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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

‘란닝구’에서 ‘모시메리’까지, 한국 속옷 역사를 쓰다

(주) BYC 고진석 사장

  • 곽희자 < 자유기고가 >

‘란닝구’에서 ‘모시메리’까지, 한국 속옷 역사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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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C가 외환위기를 이겨내고 흑자경영을 해올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보다 한 업종을 전문화한 데 있다. 50년 넘도록 내의 생산 한 길에만 매달린 결과 기술을 축적하고 품질 높은 제품을 생산해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둘째 요인은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모두 자사 공장에서 가공, 생산함으로써 품질의 누수를 막고 비용을 절감한 데 있다. 또한 70년대 초부터 사업부별로 독립채산제를 시행, 철저한 책임경영을 뿌리내리게 했다. BYC는 전북 전주(섬유가공 및 제품생산 공장)와 완주(편직·방적공장과 물류센터 및 연구소), 서울 구로공단(여성 란제리 ‘아미에’ 생산공장)에 공장을 두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도 송강공장과 하양교공장을 두고 있는데,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중국 내수시장과 해외로 수출한다.

셋째 요인은 합리적인 유통과정과 확실한 판매망 구축에 있다. BYC는 87년 내의업계 최초로 전문점 정책을 실시, 전국 주요 도시 30여 곳에 직영영업소(신한마트)와 물류기지를 설치, 24시간 배달체제를 갖췄다. 이와 함께 전국 백화점과 할인매장, 혼합점 등 3000여 개 판매망을 통해 BYC 제품을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넷째 요인은 과감한 연구비 투자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독려한 것. 93년에 기술연구소를, 95년에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해 70여 명의 연구진으로 하여금 기술개발과 디자인연구에 전력하게 했다. 이들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와 급변하는 패션의 흐름을 발빠르게 읽어 부가가치가 높은 기능성 제품을 잇따라 개발해냈다.

최근 이 회사가 만들어낸 기능성 속옷으로는 여름철에 땀냄새를 없애주는 ‘데오니아’, 키토산이 함유돼 피부 알레르기와 세균증식을 막고 항균·소취기능이 있는 ‘BYC 크리스탈’, 키토산의 보습효과와 알로에의 약용효과를 원단에 접목해 자외선 차단과 보습, 살균, 소염, 혈행촉진 효과를 가져오는 ‘키토산 알로에 내의’ 등이 있다.



이 밖에 전통섬유인 모시와 순면을 특수 가공해 만든 ‘모시메리’나 원단 중간층에 따뜻한 공기를 함유할 수 있는 특수 보온사를 넣어 두 벌의 내의를 껴입은 것과 같은 보온 효과를 내게 한 ‘에어메리’ 등도 기능성을 살린 제품이다. 그저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 속옷에서 신체에 미치는 효능까지 고려한 속옷의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 고진석(高鎭錫·64) 사장은 “이런 면에서 내의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BYC는 75년 상장 후 전문경영인을 영입,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 한회장의 전문경영인 영입은 기업의 공익성을 높이고, 경영이익을 사원과 소비자에게 환원해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회사는 수출과 고도성장으로 외환·금융전문가가 필요했던 80년대엔 주로 금융전문가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서면서 회사가 커지자 조직관리에 능한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

스피드 경영

현재 BYC는 전문경영인인 고진석 사장과 한회장의 차남인 한석범(韓錫範·42) 사장 2인체제가 이끌고 있다. 군 출신인 고사장은 군에서 쌓은 조직관리 능력을 활용, 회사의 조직관리와 대외업무를 맡고, 한사장은 생산과 재무관리를 맡고 있다.

고사장은 한회장의 사돈(한회장의 3남이 고사장의 사위)으로, 60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보병 2사단장과 한미야전사 부사령관, 2군 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쳐 92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예편하던 해 BYC 계열사인 (주)한경섬유 대표이사로 취임, 계열사인 바이콤광고와 중앙정관을 거쳐 97년 BYC로 옮겨왔다.

한영대 회장은 3남1녀를 두고 있는데, 장남과 3남은 BYC를 거쳐 지금은 독립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장남 남용씨(44)는 유아복 업체 (주)베비라를, 삼남 기성씨(40)는 유아용 토털매장 (주)IBC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진석 사장은 37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50대 중반에 전혀 새로운 조직사회, 그것도 속옷을 만드는 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BYC에 발을 들였다. 그가 경영일선에 나선 지도 벌써 9년. 그 동안 회사 조직을 성공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예편 후 기업에 들어갈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예편하기 10년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고 한다. 틈틈이 경영관련 서적도 보고, 대학원에 진학해 행정학 공부도 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았다. 그래도 40년 가까운 군 생활로 몸에 밴 군대식 사고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마인드를 바꾸는 게 시급했어요. 군에서는 필승의 논리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어떻게 되든 무조건 이겨라’인데, 기업 경영에선 기업도 살리고, 소비자도 살리고 협력업체들도 살리는 윈-윈 전략을 펴야 하거든요. 더욱이 BYC는 원칙을 중시하는 정도(正道)의 기업정신을 표방하는 회사였습니다. ‘이윤은 적게 내도 정도를 걸어라’는 것이었죠. 너도 살고 나도 살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이런 기업문화는 내가 체험한 군문화와는 판이했어요.”

그가 처음 경영을 맡은 한경섬유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보니 전문용어도 많고 기계의 종류도 다양해 그 뜻과 용도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재무제표니 대차대조표니 손익계산서 같은 기본적인 서류를 보는 것도 서툴러 조금이라도 의문 나는 게 있으면 관련부서 직원들을 쫓아다니며 하나하나 배웠다. 사장 체면 때문에 점잔을 뺄 처지가 아니었다. 오로지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조금씩 일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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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자 < 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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