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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의 시대’를 사는 법|삶의 질

스톡홀름처럼 살고 로마처럼 먹고 아테네처럼 취하라

  •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스톡홀름처럼 살고 로마처럼 먹고 아테네처럼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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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들은 삶을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인생이 좋은 여행이 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한다. 여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스칸디나비아 땅은 그리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햇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여름 한 철이 고작이고 나머지 계절은 두터운 구름 아래서 지낸다. 겨울에는 온통 밤이 계속된다. 시간을 내어 스키나 사이클 같은 운동을 억지로라도 하지 않거나 여름철에 일광욕을 게을리하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피부에 곰팡이가 슬기도 한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삶의 조건이 그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그들은 삶을 디자인의 대상으로 여긴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항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선 도시의 어느 지역을 다녀도 큰 소리로 떠들거나 소란을 피우는 광경을 볼 수 없다.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삼가는 그들인지라 시비를 벌이는 일도 없고, 자동차들도 웬만해선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대신 대낮에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닌다. 변덕이 심한 날씨 때문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어떤 차는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헤드라이트가 켜지도록 해놓은 것도 있다.

성의 상품화나 도구화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그들은 모든 사람을 같은 인간으로 대한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남녀, 나이, 직위, 피부색이나 용모 같은 것보다는 인간 됨됨이를 더 중요시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개체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근로시간과 근로조건은 물론,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이 되는 양로보험과 실업보험, 의료보험 등 각종 보험의 수준은 문제의 당사자인 노·사·정이 한데 모여 합의를 도출해 정한다.

이곳에선 정년퇴직을 하고 양로보험의 혜택을 받는 경우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해서 수입이 생기면 그만큼 양로수당이 줄어드는 데도 그렇다. 자신이 일해 번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잘 간수했다 자신의 심신을 살찌울 수 있는 여행경비로 쓰기도 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고 나이 든 부모 또한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가능한 한 견지하는 것이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다.



도시의 역사가 몇 백년쯤 되고 보면 어딘가엔 슬럼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전화, 인터넷 설비, VCR, 자동차, 별장 등의 보유 수준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소득이 세계 최고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소득수준에 비해 삶의 질이 훨씬 더 높다. 이는 그들이 질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태도는 물건 하나를 만들고 파는 데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있는 유명 백화점 엔코에서는 상품의 질이 의심스러우면 아예 들여놓지 않는다고 한다. 쇼핑을 하러 온 한 젊은 친구는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질이다. 질이 좋으면 우선 기분이 좋고 오래 쓸 수 있으므로 물자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데다 쇼핑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어 여러 모로 좋다”고 했다. 스톡홀름의 물가는 서울보다 3배 정도 비싸다. 이는 높은 질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므로 소득수준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셔츠를 가리키며 “산 지 8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멀쩡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질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는 태도였다.

미래를 희생시킬 순 없다

여행지를 옮겨다니면서 방을 구하거나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살 때마다 옥신각신 흥정하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긴 경험이 있는 필자로선 “질에 문제가 있거나 바가지를 씌우는 상품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렇게 서로 신뢰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남을 믿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부담해야 하는 시간과 돈은 얼마이며, 신경은 또 얼마나 쓰는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런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복지사회의 기틀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질을 이루는 둘째 조건은 무엇을 하나 만들더라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들을 만들고 소비하는 과정일진대, 거기에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면 그 질이 높아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도시를 건설하고 가꾸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스톡홀름은 흔히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 이를 에워싼 푸른 숲, 중세풍의 건물과 현대식 빌딩들이 섞여 만들어내는 절묘한 조화, 그리고 이 모두를 조용히 비춰주는 푸른 물길…. 그중에서도 사각형 건물과 높다란 종탑으로 이뤄진 시청 건물은 호수 위에 우아하고 엄숙한 자태를 드리우고 있어 그 모습은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답다. 매년 12월10일이면 그해의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파티도 그곳 대연회장에서 개최된다. 100여 년 전 건물의 설계를 맡은 라그나르 외스트베르그는 시의 상징물인 시청사를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다 중세 유럽의 중심도시였던 베네치아의 건축물에서 힌트를 얻어 외형을 구상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여러 차례 베네치아를 다녀오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시청 건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사는 집에도 엄청난 정성을 쏟는다. 인테리어는 물론 외관에도 남달리 신경을 쓴다. 도시를 가득 채운 수많은 건물은 제각기 다른 색깔과 디자인을 자랑한다. 그들은 세계의 어느 민족보다 삶의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고 이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그것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그들만의 방식이 된다.

스웨덴 북쪽의 노르웨이 사람들도 이 점에선 뒤지지 않는다. 수도 오슬로는 녹색을 마음껏 자랑하는 드넓은 수풀, 문득문득 나타났다 사라지는 진한 청색의 피오르드, 인간의 여러 가지 포즈를 묘사한 조각작품들로 가득한 프롱네르 공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조깅과 산책,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 색깔과 크기와 디자인을 서로 달리하며 은은한 멋과 개성을 드러내는 건물들…. 무공해 자연과 다정다감한 인간들이 어우러져 지상 낙원 같다는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지방도시라고 해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구 22만의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은 유서 깊고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항구를 껴안고 있는데다, 이 도시 출신의 음악가 에드바르트 그리그가 피아노 협주곡 a단조에서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강한 폭풍우 같으며 딱딱하다가도 또 우아해지는’ 선율로 표현한 바 있는 예사롭지 않은 피오르드를 가까이 두고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사정이 이쯤 되면 여느 도시 같으면 관광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받으려고 호텔 객실 수를 늘리고 레스토랑이나 기념품 가게를 세우고 길도 넓히고 항공기 운항 편수도 늘리겠지만, 베르겐 시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에 현혹돼 자신들의 공간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도시의 수용능력과 정화능력 범위 안에서만 관광객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관광객은 잠시 이 도시에 들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이곳에서 살 사람들이다. 오늘 이 순간의 벌이를 위해 미래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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