율성이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심미적 가치는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지만 인간의 중추적 가치, 즉 진위(眞僞), 선악(善惡), 미추(美醜), 성속(聖俗)의 가치 중 하나로서 다른 가치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양의 중세에는 성속이라는 종교적 가치가 다른 가치들을 압도하고 종속시킴으로써 암흑시대를 창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존재 그 자체와 합일

    인식과 윤리와 예술을 모두 종교적인 관점에서 파악했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마녀 사냥과 같은 편협한 사고방식이 생겨나게 됐다.

    계몽사상은 이러한 현상을 주목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던 셈이다. 그러나 과학만능주의 사상이 욕구의 무한한 충족과 야합해, 즉 인식적 가치가 과학주의와 상업주의로 무장해 다른 가치들을 압도함으로써 불균형을 낳고 마침내 새로운 유형의 암흑시대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신계몽주의, 혹은 신합리주의는 이러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극복하는 데 그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자연이 생계를 유지하거나 인간의 관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소중한 심미적 대상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심미적 관점은 무엇보다 우리를 과학주의적 인식과 이기주의적 태도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사물을 바라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틈틈이 당진 근처의 외딴 산촌마을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며 또 체험할 수 있었다. 우선 나는 그 곳에서 내가 나 자신이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의 바쁜 생활구조 속에서는 현실적인 나와 이상적인 나, 욕구로서의 나와 당위로서의 나, 혹은 구체적인 나와 추상적인 나 사이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하고 갈등에 시달렸으나 그곳에 가면 이 두 측면의 이질적인 ‘나’가 비교적 사이좋게 공존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감을 통해 또한 나는 자유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자유는 외면적 자유와 내면적 자유, 혹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충동으로부터의 자유로 나누어지고, 특히 우리에게는 후자가 더 소중하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신념은 자연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가능하리라고 판단된다.

    가령 하나의 열매에 대해서 그것을 어느 과에 속하는 무슨 종류의 식물이라든가 식탁에 올려져야 하는 어떤 영양분의 음식이라는 것 외에 특유한 심미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좀더 나아가 그 존재의 오묘함이나 신비스러움까지 절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더 성숙한 자아로서 더욱 폭넓고 깊이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아가 존재의 근원으로 승화되는 계기이며, 동시에 존재 그 자체와 합일, 혹은 신의 섭리에 부응하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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